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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572)화 (572/593)

옥황상제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꾹 눌렀다. 아래에 있던 천장들도 옆자리에 앉은 천장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야 했다.

반면 준제 성인은 코로 숨을 훅 내쉬고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장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여 그 화신을 보자마자 허보리라는 걸 알았지요. 제 스승님인 도문 태청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니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시면 준제 성인께서 직접 태청관으로 가서 여쭤보십시오. 휴우, 소신도 정말 상상치도 못했습니다. 허보리가 당시 어찌나 기고만장하던지. 선맹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았다고 여기더군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주 당당하게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스스로 출신까지 밝혔습니다. 당시 수만 명의 선인이 모두 들었습니다. 서방교에서 가장 인정 받는 성인 제자이면서 지부 윤회탑 탑주 지장의 사형 허보리라고 하는 말을요.”

“그만하라. 허보리는 제멋대로 성인을 속였으니 내 이따가 천정에 맡기겠다.”

이장수는 거기서 더 공격하지 않고 옥황상제에게 읍했다.

“폐하,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이만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옥황상제는 손을 휘휘 저었다.

“준제 교주, 혹 다른 볼일도 있습니까? 짐도 준제 교주와 앉아서 논도하고 싶긴 하나 준제 교주도 봤다시피 천정이 이제 막 흥성하기 시작하여 사무가 워낙 바쁩니다.”

꺼지라는 소리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천정에 왔소이다.”

요지 어느 궁전 구석. 이장수와 옥황상제가 서로 눈을 맞추었다. 둘 다 동시에 경계심이 풀로 채워졌다.

이치대로라면 이장수가 태청 성인을 끌고 나왔을 때 준제 성인은 대충 수긍하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어야만 한다.

이장수가 거듭 태청이라는 깃발을 높이 쳐들면 준제 성인은 자신의 체면을 쇠막대기로 깎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조금 더 힘을 들이면 쇠막대기를 바늘처럼 얇게도 깎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준제는 또 다른 일이 있다고 했다······. 뭔가가 있다. 방심하면 안 돼.

능소보전. 옥황상제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준제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유유히 말했다.

“폐하, 태고와 상고 때 피바다를 주재했던 흉악한 대능, 명하 노조를 아십니까?”

“자연히 알지요.”

옥황상제는 살짝 생각해보더니 이내 진중한 얼굴로 고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명하 노조는 피바다 수라족을 세우고 스스로 교주라 칭하였죠. 상고 때, 육도 윤회를 막은 일로 천벌을 받았고요.”

“예, 그 명하 노조말입니다.”

준제는 실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 말을 이었다.

“명하 노조는 천벌을 받기 전 자신이 몰락하리라는 걸 예감했습니다. 태고 때부터 득도하여 심사가 아주 깊은 그는 생명을 죽이고도 인과를 묻히지 않는 보검 두 자루를 지니고 있었지요. 원도검과 아비검입니다. 그리고 십이품업화홍련이라는 지보도 있습니다.

명하 노조는 천벌을 받을 때 홍련으로 천벌을 막지 않고, 오히려 검으로 홍련을 베어 십이품업화홍련을 흩뜨린 업을 피바다로 모았습니다. 그런 다음 홍련의 연밥 세 개를 던져 훗날 자신이 부활할 때 쓰고자 했습니다. 세 개의 연밥 중 하나는 제가 얻었고, 나머지 두 개의 행방은 아직 모릅니다······.”

“준제 교주도 당시에 피바다에 있었소이까?”

“그 연밥이 저와 인연이 있소이다.”

“그렇군요. 물론 짐도 성인인 준제 교주께서 피바다에 가서 무언가를 줍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준제 교주, 계속 말해보세요.”

준제는 옥황상제의 비꼬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에 깨달음이 찾아와 그 연밥을 꺼내서 보았소.”

준제가 널찍한 도포 아래에서 왼손을 꺼내 천천히 벌렸다. 자갈처럼 쪼글쪼글한 검붉은 연밥 하나가 손바닥에 누워있었다. 선천 지보의 기운이 남아있긴 하나 일말의 생기도 없었다.

이장수의 마음속에 태극도의 영각이 한 마디를 응결해냈다.

“그 홍련의 연밥이 확실하다. 다만 영력이 다 흩어지고 없군.”

