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509)화 (509/593)

령아가 친히 만든 비장의 도포를 입고 긴 머리는 도고로 고정했다.

거울 앞에서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보았다가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고쳤다.

역시 진중한 게 훨씬 보기 좋군.

“사혀엉~”

령아가 향로를 안고 초가집으로 나부껴왔다. 향로를 이장수의 옆에 두고 사형에게 향기를 입혔다.

이장수는 빙그레 웃으며 얼굴에 해둔 위장과 매력을 낮춘 오로라를 걷어냈다.

신중하게 고른 옥패를 차고 푸른 도포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줄 띠로 머리를 묶었다.

구레나룻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능숙한 손길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로 수염을 정돈했다.

옷깃을 바로잡고 신발에 앉은 먼지를 털어낸 다음 각지에 흩어져 있는 종이 도인의 활동을 중단하고 정신을 본체로 돌렸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슬며시 탄식했다.

이게 뭐람?

분명 얼굴만 믿고 밥 벌어 먹고살 수 있거늘 굳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생존권을 얻는 홍황에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니!

사실 이번 생에 이렇게 제대로 꾸밀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댁 선자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종이 도인으로 옥정 진인을 찾아가던 중에 느닷없이 태청 성인의 부름을 받았다. 태청관에 가야 할 터.

무슨 일로 부르셨겠는가?

도법 전수, 훈계, 정식 제자로 들이기, 큰 임무 맡기기. 이 네 가지 중 하나겠지.

구리거울 하나를 던져주고 천정에서 유행하는 구리거울 인터넷 방송을 해보라고 하진 않을 거 아닌가.

그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이장수는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걸고 몇 가지 자세를 시도했다.

팔짱을 끼고 진지한 척하고, 미소에 소년미를 장착해보고, 날렵한 눈썹을 치켜세우고 차가운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다.

푸시식.

별안간 옆에서 연기가 폴폴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령아가 비틀거리면서 의자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머리 위로 하얀 김이 마구 솟구쳤다.

사형의 매력 과부하에 걸린 듯.

“그래, 이만 가봐야겠다.”

이장수는 목을 가다듬었다.

현황탑을 부르고 백택에게 전음으로 소경봉을 잘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옆에 있는 초가집으로 걸어가 향 세 개를 피우고 사부님의 위패에 절을 했다.

제원. 요절, 향년 1천여 세.

“사형!”

뒤에서 잰걸음으로 달려온 령아는 까치발을 하고 몸을 쑥 앞으로 뺐다.

모처럼 보는 이장수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운소 언니 만나러 가는 거예요?”

“물론······ 아니다. 스승님께서 부르셨다. 아마 맡길 일이 있는 모양인지 태청관으로 가라고 하셨다.”

령아는 짐짓 당황했다가 이내 안도했다.

“본체로 항아라도 보러 가는 줄 알았어요.”

“너는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그 일도 다 아는구나.”

“이미 소문이 쫙 퍼진걸요? 삼계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면서요.”

령아가 볼을 부풀리자 이장수는 볼을 꼬집고 좌우로 흔들어댔다.

령아는 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용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너는 잘 알 줄 알았는데?”

놀리는 투로 말하고는 봄바람으로 변해 현황탑과 함께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령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사형에게 무언가 ‘약속’을 받은 것 같긴 한데······.

그러다가 속에 담긴 장난기를 읽어내고는 이장수가 사라진 쪽을 보며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나도 제법 예······ 음, 그래, 온건해야지. 나름 보기 좋게 생겼다고.

령아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거울에 비친, 갈수록 빼어나게 아름다워지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형이 놀린다고 한 말인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생각에 잠기는 말이었다.

······

한편, 도선문을 벗어난 이장수는 탑 형님에게 태청관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탑 형님은 일단 천정으로 가서 구중천 궁궐을 벗어나면 된다고 답했다.

하여 둔갑술로 수신부 천장으로 변한 다음 수신의 영패를 쥐고 동천문으로 들어갔다.

천정 정신인 그는 원신 곁에 신권 보기를 동반한 터라 천문 위에 걸린 세 자루 보검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조공명이 왔더라면, 세 자루 중에 적어도 한 자루는 떨어졌으리라.

