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D 팀 모임
2주간의 합숙이 끝이 나고 숙소로 온 날부터 3일 내리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카메라가 없는 공간에서 오랜만에 맞이한 아침. 합숙 중엔 어떤 힘든 연습이라도 근육이 아프거나 한 적 없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근육통이 심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아무래도 긴장이 풀려 누적되었던 피로를 한 번에 받으려는 것만 같았다.
“요즘엔 수시로 졸려. 나 거의 세 시간 텀으로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것 같은데.”
고유준이 소파에 늘어져서 말했다. 나는 고유준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하루 종일 자도 계속 졸리더라.”
“졸려도 좀 참아. 잠도 습관 된다.”
주한 형이 부엌으로 들어가며 툭 말했다.
“형, 우리 촬영 언제래요? 근육통이 장난 아니라서 지금 당장 연습을 시작하면 죽을 듯요.”
“일주일 안에 회의에 들어간대.”
주한 형이 다가와 소파 밑바닥에 앉았다.
“회의요?”
“마지막 경연은 생방송으로 나가게 한다고 하나 봐. 경연 주제는 조금 뒤에 나오고 기존 분량이 전부 방영될 때까지 준비해야지.”
오오, 꽤 넉넉한 시간을 주는 구나.
아무래도 마지막인 만큼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할 만한 주제가 나오는 모양이다.
“곧 있으면 또 하루 종일 연습해야 될 테니까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자지는 말고.”
주한 형이 TV를 틀었다. 한 달 전부터 유넷에만 고정되어 있는 TV에는 또 <픽위업> 1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볼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워하던 우리도 거의 하루에 두 편씩은 방영하는 <픽위업> 재방송 편성에 슬슬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매니저 형의 엄포로 공연 반응도 못 보고 딱히 할 일도 없어 고유준의 반대편으로 늘어져 있던 차.
띠링!
폴더폰에 알림음이 울렸다.
-현우 잘 지내고 있어? D 팀 멤버들이랑 간단히 점심 먹을 건데 올래?
지혁 형에게서 온 문자였다. 고유준은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또 지혁 형이야? D 팀 의외로 되게 사이좋네?”
“너희도 마찬가지 아냐? 자주 연락하더만.”
“그건 그런데 너희 팀은 경연 끝나면 아예 안 볼 것 같았거든. 그닥 사이 안 좋았지 않나?”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쉬는 시간마다 시끄럽게 떠들던 다른 팀과는 달리 우린 쉬어도 무대 이야기만 하고 그다지 즐거운 대화는 하지 않았으니까.
예의상 번호 교환을 해도 딱히 연락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D 팀은 경연이 끝난 후 3일 내내 의외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2주간의 합숙 생활 동안 쌓인 정은 무시 못 한다. 오히려 무대라는 큰 숙제가 사라지니 편하게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네, 갈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문자를 보내자 지혁 형에게 금방 답장이 돌아왔다.
-너희 숙소 어디냐? 데리러 갈게. 온세는 이미 만났어.
난 지혁 형에게 숙소 위치를 알려 주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사실 무대를 제외하곤 사람 많은 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직 버겁기는 하다. 하지만 지혁 형이라면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룸에 예약을 걸어 뒀을 테니 괜찮겠지, 아마.
욕실로 향하니 주한 형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가는 건 좋은데 연락하면 꼭 받고 매니저 형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와.”
“매니저 형은 언제 오는데요?”
“저녁 8시.”
“네. 밥만 먹고 돌아올게요.”
지혁 형과 온세의 숙소도 이곳에서 가까운 모양인지 준비를 끝내고 나니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숙소 앞엔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차량이 서서 번쩍번쩍 태양광을 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건 어떤 부호의 차량인가.
절대 연습생이 탈 만한 차는 아니라는 생각에 지나치고 주위를 둘러보자 외제 차가 클랙슨을 울려 댔다.
“현우야! 보고도 왜 안 타?”
