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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망한 판타지의 기사-1화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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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땅 위에 잘게 자라난 잡초도, 듬성듬성 돋아난 수풀도, 큼지막하게 뻗은 나무도 모두 뒤틀린 죽음의 땅.

죽어버린 잿빛 땅 위를 달리는 것은 금속으로 된 짐승들이었다.

끝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네 개의 다리, 굵고 강인한 목과 톱니 같은 이빨, 머리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금속으로 된 기묘한 생명체.

그것은 진이라 불렸다.

그 위에 올라탄 것은 또 다른 짐승들이었다.

온몸을 천과 가죽, 금속으로 둘러 연약한 살을 보호하는 종족.

날카로운 손발톱이 없어 녹여 비틀고 갈아낸 금속으로 그를 대신하는 종족.

자신을 태운 종복과는 달리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들.

그들은 인간이요, 그중에서도 기사라 불렸다.

"왼쪽으로 돌아가!"

"주의를 끌 테니까 그쪽에서 쳐!"

기사들이 포위한 것은 마수라 불리는 존재였다.

몰락한 세상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

사악한 마법사들이 만들었다 전해지는 존재들.

그들이 잡으려는 마수 '칼꼬리'는 고양이를 닮았다.

적어도 네 개의 눈, 끝에 칼날이 달린 세 개의 꼬리, 온몸에 돋아난 가시, 체고 3m에 달하는 덩치가 아니었으면 고양이를 닮았노라 말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 ■ ■ ■ ■-!

보통 인간이라면 듣는 것만으로도 고막이 터질만한 굉음을 내지르며, 칼꼬리가 자신의 꼬리를 휘둘렀다.

기사를 태운 진은 순식간에 옆으로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해냈다.

자신이 태운 기사와 정신적으로 연동된 이 생물은 기사의 날카로운 반사신경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찔러!"

몇몇 기사들이 찌른 긴 창이 칼꼬리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돋아난 가시에 걸려 유효한 타격은 주지 못했다.

온 몸에 단단한 가시가 돋아난 칼꼬리였기에, 치명타를 입히려면 눈이나 입, 항문 같은 급소를 노려야 했다.

앞에서는 묵직한 고양이 펀치가 기다리고 있고 뒤에서는 칼날 달린 꼬리가 기다리고 있는 만큼 어지간한 강심장이라도 노리기 힘든 부위지만 말이다.

결국 평범한 기사들은 안정적으로 옆구리를 계속해 찔러 과다출혈을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모험을 시도하는 자가 있는 법이다.

"간다!"

"아르센! 이 미친 자식아!"

기사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해 칼꼬리의 뒤를 노렸다.

세 갈래로 후방과 좌우를 경계하던 꼬리 세 개가 모두 자신의 엉덩이를 노리는 기사를 향해 찔러졌다.

주로 눈이 앞에 몰려 전방을 보는 데 특화된 육식동물들과 달리, 칼꼬리는 사람이라면 관자놀이쯤 되는 부분에 눈이 한 쌍 더 달려있어 시야반경이 훨씬 넓었다.

주변을 맴돌던 다른 기사들은 돌격한 기사가 순식간에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을 상상했다.

"그아아아앗!"

맹렬히 포효하며 달려든 기사는 날아드는 칼날을 향해 왼손에 든 방패를 내밀었다.

첫 번째는 후려치듯 방패로 쳐내고 두 번째는 몸을 젖혀 옆으로 밀듯 흘려냈으며 세 번째 칼날은 진을 주저앉힘과 동시에 허리를 뒤로 확 꺾어 피해냈다.

아무리 기사의 반사신경이 뛰어나다 해도 제정신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기예였다.

그렇게 칼날이 지나가자마자 무릎을 꿇은 그대로 추진력을 얻은 진이 네 발을 튕기듯 도약했다.

기사는 마침내 칼꼬리의 엉덩이 앞에 도달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칼꼬리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겨냥해 4m짜리 창을 찔러넣었다.

■■■■■■■■■■■■■----!

조금 전의 포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저세상의 고통이 느껴지는 절규가 칼꼬리의 입에서 토해졌다.

창을 찔러넣은 기사 역시 몸을 최대한 숙인 채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는 꼬리의 범위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그가 외친 한 마디에 모든 기사가 움찔하더니 재빨리 진에서 내려 그 뒤로 몸을 숨겼다.

"터진다!"

안에서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는 것과 함께 온 사방에 마수의 피와 살점이 쏟아졌다.

다른 기사들은 모두 자신의 진을 이용해 몸을 숨겼기에, 기름처럼 까맣고 끈적거리는 마수의 피를 뒤집어쓴 것은 창을 찔러넣은 기사 한 명뿐이었다.

피와 살점을 뒤집어 쓴 기사가 투구를 벗고 머리를 탈탈 털자 다른 기사들이 옆으로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그들 역시 사냥으로 열기가 오른 탓인지 머리를 식히고자 하나씩 투구를 벗었다.

"넌 정말 미친놈이야, 아르센."

"그래서 불만이냐?"

"당연히 최고라는 뜻이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칼꼬리를 그렇게 잡는 놈은 처음 봤다."

그렇게 말하는 기사의 옆에 다른 기사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처음 보겠지. 보통은 하나 잡는 데 몇 시간은 걸리는데. 똥구멍에 폭발창을 집어넣고 터트리는 놈이 어딨어?"

"거 말 좀 고상하게 합시다. 똥구멍이 뭡니까."

기사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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