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래는 바뀌기 시작한다 (6)
소란스러운 현장에서 유넷의 한이수 VJ는 한숨을 쉬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아, 깨졌네. 젠장.”
비싼 건데 큰일 났다.
아직 이름도 모를 아이돌 멤버의 머리 위로 샹들리에와 조명이 떨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한이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대충 테이블에 올려 두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었다.
다행히 큰 사고 치고 심각하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촬영 중이던 멤버 한 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한이수가 자리로 돌아오자 중심을 잡지 못한 카메라가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물어내야 하나. 물어내야겠지. 아나.”
한이수가 억울함에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와 마찬가지로 현장 상황을 지켜보던 총괄 PD 이원제가 다가왔다.
“한 대리, 방금 그 사고 카메라에 찍혔어?”
“예? 아, 어 음. 네. 찍혔을 겁니다. 화면은 몰라도 음성은 다 들어갔겠죠. 그런데 왜요?”
“카메라 줘 봐.”
한이수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촬영분을 보는 이원제 PD의 입꼬리는 음흉하게 올라가 있었다.
“팀장님, 아무래도 이건 쓰기 좀 그렇죠?”
“조용히 해 봐.”
지금까지 <랩스타>를 시작으로 온갖 서바이벌 프로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킨 일명 ‘언플의 제왕’ 이원제.
방송의 화제를 위해서라면 악마의 편집도 서슴지 않는 이원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번에도 돈줄 제대로 잡았군.’
라인업 출연진 중 가장 정보가 없는 연습생들이라 얼굴도 볼 겸 이곳에 붙기를 참 잘했다.
테이프에 담긴 자료는 충분하다. 이미 조명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 멤버와 매니저에게 윽박을 지르는 조명 감독, 결국 일어난 사고에 기지를 발휘해 동료를 구한 멤버.
이보다 이슈가 될 소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원제의 표정에 그와 몇 번이나 작업했던 한이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팀장님, 설마 이 영상 공개하실 건 아니죠? 이런 사고류는 공개했다간 역풍 맞아요.”
“한 대리, 내가 그걸 모르겠어? 다 생각이 있어.”
“하지만…… 이거 공개하면 이 현장에서 갈려 나갈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은데요.”
한이수가 촬영 팀 사람들을 힐끔거렸다.
크로노스의 매니저 조인현이 촬영감독과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원제는 휴대폰을 두들기며 유넷과 협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팀장님?”
한이수의 부름에 이원제가 혀를 찼다.
“내가 알아서 잘 이용해 볼 테니까 걱정 마. 그리고 저런 놈들은 따끔한 맛을 봐야 돼.”
사람 하나 죽일 뻔했는데 별일 없이 넘어가면 끽해야 조명 감독 하나 징계밖에 더 받겠나.
딱히 크로노스를 위해 복수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이원제의 기지로 저 장비 부실 촬영 업체에게 엿은 제대로 선사하게 될 거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한 대리, 나는 서울 연예 기자님 좀 만나고 올게. 현장 정리하고 들어가.”
“네? 네. 들어가십시오.”
이원제는 깨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나섰다.
* * *
발목부터 정강이까지 길게 감아 놓은 붕대를 바라보았다.
한참 정신없을 때는 별 감흥 없었는데 조금 정신을 차리고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니 유리 파편이 꽤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날 병원에 데려다준 로드 매니저는 식겁한 모양이었지만 얼굴이 갈리는 것보다는 자잘한 다리 상처가 차라리 다행이었다.
“현우 형, 미안해요.”
이진성이 내 옆에서 안절부절,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난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탓이냐? 너 죽을 뻔했어.”
그러자 이진성의 뒤에 서 있던 주한 형도 한마디 거들었다.
“둘 다 큰일 날 뻔했어. 심장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현우 형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구해 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이진성이 생각보다 가벼워서 살았다. 워낙 잔근육이 탄탄한 놈이라 당겨도 안 따라오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촬영은 어떻게 됐어요. 매니저 형은요?”
“지금 현장에서 따지고 있지. 조명 이상하다고 미리 말했다며? 매니저 형이 열 받아서 조명 감독 멱살 잡고 난리 났어.”
난 주한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은 그리해도 별일 없이 지나갈 거다.
예전엔 딱히 화제가 되지도 않고, 업체에게 보상을 받기는 했는데 조명 감독은 징계만 받고 복귀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도 뭐 다르겠어. 기껏해야 연습생 하나 다쳤을 뿐이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조용히 끝맺음이 날 가능성이 크다.
“고유준이랑 윤찬이는요?”
“촬영분 확인 중. 우리 것까지 확인해 준다고 하길래 둘만 왔어.”
“우리가 마지막 차례라서 재촬영은 하지 않는대요.”
“유준이 여기 오고 싶어서 난리 치는 걸 억지로 거기에 붙잡아 뒀다, 오면 시끄러워질까 봐.”
“고맙습니다, 주한 형.”
아마 고유준이 이곳에 왔다면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일단 감정에 못 이겨 욕부터 박고 시작할 거다.
지금도 매니저 형 때문에 문자는 못 보내고 눈치만 보고 있을 테지.
지금은 고유준의 소란을 받아 줄 여력도 남아 있지 않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때 주한 형이 가지고 있던 업무용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인현 형이다.”
“지금 오고 있대요?”
주한 형은 휴대폰을 바라보다 픽 웃었다. 그러곤 나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촬영분, 그래도 잘 나왔나 봐. 매니저 형이 보내 줬어.”
“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사진은 이것으로 결정.
매니저 형이 보내 준 사진은 단체 사진 두 장, 나와 이진성, 그리고 멤버들의 유닛 사진 두 장, 개인 사진 한 장씩이었다.
