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에 숨겨진 장소를 찾으니 고탑 속에서 성인이 나와 영웅들에게 위압을 행사했다.
코웃음과 함께 멈추지 말고 계속 욕을 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검의 이름은 청평(靑萍)이었다.
통천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윤회탑은 오늘 망가질 운명에 처했다.
마음속으로 몇 가지 방안을 확충해온 이장수는 최단 시간 안에 가장 안정적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오늘 그는 향불 신국을 정도의 반대편으로 확정할 생각이다.
앞으로 천정은 삼천세계를 직접 간섭하든 임천전을 이용해 암암리에 운영하든 ‘정(正)’의 입장에 설 수 있다.
이장수가 ‘향불 신국’이라는 네 글자를 꺼내자 수단이 뛰어난 수많은 서방교 인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 말을 끝낸 이장수는 돌아서서 통천 교주에게 절했다.
“사숙, 변론하기 전에 저 윤회탑과 천도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까? 제가 열심히 욕을 퍼부어도 저 탑이 천도 보기가 되어버리면 그것도 퍽 난감해져서요.”
통천 교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오냐’하고 대답했다. 오른손으로 대충 손 언저리에 있던 보검을 쥐고 스윽, 휘둘렀다.
은은한 소리가 울리고 청평검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검신은 물결과도 같고 검날은 극치의 도를 머금었다.
구름 위에 앉아서 대충 검을 휘둘렀는데도 검의 자태는 그토록 자연스럽고 조화로울 수가 없었다.
어둡고 더없이 느린 것처럼 보이던 청평검의 검광은 백 장을 넘어설 때마다 날카로움이 가미되고 빛이 더해졌다.
성인 제자들의 머리 위까지 날아갔을 때는 하늘까지 닿을 듯한 해일이 되었다!
대도는 떨렸지만 부서지지 않았다. 건곤은 부서졌지만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저절로 회복했다!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이장수는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하는 무언가를 보았고, 조공명은 대세가 끊어지는 걸 보았으며, 운소는 생동감 있는 진리를, 금령은 천지에 생긴 틈새를 보았다.
공선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저도 모르게 표정이 암담해졌다.
살짝 넋을 뺀 옥정 진인은 공선과 별반 차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감탄을 내뱉으려던 황룡 진인은 자신이 세월의 소용돌이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의 인지 속 세월이 흘러가는 속도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을 열려고 하면 입이 벌어지기만 하고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제야 황룡은 검의 움직임이 사실 더할 나위 없이 빠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늘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자들에게 성인 대도의 기연을 주려고 성인이 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검광은 마지막에는 세차게 흐르는 빛이 되어 준제의 법상이 뻗은 커다란 손을 내리쳤다.
준제 성인의 법상은 전혀 막아내지 못했고 세차게 흐르는 검광은 천지 사이에 녹아드는 듯했다.
꽈르릉!
윤회탑이 흔들리고 탑에 깃든 천도의 힘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더불어 고탑과 천도의 연결도 단절되었다.
준제 성인의 법상은 왼손을 느리게 떨어뜨리고 위엄을 계속 유지했다. 보탑 속에 있던 도사는 콧방울을 떨었으나 콧방귀 소리를 전혀 내지 못했다.
이장수를 비롯한 도문 선인들은 각자 얻은 바가 있었는데, 검이 머금은 깨달음이 실로 너무나도 많아서 그랬다.
조금 전 통천 교주가 휘두른 검은 서방교 성인 제자들의 시각에서 꽤 사실적이었다.
검집을 빠져나온 검이 검광을 번쩍하는 순간, 보탑과 천도 사이의 연결이······ 사라졌다.
그들은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안배하고 배치해왔다. 보탑을 짓고 이곳에 들어와 지켰으며 교묘한 계책으로 이곳을 숨겼거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접인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이곳에 있는 서방교 성인 제자들에게 이어질 도문의 공격을 어떻게 대처할지 전음으로 얘기했다.
준제가 모습을 드러내 천정 수신과 대립할 때부터 서방교는 수동적인 국면에 빠졌다.
통천 교주가 친히 등장하고 인교 지보 태극도가 일찍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 천정 수신은 그들에게 ‘향불 신국’을 논하려고 한다.
서방교가 수만 년 동안 삼천세계를 운영해온 것을 허물겠다는 심보였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변론밖에 없었다.
