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6화. 너는 알까 (76/85)


제76화. 너는 알까
2022.07.22.


영희가 시우의 옷자락을 바짝 움켜쥔 채 물었다.

16584978870911.jpg

“드디어……. 만났네요!”

아람이 보여주었던 시우의 사진을 기억해 낸 영희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로비 비상문과 계단 비상문 사이 공간인 부속실에서 연기유입을 막기 위해 팬이 가동되고 있었다.

월튼이 잡고 있는 문틈에서 바람이 밀려와 주변을 걷어냈다. 부속실 등이 환하게 켜져 그 주변이 또렷해졌다.

검은 눈동자가 기쁨에 가득 차 보이는 얼굴을 응시했다.

표정이 쓸데없이, 기분 나쁘게, 선명했다.

16584978870911.jpg

“사장님. 그 사람은 도둑이에요. 제가……. 제가 잡았어요. 사과의 선물이예…….”

16584978870922.jpg

“배영희 씨.”

저음의 목소리가 낯선 사람을 부르며, 말문을 막아버렸다.

제가 잡았어요. 제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내가 얘를 이렇게 만들었어.

울려 퍼지는 말들이 꼭 그렇게 들렸다.

16584978870911.jpg

“절 아세요?”

배영희. 만약을 가정해 건네본 이름이었다.

오늘 방문하기로 약속된 사람은 아람과 환자. 그 환자는 3호점 흉기 난동 사건의 가해자.

가구 사장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환희가 차오른 영희는 감격하며 대답했다.

언제 다시 쥐었는지도 모를 유리 조각이 손안에서 반짝거렸다.

16584978870911.jpg

“네. 네. 제가 배영희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우는 가슴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빛이 사나워졌다.

시우의 머릿속에서 이미 영희는 밀쳐져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웅크린 채 괴로움에 헐떡였어야 했다. 피를 토하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도아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그래야만 했다.

문을 잡고 있던 월튼이 그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서둘러 시우의 몸에서 영희를 떼어 냈다.

16584978870938.jpg

“이봐! 당신! 미쳤어?”

그녀는 다급하게 고함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쾅. 월튼이 놓아버린 문이 닫히며 세상은 다시 어두워졌다. 분노가 암흑 속을 독차지하고 앉아있었다.

한번 솟구친 감정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시우는 손마디에 감겨 있는 것을 무섭게 짓누르다 그 안에 잡혀 있는 것이 도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16584978870922.jpg

“하…….”

그제야 다급히 힘을 풀며 씨근덕거리던 숨을 잠재웠다.

16584978870911.jpg

“왜, 왜 저를 잡으세요? 저 여자 때문에 다친 건 저예요. 쟤가 도둑이라고요!”

월튼의 팔에 붙들려 있던 영희가 벌건 얼굴로 외쳤다.

16584978870922.jpg

“내가 볼 땐 반대인 것 같은데.”

16584978870911.jpg

“아니야! 저X을 잡느라 얼마나 고생한 지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16584978870922.jpg

“글쎄. 곧 알게 되겠지.”

요란하게 울리는 화재 경고음과 물을 뿜어내는 기계 소음이 부아를 더 끓어오르게 했다.

16584978870911.jpg

“당신이 뭐 신이라도 돼?”

바들거리며 언성을 높이던 영희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사장님은 친절한 분인데, 왜 나한테 저렇게 말하지?

권아람 선생님이 분명, 사장님은 내 사과를 받으면 힘들었던 것도 다 잊어버릴 거라고 말해줬었는데. 왜 화를 내지?

숨을 몰아쉬며 흔들리던 시선은 시우의 품에 안겨 있는 도아에게 꽂혔다.

그 도둑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한다. 이 사람은 내 말만 믿는 사람이야. 넌 또다시 교도소에 가게 될 거야.

복잡하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그래, 사장님이 저 도둑한테 홀린 게 분명해. 아까 자신도 저 도둑 말에 홀릴 뻔했으니깐.

