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문 단정봉.
비밀 조직을 꾸리러 밖으로 나간 망정 상인을 제외한 도선문 내 금선은 모두 단정봉 상공에 모였다.
그래봤자 공허 무우 장문과 기령 장로 두 사람이 다였지만. 이따가 있을 도겁을 위해 만림균 장로를 산문 밖으로 후송할 예정이다.
문파 내 태상장로들이 수십 명의 천선경 봉주와 장로를 데리고 천 리 밖 금선겁을 보낼 장소로 달려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호 진법을 배치하고 도겁을 보내는 땅에 외적의 숨어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뒤졌다.
도선문 ‘고수’들의 안색은 대부분 무겁게 깔려 있었다. 만림균 장로의 이번 금선겁이 조금 무리라는 소식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만림균 장로의 사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장생도과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자체는 인간족 연기사 대부분이 바라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단계까지 온 마당에 물러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단정봉 봉주와 장로들은 각 봉에서 온 문인 제자 수백 명을 데리고 만림균 장로의 거처 앞에 조용히 섰다.
대부분 공경심을 드러내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분위기는 다소 억눌려있었다. 산 밖에서 휘황찬란한 빛들이 날아왔다.
도선문은 아주 오랜만에 이렇게 벅적벅적해졌으리라.
소경봉에서도 구름 하나가 날아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도로 나는 터라 동문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
구름 위에 서 있는 청년 도인과 묘령의 선자는 다름 아닌 이장수와 남령아였다. 이들 역시 단정봉에 도착한 후 만림균 장로의 거처 앞으로 내려가 문인 제자들의 뒤쪽에 섰다.
그러나 이장수가 발을 채 디디기도 전에 오랜 시간 정적이 흘렀던 거처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장수 왔느냐?”
이장수는 얼른 앞으로 두어 걸음 내디뎌 문 앞에 대고 읍했다.
“제자, 장생과를 얻게 된 장로님을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끼이익—
나무문이 안쪽에서 열리고 그 틈새로 한 줄기 햇살이 비쩍 마르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도사의 얼굴을 비추었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 문 앞에 서 있던 수백 명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하고 고개를 푹 내리깔아 시선을 피했다.
“이리 오너라. 뒷산에 가서 좀 걷자.”
손짓하여 부른 만림균 장로는 구리지팡이로 땅을 짚어가며 옆으로 걸어갔다.
“예.”
이장수는 대답과 동시에 령아에게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전음한 다음 조용히 동문들을 돌아 뒤쪽에서 장로를 쫓아갔다.
문인 제자들은 곧바로 이장수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주었다. 금선겁을 보내기 직전, 만 장로가 이장수와 단독으로 뒷산에 가자고 한 건 이장수에게 의발을 전할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선문은 인교 도승이 아닌가. 문풍이 좀 그쪽으로, 흐음! 문파 내 아무리 도려 기풍이 활발하긴 해도 연기사는 청정무위를 받들고 덕을 수행한다. 하여 대부분 부러워할 뿐이지 불만을 품거나 시기하지는 않았다. 소경봉 이장수의 기연이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만 장로가 안정적으로 넘기겠군요.”
공중에서 공허 장문 계무우가 옆에 있는 기령 장로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기령 장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으나 무슨 의미냐고 묻지는 않았다.
만림균 장로와 이장수는 금세 햇살이 깔린 숲속 오솔길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천천히 거닐면서 나누는 대화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만림균 장로는 어린아이의 울음도 그치게 할 온화로운 미소를 띤 채 연단의 경험을 얘기했고, 이장수는 진지한 태도로 들었다. 혹시 몰라서 이장수는 유영구를 꺼내 만 장로의 말을 전부 기록했다.
짙은 천도의 힘이 공중에 감돌고 만 장로 주위로 시시각각 무지갯빛이 넘실대고 드문드문 빛도 어지러이 떨어졌다.
오래된 약 같은 상서로운 기식이 만 장로 체내에서 서서히 뿜어나왔다. 지나는 곳에는 어린 풀이 육안으로 보이는 속도로 자라나고 영기에도 약 기운이 더해졌다.
이런 현상은 만림균 장로가 곧 장생도과를 이루리라는 걸 말해주었다.
