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날의 얘기를 해보자.
이장수와 여악이 침략해 온 적을 가볍게 무찔렀다.
천애각은 외부적으로 게시를 걸고 소식을 퍼뜨리면서 서방교에 말 못 할 손해를 입혔다. 그 뒤에 이어지는 반응도 꽤 의미심장했다.
서방교는 천애비경이 소재한 방향에서 세력을 축소하고 정예병을 다른 방향으로 파견했다.
이와 동시에 서방교가 통제하는 삼천세계 여러 세력은 전면적인 확장을 시작했다. 전쟁의 불길은 홍황의 절반 가까이 퍼졌고 매일 대량의 생명이 재가 되고 말았다.
사실 상당히 현명한 대처였다. ‘수주대토’할 생각이었던 이장수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천정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피했으니 말이다.
여 대인의 독 기술은 당분간 발휘할 여지가 사라졌다.
여악을 더없이 중요하게 여긴 이장수는 이미 구축을 시작한 반서방교 선도 연맹에 여악을 제1 부맹주로 확정하였다. 서열은 변 노부인보다 앞섰다.
여악은 형제의 체면은 살려주겠지만, 정작 본인에게 제1이고 이런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장수가 모르는 일이란 이 일이 영산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도망쳤던 청년 도인은 거듭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동문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영산으로 돌아갔다.
영산에 도착했을 때, 도만의 대라경 연기사이자 상고에 입문한 성인 제자인 그는 도기가 부패하고 원신이 반쯤 허물어진 상태였다.
서방교 2교주가 친히 나서지 않았더라면 장생도과는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구치정파가 정말 이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그럴 리가. 그런 보물을 어째서 수신이 쓰지 않고 변장에게 줬겠어?”
“천애각을 끌어들였다고? 설마 수신은 일찍이 삼천세계를 꾀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이건 우리 서방교의 뿌리를 망가뜨리려는 게 분명하다!”
성인 제자들이 어디서 많이 본 연못가를 둘러싸고 대책을 고민하고 뒷일을 어떻게 안배하면 좋을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천정과 맞서는 상황을 피하고 다른 방향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책략은 또 다른 성인 제자들이 상의하여 내놓은 결과였다.
영산의 한구석. 지장이 조용히 나무 아래에 앉아있다. 등 뒤에 있는 큰 개, 아니, 신수 체청은 무료하게 엎드려서 시시각각 기다란 꼬리를 살랑거렸다.
잔잔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훑자 흐르는 물 같은 빛이 스미면서 지장의 영준한 얼굴이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주인?”
체청은 좀 궁금하다는 투로 전음했다.
“저쪽에 가서 같이 얘기 안 해?”
“무능한 놈들이 서로 위로만 하는 거지, 뭐.”
지장은 입꼬리를 부르르 떨면서 말을 이었다.
“난 수신의 이번 행동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구상하기 시작했어.”
“우, 우리 말이야. 수신이랑 또 싸워야 해?”
“닥쳐! 지난번에 그리 추태를 보여놓고!”
체청은 참지 않고 되받아쳤다.
“그건 내가 주인 대신 수신의 기분을 풀어준 거잖아. 안 그랬으면 수신은 벌써 주인을 해쳤을걸?! 주인, 그런 식으로 안면몰수하면 안 되지!”
“허. 네가 그랬다고 수신이 그다음에 계략을 안 꾸미냐? 천정이 덕이 크고 의롭다고 포장했잖아. 스승님도 나와 따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됐어.”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 주인, 그냥 착실하게 수행이나 해. 아니면 미리 괜찮은 사람 좀 찾아주던가. 절교의 어느 성모의 탈것이 될 수 있다면 주······ 인을 그리워하긴 할게.”
지장은 말없이 날카로운 칼과 숫돌을 꺼냈다. 확 굳어진 얼굴에 미소를 드리우며 차분하게 칼을 갈았다. 쓱쓱 싹싹. 영산에 칼을 가는 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나는 수신과 철천지원수다!”
“흥!”
