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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562)화 (562/593)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이면 옆에서 시중드는 이가 따뜻한 차를 올렸다. 인사치레를 나누지 않을 정도로 친한 사이인지라 조공명은 곧바로 언제 움직이냐고 물었다.

“여기서 좀 기다리죠. 조금 전 연등 부교주에게 만나자고 통지했으니 이따가 같이 가는 게 가장 좋습니다.”

조공명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연등과 동행하다니 참으로 괴롭겠군.”

“어찌 됐든 공식적으로는 같은 도문 고수이니 외부인들 앞에서는 체면은 지켜줘야지요. 물론 그자가 눈치껏 굴지 않으면, 흥!”

“사저, 그래도 화목이 제일 우선입니다.”

온화한 목소리로 받아친 이장수는 조공명과 눈을 마주하고 씩 웃었다. 금령 성모는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려 차를 마셨다.

“백 선생은 어디에 갔느냐? 그 산 외곽으로 가 한 바퀴 돌았는데 백 선생의 기식이 느껴지지 않기에 돌아왔다.”

“친우를 만나러 간다고 했습니다. 더는 묻지 마세요.”

“알겠다.”

조공명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가볍게 대화 주제를 갈무리했다.

“장경, 일전에 금시대붕조가 천정에 쳐들어가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느냐? 그 뒤로 어찌 아무런 소식이 없지? 그 금시대붕조 녀석, 설마 정말 명성만 얻으려고 큰소리만 친 것이었느냐?”

“그럴 리가요. 금시대붕조는 극히 빠른 속도를 타고났으니 상당히 뛰어난 인물입니다. 정말 천정에 들어와 광한궁 앞까지 당도했었습니다.”

“그래?”

조공명과 금령 성모는 금세 관심을 보였다. 초점은 달랐지만.

조공명은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고, 금령 성모는 미간을 찡그린 채 ‘소문대로 정말 광한궁 항아 선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사저, 그런 헛소문은 믿지 마십시오! 저는 태음 성군과 별로 만난 적도 없습니다. 천정에서 권력이 좀 높아 광한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금령 성모는 곰곰이 헤아려보더니 그 말이 퍽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 금시대붕조는 대체 어찌 되었느냐?”

“형님, 보세요.”

이장수가 내당 구석에 서 있는 시중드는 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깄지 않습니까.”

시중드는 이가 뒤돌아 활짝 웃었다. 매부리코에 칼로 깎은 듯한 얼굴이나 그렇게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었다. 창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미약한 빛을 더하자 그의 웃는 얼굴은 봄바람 같았다. 따스하면서 수줍음이 깃들었다.

조공명: “······.”

금령 성모: “······.”

정식으로 소개하려는 찰나 별안간 서북쪽에서 한 줄기 빛이 하늘을 가르고 다가왔다.

금시대붕조가 미간을 찡그렸다.

극히 빠른 속도로 내당을 벗어나 하늘로 돌진하면서 그 자리에 잔상을 남겼다.

그러다 백 리 너머 그 휘황찬란한 빛을 손바닥에 쥐고 돌아오면서 조금 전 남긴 잔상과 다시 겹쳐졌다.

순식간에 이장수 앞에 선 금시대붕조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옥패를 바쳤다.

“스승님, 확인해보니 교묘한 계략은 없었습니다.”

“알겠다.”

이장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력으로 감싼 두 손으로 옥패를 받아들고 안에 든 정보를 선식으로 확인했다.

“연등 부교주는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군요. 오도의 중요한 시점이라 우리 먼저 가랍니다. 선맹대회에 늦지는 않을 거라면서요. 자항 도인도 데리고 갈 것이니 자항 도인에게 부맹주 자리를 주라는군요.”

조공명은 신기하다는 듯이 금시대붕조를 보며 씩 웃었다.

“연등도 참 교활한 놈이지.”

금령 성모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죠. 일찍 가서 준비를 좀 해둡시다. 서방교가 이번에는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보자고요!”

“금붕, 수고 좀 해야겠다.”

“얼마든지 분부하십시오.”