접인 성인의 제자들은 이따가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입을 열더라도 지켜야 할 점이 있었다. 향불 신국이 만민을 교화하는 공이 있다는 등의 요지를 끝까지 내세워야 한다.
서방교 성인 제자들은 조심스럽게 성인의 법상 아래로 물러났다. 서열에 따라 계단에 책상다리로 앉아 경문을 암송했다. 영산에서 도를 들을 때처럼 말이다.
체청의 등에 탄 지장이 가장 높은 층에 앉았다. 가장자리에 지장과 나란히 앉아있는 열몇 명이 이어서 이장수에게 공격을 가할 ‘주력’이었다.
다시 도문 쪽을 바라보면······ 그림체가 빠르게 샛길로 빠지는 중이었다.
홍황에서 가장 공놀이를 잘하는, 아니, 구슬류 법보를 잘 다루는 사내 조공명은 자신의 신통력 특기를 발휘했다. 유영구 24개를 조종하여 각 방향에 두고 현장 기록을 진행했다.
말재주가 뛰어나지 않은 옥정 진인과 황룡 진인은 특별 제작한 구리거울을 세웠다.
자신의 법력으로 천정 수신부에 있는 중계용 대형 구리거울과 연결해 이곳의 화면을 천정 곳곳에 내보냈다.
수신의 소통 방송 시스템이 드디어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이었다.
천정에서는 갑자기 추가된 생방송 화면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신기한 듯이 들여다보았다.
또 누군가는 화면에 나타난 이가 천정에 몇 번 왔었던 조공명이라는 사실도 알아보았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천정의 사방이 빠르게 들썩였고 모든 구리거울이 한 ‘채널’로 옮겨졌다.
천정 곳곳에 있는 천병과 천장, 선자, 여관들이 한데 모여서는 절교 외문 대제자를 구경했다.
이렇게 우르르 모여드는 건 괜찮았다.
조공명과 같은 앵글에 들어온 고수들을 알아보았고, 더불어 태극도, 현황탑 등의 중보들도 확인했다.
그런데 도문 대능들이 끊임없이 청년 도인에게 ‘장경’이라고 부른 후에는 천정 사방팔방이 물 끓듯 들끓었다.
“수신 대인의 본체가 저리 영준하고 소탈했단 말인가?”
“그러니까 운소 선자의 마음을 얻은 거로군!”
얼마 지나지 않아 천하 수군에도 이 소식이 퍼졌다.
수신 대인과 가장 친한 오을이 청년 도인의 정체가 천정의 보통 권신이라고 친히 확인해주었다.
겸사겸사 저게 수신 대인의 진짜 용모가 아니라는 것도 언급했다.
자고로 가십의 불길은 활활 타올랐다가 식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장수가 돌아서서 구리거울을 넘겨받고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천정 전체가 뒤흔들렸다.
“서방교가 제2의 윤회를 세우려는 찰나 통천 교주 사숙이 나서면서 음모를 좌절시켰습니다. 이어서 저는 도문 사형, 사저들과 함께 서방교와 향불 신교에 관하여 변론할 생각입니다. 여러분께 이곳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건 천정에 계신 여러분께 중생을 위해 천정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 도문의 대능 고수들도 시종일관 정도에 편에 서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나머지 천정 기자들은 방송을 꺼주세요. 오늘 천정 기자 이장경이 여러분에게 소개하겠······ 사숙, 모습을 드러내시려고요?”
“그래.”
통천 교주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온몸이 검광이 감싸졌고 이내 진짜 모습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장수가 구리거울에 대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준비하세요. 성인 앞에서 실례를 범하면 안 됩니다. 자, 이제 화면에 도문 삼청 통천 교주가 보여질 겁니다!”
구리거울이 천천히 통천 교주 쪽으로 이동했다. 옥황상제와 왕모가 일어서서 읍하고, 신선, 천병, 천장들이 엎드려서 절했다. 다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로 상상조차 못 했다.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머리를 조아릴 줄은······.
아니!
정말로 이번 생에 진정한 성인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걸 상상도 못 했다!
“옥정 사형, 번거롭겠지만 구리거울을 들고 계셔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별일 아니네.”
옥정 진인이 웃으며 구리거울 두 개를 들고 계속해서 이장수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이장수는 천정의 모든 신선과 천병이 지켜보는 앞에서 변론의 요점을 진술했다.
이곳에는 통천 교주의 기운이 있는 터라 서방교가 정찰하기는 어려웠다.