의문이 사라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16584978870911.jpg

“그래. 이게 모두…… 다 저 도둑X 때문이야……!”

눈이 매웠던 월튼이 캑캑거리는 사이, 영희가 잡혀 있던 팔뚝을 뿌리치고 도아에게 달려들었다.

냉랭한 눈길이 영희의 행동을 주시했다.

16584978870938.jpg

“피해!!!”

월튼의 외침이 로비에 퍼졌을 때, 이미 시우의 살갗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깨와 이어진 단단한 팔뚝에 꽂힌 유리 조각이 셔츠를 붉게 물들였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영희가 풀어헤쳐진 머리를 힘껏 움켜쥐며 소리쳤다.

16584978870911.jpg

“아아. 이게! 저는, 저는 그게 저 여자를 공격하려고 한 거였……!”

16584978870922.jpg

“제가 다쳤네요. 심하게.”

16584978870911.jpg

“네?”

16584978870922.jpg

“아프네요. 몇 주 입원해야겠습니다.”

16584978870911.jpg

“입……입원이요?”

16584978870922.jpg

“여러 죄목이 많겠지만, 대표까지 다치게 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량 없는 대사에 놀란 영희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구조대원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16584978905086.jpg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아수라장이 된 15층을 서둘러 살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소방관은 문 앞에 서 있는 네 명의 생사를 확인하고, 곧장 내려갈 수 있도록 안내했다.

영희는 연행되어 가듯이 고함을 치다 이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무거운 장비를 온몸에 얹고 온 다른 대원들은 소방시설 안에 있는 앵글밸브를 열어 빠르게 화재를 진압했다.

거기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붉게 타는 정원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시우 역시, 곧 로비를 떠났다.

1층이 다가올수록 분주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요란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시우는 제 품에 안겨 있는 도아에게 집중했다.

까막까막하는 숨소리와 서서히 녹아가는 살결. 의식을 잃기 전 웃어주었던 얼굴.

그의 머릿속에는 그것 외에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었다.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보면 늘 떠오르던 부모님의 잔상조차도.

16584978905092.jpg

 

**

아주 멀리서 바람이 불어왔다. 따뜻하고 포근한.

초록 잎사귀들이 왔다 갔다 나풀거렸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소리가 포근했다.

도아는 자신이 있는 곳이 15층 정원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나뭇결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떨어지고, 멀리서 물줄기가 퍼지는지 기분 좋은 보습감도 느껴졌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사락.

풀잎 움직이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순간, 정원이 옅어지며 어둑한 천장이 들어왔다. 미약한 스탠드 불빛이 연노랗게 스며들어 있었다.

눈두덩이가 부었는지 쉬이 떠지지 않았다.

팔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도아는 눈꺼풀을 반쯤 올리는 것에서 만족했다. 대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우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종이 뭉치를 넘기고 있었다.

저 소리였구나.

그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옷은 단정하지만 편안한 복장이었으며, 조금 피곤해 보였다.

16584978905101.jpg

“…….”

이름을 부르려 했는데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마지막 장을 훑어본 시우가 보고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따뜻한 빛이 그의 옆모습을 타고 부드러운 윤곽선을 만들었다.

시우는 도아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가습기를 확인하고 물통을 뺐다.

움직임을 따라 상쾌한 향이 감돌았다. 차분한 걸음 소리는 방 안에서 낮게 울렸다.

물을 채워 돌아온 시우가 가습기를 다시 틀고 도아의 이마를 짚었다. 곧이어 잠잠하던 눈동자가 흔들렸다.

16584978870922.jpg

“깼어?”

도아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눈 주변이 조금 붉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싶었다.

16584978870922.jpg

“의사 부를게.”

16584978905101.jpg

“괜찮……아……요. 조금만, 있다가.”

도아가 힘을 쥐어짜내 겨우 말을 내뱉었다.

16584978905101.jpg

“여기가 어…….”

