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래는 바뀌기 시작한다 (2)
“……제가요?”
“오디션에서 생각 외로 굉장히 잘하기도 했고 욕심도 있으니까 네가 해도 괜찮을 거 같거든.”
팀장님의 말에 곁에 앉은 직원 또한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센터 하고 싶다고 오디션장에서 어필했잖아. 메인 보컬이면 센터에 서는 일도 많고, 서현우를 중간에 세워 볼 생각도 하고 있거든?”
나 센터 하고 싶어요. 하게 해 주세요. 고래고래 소리친 것과 다름없는 오디션이어서 서 있는 자리가 바뀔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메인 보컬을 맡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대답도 못 하는 나를 보고 팀장은 또 소리 내어 웃어 댔다.
“네가 욕심만큼 잘해서 맡겨 보는 거야. 고음도 생각보다 깔끔하게 잘 올라가던데 지금까지 뭐 하러 맨날 비슷한 곡만 가져왔어?”
“아, 그건…….”
“진즉에 이랬으면 이미 데뷔하고도 남았겠다.”
그때 고유준이 내 어깨에 팔을 둘러 왔다.
“짜아식! 열심히 하더니 기어코 하나 가져갔네. 아, 아깝다. 나도 메인 보컬 하고 싶었는데.”
아니, 그거 원래 네 자리였는데. 방금 내가 그걸 뺏은 것 같거든.
고유준이 기뻐해 주면 해 줄수록 작정하고 뺏은 주제에 복잡함은 더해 갔다.
“유준이는 서브 보컬이긴 해도 파트 지분이 많을 거야. 넌 베이스를 깔아 줘야지.”
“네. 파트만 많이 주시면 상관없어요.”
고유준은 노래 부를 기회만 많으면 어찌 돼도 좋은 듯 내 어깨를 흔들며 기뻐해 주었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고유준의 손을 치워 냈다. 내가 원하기는 했지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윤찬이.”
팀장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박윤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분위기가 조금 얼어붙은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박윤찬을 바라보는 팀장님과 A&R 팀의 표정은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을 보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네…….”
박윤찬이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엄하게 바라볼 필요 있을까 싶긴 한데, 우린 어디까지 연습생.
특히 박윤찬 같은 경우는 외견으로도 실력으로도 지금 당장은 부족한 것이 많아 혹독하게 다그치지 않으면 데뷔하지 못할 것이다.
“윤찬이는 서브 보컬. 그리고 대형 말인데 일단 넌 살부터 빼고 이야기하자.”
“……네. 알겠습니다.”
박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서러움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내가 다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박윤찬도 대단한 원석인데 모든 것이 살과 소심한 성격에 가려져 있었다.
“윤찬이 오디션 볼 때 한 달 안에 10킬로그램 빼기로 했던 거 기억나지? 일주일에 한 번씩 몸무게 잴 거니까 관리하자. 어?”
“네, 죄송합니다.”
팀장님도 심사 위원들도 모두 박윤찬의 가능성을 알고 있기에 데뷔조에 넣었지만, 박윤찬도 과거의 나처럼 열정이나 끈기는 부족하다.
아니, 그때의 나보다 포기는 더 빠를지도.
기가 죽은 박윤찬에 멤버들도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급격하게 엄해진 분위기를 팀장님도 느꼈는지 그는 억지로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아무튼 윤찬아, 넌 충분히 가능성 있는 놈인데 살 때문에 데뷔 못하면 분하지 않겠어? 열심히 해 보자.”
“네, 팀장님.”
“그리고 조금 이른 감은 있는데 데뷔하기 전에 팬덤은 좀 모아야 할 것 같아서 방송사에 프로필 돌려 봤거든?”
‘……아.’
이제 조명 사고의 원흉이기도 한 그 일이 시작되려 하는구나. 태연하게 들으려 해도 몸이 조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랬더니 아는 PD가 이번에 만드는 프로에 너희 한번 넣어 보겠다 하네.”
