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갠 뒤 어게인 (32)
아직 조명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그럭저럭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기에 나도 빨리 이 뜨거움에 적응해야만 했다.
“무대로 올라가실게요!”
“네!”
스태프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멤버들이 차례로 무대 위로 향했다.
‘역시 아직 뜨겁다.’
잠깐 조명을 식히려 노력해 봤자 공연이 시작되면 다시 온도가 올라갈 것이다.
확실히 말해서 난 지금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난 자꾸만 조명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참고 관객들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이 생각 저 생각,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졌어도 난 지금 사람들 앞에 서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됐다.
“여러분 무대 장비를 체크하느라 잠시 휴식 시간이 생겼었어요. 다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한 형의 말에 관객들은 괜찮다며 호응을 보내왔다.
주한 형은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서둘러 무대 소개를 했다.
예상치 못한 휴식이었던 탓에 조금 촉박하게 진행해야만 했다.
첫 무대는 <크로노스>.
멤버들은 주한 형의 곡 소개가 끝나자마자 나를 남겨 두고 모두 무대 뒤로 향했다.
“파이팅.”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가는 진성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홀로 대형을 맞췄다.
“…….”
나는 독무를 앞두고 가만히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관객들은 내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무대를 기대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점점 다시 올라가고 있는 조명의 열기와 혼자 관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조용히 싸우며 눈을 감고 겨우겨우 공연에 집중했다.
곧 <크로노스>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곡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몸짓 하나하나에 관객성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신기하게도 곡이 시작되고 몸을 움직이자마자 뜨거움에 대한 짜증과 불안은 순식간에 잠식되어 갔다.
그렇게 착실히 내 파트를 이어 나갔다.
* * *
“……흐음.”
무대 뒤 분위기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서현우가 무대를 이어 나가는 동안 그 활기차던 멤버들은 카메라마저 등진 채 조용히 서현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주한이 들어오자마자 그 어떤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 것이 시작이었다.
멤버들은 어째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강주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서현우의 무대를 함께 모니터링했고 이내 서현우가 평소보다 굉장히 굳어 있음을 깨달았다.
“와, 현우 형 땀나는 것 봐.”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 것도 더워서 그런 건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열기가 올라오긴 했어. 엄청 덥긴 하더라.”
“……그런데 현우 형 괜찮은 걸까요? 더워서 표정 굳은 거 맞을까요…….”
그런 것치곤 어디 아픈 것처럼 굉장히 창백한데.
물론 서현우의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적어도 방송을 볼 고리들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금방 캐치해 낼 정도였다.
제 딴에는 표정 관리하려 애쓰는 것 같은데…….
평소엔 멤버들 중 무대에서의 표정 관리나 감정 변화를 가장 잘 조절하는 멤버가 바로 서현우였다.
단순히 덥다고 저렇게까지 불안한 표정을 짓지는 않을 텐데.
‘뭐가 문제일까.’
잠시 추론을 계속하던 멤버들은 다시 서현우를 바라보며 각자 고민에 빠졌다.
독무를 이어 나가던 서현우는 멤버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표정 연기를 했으며 잠시 뻣뻣했던 안무는 원래의 유연함을 되찾았다.
아, 이제야 더위에 겨우 적응했나 보다, 하고 그제야 멤버들은 안심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줄지는 않았다.
“……들어갈 때 됐어. 준비해.”
“어.”
곧 서현우의 독무가 끝날 것이다. 멤버들은 강주한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씩 서현우의 곁으로 향했다.
그렇게 <크로노스>, 다음 <블루 룸 파티> 공연까지 별문제 없이 끝이 났다.
문제는 마지막 무대 <퍼레이드>에서 일어났다.
* * *
<블루 룸 파티>의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 위 온도를 체크한 제작진들은 마지막 무대를 두고 한 번 더 휴식을 제안했다.
관객들에겐 몹시 미안한 일이 되었지만 출연진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슨 ×발 조명이, 여기 장비 상태 왜 이렇게 구려? 어디 라이브 카페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제 말이요. 하긴 캘리아 측에서 좋은 무대를 줄 거라곤 생각 안 했어요.”
<비갠 뒤 어케인> 팀의 메인 작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러자 PD도 덩달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마 화면에는 그다지 티가 안 나서 다행이긴 한데…….”
실물로 보기엔 공연 중인 멤버들의 표정을 보아 갈수록 지쳐 가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아예 조명 수를 줄이는 건?”
“불가능해요. 한꺼번에 조절하는 거라.”