부원 선옹 사건 이후, 옥황상제는 천문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머리를 쥐어짰다. 세 자루 보검은 각각 선, 요, 마를 겨냥했다.

둔술을 펼쳐 슬그머니 팔중천으로 날아간 이장수는 푸른 하늘 가장 깊은 곳으로 직행했다.

위로 날아갈수록 머리 위로 압박감이 점점 강해졌다. 하나 몸은 더 가벼워졌다.

구중천을 벗어나자 공중에서 바람이 미친 듯이 불기 시작하더니 나부끼는 연무를 영기로 흩어버렸다.

물론 이장수는 용솟음치는 영기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현황탑은 사력을 다하여 현황 기식으로 이장수를 감쌌다.

매사 건들건들하고 천하의 보물은 안중에도 없던 탑 형님도 이 순간만큼은 진지했다.

이따가 너무 어색하게 굴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격 없이 굴지도 말라고 거듭 이장수를 일깨웠다.

어르신은 허례허식을 싫어하니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만 제대로 해도 충분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대로 하라고?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하는 거지?

뜨거운 눈물을 잔뜩 머금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도포 아랫자락을 말아 올린 다음 성인을 뵙자마자 머리를 조아리면 되는 건가?

좀 침착한 버전으로.

태청관 밖에서 참배하고, 문 안으로 들어서서 다시 절한다. 성인 앞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그때 한 번 더 절한다!

이건 입문할 때 하는 삼배 예절이다. 성인께서 인정하건 말건 일단 절부터 하고 보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태청관에 도착한 후에 해야 할 행동을 몇 번이나 리허설했다.

얼마쯤 높이 날았을까. 어느새 잔잔한 푸른 하늘에 들어섰다.

고개를 들자 하늘 저 밖과 차단된 얇은 막이 보였다.

마치 무수히 많은 별이 얇은 막에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반고가 천지를 개벽하고 두 눈은 해와 달이 되고 긴 머리카락은 별이 되었다.

상고 때, 요정은 주천성신(周天星辰)의 금을 채집해서 주천성두대진(周天星斗大陣)을 정련했다. 고로 상고 이후에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은 태고 때의 항성도와 달라졌다.

끝없이 펼쳐진 별의 바다 너머에서 이장수는 한눈에 천지의 경계를 보고 맑은 공기 너머의 광활한 허공을 본 것 같았다.

허공 너머는 혼돈이다.

현황탑이 위치를 알려주면 이장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둔술 신통력을 뽐내지 않고 선력에만 의지해서 나아가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아래 구름바다가 나타났다. 그 속으로 돌진하자 선식이 곧바로 십 장 이내로 제한되었다.

가물가물하고 어렴풋한 위압이 확 끼쳐왔다. 이장수에겐 더없이 익숙한 태청의 기운이었다.

천천히 얼마쯤 날았을까. 전방의 운무에서 자그마한 도관 하나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어떤 모습일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태청관을 보게 되자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청석 기와로 꾸며진 작은 뜰. 몸채 건물은 너비와 높이가 이 장인 작은 사당이었다. 기와나 비첨도 없었다.

성인께서는 인간 세상의 어느 마을에서 대충 작은 사당 하나를 골라 구중천 밖으로 옮겨와서는 성인 도장으로 삼은 건 아니겠지?

멀뚱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이장수는 현황탑을 머리에 인 채 작은 뜰의 나무문 앞으로 걸어갔다.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행하려고 할 때 마음속에서 ‘들어오너라’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장수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조용히 대답한 이장수는 나무문을 밀면서 숨을 들이켰다. 안으로 들어서니 뜰 안은 휑뎅그렁했다. 아래로 푹 꺼진 방석 하나, 분재 두 개가 전부였다. 대법사께서 수행하는 장소일 터.

작은 뜰의 북쪽에 위치한 청기와 건물 안에 강파른 도사가 앉아있었다. 도사와 방석을 제외하면 도사의 등 뒤에 기다란 책상 하나가 놓인 게 다였다.

함부로 요리조리 살펴보지 못하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낮은 문턱 앞으로 걸어갔다. 도포 아랫자락을 말아 올리고 도사 앞에 꿇어앉아 열심히 고개를 조아렸다.

