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연말 무대 (31)
<졸업합니다> 팀에서 건넨 질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고유준과는 어떤 사이인지, 언제부터 친구였고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같은 낯간지러운 질문이나 학창 시절 앉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성적은 어디쯤이었는지, 특별한 추억이나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이 있는지 등등 가볍게 대답할 수 있을 만한 것들뿐이었다.
“착하고 말도 잘하네.”
“일반인 출연진은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까 잘 부탁드려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가님은 설명이 끝난 파일을 덮어 자신의 쪽으로 가져갔다.
“더 질문할 건?”
의례적인 작가님의 물음에 손을 들었다.
“현우 씨?”
“네, 그 혹시…… 일반인 출연자는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아!”
작가님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곧장 파악하곤 씨익 웃었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은 안 데려올 예정이에요. 정학이나 전과 기록 있거나 학교 폭력 등등의 일을 일으킨 사람들은 사전에 거를 겁니다. 그런 친구들한텐 딱히 재미 주고 싶지도 않고.”
“네…….”
“다만 성격은 다양할 거예요. 험하게 살아서 말투가 거칠 수도 있고 소심하게 있거나 장난이 심하거나 등등. 학교에 있을 법한 친구들로 뽑을 테지만 사전 조사 확실히 할 테니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내가 곧장 인사하자 PD님이 바로 자리를 정리했다.
매니저 형을 따라 미팅 현장을 나오는 동안 난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과거의 이 시기엔 화상과 사고에 대한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데뷔해 연말 무대에 서는 멤버들을 보는 것조차, 아니, 어떤 방송이든 TV를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현실을 인정하고 트레이너 생활을 시작하며 연예계 소식을 숙제처럼 알기 시작하던 때가 딱 이 방송 <졸업합니다>가 끝나고 여운 몰이를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이 방송은 능력 있는 제작진과 매력 넘치는 출연진―당시엔 크로노스가 아니었다. 전 매니저 형은 이 스케줄을 가져오지 않았었다― 등으로 굉장한 시청률을 내며 성공했다.
그렇기에 일반인 출연진도 내가 트레이너를 시작했던 시점까지 근황이라든가 꽤 이슈몰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기억 속엔 그것뿐이 아니었던 것 같단 말이지.
“흐음…….”
뭐더라.
오래되기도 했고 뭣보다 트레이너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강박적으로 아이돌에 대한 소식이나 안무 영상만 찾아보던 시기라 이 예능 관련 기사를 제대로 읽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폭로’에 대한 부정적 기사였다.
물론 인기 많은 방송에 출연하는 건 좋고 이후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잘하면 타격은 없겠지만.
그러나 조심하는 게 좋겠지.
“서현우 너 요즘 왜 그러냐? 뭔 일 있어? 왜 맨날 멍하게 있어.”
고유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 등을 퍽 쳤다.
난 장난치듯 고유준을 밉지 않게 흘겼다.
“우리 유준이, 걱정된다는 말을 이렇게밖에 못하냐?”
고유준이 픽 웃으며 앞서갔다.
“걱정은 무슨.”
우린 곧장 크로노스 연습실로 향했다.
리더와 메인 댄서들의 짧은 회의에서 나온 의견은 결국 통과되었고 그 이후 차곡차곡 준비되어 가는 중이다.
곡만 바꾸고 서로의 무대에 서지 않기로 해서 리뉴얼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곡이 바뀌는 구간인 약 15초 정도 댄스 파트 연습을 위해 정기적으로 합동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리뉴얼과의 합동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어, 형 왔어요?”
연습실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네준 멤버는 윤찬이었다.
윤찬이가 인사를 건네자 다른 멤버들과 리뉴얼 선배들까지 우릴 쳐다보며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오셨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 뭐. 늦으려고 늦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휴식 시간이었어요.”
리더 은세 선배님이 말했다.
우린 가방을 내려놓고 연습실 구석 멤버들 사이에 꾸겨져 앉았다.
이제 공연까지 이틀 남은 시간.
잠깐의 휴식 시간도 누군가에겐 연습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리뉴얼의 래퍼 은지 선배님이 개인 합동 무대를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와 진짜 너무 멋있어요, 선배님.”
이진성은 은지 선배님에게 방해되지 않는 거리에 앉아 연달아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쟨 예전 <원스 어겐> 김진욱 랩을 듣고도 그렇게 좋아하더니.
자신은 댄서라고 단정 짓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랩에도 상당한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성이를 제하고도 리뉴얼과의 연습과 합동 무대는 꽤 이점이 많았다.
리뉴얼의 노래는 컴백하기만 하면 음원 차트에 올라가 있기 마련이라 자주 들을 수 있었는데, 가끔 랜덤으로 리뉴얼 선배들의 노래가 들렸을 때도 느꼈지만 직접 연습해 보니 확실히 리뉴얼과 크로노스의 곡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크로노스의 음악 범위가 넓어짐과 동시에 배울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새로운 느낌의 곡으로 연습해 본 주한 형의 작업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거나, 메인 보컬들의 역할이 중요한 리뉴얼의 곡들을 연습하며 나와 고유준의 보컬 실력이 미치도록 상승 중이라는 것 정도.
