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블루 룸 파티> (6)
크로노스가 후속곡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음원 차트 1위를 했으니 내외적으로 축제가 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활동과 동시에 소화할 많은 스케줄들이 잡혔고 그러니 당연히 크로노스와 YMM의 의욕도 높아졌다.
“<뮤직케이스> 첫 방 끝나고 라디오 스케줄 잡혔다.”
“어디요?”
“<레나의 뜨거운 저녁 라디오>. 많이 들어 봤지?”
<레나의 뜨거운 저녁 라디오(레뜨라)>. 들어 보다마다. 일명 신인 가수 기회의 장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다.
인기 가수라면 신곡을 낼 때마다 필수로 거쳐 가는 라디오 프로그램. 그러나 어지간히 화제성과 인기가 있지 않으면 섭외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신인 가수들은 레뜨라로 객관적인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섭외도 잘 안 오는 라디오를 왜 기회의 장이라고 부르느냐.
그건 레뜨라에서 제공하는 분량과 너튜브 클립 영상 때문이다.
레뜨라는 고심하고 고심해서 출연자를 섭외하는 만큼 출연진을 극진히 모시기로 유명하다.
무조건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하며, 출연자에게 맞는 코너를 회차마다 따로 만든다.
그러곤 클립 영상을 뽑아 너튜브 조회 수를 쏠쏠히 당겨 주니 신인뿐만 아니라 기성 가수 입장에서도 가성비 갑 라디오일 수밖에.
“일단 크로노스는 <블루 룸 파티>, <퍼레이드> 라이브 하기로 했고 현우, 유준이, 윤찬이.”
“네?”
“기획 코너로 세 사람까지 솔로 라이브 시켜 준다고 하거든? 너희 셋으로 갈 예정이니까 커버할 곡 정해 놔.”
“……네!”
대상 가수 레나의 라이브답게 실력 좋은 아이돌이 나오면 언제나 진행하는 코너가 있다.
‘오늘만 라이브’라고, 출연한 그룹의 보컬 담당 멤버들이 커버곡을 부를 수 있는 코너.
시간상 모든 멤버들이 라이브 할 수는 없지만 인기의 척도에 따라 분량이 늘어나는 걸 생각하면 크로노스는 세 명이나 받았으니 굉장히 대우를 잘 받은 격이다.
“주한이랑 진성이 분량도 많이 챙겨 준다고 하니까 두 사람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고.”
“에이, 별로 안 섭섭해요, 전.”
주한 형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음원 차트 1위 작곡가 강주한.
목돈도 들어올 예정이겠다, 재능 홍보도 했겠다.
주한 형은 분량과 상관없이 지금 누구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라이브에 자신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분량 잘 챙겨 주신다고 하니 오히려 감사.”
진성이도 나름 납득한 것 같았고.
<블루 룸 파티>.
시작이 매우 좋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데뷔 신고식의 마무리, 후속곡 활동이 시작되었다.
* * *
언제나 생각하지만 기회는 정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니 언제든 잡을 수 있도록 제때 준비를 해 뒀어야 하는 법인데…….
아쉽게도 이번 기회는 조금 타이밍이 나쁘게 다가온 모양이다.
“잘 지냈어요, 형? 되게 늦으셨네.”
“늦는다고 말했잖아.”
뻔뻔스러운 말을 하며 내 맞은편에 앉는 상대에게 내 감정을 모두 담아 노려보았다.
그러자 상대는 날 똑같이 노려보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가운뎃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YU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카페.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을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김진욱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네가 불러 놓고 노려보는 건 무슨 심보인데?”
“불러서 온다고 했으면 시간 맞춰서 와야 할 거 아니에요. 내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내가 뚱하게 대답하자 김진욱이 날 아래위로 훑어보곤 비아냥거렸다.
“한가해 보이는데?”
“모르시나 본데 저희 후속곡 활동 시작했거든요? 오늘만 쉬는 거예요.”
