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보전에서 옥황상제가 계속 말을 이었다.
“준제 교주, 조금 전 귀교의 제자 허보리를 언급하는 것 같던데. 혹 경과를 상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일은 장경 경이 우선 내린 명령으로 저도 어제야 알게 됐거든요.”
“폐하께 알리지도 않고 대교파 제자를 단죄하는 권한이 천정 수신에게 있을 줄은 몰랐군요. 삼계를 관리하시는 분께서 다소 실수를 하는 게 아닙니까?”
“준제 교주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옥황상제는 아주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걸었다.
“짐은 진작 장경 경에게 선조치 후보고의 권한을 주었습니다. 천명이 허가하고 천도의 인정도 받았지요. 이 내용은 능소보전에 상세히 기록돼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삼계를 관리하는 짐이 실수를 했다고 지적하는 건 아무래도 천정 내무에 간섭하는 게 아닐는지요.”
“성인이 천정의 일을 묻지도 못한다는 것이오?”
옥황상제는 일말의 노기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천정은 도조의 칙지를 근거로 천도를 받들어 여섯 성인을 존경합니다. 다만 천정의 일은 삼계 안정과 천도 운행과 관계하고요. 하여 준제 교주가 성인이라도 천정 사무에 직접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도조께서 천정을 세울 때 이미 정한 규칙입니다. 혹 잊으신 겁니까? 공평함을 잃으면 천정이 어찌 앞으로 삼계를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준제 성인 주위의 위압이 한결 더 짙어졌다.
“폐하가 말씀하시는 공평이라는 건 천정 수신이 까닭 없이 우리 교파 제자에게 대겁의 겁운을 내리고 까닭 없이 추살령을 내리는 걸 가리킵니까?”
“그 허보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준제 교주께서 짐보다 더 잘 알 텐데 어찌 까닭이 없다고 하십니까?”
옥황상제는 이장수를 바라보며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장경 경은 허보리의 죄를 상세히 말해보아라. 우리는 착한 영을 억울하게 만들어선 안 되고 죄를 지은 영을 놓아주어서도 안 된다. 정말 잘못이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 천정이 할 일이다.”
이장수는 일어서서 준제 성인에게 읍했다.
신선들을 바라보며 그날 선맹대회에서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허보리가 천하를 논할 때의 화면도 모방했는데, 말투와 표정을 진짜처럼 실감 나게 묘사했다.
허보리의 말을 다 언급하고 나자 대전 내 무수한 신선의 얼굴에 노기가 드리웠다. 그렇다고 함부로 말을 지껄일 순 없었지만.
이장수는 뒤돌아 옥황상제를 향해 아뢰었다.
“폐하, 소신 조금 전에 한 말은 구구절절 다 사실로 천도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허보리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천명을 거스르고 천정을 적으로 삼도록 선사들을 부추겼습니다. 더욱이 사실과 관계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허튼소리를 해댔으며 시비를 뒤섞기도 했습니다!
천정이 인간족의 기운만을 꾀하고 무수한 선사를 때려죽이려고 한다고 말했고, 자신들이 세운 향불 신국이 중생을 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소신이 곧바로 그자의 화신을 죽이지 않고 인내했던 건 그래도 그자가 서방교 성인 제자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자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수만 명의 선사가 보는 앞에서 소신이 반박하자 그자가 할 말을 못 찾기에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겁니다! 폐하, 실은 그자의 죄를 따질 때 소신은 여지를 두기도 했었습니다. 서방교 성인 제자라는 걸 알았기에 죽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영산에 돌아간 후에도 허보리가 시비를 뒤섞어 준제 교주를 속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준제 교주, 허보리를 직접 데리고 와서 대의멸친(大義滅親)하는 건 어떨는지요? 그럼 천정은 서방교에 후한 상을 내릴 뿐만 아니라 서방교도 기운을 더 늘이게 될 겁니다!”
말을 마친 이장수는 옥황상제에게 읍한 다음 동목공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평소에 빈틈없기로 유명한 장경 사질이 어찌 이런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날 모습을 드러냈던 화신이 허보리라는 걸 어찌 증명할 수 있지? 허보리는 줄곧 영산에서 폐관 수행하고 있었다. 사질이 말한 부분을 전혀 모르는데, 뜬금없이 이런 오명을 씌우다니.”