“장로님, 얼마나 확신하십니까?”
이장수는 웃으며 그리 묻고는 방음 결계를 쳤다. 만림균 장로는 고개를 설설 흔들며 탄식했다.
“많아야 3할이다.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이장수는 절로 미간을 찡그렸다.
눈에 여러 감정을 품은 만림균 장로는 소매에서 팔찌 하나를 꺼내 천천히 내밀었다.
“장수 네가 평범한 선인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하나 도선문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제자는 너밖에 없구나. 이걸 줄 테니 내가 이 겁을 이겨내지 못하거든 네가 가지거라.”
잠시 주저하던 이장수는 이내 두 손으로 구리로 만들어진 팔찌를 받았다. 선식으로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만림균 장로가 평생 쌓아온 것들이 들어있으리라.
만림균 장로는 숨을 편안히 내쉬면서 고개를 들고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갓 입문했을 때 ‘장생 유망주’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만 년이 훌쩍 지났구나. 장생이라는 두 글자에 얼마나 많은 걸 짊어져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걸 감내해야 하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늘까지 온 것만으로도 나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장수야······.”
“장로님, 외람되오나 지금 시간이 없고 임무가 중한 터라 장로님의 말씀을 좀 끊겠습니다. 제자에게 금선겁을 상대할 수 있는 보물이 있고 이를 장로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려던 만림균 장로는 짐짓 당황했다. 고개를 돌리자 이장수가 어느새 단약이 든 호리병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언제부턴가 주위에는 선력 결계가 잔뜩 처져 있었다.
“9전 금단입니다. 총 두 알 들었고요. 여분도 있으니 거절하지 마세요.”
“9······.”
만림균 장로가 미간을 한껏 구기는 사이 이장수는 단약을 그의 손에 찔러넣었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살짝 떨렸다.
이장수는 옥함 하나를 꺼내 만림균 장로의 손에 놓으면서 전음했다.
“장로님, 이건 단약은 아닙니다. 하나 자세히 연구해보니 이걸 복용하고 나면 몇 시진 동안 선력을 가득 찬 채로 유지하고 도기의 결손 부분을 메울 수도 있었습니다. 장로님의 도는 단도와 관련이 있으니 지금 복용하세요. 그리고 이따가 겁을 버티는 데 필요한 단약도 좀 준비했습니다.”
이장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옥함을 열었다. 백옥으로 새겨진 듯한 ‘어린아이’ 모습을 한 선과를 보며 만림균 장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선천 영과!
인삼과였다!
“이, 이건 안 된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됩니다. 사부님이 돌아가신 후로 더는 누군가에게 큰일이 생기는 건 싫습니다. 장로님의 금선겁이 선로의 끝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일단 드세요. 고맙다는 인사는 금선겁을 보낸 후에 다시 받겠습니다. 천도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만림균 장로도 딱히 주절주절 말이 많은 인물은 아니었다. 당황하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하긴 했으나 망설임 끝에 인삼과를 삼켰다.
이번에는 소매에서 자루 두 개를 꺼냈다. 열 개가 넘는 영단이 든 자루와 원신을 보호하는 특수한 법기가 든 자루였다.
이장수가 단약과 법기의 용도를 빠르게 설명하면 만림균 장로는 인상을 쓴 채로 모두 기억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피상적인 측면의 ‘격려’일 뿐이다.
고민 끝에 이장수는 정신적인 측면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장로님께 희망을 심어주면 뛰어난 효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장로님, 절교 독선 중 여악 대능을 압니까?”
만림균 장로는 곧장 고개를 끄덕거렸다.
“독단의 대능이라고 할 수 있지.”
“이걸 보십시오.”
이장수는 옥패 두 개를 내밀었다.
“여악 사형이 쓴 독경입니다. 일단 장로님께 드릴 테니 금선겁을 보내고 나면 같이 연구해요.”
만림균 장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흥분한 마음. 떨리는 손으로 이장수의 손목을 붙들었다.
“여악 선배님을 아느냐?”
“천애각에 가서 함께 천 명이 넘는 적을 죽였으니 아는 사이겠지요? 장로님, 일단 묻지 마세요. 금선겁을 보내고 나면 여악 사형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비밀을 지켜주세요. 도선문은 제자가 몸을 보전하는 땅입니다.”
