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파공음이 뒤에서 들려오고 전갈 요괴가 또 한 번 달려들었다.
이장수는 몸을 훌쩍 날려 전갈 요괴의 습격을 가볍게 피했다.
손으로 벼락을 터뜨리고 이제 막 아래로 떨어지려는 삼두 백호의 왼쪽 머리를 내리쳤다.
이제······ 사부님을 구하고 목공을 잡을 수 있어.
벼락이 삼두 백호의 주둥이를 비켜났다. 이장수는 뇌둔술을 펼쳐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갔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백호의 꽉 다물린 주둥이 옆에 나타나 왼 주먹으로 백호의 이빨을 부수고 사부님과 목공을 구해낼 수 있다!
도심이 떨리고 조심하라는 탑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 뒤, 건곤의 진동을 통해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에는 분노와 원망이 담겨 있었다!
“보패여, 돌아라!”
백광 한 다발이 극히 빠른 속도로 벼락을 내리쳤다!
······
조금 전.
미친 듯이 달려서 구름과 안개를 넘고 동승신주와 북구로주의 경계 지역에 도착한 백택은 곧바로 북구로주의 짙은 장기로 들어갔다.
지금 그는······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몹시.
‘사부님과 목공이 요족에게 붙잡혔다’는 전음을 받고서 가슴이 철렁했다.
‘수신이 나를 배신자라고 여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솟구쳤다.
제원 도우의 운명을 감응할 때, 정말로 제원 도우의 앞에 길운이 펼쳐졌다고 느꼈었다!
그것도 엄청난 기연이었다. 단번에 하늘을 날고 무궁무진한 복을 누리는 그런 것이었단 말이다!
쓰읍—
설마 탁선은 박복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 신통력이 천기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터라 반대되는 판단을 내린 걸까?
설마, 그럴 리가!
지금껏 ‘길한 것을 쫓고 흉한 것을 피하는’ 신통력으로 대겁을 피했고, 대겁에서 사지 온전하게 물러났지 않은가.
백택은 괴로워하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제일 처음, 멀리서 수신을 보았을 때, 그는 수신이 지략이 뛰어나고 수단이 과감하며 적당한 선을 잘 지키니 최고의 ‘2천제’ 감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막상 수신 대인 곁으로 다가와 그와 사귄 후에야 깨달았다.
이 녀석은 마음이 더럽긴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사악하고 잔인한 건 또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족이나 곁에 있는 가족과 친우에게만큼은 퍽 온화하고 다정했다.
현재 도문에서 수신은 좀 난감한 위치였다.
태청 성인이 눈여겨보는 유망주였고, 태청관에 가서 절만 올리면 최강 성인이 친히 전수하는 제자가 될 수 있다.
난감하다는 건 사실 수신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그를 길러준 사부 제원이 있었다. 제원은 선인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탁선이었다.
더구나 수신이 있었기에 탁선 중 일인자가 되었을 것이다.
보통 제원 도사처럼 지극히 평범한 연기사는 절대 수신 같은 제자를 길러낼 수 없다.
령아는 더욱더 그랬다. 그녀는 완전히 수신 대인이 키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 처리하는 방식은 갈수록 제 사형을 닮아가는 중이고.
본디 사부가 있던 수신이 태청 성인의 제자로 거둬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와, 최강의 성인이 탁선의 제자를 빼앗았다고?
물론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그게 사실이지 않은가.
아마 수신은 지금 성인 초상화 앞에 분신을 보내 꿇어앉아 있으리라. 그러나 성인께선 직접 나서서 탁선을 구하진 않을 것이라. 그건 도리에 맞지 않다.
아무리 총애한다고 해도 말이다.
수신은 조급한 마음에 혼자서 북주 경계 안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상고 요괴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일부 요괴는 과거 요제를 따르던 이로 실력은 10대 요수보다 뛰어나다.
천지현황영롱탑이 호신하고 있다고는 하나 수신과 육압의 지난 싸움으로 판단했을 때, 수신의 경지는 대라경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저쪽에서 협공을 펼치면 그야말로 골치가 아파진다.
깨부술 수 없으면서 옮길 수도 없는 산악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우르릉—
천지 건곤이 북처럼 부풀어 오르고 무수한 독이 미친 듯이 아우성쳤다.
장기 구름 속에 있는 생명들은 이 순간 미친 듯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생명의 두려움이 백택의 마음속에 투영되었다.