지장은 느긋하게 숫돌 세트를 갈무리하고 계속 나무 아래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마치 바깥세상의 일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참선을 끝내고 나온 동문들이 수신의 손에 당하고, 스승님이 다시금 천정과 싸우는 중임을 그에게 맡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의 그는 더는 가벼운 마음이 없었다.
수신과 싸울 때는 전력을 다해야 서방교가 대승을 거둘 수 있다.
수신.
다음에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주인, 지금 했던 생각 말이야. 듣기가 좀 너무 부끄러워!”
“꺼져!”
······
서방교는 천정과 부딪히지 않고 물러나 피해서 자신들의 세력 발전을 가속하기로 하면서······ 오히려 이장수에게 더욱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삼천세계 속 선도 세력을 천정에 끌어들이기 쉬워진다.
대세를 빌려 실행했을 때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 이장수는 이로 인해 훨씬 더 바빠졌다.
천애비경에 둔 종이 도인은 나팔수 노릇을 했다.
끌어들일 세력을 선별하고 계획을 세웠다. 물론 이런 중요한 임무는 소경봉 밀실에서 진행했다.
많은 계획을 동시에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했으니 진정으로 한가할 틈이 없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 깨달음을 정리하여 수행이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반서방교 선도 연맹은 그가 손에 쥔 가짜 패에 불과했으나 정력을 꽤 많이 투입해야 했다.
어쨌거나 공으로 백택, 아니,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이익을 얻었으니 마음을 좀 더 써야 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슈퍼 천병 계획도 소홀할 순 없었다. 이장수는 선전용 단편 영화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천정 뇌부에 들어온 유금현아는 정기적으로 천병을 이끌고 천정 안팎을 순찰했다.
간혹 천병, 천장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전쟁을 치르고 죄업을 휘감은 요괴들을 섬멸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이장수가 안배해둔 상황이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유금현아의 경지는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수행할 때 생각에 막힘이 없었다. 차를 마시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경지를 돌파하고 공덕에 감싸졌다.
이장수의 제안으로 유금현아는 돌파 속도를 억누르고 도기를 탄탄하게 다져 금선겁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이와 동시에 이장수는 선전용의 구리거울을 중신부의 각 대형 방진에 세웠다.
천정에 지원하러 온 홍황 산신의 수가 나날이 증가했다!
천정에 새로 들어온 천병과 천장 중 절반은 처음에는 늠름하고 씩씩한 천정 여장군에 이끌려 천정을 알기 시작했다가 마지막에는 천정에 들어와 천도와 창생을 위해 자신의 힘을 바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음. 그 천장을 친히 보고 싶어서가 아니란 말이다!
애석하게도 금선경 이상의 고수 중에 천정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는 자는 여전히 드물었다.
이번 임무의 꽃 임천전도 진행이 순조로운 편이었다.
망정 상인과 강림 부부는 백택, 주구, 주의, 주오, 주시를 데리고 발 디딜 곳을 선택하고 제1기 ‘의사’들과 남몰래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장수의 종이 도인도 따라갔다. 종이 도인 둘이 백택의 소매에 있고, 두 뭉치가 주구 사숙의 품에 있었다.
사숙에게 두 뭉치는 둔 건 행여나 사숙이 술에 취해서 무슨 실수라도 할까 봐 염려되어서 그랬다.
대겁이 내려오면서 천정이 처리해야 할 사무도 점점 많아졌다.
자소궁에서 봉신을 논의하기로 한 일이 하루하루 가까워지면서 이장수는 점차 부담을 느꼈다.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강물이고 모든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간 쓰라린 결과를 만들어내기 쉽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전보다 몇 배나 더 높아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능소전에서 이장수는 차분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늘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다.
천애비경에 있는 그는 끊임없이 각 세력의 괴짜, 아니, 능력 있는 이들과 접촉했다. 그가 남긴 웃음은 모든 것이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태연하고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천병, 천장, 선자, 선옹들 앞에서도 그렇게 우아하고 살가울 수가 없었다.