난 첫 사진을 보자마자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머리가 새하얗게 비는 느낌이었다.
“……아.”
열 장에 가까운 사진, 볼거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 손은 첫 번째 사진에서 줄곧 멈춰 있었다.
다섯이서 찍은 단체 사진.
그 사이에 사라졌던 내가 있었다.
“서현우?”
“현우 형, 뭐야? 왜 그래요?”
앞으로도 영원히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다섯 명의 사진이었다. 화면 위에 떠 있는 엄지손가락이 떨렸다.
뭐라고 할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다.
“형, 울……어요?”
“안 울거든.”
난 눈에 꽉 힘을 주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다음 장은 나와 이진성의 유닛 사진.
이 또한 본 적 없던 사진으로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찍었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미래는 확실히 바뀌었다.
단순히 포지션이 바뀌고 그룹 이름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이 그룹 내에 나라는 멤버가 계속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현우, 덤덤해 보이더니 무섭긴 했구나.”
나를 안쓰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등을 토닥이는 주한 형의 손. 나는 징그럽다고 손을 치워 버리고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아무튼 고생했습니다. 이진성은 나 괜찮고 너 잘못 없으니까 제발 표정 펴고.”
얼마 뒤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매니저 형이 병원으로 와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워낙 큰일이 있었던 탓에 멤버 모두 녹초가 되어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있던 중 고유준이 난리를 피우며 멤버들을 끌어모았다.
“유넷 조명 사고가 검색 순위 3위인데?”
“뭐야, 기사가 어떻게 나요? 벌써 유출됐나. 진짜 미쳤네요.”
유넷의 새로운 서바이벌 예능을 촬영 중이던 그룹이 조명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온갖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다.
부상을 당한 그룹이 어떤 그룹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크게 화제가 되어 조명 감독을 포함한 촬영 업체는 대대적으로 사과문과 함께 장비 점검 부실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어떻게 알았지? 비밀리에 촬영한 건데.”
“유넷에서 은근슬쩍 뿌린 거 아닐까?”
내가 넌지시 말했다.
“유넷에서도 따로 대응 안 하고 있잖아. 언플 시작한 거지, 뭐.”
“헐, 그래도 남의 부상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빡치네.”
고유준이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유를 내 부상 정도가 가볍기 때문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얼굴이 녹아내릴 정도의 사고로 출연했어야 할 멤버가 복귀 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면 유넷이 미치지 않은 이상 이를 기사화시켰을 리가 없었을 테지.
내 부상이 가벼웠고 화제를 모을 소재는 충분하다. 그러니 이 사건이 기사화가 되고 화제를 모으고 그 결과 간단히 관계자 징계만 받고 조용히 끝났던 일이 이렇게나 커질 수 있었던 거다.
살짝 억울한 마음과 함께 납득 그리고 안도했다.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조명 감독이랑 업체한테 소송 건다더라. 이것도 기사화되면 사건 당사자가 우리인 거 다 알게 되겠네.”
주한 형이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일 뒤.
그러니까 우리가 차차 옷을 입고 오디션 촬영을 하기 4일 전, 굳이 YMM에서 나서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은 그 사건의 당사자가 크로노스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지 모를, 실은 유넷의 짓이 확실한 사건 당시의 영상이 커뮤니티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10분 정도로 편집된 영상에서는 멤버들의 인터뷰 뒤로 매니저 형과 조명 감독의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우리 멤버가 흔들리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그냥 점검 한번 다시 해 주시면 되잖아요. 누구 하나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진짜 웃긴 양반이네? 내가 오늘 아침 분명히 점검 끝냈다니까? 기껏해야 이제 첫 촬영 하는 신인 나부랭이가 알면 뭘 안다고 지껄여? 이봐 형씨, 조명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신경 쓰지 말고 코찡찡이들이나 관리하슈.
그에 매니저 형의 답답한 한숨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화면은 전환되어 주한 형이 카메라 VJ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 줬다.
-전혀 이상이 없다고 화내더라. 장비 점검도 했고 이상 없다는데 데뷔도 안 한 신인 놈이 뭘 아냐고 욕 빡세게 먹었어.
-……아, 그래요?
-장비에 문제 있어 보인다고 하면 말이라도 점검해 보겠다 해야 할 것 아니야, 어이가 없어서.
멤버들의 인터뷰 뒤로 전 영상과 마찬가지로 조명 감독이 점검해 주려 하지 않는다는 매니저 형과 내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사고가 났던 그 부분.
-아! 좆 됐다……. 괜찮아요?
화면이 흔들리며 카메라를 들고 있던 VJ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고가 난 직후 카메라를 던져두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 카메라는 현장을 제대로 담고 있진 못했지만 음성만은 또렷이 담겨 있었다.
난리법석을 떠는 스태프들과 혼란에 빠진 멤버들.
그리고.
-……야, 너 괜찮냐?
-네? 아, 아, 어, 네. 놀랐……. 근데 형은 괜찮아요? 고마워…… 형. 다리! 다리에서 피나요!
-후우, 다행이다.
정신을 놓고 말을 더듬는 이진성과 녀석의 상태를 살피는 내 목소리까지.
들어갈 것은 죄다 들어간 이 영상은 SNS를 통해 퍼지다 다시 한번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다.
관련한 기사는 수십 개가 올라왔으며 영상 속 그룹과 부상당한 멤버는 누구인가에 대해 추리하는 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출본에 대해 화를 내며 유넷을 터트릴 기세로 이를 갈던 우리 회사 사람들은 여론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자 흐뭇하게 슬쩍 정보를 흘렸다.
해당 사건의 주인공은 YMM 소속의 ‘크로노스’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