천정에 서방교 첩자가 숨어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천정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음으로 내통하기가 어려우리라.
“우선 우리는 저쪽의 화술에 빠지면 안 됩니다. 말을 좀 천천히 하더라도 상세히 설명해야 하고요. 저쪽의 문제가 전부 다 함정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향불 신국에 관한 일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지, 질문하면 답변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쪽이 말문이 막히게 하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들이 한 짓이 잘못되었고 천지 창생의 덕을 잃었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이따가 제가 먼저 나설 겁니다. 혹 버텨내지 못한다면 다보 사형께서 나가시고, 다보 사형이 버티지 못하면 그대에게 맡길게요······.”
운소 선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따운 눈을 한껏 반짝였다.
이장수가 서방교와 정면으로 상대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다.
태을 진인은 가만히 있다가 약간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그럼 나는······.”
“사형이 대미를 장식해야지요.”
이장수는 표정을 사뭇 진지하게 고치고 단호한 투로 말했다.
“우리가 저쪽을 이기지 못하면 사형이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하세요.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면 됩니다.”
한타 시작!
통천 교주가 있으니 한타를 열면 바로 이길 수 있다!
“좋다!”
태을 진인은 한껏 표정이 밝아져서는 눈을 반짝거렸다. 두 번이나 타격을 입었던 그는 별안간 도문 성인 제자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장수는 옆을 바라보았다. 금령 성모와 공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금령 성모가 씩 웃었다.
“법술 싸움을 할 때 나를 부르거라.”
“나는 도리 같은 걸 논하는 것보단 서방교 2교주랑 싸우고 싶······.”
“아이쿠!”
이장수가 황급히 공선의 말을 끊어냈다.
“도우, 말을 삼가세요.”
공선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수가 말을 끊은 것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장수는 도문 고수들에게 향불 신교의 위험과 폐단을 설명했다. 오랜 세월 수행해온 고수들이 그사이에 담긴 이치를 어찌 모르겠는가?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장수가 돌아서면 네 개의 인영이 일제히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옆에서 옥정 진인이 선력으로 구리거울을 내밀어 네 인영과 서방교 진영을 안정적으로 비추었다.
서방교 쪽에서는 열두 명의 성인 제자가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지장은 체청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가장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온 그는 이장수와 눈이 마주치자 전의를 한껏 드러냈다.
서방교는 이번 싸움에서 패배하면 갈수록 처지가 험난해질 것이다. 도문은 오늘 승리가 확정된 상태다. 고로 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반격해서 반드시······.
“이봐.”
이장수가 부르는 소리에 옆에서 푸른빛이 번쩍 스쳤다. 푸른 털을 가진 큰 개가 이장수 앞까지 와서는 발치에 엎드려 비비적댔다.
“백택 선생이 네 안부를 묻더구나. 돌아가.”
신수는 긴 꼬리를 흔들며 다시 지장의 뒤로 돌아갔다.
이마에 힘줄이 잔뜩 돋은 지장이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체청을 노려보았다.
체청은 별 대수롭지 않은 듯 ‘주인, 나도 주인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하고 우월한 표정을 지었다.
「싸우지 않고 심리 공격하기」
서방교 진영, 가운데 서 있던 도사가 앞으로 다가와 이장수를 비롯한 네 사람을 향해 포권했다.
“나는······.”
“서방교 성인 제자겠지요. 도호를 밝힐 필요는 없소. 나중에 밖에서 구름도 제대로 못 몰면 어떡하나 겁나거든. 나는 향불 신국이 천지에 큰 해를 가한다고 말하겠소! 서방교는 향불 신국을 이용해 사람들 앞에서 신통력을 선보이고 우매한 중생에게서 향불 공덕을 거두어 제2의 윤회를 세우고 향불 신국을 보완하려고 했소.
오늘 도문 고수들과 통천 사숙께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제2의 윤회가 세워졌겠지요. 도우들은 이를 빌미로 중생을 속박하고 만령을 향불 공덕을 거두는 허수아비로 전락시킬 생각이었겠지? 진심으로 묻겠소이다. 서방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설마 이런 체계를 통해 천정을 떠받드는 척하면서 뒤에서 배척하고 도문에 압박을 줘서 천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오?!”
꽈르릉—
피바다 하부에 신뢰가 나타나 이장수의 머리 위와 발아래에서 터지면서 이장수의 얼굴을 점점 더 장엄하게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