사실 일주일 쉬지만.
끝나지 않는 말다툼에 김진욱은 결국 입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왜 불렀는데? 시비 털려고 부른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렇다. 내가 설마 김진욱과 싸우기 위해 지혁 형에게 전화해 김진욱의 번호를 알아내어 약속까지 잡는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간의 정을 봐서 좀 도와주세요.”
랩 하면 생각나는 놈이 김진욱밖에 없어서 부른 것이다.
크로노스에서 그나마 랩 하면 고유준, 이진성인데, 고유준은 라디오 커버곡 연습한다고 바쁘고 이진성은 작사 능력이 없으니까.
내 공손한 부탁에 김진욱은 있는 대로 인상을 쓰더니 혀를 찼다.
“싫어.”
“……와, 진짜.”
재수 없다.
“내가 경연에서 허수아비같이 춤추는 형을 얼마나 도와줬는데?”
“어쩌라고.”
“아, 커피 사 준다고요.”
“나 간다.”
김진욱이 미련 없이 일어났다. 저, 저 싸가지없는 새키!
“아이 씨, 근데 왜 처음부터 반말이세요?”
“너도 까든가, 그럼.”
“어, 진욱아!”
돌아가려던 김진욱이 멈칫, 날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유치한 거 안다.
근데 유치해도 저 자식 다시 의자에 앉히기는 해야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랩 잘 쓸 거 같아서 찾아온 거라고.”
내가 씩씩거리며 말하자 그제야 김진욱이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랩?”
라디오 솔로 라이브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주한 형이 선물해 준 곡이었다.
도 PD님과 작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어느 정도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쓰기는 했다.
하지만 딱 한 구간. 아무리 생각해도 문외한인 파트가 있었다.
곡의 도중 일렉 기타 반주와 함께 갑자기 가파르게 변주되는 부분.
주한 형에게 의도는 묻지 않았지만 딱 봐도 노래보단 랩이 들어가기에 알맞은 부분이었다.
노래 가사는 도 PD님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랩은 박자를 쪼개어 부르는 것이라 내가 손쓸 수 없었다.
우리 그룹에서 가사를 써 본 적 있던 고유준도 랩 가사는 아직 힘들 것이고 솔로 라이브도 준비해야 하니 부탁하긴 미안한 상황.
최대한 라디오에서 라이브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끙끙 앓다 결국 김진욱에게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김진욱은 귀찮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랩이 왜?”
이제야 조금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이번에 솔로곡 하나를 받았는데요. 랩 파트, 형이 써 줬으면 좋겠다고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잘하니까.”
내 제안에 김진욱은 말이 없었다.
지혁 형에게 듣기론 YU로 이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김진욱이 그룹 데뷔를 줄곧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첫 그룹 상태가 엉망이기도 했고, 솔로로 랩 하는 게 천직이 될 사람한테 단체 생활은 그다지 맞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데뷔하지 않는 연습생에게 곡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김진욱의 답답함도 점점 심해지고 있을 테지.
그러니 이 제안은 나한테도 김진욱에게도 좋은 일이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해 줘요. D팀이잖아요.”
나는 좋은 래퍼의 랩을 받을 수 있고 김진욱은 오리지널곡에 본인 목소리를 담을 수 있으니까.
김진욱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대신 난 딱 한 번 녹음만 해. 너랑 같이 라이브 하는 일은 없어.”
“어우, 당연하죠. 저도 형이랑 라이브는 좀. 감사해요. 그래서 곡 내용이 뭐냐 하면-.”
난 김진욱에게 이 곡의 내용과 미완성된 가사를 넘겨주었다. 김진욱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더니 가사를 보는 모습은 나름 진지했다.
“이런 내용인데 형은 형이 하고 싶은 대로 좀 써 주세요. 공개할 거니까 욕은 쓰지 말고.”
내가 말하자 김진욱은 인상을 찌푸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아아, 바보 아닌데 펜션에서 담배 피우고 그랬구나?”
