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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478)화 (478/593)

백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섬뜩한 빛이 번쩍이기가 무섭게 동목공과 제원의 눈앞에 걸렸으니 말이다.

천병들은 경지가 가장 높은 이가 진선경에 불과한 터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순간 안색이 확 변한 동목공이 얼결에 제원 도사의 팔을 잡고 뒤로 확 당겼다.

제원 도사는 ‘아이고’하는 소리를 냈다. 당겨질 때는 거의 온몸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이와 동시에 동목공은 금빛을 크게 터뜨리며 도포 사이로 갑옷을 드러냈다. 왼손으로 법보를 쥘 겨를도 없이 전방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천정 목공, 법술 싸움 로그인!

푸른 소용돌이가 손바닥에서 용솟음치고 이내 푸른색 광막을 펼쳤다. 목공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리고 두 눈에도 위엄이 한껏 깃들었다.

하나 미처 광막을 채 펼치기도 전에 공중에서 멈춘 백광이 확 터지면서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곳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종이 도인마저도 백광에 닿아 다치고 말았다.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원신의 힘이 충격에 흩어질 지경이었다.

이장수는 무의식중에 종이 도인을 뒤로 물리고 정신 두 줄기를 사부님 소매에 있는 종이 도인으로 옮겼다!

일단 사부님부터 구하자!

이 정도의 법술이라면, 사부님은 스치기만 해도 다치고 맞으면 죽는다. 선기(仙氣)만으로도 사부님을 녹여버릴 수도 있다.

백광이 빠르게 터진 와중에 제원의 소매에서 휘황찬란한 빛 두 줄기가 날아 나왔다. 금선경 종이 도인 둘은 각각 중년의 천장으로 변했다!

1호 종이 도인은 제원 도사의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흐르는 선력으로 제원 도사를 감쌌다. 익숙한 짐승 가죽의 자루를 꺼내 황급히 뒤로 물러날 작정이었다.

2호 종이 도인은 동목공에게 돌진했다. 선력으로 응결한 밧줄을 흔들어 백광이 가장 짙은 곳에서 동목공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이장수의 반응은 더없이 빨랐는데도 그 백광이 용솟음치는 간격이 실로 너무나도 짧았다!

가장 자신 있는 둔술조차 마음대로 펼치지 못할 정도였다.

상대는 무방비한 사람을 음해하려는 건가, 어쩌면 겁운의 영향을 받은 것이려나. 그가 갖고 있던 위기의 예감이 이번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1호 종이 도인이 아직 사부님을 데려가지 못하고, 2호 종이 도인의 왼손 끝이 흩날리는 동목공의 회색빛 머리카락 끝을 건드리지 못했을 때······ 별안간 온 하늘을 가득 채운 백광이 사그라들고 둘레 백 리 건곤이 감아 돌고 음양이 위치를 바꾸면서 극히 어두워졌다!

선식도 수십 장 범위로 제한된 터라 마치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빛과 어둠이 극히 빠르게 전환되던 찰나,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종이 도인을 통해 이장수는 가까스로 동목공 앞에 멈춰선 하얀 방추(紡錘)를 보았다. 방추 위에는 물결이 상당히 급하게 넘실댔다.

천병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에 힘이 풀리고 원신이 흩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말의 기식마저 남지 않았다.

독이었다.

나름대로 독 살포 전문 연기사인 이장수가 저 물결이 무엇인지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상대는 독을 쓰는 고수가 분명했다. 방추 모양의 영보 또한 엄청났다. 기습부터 독을 살포하는 것까지, 평범한 금선 ‘고수’인 동목공에게 몸을 뺄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목공을 탓할 수 없고, 이장수도 딱히 할 수 있는 대응이 없었다.

전음으로 ‘실례’하고, 사부님을 기절시킨 다음 짐승 가죽으로 된 영보 자루를 꺼내 제원 도사를 안에 담고 소매에 넣는 것밖에는.

동목공은 신음을 흘렸다. 두 눈이 마구 떨렸고 온몸에서는 검은빛을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호체 선광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물결 속에서 궤멸했다.

“목공!”

종이 도인 2호가 낮게 부르며 부랴부랴 동목공의 팔을 부축했다.

치직. 종이 도인의 손바닥은 검은빛이 닿자 하얀 종이가 드러났다. 흡사 불에 그을린 자국처럼 변한 것이었다.

이장수는 모든 금선경 종이 도인이 구비한 해독단을 꺼내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한 동목공의 입에 밀어 넣고 맹독이 침습하는 걸 막았다.

목공의 경지로 판단컨대 천정 공식 2인자는 평소에 천정 사무로 정말 바쁜 모양이었다.

경지가 어지간히 모자라야지.

한편, 이장수는 외부에 있는 3호 종이 도인의 눈을 통해 ‘칠흑처럼 어두워진’ 땅을 관찰했다.

조금 전 독살된 천병은 십 장 남짓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무언가에 가로막힌 게 분명했다.

해독단 덕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목공은 헉헉, 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장수의 종이 도인들은 ‘화상’을 입은 것 외에는 맹독에 영향을 받지 않은 터라 두 눈을 부릅떴다.

