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데뷔 (24)
데뷔 5주 차, 이제 슬슬 무대에도 익숙해진 터라 무대를 앞두고 타 가수의 무대를 볼 여유도 생겼다.
대기실에 배치된 TV에서는 스트릿센터가 굿바이 무대를 펼치고 있었다.
“와, 저 형들 마지막 무대라고 이것저것 준비 많이 했네. 팬들 진짜 되게 좋아하겠다.”
이진성이 말했다. 스트릿센터는 한 명 한 명 자신의 파트를 부르며 장미꽃 던지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게. 우리도 다음 주가 마지막인데 뭐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헐! 형! 우리도!”
내가 말하자 진성이는 방방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래, 1위를 하든지 말든지,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 겸 이벤트는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진성이 좋은 아이디어 있어?”
메이크업을 마친 주한 형이 다가와 진성이 옆에 앉았다.
“으음, 전 아직? 한번 생각해 볼게요.”
“현우랑 다른 멤버들도 마지막 무대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말해. 뭐라도 하자, 우리도.”
“네!”
그때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윤찬이의 머리를 말아 주며 말했다.
“누나도 의견 내도 돼?”
“좋죠. 좋은 의견 있어요?”
주한 형의 물음에 누나가 씨익 웃었다. 저 누나 예전에도 저 미소를 지으며 어른 차차 의상 던져두고 간 적 있다.
“너희 팬들이 가끔 나한테 디엠 보내거든.”
“우리 팬들이요? 뭐라고요?”
“너희 하네스 입혀 달라고.”
“……형, 하네스가 뭐야?”
이진성이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나는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주한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으로 하네스를 검색해 보았다.
“강아지 가슴 줄이라는데?”
“아이고, 녀석들아. 그거 그렇게 검색하는 거 아니야. 잠깐만.”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아이론을 내려놓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한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이돌 하네스’라고 검색한 화면엔 검은 가죽끈을 둘러맨 아이돌 사진들이 떠 있었다.
“……이게 하네스예요?”
“응. 섹시하지?”
이거 다른 가수들이 무대에 착용하고 나오는 걸 자주 보긴 했다.
“팬들이 또 이런 거 입히면 되게 좋아하거든.”
누나는 우리에게 내밀었던 휴대폰을 쏙 치우고 매니저 형에게 다가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인현 오빠, 다음 주 의상 이걸로 가도 돼?”
“좋지!”
매니저 형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의상이 저걸로 정해져 있었던 거 아닌가? 딱히 이벤트나 우리 의견은 상관없었던 것 같다.
주한 형은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말했다.
“저건 누나 이벤트로 냅 두고 우린 따로 다른 거 생각해 보자.”
“근데 형들, 지금은 마지막 무대보다 1위 공약부터 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오늘따라 복슬복슬해진 머리를 매만지며 윤찬이가 말했다.
“아…… 맞다.”
멤버들은 일제히 시무룩해졌다.
“1위 공약 매번 생각하는 것도 민망하긴 해.”
고유준이 말했다.
우리가 첫 데뷔부터 1위 후보에 들었으니까 지금까지 매번 1위 공약을 발표하긴 했다.
프리 허그부터 맨발 앙코르까지 공약이란 공약은 다 했는데 한 번도 1위를 한 적이 없어 전부 무산되었다.
매번 실낱같은 희망으로 열심히 짜낸 공약은 시행되지도 않고 버려지니 이제 슬슬 정하는 것조차 고문으로 느껴지던 차였다.
탄식하는 멤버들을 보던 주한 형은 힘없이 픽 웃었다.
“그래도 챌린지 반응 되게 좋았고 우리가 부족한 건 글로벌 투표뿐이었으니까 이번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주한 형 말이 맞아.”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반영이 안 됐을 수도 있지만 해외 K-POP 팬들도 <퍼레이드> 댄스 챌린지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매번 기대하고 미끄러지긴 했어도.
“그래, 이번에는 진짜 될 수도 있어. 뭐 할까?”
고유준이 분위기를 전환하듯 말했다.
그제야 멤버들이 1위 공약에 대한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요?”
