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261화 (261/475)

12) 비갠 뒤 어게인 (34)

강주한과 고유준이 숙소로 돌아온 건 늦은 밤이 되었을 때였다.

“형, 현우 형은?”

“……와, 너희 아직도 울고 있었냐? 대단하다, 진짜. 내일 공연 어쩌려고 그래? 연습은 했어?”

“아, 아니요…….”

박윤찬과 이진성이 퉁퉁 부은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하자 강주한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뜸 잔소리부터 늘어놓았다.

“우리, 우리 내일 공연해?”

“그럼 하지, 안 해?”

“현우 형은?”

이진성의 물음에 고유준은 자신의 뒤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문을 가리켰다.

“오늘은 병원에. 갑자기 쓰러졌으니까 혹시 몰라서.”

“크게 다친 건 아니에요? 기사 난리 났던데, 수환 형한테 듣기 했어도 걱정이 돼서…….”

“별문제 없어. 안 다쳤고 일어난 거 보고 왔어. 그런데 좀, 어…….”

고유준은 답답한지 인상을 푹 찌푸렸다.

“본인 몸 컨디션보다 무대 망친 걸 더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갑자기 왜 쓰러진 거래?”

“정확한 원인은 몰라. 근데 그날 조명에 덥기도 했고 정신없는 와중에 폭죽까지 터져서 그렇다고는 했어. 현우가 직접적인 조명에 예민하대.”

“직접적인 조명…….”

강주한과 고유준이 번갈아 가며 서현우와 나눴던 대화 그대로 멤버들에게 전해 주고 있을 때 혼잣말을 중얼거린 이진성의 표정은 어느 순간 굳어 있었다.

“아무튼 내 생각엔 뭐가 이유가 있어도 있는 것 같아서 일단 현우 촬영 때 영상이라도 모니터링 해 보게.”

“아아.”

“확실히 조명이 이유가 맞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 현우가 이런 일엔 항상 얼버무리더라고. 조명 때문인지 폭죽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저기.”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눈꺼풀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이진성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형, 저기…….”

“왜, 성아.”

“현우 형, 조명이랑 폭죽 둘 다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냥 내 생각이긴 한데, 어…….”

이진성의 얼굴이 한층 더 침울해졌다. 그저 걱정과 침울함을 넘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그, 있잖아. 우리 데뷔하기 전에, 조명 사고.”

죄책감의 계기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적어도 이진성에게는 그랬다.

“프로필 사진 찍을 때 형이 나 구하려다가 다쳤었잖아.”

위험할 뻔한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서현우의 다리에 흉이 지긴 했지만 정작 서현우가 아무렇지 않아 했고 사건 마무리도 잘 끝난 터라 다들 넘어간 일이었다.

그 이후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어쩌면 서현우마저 기억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렸을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이진성만은 기억하고 있다.

서현우가 자신을 구했던 것과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사고, 서현우가 자신을 구하다 다쳐 피가 철철 흐르던 다리까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서현우와 이진성의 일이었기에.

“저, 그거 때문이 아닐까? 그때 진짜 큰일 날 뻔했잖아. 조명도 터지고. 폭죽 소리랑 조명 터지는 소리가 비슷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잖아.”

“……현우 형은 태연한 척해도 그때 굉장히 놀랐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그 사건 전에는 이런 일 없었던 것 같은데.”

“맞아. 우리 월말 평가 때문에 가끔 무대도 서고 그랬었잖아. 그땐 이렇게까지 조명 때문에 힘들어한 적 없었지 않아?”

언제나 조명은 뜨거웠다. 그러나 멤버들이 알던 서현우는 뜨거운 조명으로 인해 내리흐르는 땀을 즐거워하던 사람이었다.

이진성은 그때의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서현우의 끌어당김으로 조명이 터지는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자신의 뒤에서 큰 스파크와 함께 순간의 극심한 뜨거움이 생생했다.

자신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 며칠간의 놀람으로 끝냈지만 서현우는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진성의 말을 들은 강주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곤 다시 생각에 잠기려다 멈칫, 이진성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진성이 너는 괜찮고? 너는 지금 상태 어때? 아프거나 놀라거나 그런 증상 없어?”

“혀엉…… 나 걱정하는 거야? 나는 완전 괜찮어.”

“어휴, 그럼 됐다. 너라도 건강해야지, 원.”

강주한은 이진성의 대답을 듣고서야 다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서현우의 이상 증상은 최근에서야 제대로 나타난 터라 데뷔 이후의 기억들만 거슬러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래, 그런 사건이 있었다.

멀리서 목격한 멤버들마저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했던 그 일을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그때부터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이라면 지금까지 서현우 혼자 모든 방송, 모든 촬영에서의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말 안 했구나.’