“저희를요?”
“UNET에서 데뷔 예정인 그룹들을 모아서 또 서바이벌 예능을 한다고 하더라고.”
UNET.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전문 방송사 이름이다. 최근 경쟁 방송에 꽂혀서 랩, 댄스, 이미 데뷔한 가수 등등 온갖 조합으로 서바이벌 방송을 만들어 내더니 결국 데뷔 예정인 그룹까지 경쟁을 붙이려는 모양이다.
“연습생 서바이벌 예능은 이미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이번에는 연습생 서바이벌보단 소속사 서바이벌이지.”
팀장님은 우리에게 방송사에서 보낸 서류를 건네주었다.
“각 소속사에서 데뷔 예정인 그룹을 한 팀씩 내놓을 거야. 미리 그룹 분위기도 보여 주고 팬덤도 모으고, 좋은 기회지.”
내가 아직 데뷔조였던 시절, 줄곧 이 방송 촬영을 준비한다고 한창 바빴다.
딱 사고 난 날이 첫 촬영이었는데 사고로 인해 내 장면은 전부 편집되었었지.
“이렇게 갑자기요?”
“걱정 마. 아직 본격적인 촬영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어.”
“저희는 뭘 하면 돼요?”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 소식에 굳은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주한 형은 빠르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팀장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연습 게을리하지 말고, 윤찬이 다이어트 다 같이 도와주고, 그리고 삼 주 뒤에 오디션 장면을 촬영한다고 하거든?”
“오디션?”
“오디션으로 출연할 그룹을 뽑았다는 설정이라. 이미 출연은 정해져 있긴 한데 그래도 대중한테 처음으로 어필할 기회니까 주한이가 주도해서 한번 준비해 봐.”
팀장님의 말에 곁에 있던 기획 팀 직원이 말을 덧붙였다.
“오디션에 관련해서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하고.”
“오디션 넘어 또 오디션인가. 어후.”
고유준이 질린 얼굴로 몸을 떨어 댔다. 연습생 시절 내내 오디션을 넘기며 살다 겨우 데뷔조에 들었더니 또 오디션. 질릴 만도 하다.
“오디션은 어떤 분위기로 진행되는데요?”
주한 형의 말에 팀장님이 서류를 뒤적였다.
“딱히 분위기랄 건 없는데, 대신 다들 칼 갈고 나오겠지.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니까. 첫인상을 강렬하게 새기고 싶을 거야.”
“무대가 따로 설치돼요? 아니면 우리 월말 평가 같은 그런 분위기인가?”
“후자. 무대에 올리지는 않는대.”
주한 형은 굉장히 침착했다. 갑작스레 떨어진 불똥에 당황할 만도 한데 참 대단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리더를 하는 거지. 그래.
난 유넷에서 보낸 서류를 뒤적거렸다.
이 방송에서 멤버들은 어떤 성과를 거뒀더라.
이 방송 카메라가 도는 도중 사고가 나고 데뷔조를 탈퇴했던 나는 서러움에 방송을 보지 않아 결과가 어떠했는지 모른다.
우승 보상이 리얼리티 예능 방송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멤버들이 그런 걸 찍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아마 우승은 하지 못했을 거다.
“어쨌든 너희는 그날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나 생각하면 돼.”
대중에게 어필이라니, 그 어려운 과제를 저렇게 쉽게…….
멤버들의 굳은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호탕한 웃음을 내던 팀장님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를 끝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탄 멤버들의 화제는 단연 서바이벌 예능 출연이었다.
“와, 진짜 데뷔조에 드니 뭔가 달라지긴 달라지는구나. 바로 방송 출연도 잡히고.”
이진성의 말에 매니저 형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시기를 잘 탄 것도 있어. 알뤼르 때는 데뷔 전에 어필할 방법이 쇼케이스밖에는 없었거든.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잘된 거지. 좋은 기회를 얻었어.”
“기왕 출연하는 거, 우승했으면 좋겠다.”