“이 연밥이 영력을 흩뜨리니 세 개 중 하나가 곧 익을 조짐을 보였소. 그 연밥이 피바다에 흩어진 업을 흡수하면 다시 십이품홍련을 응결할 수 있소. 홍련이 나오면 업화가 삼계를 휩쓸고 생명이 도탄에 빠질 거요. 명하 노조도 부활할 테니 유명의 큰 화가 되겠지요. 부디 폐하께서 일찍이 출병하여 피바다로 가서 홍련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없애주십시오.”

옥황상제는 이맛살을 좁힌 채 그 연밥을 한참 응시했다. 옆에서 이장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전에 지부에 갔을 때, 서방교 고수들이 피바다에 가서 뭘 찾는다고 하더니 홍련을 차지하려는 게 아니라 삼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였군.”

“그렇다.”

준제는 담담하게 받아치고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서방교는 대성을 위한 뜻을 세우긴 했으나 천하 창생도 마음에 품고 있다. 이 점에서는 서방교와 천정은 같은 입장이지.”

암시. 옥황상제에게 주는 직접적인 암시였다.

원본 봉신대겁의 서방교였다면 준제가 건네는 암시를 나약한 천정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서방교는 이를 빌미로 도문이 주는 거대한 압박을 완화한다.

그러나 지금 서방교는 이미 겁에 든 상태였다.

“천하 창생을 마음에 품었다면 그 향불 신국을 최대한 원상복구 하는 건 어떻소이까.”

“그건 문하 제자들이 한 짓에 불과하오. 나도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조사했고.”

“허!”

옥황상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한참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홍련은 신중하게 처리할 겁니다. 이 일이 사실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천정도 전력을 다하여 막을 것이오. 그러니 준제 교주께서도 부디 큰 힘을 보태서 함께 창생의 복지를 도모하길 바라오.”

“자연히 그래야지요.”

온화하게 미소를 짓는 준제 성인의 육신이 서서히 투명하게 변했다.

“이 일을 천정에 전달했으니 나는 이만 영산으로 돌아가 수행하겠소. 마지막으로 수신에게 한 가지 일러두지. 연밥 세 개 중 하나는 돌고 돌아 절교 성인 수중에 떨어졌다. 지금 대겁이 임박했고 절교는 만선래조라 불릴 정도로 선인이 많다만 실제로는 악행을 감싸주는 교파에 불과하다. 교운을 진압할 지보도 없으니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무수한 죄업을 흡수할 수 있는 그 홍련은 십이품금련과 토대가 같아서 교운을 억누를 수도 있다······ 다······ 다······.”

성인의 끝말이 능소보전에 메아리쳤다.

이장수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지난번에 통천 교주한테 덜 맞은 모양이지?

그러나 준제의 말은 분열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전략이었다.

홍련, 절교, 명하 노조, 세 개의 연밥······.

천도가 미친 듯이 암시했던 그때, 안전을 고집하며 이 일에 끼어들지 않았던 건 그야말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통천 사숙이 체면 때문에 몰래 홍련을 찾아 교운을 진압하려는 계획을 세웠건, 이미 홍련의 연밥을 얻어놓고 천정과 절교를 이간질하고 절교에 더러운 물을 뿌리려는 서방교의 계략 속 계략이건······ 끼어드는 건 적절치 않다.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이란 나는 나와 관계가 있는 절교 고수들을 지키려는 거지, 절교 전체를 지킬 생각은 아니다.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성인마저도 곤란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홍련 사건은 휘말리기만 하면 진퇴양난의 진흙에 빠지고 만다. 반드시 원칙을 고수하고, 주의하고, 행동 강령을 따라야 한다.

한 폭의 대련으로 내 결심을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으리라.

윗줄: 네가 가지 않으면 나도 안 간다. 누군가는 가겠지.

아랫줄: 안 간다고 말했으면 가지 마라. 갈 수 있어도 가지 않는다.

가로줄은······ 「가라」

이장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휘청거렸다. 능소보전에 있던 수신은 탁자로 엎어질 뻔했고, 소경봉에서는 흔들의자째로 뒤집어질 뻔했다.

마음속에 응결된 그······ 거대하고 심오하면서 한없는 기운을 머금은 글자를 보며 가슴속에 가득 찬 감동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었다.

그래, 정의를 위하여.

······

“장경아, 홍련의 일이 진짜라고 생각하느냐?”

요지 궁전의 어느 구석에서 진천주가 전음으로 물었다.

“준제 성인이 이 일을 먼저 언급한 건 서방교가 홍련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이에 우리를 이용하려는 심산은 아닐까?”