전방, 둘레 십만 리 범위.
오랜 세월 흩어지지 않은, 산처럼 웅장한 북주의 장기 구름은 폭풍우가 내린 넓은 바다처럼 끊임없이 넘실댔다!
본체로 변한 백택의 두 눈에는 물빛의 푸른 파흔이 감돌고 머리 위에 달린 긴 날개 세 개가 미약한 빛을 가물거렸다. 그는 동요하는 가장 가운데 지역을 보았다.
북주에서 장기가 가장 짙은 곳으로 지금은······ 놀랍게도 천지가 청명했다!
짙푸른 하늘 아래, 태양성의 빛은 눈을 찔러댈 정도로 밝았고, 하늘에는 한층 한층 ‘구름층’이 있었다.
몸집이 거대한 16마리 요괴가 장기 구름의 틈새 외곽에서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백택의 동공이 확 작아졌다.
마침 뇌둔술을 펼친 이장수를 발견했다. 백광이 번쩍하며 벼락을 때렸다. 그리고 이장수에게서 불과 백 장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리가 절단된 삼두 백호도 보였다.
백색 화염을 휘감은 금오 한 마리가 울부짖자 건곤에 주름이 생기더니 극히 빠른 속도로 백호의 머리를 관통했다!
“육압, 네놈이 감히.”
냉랭하게 소리친 이장수는 곧장 아래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커다란 인장이 백호 머리에서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장 길이로 변해서는 이장수를 무참히 ‘날렸다’.
요제 옥새였다!
“하하하하하!”
뜻한 바를 이룬 듯 득의양양한 육압 도인의 웃음소리가 커다란 인장 뒤에서 들려왔다.
육압의 금오 발톱이 독으로 인해 혼절한, 중상을 입은 목공을 붙들었다.
종이 도인 둘을 바라보는 육압의 눈에 포악한 기운이 스치고 도심에 미친 듯한 파괴의 마음이 솟구쳤다.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하자, 극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태양 진화가 만들어졌다!
이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건곤척으로 요제 옥새를 내리쳤다.
경지에 한계가 있는 터라 건곤척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으나 가까스로 요제 옥새를 날려낼 순 있었다.
육압의 본체 삼족 금오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이제 막 재연결되었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종이 도인들을 조준했다!
종이 도인 두 개의 소매에 무엇이 있는지······ 육압은 아마 모를 것이다.
순간, 아주 순식간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백택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미친 듯이 몸을 날렸고, 그 목소리가 선식을 통해 육압의 귓가에서 터졌다.
급박하고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그런 목소리.
“멈추시오! 목공을 죽인다고 해도 그 둘은 건드리면 안 된······.”
후—
백색 화염이 폭발하고 종이 도인 하나가 힘껏 던지는 자세를 취했다. 극히 짧은 시간에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려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내던졌다.
그러나 태양 진화가 어찌나 빠른지, 잔잔한 화염만으로 짐승 가죽으로 된 자루를 휩쓸고 불씨를 돋웠다.
그 안에서 한 도사가 나타났다······.
탁선, 진선경······.
도사 주위에 빛이 솟구쳤다. 이장수가 사부님에게 남긴 방호 영보였으나 태양 진화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도사의 소매에서 날아 나온 ‘인’ 자 종이 도인은 선력을 폭발해내고는 이내 화염에 섬멸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사는 태양 진화에 뒤덮였다. 종이 도인이 타오르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태양 진화는 금오족의 타고난 신통력이었다.
그러나 이장수가 남겨둔 후수는 사부님이 한 마디를 남길 짧은 기회를 벌어주었다.
도사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장수를 발견했다.
이장수가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와 어느덧 둘 사이의 거리는 십 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도사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고통도 잊고, 자신이 곧 사라지고 말리라는 공포도 잊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
“떨어져라! 가까이 오지······ 말아라······!”
화염이 도사의 얼굴을 집어삼키고 도사의 원신을 찢어발겼다.
극히 높은 온도는 일격도 감당하지 못할 도사의 육신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장수가 달려들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왼손을 펴 보이자 회색 재가 흩날렸다.
사부님······!
사부님이······!
공백.
적막.
이장수는 멀거니 섰다.
공명도심이 칠정과 육욕을 억누른 터라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화면들이 끊임없이 감돌았다.
눈물 한 방울이 눈가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입가에는 핏빛 한 줄기가 옅게 스몄다.