“그거 첫 주 공약.”
“사투리 버전은…… 저번 주였구나.”
1위 못했는데 공약은 참 많이도 했다. 난 다시금 씁쓸함을 느끼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공약으로 내놓은 적 없으되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게 뭘까.
<크로노스 히스토리>나 <플라잉맨>도 그랬고, 팬들은 예전부터 우리가 망가지는 모습을 참 좋아했는데.
그 순간, 문득 <플라잉맨>에서 뽀글 머리 가발을 썼던 것이 생각났다. 뽀글 머리 가발에서 떠오른 뜬금없는 아이디어.
“파트 바꿔 부르기. 어때?”
“……콜!”
진성이가 벌떡 일어서며 콜을 외쳤다.
“팬들은 우리 망가지는 모습 되게 좋아하잖아.”
왜 갑자기 뽀글 머리에서 파트 바꿔 부르기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나 그거나 웃기려는 의도는 같으니까.
주한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로 반대되는 이미지 멤버 파트로 가자고.”
주한 형이 각 멤버의 파트를 지정해 주었다.
고유준이랑 윤찬이가 제일 극명히 갈리는 이미지, 목소리로 두 사람의 파트가 바뀌었고 나는 랩이 있는 진성이 파트를, 주한 형은 고음이 많아 음 이탈 날 것이 뻔한 내 파트를, 진성이는 감정 가득 내레이션 부분이 있는 주한 형 파트를 받았다.
“이거 좋다! 이건 공약 꼭 할 수 있었음 좋겠는데? 제대로 웃기겠다, 진짜.”
이진성이 흥분을 가득 안고 말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웃기는 데 진심인 그룹이 되었던가. 주한 형도, 나도, 박윤찬도, 심지어 이진성까지 분명 차차를 하기 전까진 개그에 욕심 없던 인간들이었는데.
“크로노스 무대로 이동하실게요!”
“네!”
방송 스태프가 대기실로 들어와 우리 차례가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1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고.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일단 <크로노스 히스토리> 벌칙 의상은 챙겨 왔어. 혹시나 1위 하면 윤찬이 무대 뒤로 달려와.”
매니저 형이 우릴 따라오며 말했다.
우린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MC석으로 향했다.
잠깐의 인터뷰와 1위 공약을 말하고 이동한 무대 뒤.
주한 형이 손을 내밀자 그 위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손이 올라갔다.
“우리.”
“잘하자!”
“어이!”
구호를 외침과 동시에 우리가 1위 후보임을 알리는 영상이 올라가고 MC가 크로노스를 소개했다.
“크로노스, 무대 위로 올라가실게요!”
나는 무대 위로 향했다.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우앗! 뭔가 함성 소리 커진 것 같지 않아?”
이진성이 날 돌아보며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커진 것 같아.”
확실히 저번 주 음방을 돌 때보다 고리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제대로 느껴졌다.
일주일 새 유입이 많이 늘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금방 체감될 줄이야.
신나서 손을 흔드는 진성이를 따라 고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자세를 잡았다.
“정말! 이분들이라면 하루 씨가 푹 빠질 만하죠! 하루 씨 쓰러지기 전에 얼른 무대 시작해야겠어요! 그럼 크로노스분들의 <퍼레이드>! 함께 보시죠!”
무대가 암전되고 잠시 후 뮤직비디오와 같은 파스텔 톤 조명이 들어왔다.
<퍼레이드>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매번 1위를 목전에 두고 미끄러지며 기대는 쉽게 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어차피 댄스 챌린지 여파가 아직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거고, 아주 조금, 이번 주는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또 미끄러질까 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우리가 댄스 챌린지로 화제가 되긴 했어도 오늘은 스트릿센터의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니까.
스트릿센터의 팬들도 이 악물고 총공에 나섰을 것이다.
1위 발표를 위해 다시 올라온 무대.
긴장한 우리는 또 고배를 마실까 걱정하는, 마치 가시방석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이번 주 <뮤직케이스> 영광의 1위는 누가 될지, 점수 보여 주세요!”