“형?”
왜 외제 차를 타고 있어요?
티 나게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차로 향하자 형은 왜 그러냐는 얼굴로 뒷좌석을 가리켰다.
“진욱이 데리러 가야 하니까 얼른 타.”
“이거 형 차예요?”
“아니, 아버지 차. 오늘 회사에 타고 오셨길래 빌려 왔지.”
아버지, 회사, 빌려와?
영문 모를 얼굴을 하자 지혁 형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YU 대표님이셔.”
“……아.”
YU에서 트레이너를 하면서도 한 번도 뵙지 못했던 나의 오너, 그분의 아드님이셨구나.
어쩐지 김진욱을 회사에 들일지 말지 하는 이야기도 너무 쉽게 꺼낸다고 했다.
단순히 데뷔를 앞둔 연습생치곤 권한이 많지 않나 했는데 다 생각이 있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온세도 이후 YU로 넘어와 내 교육을 들었었다.
아마 경연을 연으로 소개받았을 테지.
“그런 거였구나…….”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진욱 형은 어떻게 됐어요? 저번 무대 YU 오디션으로 친다고 하지 않았어요?”
온세가 물었다. 그러자 지혁 형이 웃었다.
“결과는 진욱이가 제일 먼저 들어야지. 사실 나 그거 발표하러 다들 모이자 한 거야.”
반응을 보니 됐네. 하긴 그렇게 열심히 했고 심지어 잘했는데 안 되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에어시니어의 숙소에 도착하자 숙소 앞 검은색으로 무장한 김진욱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김진욱 또한 외제 차가 지혁 형의 차라곤 생각 못 하고 있다가 클랙슨이 울리고서야 고개를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창문 앞을 서성이는 걸 보면 지혁 형의 차가 맞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지혁 형은 창문을 내리고 들어오라 손짓했다.
“뒤에 온세랑 현우 있으니까 넌 조수석에 타.”
“네.”
김진욱이 차에 올라탔다. 경연이 모두 끝나 지혁 형에게서도 자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김진욱에게선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희들 숙소는 아직 조용하네?”
“무슨 말이에요?”
지혁 형의 말에 온세가 물었다.
“숙소에 찾아오거나 하는 팬 없어?”
우린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하이텐션은 처음부터 팬이 많았었지. 데뷔 이후엔 크로노스 멤버들도 숙소에 찾아오는 팬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였는데 하이텐션은 데뷔 전부터 찾아오는 팬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크로노스는 최근 인기가 많아져서 있을 줄 알았어.”
“저희 인기 없어요. 경연에서도 팬 투표 들어가면 바로 밀려 버리고.”
“너무 겸손한 거 아냐?”
“와, 인기 톱 양대 산맥이 쭈그리 앞에서 기만하는 거예요?”
온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가 시시덕거리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온 곳은 룸이 달린 한식집.
미성년자 연습생들에겐 매우 부담되는 분위기의 한식집이었는데 지혁 형은 걱정 말라며 식당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고 오셨습니까?”
“우지혁이요.”
“아, 네! 일행분께서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룸 안에는 먼저 온 스트릿센터 우정 형과 하윤 형이 있었다.
“왔어? 셋이나 데려오는 것치곤 일찍 왔네?”
“셋 다 가까이 살았어.”
“야, 그럼 다 가깝게 사는데 앞으로 자주 만나자.”
“좋지.”
모두 각자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잘 지냈어?”
“3일 내내 쉬었어. 근육통이 도통 가시질 않더라.”
“잠만 퍼질러 잤어. 밥도 안 먹었지.”
우정 형이 식탁에 엎드렸다. 우정 형도 고유준처럼 하루 종일 자다 결국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진욱이는 어때? 그날 나갈 때 보니까 분위기 안 좋던데.”
“……뭐 그냥.”