멤버들의 걱정거리만 생길 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는 증상이니까.

“하아, 큰일이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정말 많을 텐데.

강주한은 휴대폰을 챙겨 일어섰다.

“수환 형한테 다녀올게. 아무튼 현우는 괜찮다고 하니까 너희는 현우 빼고 대형 맞춰서 연습하고 있어. 나도 곧 갈 테니까.”

“응.”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 줘야 할지 감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일은 서현우 혼자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단 상담 선생님한테 귀띔부터.’

혼자 짐을 떠안고 활동하게 할 수는 없다.

폭죽이든 조명이든 몇 번이고 터져 나가도 멤버들이 나서서 시야를 가려 주고 귀를 막아 줄 정도의 도움은 줄 수 있을 터인데.

그때 강주한의 휴대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나는 내일 무대 안 서?

-고유준이 내일 무대 그대로 진행한다고 하던데

-다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

서현우의 메시지였다.

강주한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놈아.”

야외 페스티벌에 폭죽이 얼마나 많이 터지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강주한은 답장하지 않은 채 걸음을 계속했다.

* * *

주한 형은 동생들의 눈물에 약하다.

고유준이 연습생 시절 무리한 연습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월말 평가를 꼴찌로 말아먹었을 때도 여기서 잘릴 순 없다며 펑펑 우는 녀석의 모습에 한숨 한번 푹 쉬더니 김 실장님을 설득하러 갔었다.

진성이야 혼날 때마다 찔찔 우는 바람에 용서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윤찬이가 한참 다이어트 할 때도 힘들어 눈물을 보이자 굶어서 빼는 거 소용없다며 총대 매고 회사 몰래 치킨을 먹이곤 했던 사람이다.

그런고로 난.

-안 돼. 이미 너 빼고 연습 다 끝났다.

마침표까지 찍어 가며 진지하게 온 주한 형의 답변을 보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찔찔 울었다.

“형, 진짜 제발. 한 번만 수환 형 설득해 주면 안 돼?”

-야.

“진짜 괜찮은데……. 마지막 무대잖아. 나 여기서 이렇게 끝내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민폐인 건 아는데.”

-민폐가 아니고.

폭죽, 조명 고작 그런 것으로 쓰러지기까지 한 내가 너무 한심해서 이대로 끝내고 싶지가 않았다.

마지막 무대가 너무 찝찝하게 끝이 난 터라 무대의 규모를 떠나 폭죽과 조명을 이겨 내고 끝까지 공연을 마쳐야 비로소 속상함 하나라도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를 썼다.

지금의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고리들도 걱정했을 텐데 괜찮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느니 온갖 설득을 다 했다.

역시나 주한 형은 내 울음소리를 듣곤 한숨만 연거푸 쉬더니 수환 형과 대화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뒤 주한 형으로부터 딱 한 무대만 서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페스티벌 특성상 솔로 무대를 올릴 순 없고 각종 조명과 폭죽이 난무하기에 혹시나의 상황을 대비해 <퍼레이드>만 참가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거면 됐어…….”

그렇게라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대를 크게 망쳤다는 생각에 떨림이 도통 멈추지를 않아서 한시라도 빨리 공연 하나를 제대로 마쳐 보고 편안해지려는 강박이라고 생각되었다.

“됐다.”

어두운 밤 불 꺼진 병실에서 한참이나 창밖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들었다. 나에 대한 기사와 YMM에서 추가로 내놓은 내 상태에 대한 소식을 훑어보고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무치게 익숙한 밤.

우울감을 느끼며 괜히 <퍼레이드>의 내 파트를 불러 보고 누웠다.

이상하다.

왜 눕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건지.

그렇게 부어오른 눈을 꾹 누른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그날, 나는 또 악몽을 꾸었다.

퍼엉!

떨어지는 조명, 얼굴로 느껴지는 고통.

‘이 삶을 네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얼굴과 상체 전부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나는 정신이 들고 잃기를 반복했다.

일어나면 소리치고 그러다 기절하고.

반복하며 아우성쳐 봤자 내 잃어버린 얼굴이 돌아오진 않았다.

정신이 들 때마다 가족들은 울고 있었고, 멤버들은 그사이 핼쑥해져 죽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나는 죽지 않았는데 죽은 사람을 보는 시선으로 느껴졌다.

그게 너무 싫고 괴로웠다.

아파도 나는 살아 있는데, 애매하게 살아 있는데.

모두가 돌아간 늦은 밤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면 어두컴컴한 병실 안 지독한 고통과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게 내 기억 속의 나였다.

‘이 삶을 네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굳이 괴로웠던 과거를 보여 줘 놓곤 속삭이는 목소리는 모든 장면을 지워 버리고 대신 선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두 번째 조건 : 극복하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