옥황상제는 터지려는 웃음을 곧바로 삼켰다.
당혹스러운 눈길로 이장수를 슥 쳐다보았다가 빠르게 표정을 바꾸었다. 반면 이장수는 씩 웃으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걸 진짜 무네······. 성인도 낚을 수 없는 건 또 아니구나?
조금 전, 이장수는 옥황상제와 함께 소소한 계략을 꾸몄었다. 옥황상제가 ‘본인 인증’을 이유로 준제 성인을 신상에서 걸어 나오게 하는 게 미리 묻어둔 ‘암시’였다.
그런 다음 준제가 허보리 사건을 언급하면 이장수는 최대한 원만하게 대답을 완성해서 길을 죄다 막았다. 준제 성인이 정말로 찌를 물고 ‘본인 인증’이라는 요소로 노답처럼 보이는 반격을 할 줄이야.
내가 미리 짜둔 시나리오에 성인이 빠졌다고? 그렇다면 이장수는 사양하지 않고 서방교를 되레······.
그때였다!
‘사형, 사형, 왜 그래요? 정신차려 봐요! 아직 사형의 아이도 낳지 못했단 말이에요!’
별안간 시끄러운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어느새 단정봉에서 돌아온 령아가 단방 앞에 이르렀다.
종이 도인으로 성인의 위엄을 마주하고, 여러 가지 중보가 본체를 지키고 있다지만, 어떻게 본체에 정신을 조금도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 이장수는 능소보전에서 숨을 가볍게 내쉬면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소경봉 흔들의자에서 본체가 눈을 뜨고 우는 척하는 령아의 이마를 손으로 툭 건드렸다.
“시끄러. 별일 없다. 지금 누구랑 말싸움 중이야.”
령아는 금세 배시시 웃어 보였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입술을 혀로 쓸며 조용히 물었다.
“누구랑 싸우는데요?”
모 성인.
물론 그렇게 말할 순 없고.
“있다. 아주 상대하기 까다로운 어르신.”
······
‘그날 나타난 게 허보리라고 인증할 수 있는가?’
능소전 안에 있던 신선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성인이 천정에 찾아왔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은 천정의 주인 옥황상제와 왕모. 혹은 극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인의 화신 태상 노군밖에 없다.
태청의 제자이자 천정의 권신, 상아 지도 담당, 항아 선자의 염문남, 운소 선자의 예비 도려 등 다양한 신분을 지닌 이장수도 옥황상제에게 이름이 불려야만 나서서 한두 마디 꺼낼 수가 있었다.
준제 성인의 반문에 여러 개의 시선이 다시금 이장수에게 쏠렸다.
이장수는 미간을 좁히고 천천히 호흡했다. 열심히 생각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사매와 사랑싸움······ 선을 넘지 않는 소통 중이었다.
준제 성인의 물음이 평이하고 딱히 수준이 높지도 않았으나 대답하기가 꽤 어렵다고 선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서방교 성인은 그날 모습을 드러낸 이가 허보리가 아니라고 잡아떼기만 해도 그를 향한 추살 명령을 거두라고 천정을 압박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장수는······ 어쩐지 느긋하기만 했다.
“준제 교주, 간단하게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좋다.”
준제는 여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장수는 읍하고 태연자약하게 불자를 정리했다. 사소한 행동처럼 보이나 생각할 시간을 버는 중이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빠르게 힘을 풀고는 등을 살짝 구부렸다. 이런 행동 또한 성인이 도중에 그의 말을 끊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보이는 반응에 불과했다.
이윽고 눈을 반짝이는 이장수는 허술한 노신선처럼 약간 조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날 소신이 허보리를 단죄하자 천도가 호응하여 겁운을 내렸습니다! 당시 겁운은 그자의 화신에 떨어진 다음 그 화신을 따라 흩어지고 화신의 본체로 달려갔습니다! 이게 잘못될 리가 있습니까?”
