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136화 (136/475)

9)연말 무대 (5)

적어도 다섯 살은 차이 나는 귀여운 막내의 재롱에 결국 선배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현우 잘한다!”

“오오! 더! 더! 더!”

“흔들어! 흔들어!”

댄스 담당들만 모여서 그런가 유독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니, 난 사실 댄스 담당이 아니고 메인 보컬인데.

하지만 분명 처음만 해도 나 빼고 다 취객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나만 취객이 되어 연습실 한복판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선배들은 나를 둘러싸고 환호를 보내 주었다.

이거 아마, 아, 방영되면 반년 정도는 놀림감이 되겠지.

하지만 난 선배들이 원하는 대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댔다.

이미 친해진 그들 사이에 적절히 섞여 들어가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게 재롱 잘 부리는 예의 바른 후배가 되는 것 아니겠나.

이미 돌아가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 얌전함 브레이크는 부러졌다. 남은 건 저세상 텐션행 액셀뿐.

취객이 운전을 하면 뭐다? 음주 운전이다.

“까르르 까르르 신났구만? 어?”

내가 열심히 선배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을 때, 서지혜 선생님과 저스틴, 그리고 저스틴의 통역가가 함께 연습실로 들어왔다.

“막내 괴롭히고 있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요! 아니에요!”

이때 숨어 있던 카메라앵글이 바뀌어 나를 클로즈업으로 잡을 거라는 걸 예상한 난 다시 박윤찬에게 빙의해 쑥스럽고 민망하면서 세상 착한 머쓱함을 보였다.

이 얼마나 귀여운 막내인가!

자화자찬의 절정을 이뤘다.

그렇게 나는 멤버들의 경계를 서서히 풀어낼 예정이었다.

“너희들 안무 연습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저스틴이 담당하게 될 거야. 말은 통하지 않아도 춤 연습엔 문제없어. 알지? 열심히 해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 봅시다.”

“네!”

서지혜 선생님은 멤버들을 북돋아 주고 연습실을 나섰다.

저스틴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통역가가 저스틴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우선 몸풀기 시작할까요?”

“네!”

유독 유연성이 강조된 춤. 나뿐만 아니라 여기 뽑힌 나머지 멤버들도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몸풀기에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한다.

처음에는 간단히 손목, 발목만 돌리던 사람들이 나중에 가선 다리를 찢고 허리를 비틀었다.

난 준비부터 비장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소박하게 무릎을 돌렸다.

“현우 왜 그래? 형이 몸 푸는 거 도와줄까?”

“예?”

나 혼자 적당히 몸을 풀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이동우 선배가 다가와 내 상체를 꾹꾹 눌러 댔다.

“으악!”

무릎에 올라가 있던 내 손은 그대로 미끄러졌고 다리는 펴진 채 상체가 조금 더 내려갔다.

오금이 확 당겨 오기 시작했다.

“선배님…… 서, 선배앤님…….”

“엥? 너 이거도 힘들어?”

이동우는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럴 만하다. 보통 이 파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른 댄스 멤버들보다 훨씬 유연한 부류가 많기 때문이다.

“아악! 악!”

내 비명소리에 기어코 다른 선배들과 저스틴의 시선 또한 나에게 쏟아졌다.

“이동우, 막내 괴롭히는 거 아니지?”

“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 친구 되게 뻣뻣해.”

“뻣뻣해? 방송에선 되게 유연하게 잘 추던데. 특이하네.”

역시 방송물 꽤나 먹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몸을 풀다가도 분량 쌓을 거리―막내 괴롭히기―가 생기니 금방 몰려들어 토크를 이어 나갔다.

“선배님, 저 좀…… 일어나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난 얘 경연 프로에서 보고 틀림없이 발레 전공한 애라고 생각했어.”

“현우야 뻣뻣한 몸, 일주일 만에 유연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형들이 도와줄까?”

“서, 선배님.”

다 좋으니까 일단 장난삼아 내 등에 올린 손들 좀 치워 주라.

오금이 당겨서 울 것 같다.

결국 난 무너져 내렸다.

쫙 폈던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자 곧 나를 두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 연습생 시절 때도 이랬지. 형들에게 어지간히 괴롭힘당했었다.

그래, 크로노스가 유한 사람들만 모인 거였다.

그래, 이게 보통이지

멤버들 보고 싶다.

크로노스에서 괴롭힘당하고 놀림당하는 게 이진성이라면 이 팀에선 나다.

난 어느샌가 내 주위로 모인 선배님들과 함께 고통스러운 몸풀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어났다.

연습실 구석 의자에 발을 올린 채 몸을 풀던 저스틴은 단체로 일어나는 멤버들의 모습에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습,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거리를 벌리고 서 주세요.”

통역가의 말에 다들 거리를 벌렸다.

아직 대형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어떻게 서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장 안무가 주어졌다.

확실히 강제적으로라도 제대로 몸을 푸니 따라 하기 쉬워진 것도 같고.

“오른쪽 팔을 하늘 위로 크게 둘러 내려오면서 마찬가지로 오른쪽 다리 엣지, 뒤로 차 주며 반동을 줍니다.”

“반동을 줘서요? 그대로 한 바퀴 돌면 된다는 말이에요?”

또 다른 멤버 전화 선배가 묻자 통역가는 저스틴과 대화를 나누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바퀴 돌면 된다고 합니다.”