멤버들이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옆자리가 묘하게 조용했다. 고개를 돌리자 팀장님께 한 소리 들었던 박윤찬이 침울하게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야, 윤찬아.”
내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박윤찬은 그제야 고개를 들며 착잡하게 웃었다.
“방송에도 출연하는데, 진짜 열심히 다이어트하지 않으면 잘릴 수도 있겠죠?”
“뭐……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물론 계약 해지 서류가 면전에 들이밀리기는 하지만 박윤찬은 확고한 의지로 이겨 내고 결국 데뷔하지 않았던가.
박윤찬의 손가락이 소심하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난 한숨을 쉬며 녀석의 등을 툭 쳤다.
“잘됐어. 어차피 우리도 다 같이 다이어트 해야 돼.”
“감사해요, 형. 어쩐지 멤버들 중에 저만 뒤처진 느낌이라…… 좀 씁쓸하네요.”
“뒤처지기는.”
그리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 말은 박윤찬에게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할 거다.
뒤처지는 기분, 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함께 시작한 멤버들과 실력 차가 벌어지는 기분, 형용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야, 오디션 이야기 그만하고 들어 봐.”
그때 갑자기 주한 형이 떠들썩한 멤버들을 조용히 시켰다. 멤버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자 주한 형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멤버 모두 다이어트 들어간다. 첫 방송인데 잘 보여야지.”
아마 나와 박윤찬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 난 식이 조절은 못 해요. 운동만 동참할게요.”
이진성의 말에 고유준이 혀를 차 대며 말했다.
“숙소에 있는 이진성 탄수화물 죄다 가져다 버릴게요.”
“와, 너무하신다.”
주한 형뿐만 아니고 다른 멤버들도 우리 대화를 들은 듯 자연스레 다이어트에 동참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진짜로.”
사실 뺄 살도 없는 녀석들이지만 박윤찬을 홀로 둘 리 없었다.
박윤찬의 인사에 고유준이 몸을 꼬아 대기 시작했다.
“제발 고맙다고 하지 마! 제발! 오그라드니까.”
“그래도 고마운 건 사실인데요…….”
주체할 수 없어진 분위기에 멤버들이 하나같이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거실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잠을 깼다.
저음질의 강한 비트에 인상을 찌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주한 형이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형, 아침부터 뭐 해요……?”
“아, 일어났냐?”
주한 형은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멤버들은 아직 안 일어났어요?”
“아니, 윤찬이랑 진성이는 학교 갔어.”
“……아, 학교.”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십 대였지. 나와 고유준은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후 연습생 생활에 집중했지만, 박윤찬과 이진성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을 터.
난 주한 형의 옆자리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뭐예요? 알뤼르 선배님들?”
“어어, 오디션 곡을 뭐로 할까 고민 중이었어.”
주한 형이 한숨을 쉬었다. 벌써 선곡을 고르는 걸 보면 아닌 척해도 리더로서 오디션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지금까지 그룹으로 오디션을 본 적은 없을뿐더러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기획하는 일은 어지간히 머리 깨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우리가 YMM이니까 직속 선배님 노래를 가져가는 게 어떨까 싶기는 한데, 현우 넌 좋은 생각 없어?”
“저요?”
“너 데뷔조 오디션 때 선곡을 보면 이런 쪽으로 센스가 있는 거 같은데.”
좋은 생각이라…….
난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실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요.”
생각하라고 하면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심지어 내가 생각하기엔 좋은 작전 같긴 한데 어, 이걸 말하면 그다지 주한 형과 멤버들에게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떤? 한번 말해 봐. 뭐라도 괜찮으니까.”
“어, 그게…….”
“왜 그렇게 머뭇거려? 영 아닌 것 같으면 참고만 할 테니까 말해 봐.”
영 아닌 것보다는 바로 등짝을 발로 까일까 봐 무서운 거지.
하지만 난 굳게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형, 화내지 말고 일단 제 의견과 이유를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