“수신이 입으로 읊은 것이 허보리의 이름이고 행사한 것도 천정 신권이다. 네가 천도의 힘을 끌었으니 네 뜻대로 정해진 거겠지. 수신은 증거를 찾지도 않고 우리 교파 제자에게 덮어씌우다니 경솔한 건가, 아니면 편협한 건가?”
이장수는 말문이 막힌 듯 미간으로 열심히 식은땀을 쥐어짰다.
대전 내 신선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수신 대인이라도 성인의 공격은 당해내기가 어려운 법이지.
더 나아가 신선들의 마음속에 공동의 적을 맞닥뜨린 양 적개심이 일었다.
그날 이장수를 따라 선맹대회에 갔었던 천장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동목공이 한발 앞섰다. 일어서서 고개를 드리우고 허리를 최대한 깊게 숙여서는 가장 자신 없는 말로 소리쳤다!
“폐하! 아뢰옵건대 노신이 통명전에 응결된 문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위에 확실히 서방교 서, 성······.”
한 줄기 시선이 목공에게 떨어지자 동목공은 온몸을 달달 떨면서 고개를 더욱더 깊이 파묻었다. 준제 성인이 반쯤 내리깐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려 동목공을 쳐다본 것이다.
목울대가 움찔거렸다. 보통 금선경의 실력으로 어찌 성인의 위엄을 당해내겠는가? 그렇지만 지금 여기는 천정이고 능소보전이다!
나는 옥황상제 폐하 곁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두 번째로 신임을 사는 신하다. 천정 신선들의 모범이었던 내가 어찌 위축된 채 소리를 죽이고 있을 수 있겠어?!
“그 문건에는 확실히 서방교 성인 제자 허, 허보리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준제 성인이 눈빛을 갈무리하자 동목공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몸에 땀이 스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옆에서 커다란 손 하나가 뻗어 나와 목공의 팔을 부축하여 그를 천천히 자리에 앉혔다.
이장수가 씩 웃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뎌 동목공의 앞을 막았다.
구부정했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그의 두 눈에 광채가 번쩍했다. 새하얀 장발이 한 올 한 올 나부꼈다!
인자한 외모의 비쩍 마른 노인에 불과했지만, 능소보전에 있는 신선들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넋을 놓았다. 오을과 변장을 비롯한 젊은 장군들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거의 주체하지를 못했다!
능소보전에 있던 이들이 죄다 남선인이라는 사실이 좀 아쉽군······.
“사실 소신은 그날 선맹대회에 소란을 피웠던 자가 서방교 성인 제자 허보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장수는 옆으로 살짝 몸을 틀고 상공을 향해 공수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준제 교주 앞이라 말하기 곤란해서 그렇지 다들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겁니다! 선맹대회가 중요한 단계까지 진행되었을 때, 소신은 이름을 직접 언급할 수 없는 대교파가 선맹대회를 훼방 놓으리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준제 교주, 고정하세요. 소신, 서방교를 악의적으로 추측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당시 천교 부교주이자 현임 선맹 맹주 연등 선배가 선맹 결성을 정식으로 선포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나서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등 선배가 그자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응? 연등 부교주가 좀 이상한데, 이름을 언급할 수 없는 대교파에 일부러 말머리를 던져주고 저들이 꾸미는 일을 도우려는 건가?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소신의 도심 영대에 기운이 나타났습니다. 모락모락 느리게 피어난 기운은 어렴풋하면서도 깨끗하고 순수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대도 진리가 이 기운으로 해석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분,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이었습니까?”
어느 한 정신이 되묻자 이장수가 즉각 말을 이었다.
“뜻밖에도 소신의 스승님이었습니다. 천지 사이에 제일 강한 성인이 소신에게 준 일깨움이었습니다! 소신은 안절부절못하고 영대가 혼미했지요. 그 기운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마음속에 여섯 글자가 응결되었습니다! 이자는 바로 허보리다!
뒤에서 그 말을 듣던 동목공이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홉 글자 아닌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인께서도 조금 전에 천도가 인정한 죄책을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신도 성인 제자인데, 아홉 글자를 여섯 글자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뭐, 그런 도리가 다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