통역 소통 오류는 해외 안무가를 초청하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는 그만의 말투와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 나가고 춤에 대해 잘 모르는 통역가는 가감 없이 말하는 대로만 전달해 주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 부분은 재차 물어 가며 익히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말없이 오른팔을 크게 두르며 한 바퀴 돌자 저스틴이 놓치지 않고 ‘오케이!’와 ‘롸잇!’을 외치며 엄지를 추켜들어 주었다.

“점프 후 내려오면서 양손을 가슴께에 소중히 모은 후 허리를 숙입니다. 그대로 다섯 걸음 뒤로.”

우린 저스틴의 동작과 통역가의 설명을 들으며 그럭저럭 연습을 잘 치렀다.

그러다 보니 역시나 내로라하는 댄스 멤버들 사이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내는 멤버들이 생겼다.

우선 진짜 현대무용 전공인 올더타임의 유전화.

섹시함을 타고났다고 하는 블루페이퍼의 레인.

그리고 저스틴의 말로는 표정 연기와 묵직하고 우아한 춤선이 최고라는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대형의 앞에 서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대형은 결정되었으니 다음은 누가 가운데에서 시작할 거냐를 정해야 하는데요. 물론 여러분 모두 한 번씩은 가운데에서 춤을 출 겁니다. 하지만 시작은 분위기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건 차근차근 결정하도록 할까요?”

통역가가 저스틴의 말을 전하자 선배들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막내가 가운데 해야지.”

“……예?”

“막내로 결정!”

유전화와 레인이 말하자 뒤에 서 있던 이동우와 조민성 또한 흔쾌히 수긍하며 환호했다.

너무 가볍게 가운데 타이틀을 넘겨주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를 위해 그들의 경계를 풀고 미친 재롱을 부려 댔던 거였다.

서로 분량을 쌓으려고 앞다투어 센터 경쟁을 하던 <픽위업> 연습생들과는 경험과 인기부터 다르다.

그들은 딱히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욕심내지 않아도 무대에 설 기회가 많고 토크만 잘하면 방송 분량도 쌓을 능력이 된다.

“어차피 돌아가면서 가운데 서는데 시작은 우리 막내가 기회 한번 잡아 봐.”

그러니 이런 비중이 약간 더 많은 자리 정도는 아직 방송 분량 못 쌓을 귀여운 후배한테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그림이 좋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터다.

“어 정……말요? 제가 그래도 돼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회 제대로 잡아서 어필을 확실히 해야지. 다짐하며 기쁨을 주체 못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선배들은 껄껄 허허 웃으며 열심히 하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확실히 아직 선배들 눈치를 봐야 할 신인은 제 실력밖에 분량 뽑을 곳이 없기 때문에 난 헤드뱅잉을 해서라도 좋은 대형을 차지해야만 했었다.

가운데에 서 있던 유전화는 나를 끌어당겨 센터에 두고 자신은 사이드로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들 사이에 덩그러니 껴 있는 게 어색해 입술을 잘근거리며 거울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곧 연습이 재개되었다.

“가장 먼저 현우 씨 독무를 시작하실 거예요. 혼자 등장하실 거고요. 그리고 전화 씨, 레인 씨, 동우 씨, 민성 씨 순으로 바톤을 이어받을 겁니다.”

“바톤을 이어받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한 명씩 들어온다?”

레인의 질문에 통역가가 저스틴과 대화를 나눈 뒤 말했다.

“아니요. 전부 독무요. 무대가 굉장히 커요. 각 구역마다 한 명씩 배치될 거고요. 현우 씨 독무를 시작으로 순서대로 독무를 이어 나갈 겁니다.”

계획은 이러했다.

나를 시작으로 한 명씩 독무를 선보인다. 이후 마지막, 조민성이 독무를 추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은 조민성이 있는 메인 스테이지로 향한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단체 안무가 시작, 모든 멤버가 한 번씩 중심을 맡았을 때 두 번째 파트로 전환.

두 번째 파트 멤버들에 비해 인원수가 현저히 적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대 구성이었다.

저스틴이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말했다. 통역가가 그의 말을 전했다.

“우리의 라이벌은 서로가 아닙니다. 라이벌은 두 번째 파트의 멤버들입니다. 첫 번째 파트는 모두가 협심해서 예술적인 무대를 만들어 봅시다.”

“넵!”

“우선 서현우 씨, 독무는 보내 드린 영상의 0초부터 40초까지입니다.”

“어쩐지 몇몇 구간 갑자기 느낌이 달라진다 했어.”

그리고 저스틴이 지정해 준 시간대대로 독무 연습을 시작했다.

단체 연습이 아닌 혼자만의 무대. 독무를 연습하다 보면 단체 연습보다 훨씬 진하게 나만의 색이 춤에 묻어 나온다.

“오오, 막내 멋진데!”

“경연 때부터 알았어. 쟤 진짜 잘해.”

춤을 추는 동안 선배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통역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서현우 씨의 컨셉은 광기. 표정 연기 확실히 해 주세요. 서투름은 없어야 합니다.”

“네!”

노래는 부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거의 몸을 뒤집어 꺾고 헤드뱅잉 못지않게 머리를 흔들어 대는데 실제 무대가 라이브였다면 크로노스의 무대를 하기도 전에 체력이 떨어져 버렸을 거다.

“조금 유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힘을 빼면 안 됩니다. 서현우 씨 특유의 묵직함을 살리세요.”

꽤 많은 주문이 들어왔지만 연습해 왔던 게 어디 가지는 않는다. 저스틴의 말대로 표정 연기, 그리고 춤의 기복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40초가 너무도 길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All right! That's right!”

저스틴의 만족한 박수 세례와 함께 내 파트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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