도의 기원이자, 도를 계승하는 어른.

“제자 장수, 스승님을 알현하옵니다.”

도사는 다소 메마른 얼굴에 미소를 쥐어짰다. 한 줄기 전음이 이장수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일어나거라.”

역시, 면전에서 전음하는 건 인교의 전통이었군요!

“감사합니다.”

이장수는 조용히 대답하고 일어서서는 현황탑을 옆에 띄웠다.

현황탑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이 도사가 바로 태청 노자였다.

생김새를 형용할 도리가 없었는데, 이는 태청의 얼굴은 도심에서 비롯되었고, 성인의 도심은 이미 세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도 태청 성인에 관한 이미지를 응결할 도리가 없었다. 윤곽만으로 지금의 감정을 마음에 새길 수밖에.

가볍고, 담담하고, 여유로웠다.

옆에는 자연과 진리요, 앞에는 대도의 화형(化形)이었다.

태청 성인이 천천히 손가락을 들자 뜰 안에 선광이 감돌았다. 현도 대법사의 방석 옆에 방석 하나가 응결되어 건물 안으로 날아왔다.

“앉거라.”

노자의 전음에 고개를 드리우고 대답한 이장수는 방석 위에 가장 정석에 가까운 책상다리로 앉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슴을 쭉 폈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단전에도 힘을 주었다.

태청관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이장수는 가만히 앉아서 스승님의 훈계를 기다렸다. 감히 무언가를 골몰하지 않고 심신의 긴장을 풀면서도 마음속 경계는 유지했다.

태청 성인은 반쯤 눈을 내리깔고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몸 주위로 대도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내심을 테스트하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좌선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도에 들지 않고 너무 많은 생각이 솟구치지도 않도록 조절했다. 도심을 맑고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성인이 무슨 말씀이라도 하길 기다렸다.

이렇게 앉은 지도 어느덧 꼬박 사흘이 지났다.

태청관 밖에 별이 돌아가고 운무가 깔렸다. 이장수는 여전히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유는 귀신이나 알겠지만, 뜬금없이 ‘나는 뜰에 있었어야 했어요, 실내로 들어오면 안 됐어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네요.’ 이런 노래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성인은 눈 한번 깜빡이는데 만 년이 지나는 법이잖아. 잠자코 기다리자.

그렇게 또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태청 성인이 움직임을 보였다!

천지 사이 최강의 성인은 손가락으로 대충 건곤을 깨뜨리고 소용돌이에서 석판 하나를 꺼내 들고 읽었다.

정말이지, 훔쳐볼 생각이 없었으나 때마침 시선 끝에 두 개의 도문(道文)이 들어왔다.

도문이라는 건 태고 때 선천 생명이 창조한 특수한 ‘문자’로 정식명칭은 ‘대도지문(大道之文)’이다.

고정된 글자나 어법이 없고 정보를 복잡한 ‘문양’에 실은 터라 독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일부 깊고 심오한 도문의 경우 경지가 부족한 자는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고 지끈거린다. 도문에 다치기도 한다.

훗날 선천 생명의 시대가 끝나고, 도문은 서서히 후천 생명의 형상 문자로 대체되었다.

이장수가 본 도문은 애매모호하고 알기 어려운 대도 수행법이 아니었다. 세세히 음미해보니 뜻밖에도······ <제자와 소통하는 기술>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 뻔했다.

스승님, 대화 주제를 찾지 못하신 거면 제가 먼저 입을 열어도 됩니다.

한마디를 하려고 18일 7시진 째 기다릴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스승님.”

이장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혹 분부할 일이 있어서 부르셨습니까?”

태청 성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수의 마음속에 전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자소궁에서 봉신을 논의한다.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 일에 관해 분부하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그때 나와 같이 가자.”

“제자, 명 받들겠사옵니다!”

이장수가 고개를 드리우고 대답하자 노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청관은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를······ 어쩐담?

이장수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단순히 봉신을 논의할 때 자소궁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것이라면 성인이 입을 열고 떠나라고 말씀할 때 그는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보름 후.

태청 성인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 금기를 조사해보았느냐?”