“흐음, 종이 인형?”

남녀를 구별할 수 없는,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전해졌다.

“여기도 수신의 화신이 있을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했지만, 재밌게 돌아가는군.”

수신이라고?

동목공은 놀란 눈으로 곁에 있는 중년의 천장 둘을 바라보았다.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미 짓무른 종이 인형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바로 종이 도인의 최대 단점이다. 호체 선력이 깨지고 나면 목숨이 종잇장이 되고 만다.

이장수는 종이 도인을 보면서 상대가 사용한 독이 원신을 겨냥하지 않았다는 걸 판단해낼 수 있었다.

사부님은 안전하지만, 다소 우악스럽게 보호되었다. 천장으로 변신한 종이 도인들은 동목공의 양쪽에 서서 공세를 준비했다.

주위에 오만가지 위험이 잠복해 있다.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리 쪽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이장수도 소소한 비장의 패를 꺼냈다. 종이 도인 둘의 기식을 연결하고 표정도 완전히 일치시켰다.

상대는 눈에 띄게 주저했다.

체내 금단 두 알이 살짝 퍼지자 종이 도인들이 먼저 위압을 퍼뜨렸다. 표정은 더없이 차분했다.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상대가 난을 일으키는 사이 이장수의 본체는 식구를 다 끌고 왔다.

줄곧 반납하지 않았던 탑 형님과 건곤척을 꺼내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매복 공격에 당한 곳은 동승신주 경계 지역으로 도선문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장수의 둔술 속도라면 금선경 종이 도인 둘만으로 끈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카아앙!

별안간 하늘을 진동하는 호랑이 울음이 들렸다.

주변 건곤이 떨리고 이장수와 동목공의 머리 위, 발아래에 거대한 무언가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흡사 거대한 호랑이 주둥이 같기도 했다.

이제 주위가 아무리 위험하대도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순 없게 되었다!

종이 도인 둘이 금빛을 크게 터뜨리고, 정면을 향해 선력이 물밀 듯 용솟음쳤다.

어둠 속에서 늘씬한 인영이 번쩍 스쳤다가 즉시 뒤로 물러났다. 이장수의 맹공과 맞서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이장수는 낮게 소리치면서 공세를 벌였고, 동시에 좌우에서 싸우진 않았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목공을 단단히 붙잡았다. 금빛이 변하여 어느 방향을 향해 급히 쏘았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언제 가리!

그러나 이장수가 이제 막 수십 장을 이동했을 때, 전방의 건곤이 봉쇄되고 금빛이 가로막혔다.

이 결정적인 순간, 아무런 영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장수는 돌진할 수가 없었다.

건곤 둔술을 펼치려고 했으나 기운을 채 펼치기도 전에 거대한 두 개의 그림자가 위아래에서 그들을 그 속에 가뒀다.

건곤이 철저히 봉쇄되고, 종이 도인들과의 연결이 차단되었다!

이장수는 3호 종이 도인을 통해, 길이가 수백 장에 달하는 날개를 단 삼두(參頭. 머리가 세 개 달림) 백호가 왼쪽에 달린 머리로 종이 도인 둘과 동목공, 그리고 자루에 든 사부님까지 한입에 삼켜버리는 광경을 보았다!

아득하고 난폭한 위압이 삼두 백호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천지의 제왕이라도 된 양 삼두 백호는 오른쪽에 달린 머리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만 리는 적막이 감돌았다.

진정 호랑이의 굴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였다!

휘익—

아까 그 한 줄기 백광이 다시 나타났다.

사부님의 뒤를 쫓던 종이 도인은 천선경 후기에 해당하는 실력이었다.

종이 도인이 하얀 방추를 직면할 때, 이장수는 순조롭게 벗어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방추가 날아오는 순간, 전력을 다해 둔술을 펼치고 물러나······ 한마디라도 뱉을 시간을 벌었다.

“두 사람이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구족이 멸할 것이다!”

푸학,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도인이 방추에 관통되고 이장수와의 정신적 연결도 끊어졌다.

······

‘사부님.’

대지 속, 이장수의 본체가 사막의 모래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이장수의 정신은 금선경 종이 도인 둘과 여전히 미약한 감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독성이 터진 후 괴로워하는 목공의 신음을 들었고, 자루에서 사부님이 꼼지락거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현재 서북쪽에 있었고, 거리도 계속해서 좁혀졌다. 다만 삼두 백호의 경지는 상당히 높은 터라 둔술을 전력으로 펼쳐도 바로 따라잡지를 못했다.

손에 움켜쥔 건곤척이 폭발음을 냈다.

토둔술과 건곤 둔술을 교차로 펼치며 대지 속에서 미친 듯이 쫓아갔다.

두 눈에 푸른색 빛이 터졌다.

요족들이 오늘 건드리려고 했던 상대는 동목공이었다!

천정 내 숨어 있는 배신자가 동목공의 행적을 까발린 것이다.

현재 대겁의 겁운이 강림하여 추산법이 효력을 잃었다. 그러니 배신자가 누설하지 않았다면······.

뭐, 천정이 워낙 크다 보니 일개 천병이라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으려나.