맥이 빠진 얼굴의 이장수가 유유히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홍황은 계략이 많지요. 저 멀리 태고부터 지금까지 온갖 계략을 얼마나 많이 펼쳤는지 모릅니다. 태양성 아래에 새로운 일이 없을 지경이지요.”

그 말을 곰곰이 짚어보던 옥황상제의 화신이 사뭇 결연하게 말했다.

“아주 훌륭한 비유로군. 그렇다면 이번 홍련 사태의 전권을 경에게 맡기도록 하마!”

이장수: “······.”

“폐하, 이 일에서 소신은 만두에 든 소나 다름없습니다. 차라리 또 다른 정신을 파견하고 소신이 암암리에 협조하는 건 어떨는지요.”

“절교 쪽에 설명할 길이 없어서 그러느냐?”

“설명할 길이 없다기보다는······.”

이장수는 잠깐 말을 길게 끌었다가 전음했다.

“제가 가장 염려 하는 건 오히려 사태가 커진 후 절교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절교 전체는 뼛속까지 오만하고 서방교를 아예 안중에 담지도 않습니다. 서방교가 유언비어를 날조해도 절교는 굳이 해명하려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천교가 손을 댈 기회가 생기겠지요. 대겁 아래에서는 각자 몸조심을 해야 합니다. 도문이 한 가족이라고는 하나 지난 수만 년 동안 누군가의 노력으로 천교와 절교는 이미 틈이 벌어졌습니다. 폐하, 서방교가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과 실력을 없애기 전까지 천교와 절교가 싸우면 안 됩니다.”

“그렇군······ 별일이구나. 경이 무작정 절교 편에 서지 않다니.”

이장수는 쓰게 웃었다.

“폐하, 천정에서의 신분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소신은 도문 제자이기 전에 인교 제자니까요.”

“그럼 짐의 화신이 선봉에 서겠다!”

“다른 화신은 없사옵니까?”

“있긴 있지. 어찌, 이 화신의 정체가 이미 까발려졌느냐?”

“예. 그것도 한참 됐을 겁니다······.”

“에헴. 그럼 이 일은······ 장군에게 맡겨야겠군!”

이장수는 그제야 안도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일단 안전을 고수해야지.

대법사를 몰래 불러와서 인교 탈것 군단을 소집하고 수시로 중재하고 위협해가며 겁에 응하는 삼교의 실력을 유지해야 한다!

······

“십이품업화홍련이요?”

외진 곳에 위치한 모 대천세계에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전 내 겹겹이 처진 결계로 가려진 구석.

미간을 좁힌 백택이 눈앞에 있는 이장수의 종이 도인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진짜 절교의 계략은 아니겠죠? 이익 방면에서 살펴보면 절교는 확실히 그런 보물이 필요하긴 하지요. 그런데 통천 교주는 평소 떳떳하게 일 처리하기로 유명합니다. 몰래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요.

통천 교주의 성정에 따르면 홍련의 씨앗이 피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들 끽해야 만선을 모두 불러서 피바다에 대진을 치는 게 다일 겁니다. 현재 절교 실력이라면 서방교와 천교가 힘을 합친 대도 성인은커녕, 성인 제자도 흔들기 힘들 겁니다.”

“그렇죠. 확실히 의심이 가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상고 때 세 번째 연밥이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 백 선생은 압니까?”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꼽아 추산하려던 백택은 현재 천기가 겁운에 가려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들어본 적 없습니다. 체청 쪽은 소식을 얻었는지 모르겠군요.”

“체청의 말을 오롯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팔짱을 끼고 한참 연구하던 이장수는 계속 말을 이으려다가 별안간 엥?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결계 너머를 바라보았다.

대전 밖으로 수백 개의 휘황찬란한 빛이 날아왔다. 대전 앞에 이르러 새하얀 망토를 두른 남녀로 변해서는 고개를 드리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발소리가 파초 잎을 때리는 비처럼 꽤 듣기 좋았다. 씩씩하고 힘찬 걸음. 안정감 있는 기식. 경지는 진선경이 가장 많았고, 맨 앞줄은 하나같이 천선경이었으며 간혹 금선도 몇몇 섞여 있었다.

대전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한 여인이 꽃비를 동반하여 천천히 날아왔다. 고정하고 바라보다 이장수는 화신을 불태워 자폭할 뻔했다.

어어?

주구 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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