“아직은요. 여와 사숙께서 많은 부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장수는 일찍이 준비한 답안을 내놓았다.

“저는 천도 어른께 그 금기에 관한 경고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 내가 경고하마.”

태청 성인은 잠깐 말을 멈추고 이장수를 쳐다보더니 별안간 이장수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을 꺼냈다.

“너는 아는 게 너무 많다.”

이장수는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거의 튀어 오르듯이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성인도 자신이 한 말이 너무 경악스러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이장수는 그제야 도심 한 톨을 내려놓았다.

“스승님, 제자의 도는 균형입니다. 무작정 천도에 덤비지 않을 것이고, 도문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래.”

태청 성인은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이장수에게 전달하는 전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천정이 궐기하는데 너는 첫 번째 공로를 세웠다. 균형 대도는 마땅히 잘 활용하려무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준제의 일은 마음에 담아둘 거 없다. 서방교는 아직 따라야 할 운명이 남았다.”

이장수는 그 말의 의미를 열심히 이해하면서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서방교를 겨냥하여 계략을 어느 정도까지 펼쳐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성인이 죽어선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성인 어른은 진정 패기로우시구나.

그와 싸웠던 단톡방 강퇴 성인과 똑같이 말씀하셨다!

태청관 안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다시 사라졌다.

태청 성인은 준비한 말을 다 사용하여 말이 회복하길 서서히 기다리는 듯 했다.

이장수도 감히 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착실하게 기다렸다.

성인 어른의 곁에 있노라니 확실히 안온하고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일이 내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태청 성인이 다음으로 꺼낼 말이 운소와 어떻게 지내느냐, 뭐 그런 말일 수도 있잖아?!

보름 후.

“운소는 네 마음에 잘 맞으냐?”

정말로 물으셨어!

“잘 맞습니다. 운소 선자는 성정이 고결하고 도행이 상당히 깊습니다. 대의를 잘 이해하고 지혜로워 담화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문정은 금련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 인교로 들이마. 네가 서방교 손에서 공작새를 얻을 수 있다면 역시 인교로 들이겠다.”

“예, 이따가 사형 대신 안배하겠습니다. 다만 사형께선······ 그 일에 별로 흥미가 없는 듯합니다.”

이장수는 불확실한 말투로 물었다.

“스승님, 제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맞을까요?”

태청 성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손가락으로 건곤을 가르고 소용돌이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이장수의 손으로 전달했다.

이장수는 황급히 두 손으로 받아들고 옥패의 내용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둔술이었다!

스승님, 이게 무슨 뜻이지요?

이 둔술을 익혀서 현도 사형이 저를 쫓아오지 못하게 만든 다음, 마음 놓고 이 일을 꾸미라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제자, 인교의 번영을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공헌하겠습니다!”

태청 성인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게 또 다음의······ 침묵 주기에 접어들었다.

······

3년 후, 이장수는 태청관을 벗어나 조용히 소경봉으로 돌아왔다.

단방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누워서 슬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돌아왔군.

“사형!”

령아가 흰 구름을 밟으며 날아왔다.

이장수 앞으로 깡충 내려온 그녀는 사뿐히 예를 행하고 한껏 신이 나서 소리쳤다.

“성인 어르신의 가르침을 이리 오래 받으셨으니 분명 비범한 걸 얻었겠네요?”

“받거라.”

이장수는 비취옥으로 만든 호리병을 소매에서 꺼냈다.

“앞으로 강적을 만나면 이 호리병을 꺼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면 곧바로 이 안에 갇힐 거야. 성인께서 하사하셨다. 널 기명 제자로 거두시겠다는구나.”

령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호리병을 받아 들었다.

태청 성인의 기명 제자라니 별거 아닌 게 아닌지라 사형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었다. 아주 호기심 천국이었다.

“성인께서 또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이장수는 눈을 감고 한숨 쉬듯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물론 아무도 안 믿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자 불려갔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적절한 대화 주제라도 찾아냈다면 태청 성인께선 그를 아마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장수는 다소 무력하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성인 앞에서 세 번 고두했다. 성인께선 태청무위도를 전하셨다.”

령아는 왠지 모르게 기뻤다.

‘고생해서 키운 내 새끼가 마침내 성공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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