마음속에선 칼 한 자루가 돌아가면서 심장을 후벼파는 듯했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느새 멀리 날아간 육압과 무리를 지어 다가오는 거대한 몸집의 요괴들이 보였다.
이장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네가··· 죽인 것이냐?”
육압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면 뭐······.”
이장수는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네가 죽였구나······!”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에는 온통 실핏줄이었다.
육압은 이해하지 못할 분노가 장수의 눈에서 마구 들끓었다.
멀리서 날아온 백택은 무의식중에 걸음을 멈추었다.
위험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해!
온몸의 털이 바짝바짝 서기 시작하고 신통력이 미친 듯이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쓰게 웃고는 눈을 감은 채 길게 탄식했다.
요족은 정말로 끝났구나.
“네가 죽였어!!!”
이장수의 목소리가 더없이 무거워졌다.
무어라 말하려던 육압은 이장수 주위에 넘실대는, 등 뒤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족자를 보았다.
족자가 펼쳐지면서 천지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림에는 해와 달, 별, 복잡한 속세, 연이은 산, 고요한 구름, 우뚝 솟은 궁전이 있었다.
육 척 길이밖에 되지 않은 족자에 운무만 있는 듯했으나 운무 속에 중생, 천지, 만물, 만령과 관련된 것이 연출되었다.
인, 신, 귀, 요, 영, 마.
족자가 가볍게 흔들리자 드넓고 어렴풋한, 복잡하면서 간단한 기운이 여전히 현황탑을 때릴지 말지 망설이는 육압을 비롯한 상고 요괴 16마리를 휘감았다.
그 순간, 이장수는 선혈을 내뿜었고 온몸으로 미약한 빛이 가물거렸다.
원신의 힘을 태웠다.
연기사가 게거품을 물고 싸울 때 생기는 그것처럼 원신의 힘을 태웠다.
원기를 크게 깎아야 하는, 원신의 힘을 태운 것이다.
비장의 패: 도
‘육압, 나는 네게 안정적인 수단을 쓸 필요가 없었다. 네가 대겁을 맞이하는 자 중 천도의 비호를 받는 존재라는 걸 고려하지 말았어야 했고, 극도의 확신이 생기기를 기다리지 말았어야 했다······.’
별안간 이장수가 왼손을 들었고, 손바닥에 미약한 빛이 넘실댔다.
“만물균형(萬物均衡).”
차갑고 쓸쓸하면서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검은빛 한 다발이 이장수의 뒤에서 떠올랐다가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천도의 힘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 같지만, 천도의 힘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요괴와 육압을 뒤덮었다.
순간 요괴들은 봉인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이 확 작아졌고 경지도 절반 이상 사라졌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육압은 온몸을 벌벌 떨었다. 소년의 얼굴로 돌아온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바로 당혹스러움은 사그라들었다. 육압은 목공을 멀리 던져두고 곁에 있는 요괴들처럼 끝없는 분노에 빠졌다.
분노로 역력한 눈은 이장수를 거의 씹어먹을 기세였다.
이장수가 그들의 분노가 균형을 이루도록 고루 나눈 것이었다!
이장수는 얼굴의 위장을 걷고 청년 도인의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치, 치이이······.
자잘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이장수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
공중에 서 있는 그의 미소에는 괴로움이 역력했다.
사부님, 제자가 어떤 도를 이뤘는지 모르시죠?
사부님······.
이장수는 손을 들어 가슴께를 가리켰다. 다채로운 빛깔을 가물거리는 기운으로 거미줄 같은 새까만 겁운을 응결해 육압을 조준했다.
검은 기운이 육압의 원신을 휘감고 그를 한층 더 분노로 내몰았다.
공명도심, 자기분쇄.
‘겁운을 끌어 나를 들이고 겁운을 내려 너를 들인다. 육압. 이전에 너를 가만두지 못했던 건 입장과 이익, 그리고 미연의 방지를 위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바로 네 겁이다!’
그림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푸른색 기운이 끊임없이 천지를 쓸었다.
육압과 16마리의 요족 고수는 일제히 노호하며 이장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장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도포가 펄럭거렸다.
현황탑이 머리로 내려와 원신을 뒤덮었다.
왼눈의 푸름은 도가 드러난 것이요, 오른눈의 붉음은 마음속에 억누르지 못하는 살기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우임금 치수도, 수신 보기 조무기(皁武旗).
건곤척을 손에 쥐고 한달음에 하늘을 갈랐다!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