“그래, 알겠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만 장로의 눈에 감동이 역력했다. 이장수를 바라보는 시선에 궁금증이 한층 더 담겼다.
“장수야, 그럼 너는 지금······.”
이장수는 씩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만림균 장로의 손등을 살짝 건드리고 위장한 경지를 살짝 드러냈다.
쿵!
만림균 장로는 얼결에 뒷걸음치며 지팡이로 땅을 쿵, 찍었다. 조금 복잡해졌던 눈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아아, 제가 안목이 좁아 알아보지를 못······.”
“장로님, 오해세요. 저는 대능의 환생도 아니고 일부러 도선문에 잠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원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따라 수행했던 소경봉 이장수입니다. 운이 좋아서 몇 번 기회를 잡고 서서히 나아가다 보니 오늘의 경지가 생겼고, 인교와 천정에서 조금 말을 얹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개의치 마세요. 장로님께서 저를 가르쳐주고 독경을 전수하고 독단을 하사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습니다. 오늘 장로님께 드린 건 전부 제 간절한 마음이니 지난날의 은덕을 보답한다고 생각해주세요!”
만림균 장로는 ‘차갑게’ 웃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세상에 기이한 일이 많다더니 장수 네가 그 반절은 다 차지했구나. 그리 말하니 나도 네 말을 믿겠다. 지금은 장생 금선겁이 임박했으니 오늘의 겁을 이겨낸다면 다시 제대로 얘기해보자꾸나.”
“장로님, 절대 단약을 아끼지 마세요. 9전 금단을 비롯해 각종 영단은 령아에게 줄 분량까지 넉넉하게 있습니다.”
“알겠다.”
만림균 장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때가 다 됐구나.”
천지 사이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리고 먹구름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다.
구리지팡이로 땅을 가리키자 흰 구름이 만림균 장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어르신은 아주 대범하게 받아들였고 미소 띤 얼굴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나도 간다!”
이장수는 주위에 열네 겹으로 친 선력 결계를 걷어내고 만림균 장로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인 후 크게 소리쳤다.
“장로님 선운이 번창합니다! 금선으로 서주세요!”
멀지 않은 거처 앞. 수백 명의 도선문 문인 제자가 일제히 예를 올렸다.
단정봉 외곽과 도선문 각 처에서 여러 인영이 만림균 장로의 뒷모습에 대고 읍했다. 선운이 번창하고 장생금선 어쩌고, 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공중에서 장문 계무우가 한 손으로 하늘을 받쳐 올리자 호산 대진이 금세 흩어졌다. 계무우와 기령 장로는 만림균 장로와 함께 세 줄기 휘황찬란한 빛으로 변해 천 리 너머 도겁하는 장소로 향했다.
호산 대진이 다시 가동되고 광막이 사방에서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흐르는 물이 허공에 모이듯 빠르게 닫히고 여느 때처럼 얇고 매끄러운 형태로 돌아갔다.
이장수는 한시름을 놓았다.
9전 금단 두 개와 인삼과가 거드는 데다 만 장로의 금선겁 기세도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도 않으니 금선겁을 무사히 넘길 확률이 아마 9.8할 정도로 예상한다.
아주 훌륭한 수치군.
만림균 장로가 금선이 되고 여악과 교분을 맺을 뜻이 있다고 하면 다리를 놓아주어야지. 두 명의 독선. 단기간에 곱절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독을 쓰는 부분에서는 삼계에서 독보적인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령아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문 선자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전음으로 이런저런 당부를 하고는 홀로 소경봉으로 돌아갔다.
문파 내 대부분 선인의 눈에 이장수는 만 장로의 의발을 전수받은 제자였다. 사부 제원 도사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그와 령아가 수도한 세월도 길지 않았다. 또 오늘 일을 보고 나니······.
두 사람을 제자로 거두려고 했던 많은 봉주와 장로는······ 그들을 위해 포기하기로 했다.
태청 사부님은 성인이라 도량이 하늘보다 더 넓겠지만, 이런 일에서는 좀 신경 쓰실 텐데.