“야, 물 가져왔어.”
“어어, 고마워.”
연습 시간이 다가오자 고유준이 자연스럽게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다.
난 리뉴얼의 곡을 연습하면서 역대급으로 높은 고음을 득도하게 되었다.
처음 엘리시아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고음을 냈을 때 놀라 연습까지 멈춘 멤버들의 표정이란.
무슨 숨겼던 힘을 드러낸 비기 취급당한 느낌이라 꽤나 으쓱했다.
“연습 재개하겠습니다!”
소속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주한 형이 돌아와 연습 재개를 알렸다.
* * *
12월 31일.
공연 당일이자 한 해의 마지막 날.
이른 리허설로 반쯤 곯아떨어진 옆자리의 진성이를 흔들어 깨우며 리허설 영상을 모니터링했다.
우리의 고향 방송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넷의 연말 시상이니만큼 크로노스는 꽤 중요한 파트를 맡았다.
1부 오프닝은 크로노스와 리뉴얼의 합동 무대.
1부 엔딩은 크로노스 무대.
그 덕에 우린 포토존에 잠깐 서고 내려와 지금까지 긴장 속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중이다.
“현우야, 그거 알아?”
내 눈 밑에 붉은색 아이섀도를 발라 주던 누나가 물었다. 난 거울을 통해 누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뭘요?”
“너랑 유준이 듀엣 불렀던 거, SNS에서 장난 아니게 화제였어.”
“아, 매니저 형한테 듣기는 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어요.”
“수환 씨 SNS 잘 안 하시는데 그런 건 또 챙기시나 보네.”
듣기론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것>이 라이브된 이후 파랑새에 ‘크리스마스는_동갑내기의_것’이라는 실트가 떴다고 한다.
주한 형의 아이디어라 반응이 좋을 것을 예상하기도 했고 무대 연습 중이어서 아직 제대로 찾아보진 않았다.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누나.”
“응, 왜?”
“너무 많이 바르시는 거 같은데…….”
“엉?”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거울을 통해 내 눈 밑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니야! 이거 원래 이런 메이크업이야. 조금 유행 지나긴 했는데 숙취 메이크업이라고.”
“숙취 메이크업이요?”
“리뉴얼 <레드썬> 무대 보니까 전체적으로 몽롱하게 메이크업했더라고. 따라 하는 거지.”
내가 보기엔 좀 아파 보이는데 누나가 그렇다니 그렇겠지 뭐.
“으으…… 다음 컨셉은 캐주얼했음 좋겠다. 이번 컨셉 의상 너무 극헬이야.”
누나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더 말하기 뭣하기도 하다.
이번 의상은 검은 가죽 바지에 굉장히 헐렁한 검은 셔츠, 검은 끈 같은 초커, 엄청난 양의 팔찌였다.
“크로노스 준비 다 되셨죠?”
“네!”
스태프가 오프닝을 위해 대기실로 들어왔다.
크로노스 팀 스태프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난 모니터하던 매니저 형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오프닝 직전의 방송국 복도는 방송 시작 후 무대에 설 때보다 몇 배는 소란스럽다.
무대로 향할수록 잔뜩 들뜬 관객들의 목소리와 관객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리는 안내음이 들렸다.
그리고 무대 뒤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리뉴얼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크로노스 들어왔습니다!”
제작진 중 한 명이 무전기를 통해 우리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가왔다.
“5분 후 곧바로 시작이에요. 초반에 좀 웅성이겠지만 무대 시작하면 곧 괜찮아지니 너무 긴장 마시고 무대 하시면 되세요.”
“네!”
“암막 커튼 뒤로 이동하실게요.”
우린 매니저 형과 시선을 교환하고 암막 커튼 뒤로 향했다.
주한 형이 멤버들의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우선 현우, 움직여도 된다고 했지 아직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응.”
“여기서 또 다치면 컴백 밀리는 거 까먹지 말고. 다들 오늘은 정말 조심해서 무대 하자.”
“네!”
“유준이랑 현우 고음 파트 잘 처리하고 다른 멤버들도 라이브 신경 써. 다른 곳보다 마이크 소리 적나라한 거 리허설 때 느꼈지?”
“네!”
“좋아. 우리!”
“잘하자!”
“어이!”
오랜만에 버전 2가 아닌 오리지널 구호를 넣고 똑바로 섰다.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장에 일던 소란이 순식간에 함성으로 바뀌고 곧 암전되었다.
그리고 메인 무대의 커다란 화면 또한 검게 변했다.
제각각 무대를 하는 만큼 이번 합동 무대엔 크로노스도, 리뉴얼도 각자 컴백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시키기로 합의를 봤다.
우리의 스포일러는 바로 저거.
검은 화면에 세 개의 문장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주의 사항.
그를 무시하십시오.
“크로노스 들어가세요.”
커튼 앞에 서 있던 스태프가 작게 말하며 커튼을 걷어 주었다.
우린 댄서들과 함께 최대한 조용히 무대로 향했다.
새로운 도전, <레드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