간혹 도선문 안을 돌아다닐 때는 늘 그래왔듯 적절한 고도로 날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구름을 몰면서 선배님을 만나면 사숙, 사백하고 불렀다.
소경봉 초가집 사부님의 위패 앞에서만 그는 슬며시 한숨을 푹 쉬었다.
소경봉 밀실에 있는 그만이 왔다 갔다 서성대고 어떤 부분의 배치가 치밀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끊임없이 걱정했고 곧 닥쳐올 대겁을 생각하며 피로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의 그는 더는 자신만 돌보고 살 수 있었던 소경봉 제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표정은 혼자 있을 때, 밀실 속 초상화에만 남겨야 했다.
“사형, 들어가도 돼요?”
령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장수가 생각을 멈췄다.
구름을 타고 단방의 대진 밖에 도착한 그녀는 옥으로 된 그릇을 들고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주구 사숙이 밖으로 나가면서 령아도 꽤 적적했겠군.’
“밀실로 와.”
“예.”
령아는 대답과 동시에 대진 안으로 들어가는 옥패를 꺼냈다.
구름을 몰고 단방에 이르러서는 능숙하게 지하 밀실로 들어왔다.
서재로 도착하자마자 질문을 툭 던졌다.
“사형, 뭐 하고 있었어요?”
바닥과 벽에 그림이 잔뜩 걸려 있었다. 논리를 따라 구불구불하고 빙빙 돌아간 마인드맵이 그녀의 눈을 아찔하게 했다.
령아는 발끝을 살짝 디뎌 탕을 들고 훌쩍 뛰어 안전하게 책상 옆에 이르렀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그래.”
이장수는 옥패를 내려놓고 그릇을 받아들었다. 냄새를 맡아보고 나서야 입가에 가져가 후루룩 마셨다.
령아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정수 같은 거 안 탔어요. 참나.”
“근래 독을 쓰는 고수와 너무 가깝게 지냈더니 습관이 돼서 그런다.”
웃으며 짧게 해명한 이장수는 령아를 흘겼다.
“어찌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정수야?”
“그게······.”
“아이고, 우리 사매 다 컸구나.”
“아, 아니거든요······.”
령아는 얼굴이 발그레해져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참을 쭈뼛쭈뼛하더니 온전한 문장을 완성하지를 못했다.
이장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사매를 괴롭히고 나니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옥패를 들고 안에 적힌 내용을 계속 읽어나갔다. 그릇에 든 탕이 금세 깨끗하게 비워졌다.
고운 손이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뻗어와 어깨를 닿더니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힘을 좀 실어라.”
“알겠어요.”
령아는 새하얀 소매를 말아 올리고 사형의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두드렸다. 솜씨가 어찌나 능숙한지 하마터면 전문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사형,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뭔데?”
령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목을 가다듬고는 일부러 어른스러운 투로 말했다.
“잘 봐요. 사형의 친사매가 이렇게 다 컸잖아요. 온자경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몰라요. 밖에 나가서 시련을 경험하기도 했고 장로님들도 다들 똑똑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셔요. 근데 그 사매는 앞으로도 밖을 돌아다니고 싶지 않고 산에서 얌전하게 수행하면서 양심이 없는 사형이랑 같이 있고 싶대요. 그러니까 사형이 하는 일에 의견도 좀 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논의하도록 해주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기발한 계책을 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이장수는 손에 들고 있던 옥패를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령아는 상황이 영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다급하게 덧붙였다.
“화는 내지 마시고요. 끼워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요······.”
“네 말도 일리가 있어.”
이장수는 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른바 령아를 백 년 키웠으면 한번 써먹긴 해야지. 지금 백 선생이 삼천세계로 가셨으니 네가 도움이 되면 나도 부담을 좀 덜 수 있겠다.”
“정말이에요?”
령아는 크게 기뻐했다.
“물론이지. 먼저 말을 꺼내줬는데, 내 어찌 너 같은 인재를 쓰지 않겠어? 가서 준비하고 와. 지금 진행하는 일의 일부 계획을 줄 테니까 네가 한 번 점검해봐.”
“좋아요! 금방 갔다 올게요!”