소경봉을 돌아온 이장수는 단방 앞 흔들의자에 앉아 만림균 장로의 도겁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별 탈이 없으리라. 천도 어른도 나름대로 나와 친한 사이 아닌가? 큰 공덕을 두 번이나 빌려 가셨고, 만림균 장로님은 봉신대겁에서 딱히 분량도 없······.
음?
잠깐만!
이 익숙한 느낌. 빠르게 떨어지는 기압. 이 낯익은 도심의 떨림······.
이장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해 파르르 떨던 그는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처마 너머 낮은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 먹구름이 떠 있었다.
이번에는 어르신의 얼굴이라던가 기운으로 글자를 응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렴풋이 늙고 나른하며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머리부터 맞을래 아니면 궁둥이부터 맞을래?’
아니!
벌떡 일어서서 외곽 대진으로 돌진한 이장수는 고개를 쳐들고 머리꼭지에 있는 먹구름을 노려봤다.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만림균 장로님은 제가 존경하는 어른입니다. 인삼과 하나, 9전 금단 두 개, 자루 몇 개, 대겁을 버틸 준비를 좀 해드렸을 뿐인데. 이게 뭐 잘못된 겁니까?
천도의 규칙을 위반한 부분이라도 있냔 말입니다! 제 능력으로 수집한 인삼과랑 9전 금단입니다. 뺏지도 훔치지도 않았고 죄업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번쩍!
팔뚝 굵기만 한 자색 벼락이 순식간에 내리치면서 이장수는 발을 휘청했다.
쩝. 또 저거네. 별로 다치지도 않으면서 아프기는 겁나 아파.
아니, 잠깐만, 좀 심하네! 빚진 사람이 빌려준 사람을 때리다니요!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상황입니까!
번쩍, 번쩍!
팔뚝만 한 자색 신뢰가 동시에 떨어지자 이장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속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벼락을 내려주신 천도 어른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소리쳤다. 몸을 살짝 움직여 동시에 터지는 벼락을 피해서 순차적으로 맞았다.
숲속. 산발이 된 이장수는 억울함과 체념을 담은 얼굴을 하고 입술을 달달 떨었다.
마음속에서는, 벼락을 막아줄 생각이 1도 없는 인교 중보들이 하나같이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웃어댔다! 태극도는 웃느라 주름까지 자글자글해졌다!
너무하네, 진짜!
낮은 하늘에 먹구름이 몇 번 들썩이더니 또 벼락을 한 번 내리쳤다.
이장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벼락의 힘을 고르게 맞춰서 자신이 만든 대진이 큰 파손을 입지 않도록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니까요?
만림균 장로가 도겁하는 걸 도왔다고 이런 상황이면, 령아가 도겁할 때 제대로 준비했다가는 옆에서 나도 같이 도겁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 아녀?
거, 거기까진 아니겠지?
사조의 자애로운 마음은 금선겁보다 더하겠지!
인교 비······ 축 양식이 있으면 신체 건강에 유익하다.
“음? 저쪽에 벼락이 쳤나?”
영수 우리 안. 작은 언덕이 서서히 일어서서는 까치발을 들고 단방이 있는 쪽을 내다보았다. 이어 작은 언덕에 자라난 머리통이 눈을 끔뻑이며 앞에서 곧 맛있게 익어가는 소고기를 쳐다보았다.
“먹기나 하자. 뭐, 큰일은 아니겠지.”
웅영리는 ‘본의 아니게’ 벼락에 맞아 죽은 직접 기른 영수의 눈물이 튄 입가를 슥슥 손으로 닦아냈다.
에휴. 소경봉이 조용해지니까 드디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어.
식구들이 많았을 때는 웅영리는 식욕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그 시각, 천정 서천문 어귀. 무지갯빛이 반투명해진 하늘을 비추었다. 천문을 지키던 천병과 천장이 의아하다는 듯 하늘 끝을 바라보았다. 석 장 높이의 ‘좌상(坐像)’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은은한 위압이 천지 사이에 잔뜩 깔리자 무수한 천병은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경지가 좀 높은 천장들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이때, 상황 파악을 끝낸 천장 하나가 뒤돌아 소리쳤다.
“어서 북을 울리고 전령을 전하라! 천문을 열어라! 성인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