빠른 걸음으로 내당을 벗어난 그는 후원에서 본체를 드러냈다. 한쪽 날개가 십 장이 넘는 금시대붕조였다.

선력으로 등에 방석 세 개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앞에, 두 개는 그 뒤에 나란히. 제일 앞에 있는 방석은 연화대 같았다.

정교함은 거의 속세 제왕 가문의 진귀한 보물 같았다. 뒤에 있는 방석들은 좀 단순했다. 나무 그루터기 같달까.

“금붕, 네 심경이 안온하지 않구나.”

금시대붕조는 처음에 당황했다. 그러다 자세히 생각해보고는 금세 부끄러운 얼굴을 했다.

“스승님을 실망시켰군요. 그럼 스승님의 보좌를······.”

“되었다. 금령 사저,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금령 성모는 별말 없이 치맛자락이 나부끼는 사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보좌 방석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이장수와 조공명은 뒤편에 있는 방석에 각각 앉아 서로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금붕의 극히 빠른 속도 덕에 곳곳을 돌아다니고 향불 신국도 둘러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금시대붕조의 울음소리가 높은 하늘의 운무를 관통했다.

날개를 가볍게 퍼덕이면 광풍과 함께 하늘로 돌진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에서 사라지고 희미한 잔상만을 남겼다.

건곤이 가져오는 압박감을 느끼며 조공명이 이장수에게 전음했다.

“도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소문에 저 금시대붕조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하던데, 어, 어찌······ 이리도 얌전해졌느냔 말이다!”

“덕을 베풀어 설득했습니다.”

“무어라?”

조공명이 금시대붕조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의 덕행이 이리도 차이가 크단 말이냐? 나도 나름 정의롭다고 명성이 자자한데 어찌 이런 엄청난 탈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거냐?”

말이 없는 이장수를 보며 조공명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가는 도중에 금시대붕조가 지치기라도 할까 봐 태극도 음양 기식으로 태극도 허상을 만들어 금시대붕조를 받쳤다.

금시대붕조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뜻밖에도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 금시대붕조는 극히 빠른 속도의 한계를 초월했다.

태극도의 위력이 건곤의 저항을 줄이는 건 당연하긴 했다.

새로운 속도를 즐기는 금시대붕조는 한층 더 힘있게 날았다. 눈빛도 점점 더 단호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저게 서방교의 걸작인가?”

대천세계의 하늘. 조공명이 이맛살을 좁히고 만 리 너머 향불 대사당을 응시했다. 대사당은 산꼭대기에 세워졌다. 수백 명의 도사가 경을 읊고 사당 주위로 금빛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당 밖에서부터 산자락, 심지어 대사당의 들판, 산림 곳곳을 내다보면 꿇어앉아 참배하는 범인들을 보인다. 대부분 굶주린 얼굴빛이었다.

대사당 상공에 넘쳐흐르는 향불 공덕이 금색 운무를 응결하고는 마지막에 고공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거기에 어떤 틈이 있는 듯했다.

금령 성모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장검을 뽑아 들었다. 조공명이 급히 저지했다.

“왜 말려요?!”

“금령, 사당을 부수면 범인들은 네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할 거다. 왜 스스로 언짢을 일을 하려고 하느냐?”

“범인들이 어찌 생각하든 제가 신경 쓸 일인가요? 그 흉수 도철 같은 야신을 신봉하는 사당을 어찌 보고만 있는단 말이에요?!”

“사형, 사저가 하는 대로 두세요. 좋은 의도잖아요.”

“거봐요.”

금령 성모는 고개를 살짝 쳐들고 발끝을 디뎌 금빛으로 변해 곧바로 고공으로 돌진했다.

굉음과 처참한 비명이 이어지고 고공에 드러난 전각에서 사람들이 날아 나왔다. 금령 성모는 법신도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이곳을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스승님, 범인들은 어째서 저런 야신을 신봉하나요?”

조공명이 대신 대답했다.