이장수는 그제야 오늘의 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깨달았다. 몇 년 전 천정에 떠돌던 소문처럼 요족은 천정의 돌파점을 목공으로 삼은 것이다.

천정 2급 정신인 목공은 ‘남선인의 우두머리’로 불린다. 이 위치에 세워졌을 때, 바로 천정 2인자가 되었다.

요족이 목공을 가지고 천정을 협박한다면, 천정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목공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고 전력을 다해 출병하건 목공을 살리고자 요족의 조건을 들어주건 모두 요족의 뜻대로 될 것이다.

목공이 저쪽의 흥정거리가 되면, 천정의 위엄은 땅에 떨어질 것이니 천정은 원치 않아도 출병해야 한다.

일단, 현재로선 천정 병력을 차출하는 건 무용지물이다. 천정의 병력이 대다수 진선경에 불과한 것은 고사하고 삼두 백호라는 대요괴를 마주한다면 천병 천장 수만 명은 한 입 거리에 불과하다.

용궁 등에서 병력을 조달하는 건 시간 방면에서 아예 택도 없었다!

반드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사부님과 목공을 구해야 한다!

도움을 청할까?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대법사였다. 그러나 대법사는 현재 오부주에 있지를 않았다!

조공명, 운소 선자······.

겁운이 머리 위에 있다.

겁운에 발을 들이는 건 피할 수 있었던 그들에게··· 대겁의 인과를 묻히게 하는 꼴은 아닐까?

일단 쫓아가자. 따라잡으면 사부님과 동목공을 구해낼 수 있어.

둔술 풀가동!

이장수는 온몸으로 푸른빛을 가물거렸다.

선력이 미친 듯이 용솟음치고 지맥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요족!

육압!

서방교!

침착하자. 지금은 침착해야 해.

동목공이 당한 일에 사부님이 휘말린 건 순전히 뜻밖에 일어난 일이다.

상대는 목공을 흥정거리로 삼으려는 것이지, 죽이진 않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사부님도 일단은 안전하다.

이장수는 욕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손을 들어 제 뺨을 때렸다.

가까스로 이성을 찾은 그는 끊임없이 구조할 방법을 모색했다.

극도로 초조했지만, 위장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고 소법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

소경봉 지하 밀실.

종이 도인 하나가 성인 초상화 앞에 꿇어앉았다. 그러나 성인 초상화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목공이 겁에 드는 것이 성인의 뜻이었나?

동목공의 운명에 죽을 고비의 겁이 있다는 건 잊지 않았다.

동목공이 죽지 않으면 훗날 순양 검선 여동빈이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목공의 겁이 봉신대겁과 충돌하면서 사부님을 겁난에 끌어들였다.

그렇지만 사부님은······.

선도를 먹고 겨우 진선경에 도달하였으니 진짜 실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탁선이었다!

남은 수명을 제대로 누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사부님이 어째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걸까······.

오늘 공격한 그 요족 대능이 숨만 후, 하고 불어도 사부님은 시신은 물론 뼈도 온전하게 남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구조 난도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

흑지봉.

전음을 듣고 곧바로 신통력을 펼쳐 검은빛으로 변한 백택이 흑지봉 대진과 도선문 호산 대진을 뚫고 이장수가 알려준 방향으로 쫓아갔다.

백택의 둔술 신통력은 꽤 제한적이었다. 본체를 이용해 날면 우아하긴 했지만, 보기만 좋고 속도는 그저 그랬다.

한편, 대지에서 얼마나 멀리 이동했는지 모를 이장수는 별안간 움찔했다.

어느새 지하에서 종이 도인 앞까지 돌진했다!

눈에 신광이 응결되었다. 지하에서 빠져나오자 손에 들고 있던 건곤척이 반짝이면서 슉, 하고 지표면에서 사라지고 짙은 안개로 들어왔다.

이곳은······ 북주 장기 구름이었다!

열심히 쫓아가기만 했지, 어느새 북구로주 중심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던 건······.

아까는 둔술을 전력으로 펼쳐도 선식을 너무 멀리까지 뻗지 못했다면, 지금 선식을 퍼뜨리자 십여 개의 위압이 구름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천 리, 만 리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요족 대능의 소굴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주저할 순 없었다. 목공과 사부님의 목숨이 요족 호랑이의 주둥이 속에 있다.

이장수는 극히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려 짙은 회록색 운무에서 점점 육중해지는 거대한 그늘을 받아들였다.

슉!

펑!

건곤이 진동하고 운무가 흩어졌다!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가 엄청난 빛이 폭발하면서 칠흑 같은 감옥이 되었다. 호랑이 울음이 하늘을 뒤흔들었고, 운무가 광풍에 휩쓸려 고공으로 올라갔다!

전광석화 간에, 육중한 삼두 백호 옆에서 두 인영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극히 빠르게 맞붙었다.

삼두 백호의 왼쪽 머리가 잠기고, 나머지 두 개의 머리는 푸른색 화염을 내뿜었다. 네 개의 눈에 금빛이 스쳤으나 끊임없이 가물거리며 이동하는 이장수의 인영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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