령아는 한껏 흥분해서 소리치고는 냉큼 서재 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데 채 멀어지기도 전에 다시 돌아와서는 문 앞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런데 무슨 준비를 하면 되죠?”
“책상, 의자, 방석. 계속 서 있을 거면 뭐, 상관없고.”
“히히. 그럼 기다려요. 금방 다녀올게요!”
향기로운 바람으로 변해 사라졌던 령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꾸리고 돌아와 소경봉 밀실에 정식으로 입주했다.
······
이장수도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았다.
현재 가장 성가시고 정신력을 가장 소모하는 ‘반서방교 선도 연맹’ 계획에서 후반 점검을 령아에게 맡겼다.
점검이란 문장을 쓸 때처럼 여러 번 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 세력들의 정보를 정리해. 내가 이 세력에 어떤 대우를 주기로 결정했을 때, 그 결정이 타당한지 판단하면 돼.”
“알겠어요!”
“알겠다고만 하지 말고 내가 조금 전에 한 말, 이해한 거 맞지?”
“그럼요!”
령아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형이 한 번 더 말씀해주시면 더욱더 깊이 기억할 수 있고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겠죠. 헤헤······ 아얏! 또 머리를 때려요?!”
“무수한 생명의 생사가 관련된 큰일이야. 진지하게 대해야 해.”
령아는 곧바로 얌전해졌다.
들뜬 도심을 가라앉히고 사형이 나열해낸 사고 노선도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이 계획을 이해해나갔다.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그녀도 반쪽짜리 지혜 주머니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점검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일만 하는 터라 소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장수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빠르게 두 눈을 감았다.
“천애비경 쪽에 또 누가 찾아온 모양이다. 상대 좀 하고 오마.”
“예!”
령아는 정보가 잔뜩 적힌 옥패를 안고 책상 앞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조막만 한 얼굴에는 진지함이라고 잔뜩 쓰여 있었다.
······
반나절 후, 눈을 뜨고 눈앞의 상황을 본 이장수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령아가 부드러운 베개를 안고 까는 이불에 엎드린 채 두 발을 가볍게 까딱거리고 있었다. 살짝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아래로 길게 드리우고는 열심히 옥패 속에 쓰고 그리는 중이었다.
“뭘 좀 알아냈어?”
“사형! 요기 몇몇 세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이 한 말과 천애각이 조사한 정보를 보면 몇 군데가 맞지 않아요. 게다가 이들의 지반은 서방교 세력과도 너무 가까이 있어요. 찾아온 시점도 좀 이상하고요.”
이장수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녀석, 합격이다.
“어디 보자.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네가 공을 세웠구나.”
“에이, 공은 무슨요. 그냥 사형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 것뿐인데요······.”
“그래, 그럼 됐다.”
이장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체력 소모를 좀 덜었구나.”
“······.”
사형한테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
‘유상천화’ 팀이 데뷔전을 치른 지 반년이 지난 후, 동천문을 벗어난 흰 구름 한 송이가 유유히 천주 앞으로 날아가 유명계에 이르렀다.
흰 구름 위, 푸른색의 널찍한 도포를 입은 영주자가 주변의 서늘한 분위기를 느끼며 조용히 물었다.
“사숙,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일전에 친우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이번에 지부에 가서 처리할 일이 있는데, 마침 너도 데리고 가서 친우들을 소개해주고자 한다. 영주자, 설마 네가 수행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잊지 않았습니다!”
영주자는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맑고 투명한 눈에 단호함도 깃들었다.
“사숙이 안배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바쁜 가운데 짬을 내주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장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영주자의 사내다운 기개 자극하기 정식 계획·령아 참여 수정판> 제1단계. 용맹한 유명실(幽冥室) 체험.
이 녀석의 담력부터 단련하자고.
물론 이장수는 영주자 일 때문에 지부에 온 건 아니었다. 염라를 찾아가 옥황상제가 윤허한 지부 개혁 계획을 십전 염라와 함께 상소를 올려야 한다.
겸사겸사 공덕 금신 그런 것도 좀 응결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