경연 때 김진욱 혼자 캐리해서 에어시니어를 5위에 올려 두었건만 정작 무대가 끝나고 돌아온 에어시니어 멤버들의 반응이란 열등감 섞인 비아냥이었다.
“우리 진욱이 우리 그룹 영웅 됐네. 잘했어.”
“이제 해체할 때 돼서야 열심히 하네. 왜, 열심히 하면 다른 회사 영입이라도 될 거라 생각했나 봐?”
“야, 열심히 한 애한테 왜 그러냐? 넌 쓸데없이 시비 좀 걸지 마. 진욱이가 머리 잘 쓴 거지.”
관객들이 봤다면 논란이 될 만한, 아니 불화가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앞으로 유지될 그룹이 아니니 같은 팀이라는 의식조차 사라져 버린 거겠지.
김진욱은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조만간 숙소를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뭐? 아직 경연도 안 끝났는데?”
“숙소에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에요. 멤버들끼리 사이 안 좋은 게 문제가 아니라 대표님이 압박을 주셔서.”
김진욱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지혁 형은 가만히 듣고 있다 싱긋 웃었다.
“진욱이 그럼 경연 끝날 때까지만 버텨 봐. 그래도 무대 지원은 받아야 하니까.”
“그렇긴 한데…….”
“딱 적당한 타이밍에 기회가 왔네. 무대 끝나고 트루엔터랑 잘 끝낸 뒤에 YU로 들어와. 실장님이 너 좋게 봤다고 하시더라.”
손등에 관자놀이를 괸 채 덤덤히 상황을 말하던 김진욱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된 거예요?”
“어. 너 처음 연습할 때 영상이랑 무대 영상을 비교해 보시더니 배우는 게 빠르대. 랩, 노래 둘 다 잘해서 멀티로 이용해도 되겠다고 하셨어.”
“……감사합니다.”
“트루엔터랑 원만히 계약 정리하고 넘어와. 알겠지? 한솥밥 먹자.”
멤버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그동안 김진욱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기 때문에 순전히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난 김진욱이 저렇게 크게 웃는 거 처음 봤다. 민망한 듯 손으로 눈을 가리고 웃는데, 웃는 거 자체를 처음 보는 거 같다.
“아무튼 이제 걱정 말고 다음 경연이나 잘 준비해. 한시름 놨다고 대충 하지 말고. 너 어쨌든 데뷔해야 하니까 너 혼자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해.”
“네.”
“아, 그러고 보니 다들 곡 구했어요?”
뜬금없는 하윤 형의 말에 대화가 뚝 끊겼다.
“무슨 곡이요?”
내가 묻자 하윤 형은 오히려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 경연 준비 슬슬해야지.”
엥, 주제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준비를 한다는 거지?
영문 모르는 나와 김진욱, 유온세와는 다르게 지혁 형과 스트릿센터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회사랑 곡 섭외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괜찮은 곡 찾기 어렵더라.”
“맞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픽위업> 화제성 덕분에 들어오는 곡 수는 많다는 거?”
난 잠시 형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물었다.
“혹시 형들, 다음 경연 주제를 벌써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형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당연하지. 저번 경연 끝나고 바로 말해 줬잖아.”
헐…….
“……혹시 말 안 해 줬어?”
“네에…….”
말문이 막힌 나 대신 온세가 대답했다.
매니저 형이 대형 기획사들이랑 차별한다며 매일같이 열 받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경연 주제를 미리 알려 주고 준비할 수 있게 해 주니 그만큼 퀄리티가 좋을 수밖에 없지.
매번 쫓기든 기획하고 준비하던 우리와는 매우 비교되는 일정이었다.
형들은 다소 황당해 보이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머쓱하게 말했다.
“말하면 안 될 걸 말한 것 같은데.”
“이런 건 공평해야 하는데. 우리한테만 알려 주는 건지 몰랐어.”
지혁 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알았으면 진즉에 알려 줬을 텐데. 다음 경연 주제, 그룹 오리지널 곡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