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216화 (216/475)

10)㦡(즐거울 락) (52)

“우선 현우 씨부터.”

“저요? 어, 저는.”

토론회의 두 번째 주제 ‘강주한의 독재 체제, 이대로 괜찮은가?’의 첫 발언은 주한 형의 권한으로 내가 하게 되었다.

그에 반대 팀 차별하지 말라며 고유준과 이진성이 난리가 났지만 주한 형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내가 발언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주한 형의 독재,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오오, 왜죠?”

“……뭐, 왜 싫어요? 지금까지 주한 형이 리더로서 잘해 줬으니까 우리 크로노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건 모두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죠!”

이진성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나도 덩달아 일어나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주한 형 혼자 열심히 했기 때문이야!”

그러자 고유준이 손을 들었다.

“존경하는 주한 형님, 서현우가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왜? 좋은데? 현우의 말이 맞습니다. 전 찬성 팀 의견에 동의하겠습니다.”

“……저 사람들 선 넘네?”

고유준이 말하자 이진성이 일어난 상태로 손을 들었다.

“의견 있습니다. 사회자님이 한쪽을 편애하고 있습니다. 저쪽 팀에 주한 형 최애로 가득한데 멤버 바꿔도 되나요? 현우 형을 다시 데려오고 싶습니다.”

“기각.”

고유준이 또 손을 들었다.

“의견 있습니다. 서현우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뭐라고? 의견 있습니다. 숙소 변기 부순 거에 대해 고유준의 해명을 요청합니다.”

“저, 저기…… 여러분 화제가 바뀌고 있어요…….”

윤찬이의 말에 주한 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적당히 진흙탕에 굴러서 좋은데.”

“아…….”

“변기 이야기만 몇 번째야?”

“너 때문에 화장실 가려면 회사까지 가야 한다고!”

“헐, 너 화장실도 가? 아이돌이?”

“멱살 잡이 해라, 둘이.”

“혀, 형…….”

주한 형이 요청하길래 나와 고유준은 천천히 가까워져 서로 멱살을 잡았다. 꽤 익숙한 멱살의 그립감. 고 1 이후론 처음인가.

“한판 떠? 여기서?”

“안 다쳤다니까?”

“안 다쳤으면 됐어!”

나와 고유준은 동시에 멱살을 놓고 서로를 다독이며 헤어졌다.

“근데 나도 궁금하긴 해. 도대체 숙소 변기 왜 그렇게 된거야? 거기서 라스푸틴이라도 췄어?”

나와 고유준의 싸움을 보고 한층 진정된 진성이가 물었다. 도대체 그날 나와 진성이가 큐앱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한 형은 나와 진성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럼 잠시 주제에서 벗어나서 ‘숙소 변기를 어쩌다 부쉈는가?’에 대한 고유준 씨의 해명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우리 멤버들뿐만 아니고 고리분들도 다 같이 큐앱을 보셔서 되게 궁금해하실 거거든요.”

근데 사실 해명이라고 해도 별것 없을 거 알고 있다.

이삿짐 챙기다 그렇게 됐다고 했으니 선반에 샴푸 좀 편하게 챙기겠다고 변기에 올라갔다가 부순 거겠지.

“그게 저희가 곧 이사를 가잖아요. 그래서 이삿짐을 챙기고 있었거든요. 선반의 샴푸랑 수건 좀 편하게 챙기겠다고 변기 위에 올라갔는데-.”

역시.

“그때 주한 형이 갑자기 거실에 나와서 트로트를 부르길래.”

……뭐?

“신나서 위에 올라간 채로 리듬을 탔거든요.”

“……트로트를 왜 불러? 아무튼 그래서 깨진 거야?”

“아니 그때도 멀쩡했는데 그때 데리러 온 매니저 형이 휴대폰 카메라를 켜더니 주한 형한테 앵콜 요청을 하는 거야.”

……트로트…… 앙코르…….

“그래서 주한 형 앵콜 부를 때 변기 붙잡고 헤드 뱅잉하다가 깨졌어요.”

“……우리 멤버들 좀 이상한 거 같아.”

“그러게.”

나와 진성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한 형은 트로트 왜 부른 거야?”

그러자 주한 형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 작업물 날아간 거 너무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윤찬이가 힘들면 트로트라도 부르라길래.”

“윤찬 형까지?”

“하하…… 주한 형 너무 우울해하길래…….”

그때 주한 형이 큐 카드로 제 앞의 책상을 두들겼다.

“자 자, 이제 변기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찬성 팀 이야기 들었으니 다음은 반대 팀. 고유준 씨 의견 들어 보겠습니다.”