어디냐고 물으려던 도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불현듯 어둠 속에서 영희의 얼굴이 매섭게 튀어나왔다. 괴성이 귓가에 퍼지며 혈관을 따라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16584978905101.jpg

“아악!”

비명을 토해내며 허리를 벌떡 일으키자, 시우가 다급히 도아를 품에 안았다.

16584978870922.jpg

“괜찮아. 괜찮아. 도아야.”

커다란 몸에 푹 잠긴 도아는 덜덜 떨며 그을음 없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원에서 벌어졌던 일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흔들었다.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란 사실이 무섭고 참혹했다.

다급히 움켜쥔 손안에서 시우의 옷자락이 구겨졌다. 그 끔찍했던 기억의 끝에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괜찮아. 너만 무사하면 그걸로 됐어.

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사이에 물방울이 가득 찼다. 도아는 그대로 고개를 파묻고 눈물을 한참 동안 쏟아냈다.

지금도 시우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 이제 괜찮아.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자장가를 불러주듯. 그 말을 반복해서 해주었다.

그 이야기가 아득하게 느껴질 즘, 파들거리던 떨림이 진정되었다.

시우는 물을 떠와 한 모금 넘기게 해 주었고, 다시 몸을 눕혀 주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큰 문제는 없으니 안정을 취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말했다.

안도의 숨을 내쉰 시우는 도아의 볼 끝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 한 올을 귀 뒤로 넘기며 짧게 웃었다.

16584978870922.jpg

“새벽이야. 조금 더 자.”

16584978905101.jpg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16584978870922.jpg

“누구?”

16584978905101.jpg

“15층에 있던 사람이요.”

16584978870922.jpg

“입원해 있어. 회복되는 대로 경찰서로 이송될 거야.”

16584978905101.jpg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16584978870922.jpg

“모든 안 좋은 상황들이 나한테 사과를 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믿었나 봐. 예전에 흉기 난동 사건이 있었을 때, 피해 보상을 에이치 코리아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크게 작용한 것 같기도 해.”

16584978905101.jpg

“아무리 그래도…….”

16584978870922.jpg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공격성도 띠는 불안한 상태이기도 했고.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

16584978905101.jpg

“그런 사람이 어떻게 혼자서. 거기까지…….”

처음보다 마음이 많이 진정된 도아는 의문이 남는 듯 계속 질문을 이었다.

16584978870922.jpg

“보안요원이 보안카드를 데스크에 올려두고 자리를 비웠어. 담당 의사가 환자를 너무 안일하게 대하기도 했고.”

차분하게 대답을 해주던 시우가 도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16584978870922.jpg

“로비문 잘 닫으라고 말했잖아.”

애먼 잔소리를 하며 한쪽 입매를 살짝 올렸다.

16584978905101.jpg

“잘못했어요.”

도아가 눈썹을 내리며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곧 맑게 웃었다.

다행이라고. 시우는 생각했다.

지난밤 쓰러져 있는 도아의 모습을 보고 두 다리는 굳어버렸다. 이대로 영원히 못 움직일 것 같기도 했다.

온몸을 덮고 있는 붉은 액체가 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오르며 느끼던 환영이 그를 낭떠러지로 끌고 내려갔다.

그러나 곧 다른 형체가 들어왔다. 그 사람은 부들거리며 오른팔을 힘껏 들어 올렸다. 손에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도 전에 몸이 먼저 도아를 향해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쓰러진 사람을 보고 평소처럼 발작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16584978905101.jpg

“대표님?”

대표가 대답이 없자 도아는 갈색 눈동자를 빼꼼 위로 올리며 그를 불렀다.

시우가 손을 움직여 하얀 손가락 사이를 하나하나 파고들었다.

너는 알까. 그게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시우는 대답 대신 짧게 웃으며 생각을 덮었다.

겨울밤, 창밖에는 함박눈이 쌓이고 있었다.

1658497893807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