“범인은 약하거든. 백 살도 채 살지 못하지. 하여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을 언제나 경외하고 숭배한다. 향불 신국을 무너뜨리는 게 번거로운 일이라고 하는 것도 서방교 연기사를 처치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다기보다 범인들을 안치하는 문제 때문이다. 장경, 해결할 방법은 생각해보았느냐?”

“물론이지요. 두 가지 노선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체할 또 다른 신교를 세우는 겁니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면 범인들을 다른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 온화한 교리를 내세워 경작과 생산을 하여 살아가고 온종일 신령에게 참배하여 선인이 될 생각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죠. 다만 여기에는 잠재한 위험이 있습니다. 권력을 손에 쥔 자가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향불 신국이 가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쉬워요. 두 번째는 좀 성가십니다.”

“상세히 설명해보아라.”

고공에서 미친 듯이 파괴되는 전각을 내다보며 이장수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두 번째 노선은 범인을 교화하는 겁니다. 서적에 학식을 싣고 범인의 지혜를 기록합니다. 중생의 시야를 개척하고, 무엇이 천지고, 허와 실이 무엇인지를 중생에게 알리는 거죠. 우매함을 줄이고 사고를 이끌면 향불 신국의 화를 더는 겪지 않을 겁니다. 애석하게도 두 번째 노선은 너무 단편적입니다. 제가 그냥 지껄이는 수준이기도 하고요.”

조공명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수행하는 건 천지에 또 다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하여 만물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이 일도 마찬가지고요.”

이장수는 두 손을 소매에 찔러넣은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천정의 향불로 향불 신국을 대체하고 중생이 천신과 후토를 존경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정하고 생사가 무엇인지 알려줄 겁니다. 수행에 해당하지 않은 세상 밖의 일은 천병이 돌아가면서 각 천지에 상주하면서 처리하도록 하고요.”

조공명이 엄지를 척 세웠다.

하나 이장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공명은 인간족 출신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다.

금시대붕조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스승님, 깨달았습니다!”

깨······ 깨달았다니? 무얼?

바로 이때, 하늘 끝에서 허연 검광이 번쩍하면서 전각을 가운데서 절단했다.

무너진 전각이 고공에서 떨어지면서 황폐한 밀밭에 내동댕이쳐졌다.

하늘 너머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나타났다. 금령 성모는 쳐다도 보지 않고 금시대붕조의 등에 올라탔다.

“성인 제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구나. 아무리 죽여도 소용없다. 내 검만 더럽힐 뿐이다.”

“자, 그럼 다른 곳을 더 둘러보죠.”

금시대붕조가 목청 높여 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천세계를 벗어나 추격자들을 멀리 뒤로 떨쳐냈다.

이런 식으로 길을 돌아 향불 신국 열여덟 군데를 돌았다. 금령 성모는 세 번 나섰다. 나중에는 손을 쓸 마음이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이장수는 유영구로 ‘증거’들을 남기면서 금시대붕조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일러주었다.

남해지빈에서 출발한 일행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어느 소천 세계에 이르렀다.

멀리서, 이 작은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운 물빛을 바라보았다. 오행에서 ‘물’에 해당하는 이 소세계에는 하늘과 바다, 호수밖에 없었다.

선맹대회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미 어느 정도 배치도 다 끝마친 상태였다. 예전에 참석했었던 용족의 축제를 거울삼아 전체 회의장을 연못 모양으로 꾸몄다. 물론 그 당시 용족이 대충 꾸민 것보다 한참 못 미쳤다.

아무래도 예산이······.

이장수는 이곳에 있는 종이 도인으로 여악을 깨우고 조용히 퇴장했다.

줄곧 한가하게 좌선하고 천애 비경에서 보낸 나날을 그리워하던 여악은 조공명과 금령 성모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벌떡 일어서서 하늘가로 마중 나간 그는 얼굴에 ‘사제용 미소’를 드리웠다.

이장수는 금시대붕조에게 인간형으로 변하여 기식을 감추라고 했다. 이따가 연등과 서방교 사람에게 깜짝 선물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또 뭘 해야 할까?

주위를 둘러보며 플래카드라도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선맹 맹주 연등 선배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연등 선배님과 서방교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어요!」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면 얼마나 볼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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