“네. 솔직히 여러분, 저희 지금까지 어떤 생활을 했습니까? 주한 형 작업할 때 우리 어땠어요? 맨날 수능 보는 고 3 있는 가정처럼, 어? 양말 신고 걷고 조용히 살고! 좋은 컴퓨터도 형 혼자 쓰고, 어? 이런 독재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난 픽 웃으며 나긋나긋 말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뭡니까? 크로노스 곡, 그리고 당신 수록곡 아닙니까? 그럼 ‘아이고, 감사합니다.’ 해야지? 거기다 이제 집에서 작업 잘 안 하잖아. 회사 작업실에서 하지.”

“……그건 맞지.”

고유준이 수긍하자 지켜보던 진성이가 손을 들었다.

“의견 있습니다. 작업할 때 조용히 해야 하는 건 그렇다 쳐요. 그런데 공부는 왜애! 왜 시키는 건데! 공부는 크로노스랑 전혀 상관없잖아!”

주한 형이 막대기로 진성이를 가리켰다.

“어허, 반말하지 마세요. 반말 경고입니다.”

“헐? 지금까지 다른 형아들은 다 반말로 싸웠는데 왜 나만?”

그때 윤찬이가 반쯤 손을 들었다.

“의견……있습니다. 주한 형이 진성이에게 공부시킨 건 진성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형이 동생의 미래에 조금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를 주기 위해 공부시키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지 않을까요? 진성이를 위해서잖아요. 진성이는 주한 형의 자상한 마음을 좀 더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챙겨 줘서 고맙긴 한데…….”

화제가 또 산으로 가고 있음을 느꼈으나 이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작진은 오히려 치고받고 싸우고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은지,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때 작가님이 스케치북을 들었다.

[애드리브 좋으니까 극적인 연출로 슬슬 마무리 부탁해요]

“…….”

시끄럽게 잘 떠들던 멤버들은 스케치북 내용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자연스러운 진행에 익숙지 않은 신인들은 아직 ‘극적인 연출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정적이 일었을 때였다.

멤버 중 아무도 입을 떼지 않자 주한 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한 형은 천천히 반대 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형?”

“어디가?”

멤버 모두 의아해하며 움직이는 주한 형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주한 형은 반대 팀으로 가더니 진성이를 조금 밀어내 의자에 함께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강주한 독재 체제 반대합니다.”

“……아니, 본인이?”

고유준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자 주한 형이 어깨를 으쓱이곤 뻔뻔,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솔직히 혼자는 외롭고 힘들어요.”

영혼 하나 없이 읊는 독백.

전혀 힘들지 않아 보이는 표정.

“고리 여러분들도 오늘 이 난장판 보셔서 아시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동갑내기 둘이랑 덩치 생각 못 하고 찡찡거리는 우리 막내, 덜덜 떠는 새끼 강아지 넷째까지, 하아…… 증말증말 힘들어~.”

“아니 이 형 왜 이래?”

“찡찡?”

“새끼 강아지…….”

“그래서 전 독재 체제 반대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한 가지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이건 확정인데요.”

“이미 확정이야?”

“네, 리더 권한입니다.”

주한 형이 의자에서 일어나 진성이의 어깨를 다독이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칠판에 크게 글씨를 썼다.

[서브 리더]

“크로노스는 앞으로 리더와 서브 리더가 함께 관리하는 체제로 변화합니다.”

주한 형의 말에 우린 일제히 놀란 얼굴, 깜짝 놀라 치켜든 손을 하며 동시에 대사를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래서 제가 정한 서브 리더를 발표할 건데요.”

“벌써요?”

윤찬이의 물음에 주한 형은 고개를 끄덕이곤 바닥에 둔 판넬을 꺼냈다.

“크로노스의 서브 리더는!”

“두구두구두구두구.”

진성이가 책상 드럼을 쳤다. 주한 형이 힘차게 스티커를 뜯었다. 판넬에 적힌 것은.

[잠시 후 공개됩니다!]

“…….”

삼, 이, 일.

“오케이 컷!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토론회 촬영이 끝이 났다. 창단식에 선보일 영상은 ‘잠시 후 공개됩니다!’ 판넬을 클로즈업해 비춘 다음 영상이 끝나고 무대에서 비화와 서브 리더를 공개할 예정이다.

매니저 형이 후다닥 짐을 챙기고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바로 녹음실로 이동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린 제작진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바로 차에 올랐다.

다음은 주한 형이 만든 팬송 녹음.

창단식까지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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