그러나 크로노스와 고리들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디지털 음원 점수
크로노스 4121
스트릿센터 3587
글로벌 팬 투표
크로노스 670
스트릿센터 1000
방송 점수
크로노스 1717
스트릿센터 1980
음반 점수
크로노스 4543
스트릿센터 3966
“이번 주 <뮤직케이스> 1위의 주인공은!”
빠르게 올라가는 점수.
평소와 같이 비등비등한 숫자에 계산하기를 포기하고 결과만을 기다릴 때.
“……잠시만.”
조용히 옆에 서 있던 주한 형이 말을 더듬으며 내 팔을 잡아 왔다.
난 주한 형을 돌아보았다.
형의 놀란 표정을 보는 순간, 설마,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저 빠르게 올라가는 총점수의 화면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1위가.
총점
크로노스 11051
스트릿센터 10533
드디어 역전되었다.
“크로노스 1위! 축하드립니다!”
큰 폭죽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종이꽃이 떨어져 내렸다.
팬들의 열띤 함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린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리액션도 취하지 못했다.
<픽위업> 때는 예상이라도 했지, 이건…….
“크로노스 축하드립니다! 트로피 받아 주세요.”
한 달간 1위 후보에만 익숙해진 자들은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주한 형이 아까 전 잡았던 내 팔을 고스란히 붙잡은 채 화면만 보고 있자 결국 MC는 주한 형의 손에 강제로 트로피를 들려 주고 진행을 마무리했다.
“하하, 크로노스분들이 첫 1위라서 많이 놀라신 듯해요. 그럼 크로노스 여러분 앙코르 무대 준비해 주시고요. 매주 일요일 여러분과 함께하는 <뮤직케이스>! 다음 주도 쟁쟁한 라인업과 함께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생방송 <뮤직케이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출연진이 무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MC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서 있던 스트릿센터가 다가와 우리의 첫 1위를 축하해 주었다.
“1위 축하한다! 사실 너네 1위 할 줄 알았어.”
우정 형이 내 등을 퍽퍽 때리며 격하게 말했다.
데뷔곡 마지막 활동의 1위를 못 한 탓에 조금 아쉬운 듯 보였지만 우정 형은 진심으로 우리를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난 축하해 주러 온 우정 형의 아픈 등 타작에도 불구하고 트로피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울어?”
“……아니거든요.”
“울지 말고. 너희 요즘 뜨겁더라. 우리 활동 끝났으니까 이번 주 내로 우리도 챌린지 올릴 거야. 기다려. 아무튼 축하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정 형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등을 툭 치고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정말로 눈물 나지 않았다. 정말로.
그냥 믿기지 않아서 굳은 채, 주한 형이 들고 있는 트로피를 줄곧 쳐다보고 있었을 뿐.
그러나 주한 형과 눈이 마주치고 주한 형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트로피를 넘겨줬을 때.
고유준이 ‘수고했다’라며 내 어깨를 끌어 다섯 명이 한가운데에서 모였을 때.
팬들의 함성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박윤찬, 이진성의 훌쩍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퍼레이드>의 곡이 흘러나왔을 때 결국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앙코르 무대 해야 하는데. 아니면 소감이라도 말해야 할 텐데.
“잘했어. 정말 잘했어.”
우린 가운데 모여 어깨동무를 한 채 한참이나 있었다.
“고마워.”
주한 형은 울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멤버들은 곡이 끝날 때까지 울면서 이대로 있을 기세였다. 결국 주한 형이 먼저 어깨동무를 풀고 떨어졌다.
“큰일 났다. 파트 바꾸기 해야 하는데…….”
고유준이 중얼거렸다.
우리 팬들은 첫 1위에 감격해 공약 따위 상관없어진 듯하지만 기껏 공약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박윤찬, 이진성, 나까지 우는 바람에 도저히 시작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크로노스 히스토리> 틴타랜드 편에서 걸린 박윤찬의 벌칙 의상 또한 매니저 형이 무대 뒤에서 오열하고 있는지 이행되지 못했다.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멤버도 울고 팬도 울고 매니저 형도 울며 크로노스의 첫 1위 앙코르는 끝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