“나 그냥 가?”
“개과천선하신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요.”
김진욱은 가사를 휴대폰으로 찍고 일어났다.
“아무튼 MR 나한테 메일로 보내. 녹음해서 보내 줄 테니까.”
“넵.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네?”
김진욱은 자신의 휴대폰을 주물럭거리며 머뭇거렸다. 내가 안 가고 뭐 하냐는 뜻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말했다.
“너 나한테 전화한 번호, 네 번호냐?”
“아닌데요. 크로노스 공용 폰요.”
김진욱은 어색한 동작으로 나에게 폰을 내밀었다.
“번호 내놔. 개인 휴대폰 몰래 가지고 있잖아.”
“헐, 네. 할 말 있으면 그냥 크로노스 폰으로 해도 되는데.”
난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진욱의 휴대폰을 받아 번호를 찍고 건넸다.
“아무튼 작업 잘 부탁드릴게요. 작업하는 동안 편하게 연락해요, 형.”
김진욱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사라졌다.
어우, 진짜 아마 김진욱이랑은 평생이 걸려도 못 친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네가 왜 여기에 있니?’ 정도의 눈길을 받으며 YU 사옥에서 나와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언제쯤 완성되려나 김진욱이 녹음본 보낼 일정을 가늠하며 나는 나대로 솔로곡 가사를 완성시키고 있을 때쯤이었다.
[1차. M4A]
아주 간단한 제목으로 날아온 음성 파일엔 내가 쓴 가사와 이 곡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한, 아주 완벽한 가사의 랩이 들어가 있었다.
이런 걸 천재라고 하는구나.
아까 대충 설렁설렁 듣고 만다고 생각했는데 안 듣는 척 제대로 다 들었던 모양이다.
난 감격스러운 마음을 담아 김진욱에게 기프티콘을 보냈다.
심지어 가사 쓰는 실력도 되게 좋아진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은 대형 기획사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아, 이게 아니고.
오히려 내가 김진욱이 보낸 랩 가사 덕분에 가사를 쓰는 데 감을 잡았다고 할까.
지금까지 헤매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빠르게 가사를 완성시켰다.
* * *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가던 내 첫 솔로곡.
주한 형에게 가장 먼저 녹음한 곡을 들려주자 주한 형은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를 추켜들었고, 두 번째로 들은 도 PD님 또한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처음치고 매우 잘했다.’
김진욱의 랩이야 그 자식은 천재니까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급작스럽게 쓰긴 했지만 도 PD님의 칭찬을 받으며 무사히 곡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회사 작업실에서 도 PD님과 곡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김 실장님이 들어와 솔로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주한이가 너한테 선물했다는 곡이야?”
“네.”
“크으…… 주한이도 주한이고 진욱인가 하는 YU 연습생도 잘했지만 우리 현우,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공식 발매도 안 하는 곡이라 매출도 없을 건데 김 실장님은 도대체 왜 저렇게 신난 거지?
거기다 평소엔 잘 들어오지 않던 작업실까지 굳이 들어오면서 말이다.
김 실장의 행동이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난 김 실장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 버렸다.
“이거 팬들이 되게 좋아하겠다, 그렇지? 주한이가 선물한 의미 있는 곡이기도 하고 크로노스 첫 솔로곡인데 신경 좀 써 보자.”
“어떤 신경요?”
“YU 연습생 공식적으로 섭외해. 이 곡 가지고 영상 하나 만들어서 너튜브에 공개하자고. 인기 좋으면 발매까지 밀어붙여 볼게.”
김진욱을 섭외를 해? 심지어 같이 영상을 만들어?
난 질색했지만, 김 실장님은 이미 계획한 일인 듯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김 실장님의 말을 듣고 있던 도 PD님은 처음으로 김 실장에게 웃어 주었다.
“김 실장님이 돈 쓰는 데 적극적인 건 처음 보네요. 우리 주한이 올해 저작권 부자 되겠어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