“아니, 애들 가뜩이나 안무도 어렵고 힘든데 저 더위 속에서 하다가 한 명 넘어가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걸 저한테 따지셔도…….”
두 사람은 잠깐의 휴식 동안 땀범벅이 되선 연신 물을 찾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얼굴이 새빨개져선 열기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었는데 그중 특히 서현우의 기색이 이상했다.
만약 조명의 더위로 누군가 쓰러지게 된다면 틀림없이 서현우라고 확신할 정도로 안색이 좋지 않았다.
PD는 크로노스 멤버들의 물을 챙기던 제작진을 붙잡아 물었다.
“멤버들 상태 어때? 특히 현우 씨 괜찮아?”
“네? 어……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냥 더워서 다들 말이 없어지신 정도?”
막내 제작진의 말에 PD의 인상이 불만족스럽게 찌푸려졌다. 딱 봐도 안 괜찮구먼 뭘 낭창한 목소리로 괜찮은데요? 하고 있단 말인가.
“딱 봐도 괜찮은 거 같지 않은데? 너 그렇게 책임감 없이 말할래? 빨리 가서 출연진들 상태 면밀히 체크한 다음 보고해. 크로노스 무대 섰다가 한 놈이라도 넘어가면 너도 나랑 같이 징계받을 줄 알아.”
“……네!”
PD는 뒤늦게 달려가 멤버들의 상태를 묻는 막내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어휴…… 저걸 어떻게 키우냐, 저리 눈치가 없어서야. 아무튼 휴식 시간 얼마나 남았어?”
“3분 정도 남아서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해요.”
“스탠바이시키고 준비해. 마지막 무대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PD는 크로노스를 믿고 있었다.
지금껏 크로노스 데뷔 이후 많은 무대를 모니터링했지만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그룹이니까.
비록 마지막 무대가 연말 무대를 재연한 것이라도 별문제 없이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 * *
이제 우리는 단 하나의 무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아니, 무대 하나만 남은 거 맞던가?
뜨거워서 머리까지 나빠지는 듯했다.
“와, 아직도 덥긴 덥네. 그래도 아까보다는 낫다. <블루 룸 파티>할 때까지만 해도 한여름에 야외 공연하는 기분이었는데.”
“제작진 분들이 잠깐 문 열어 두셨나 봐. 그래도 더운 건 마찬가지지만.”
고유준이 주한 형이랑 대화하며 다가와 내 등에 손을 얹었다. 괜찮냐는 신호 같은데 별로 대답할 기분이 안 나서 대답하지 않았다.
“서현우, 정신 차려. 조금만 힘내자.”
“……어.”
난 나름 티 안 낸다고 했는데 안색이 굉장히 안 좋아 보였나 보다. 물을 건네주며 하는 말이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든든했다. 난 예의상 고유준이 건네주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났다.
“가자.”
“고.”
무대로 올라가라는 스태프의 지시에 우린 다시 무대로 향했다.
이미 뜨거움 속에서 한 번 공연을 한 터라 아까 전 <크로노스> 무대처럼 무대 위에서 몸이 뻣뻣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끔 나도 모르게 조명을 올려다보는 행동만 빼면 그럭저럭 마지막 공연은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난 제발 내 이상한 행동이 방송에까지 보이지 않기를 빌며 천천히 다시 무대에 적응해 멤버들을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퍼레이드>의 후반부.
나와 진성이의 페어 댄스에 이어 각자의 단독 댄스 브레이크를 끝낸 뒤 다음 파트를 위해 나란히 섰을 때, 나는 진성이와 시선을 교환하며 신호를 보냈다.
[곧 폭죽 터진다.]
적당한 타이밍에 슬쩍 함께 뒤로 물러나자 곧 무대 앞쪽 가사가 올라가던 전광판에도 ‘폭죽’이라는 글자가 표시되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잘 피했다고 생각하며 폭죽이 터질 때까지 안무와 더불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끼기기기익-.
타들어 가는 소리.
그리고 미세한 타는 냄새가 났다.
오랜 시간 촬영을 할 때 간간이 맡게 되는 조명 타는 냄새였다.
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냄새를 맡게 되는 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참 전부터 이상하리만치 가열되던 조명과 온도.
극도의 불안감이 일었다.
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떨어지면…….
여기서 떨어지면.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내가 가장 앞에 서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줄곧 고개를 들어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때.
파앙!!!!!
‘어…….’
천장이 아닌 내 앞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 불빛과 함께 폭발음이 들리며 눈앞이 컴컴해졌다.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