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규 1집 (9)
확실히 말해서, 난 YMM이 싫다.
애초에 과거로 돌아왔음에도 줄곧 이 회사에 있는 건 회사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그때 그 멤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그거 하나 때문이었고 소속사에 대한 기대치는 한없이 낮았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말일지도 모르나 오늘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YMM이 싫다.
회사의 이미지와 타격을 걱정해 아티스트에 대한 대처도 보호도 제대로 해 주지 않는 곳이니까.
내가 화상으로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도 회사에 짐 덩어리는 두기도 싫다는 듯 내보내 버렸고 지금도, YMM이 사원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티스트의 곁에 개인 정보 유출범을 뒀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대응을 어영부영하고 있었다.
내가 혁수 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지 일주일째, 이미 그가 범인이라는 건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혁수 씨의 조사 결과에 대해 말을 끝낸 수환 형이 고개를 숙였다.
주한 형은 표정 없이 고개를 저었다.
“형이 미안할 것 없다니까. 미안해할 건 다른 사람들이죠.”
우리를 대표해 유일하게 싸워 주는 사람은 수환 형 하나. 김 실장님은 중간에 껴서 난감해하는 눈치고, 회사 측에선 혁수 씨에 대한 대처는 하되 이를 조용히 넘기고 싶어 했다.
조용히 넘기고 싶어서, 혁수 씨가 유출했던 정보가 내려가고 사생에 대한 고리들의 예민함이 조금이나마 식었을 때 대응하려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었다.
난 그게 너무 화가 난다.
“YMM은 원래 이런 회사였죠.”
“죄송합니다.”
수환 형한테 사과받으면 뭐 해. 이 사람은 원래도 더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사람인데.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일어났다.
“준비하러 갈게요.”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은 느릿한 대처에 비해 이사는 매우 빨리 할 수 있었다는 것.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낸 만큼 경비가 잘되는 좋은 숙소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게 아직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중소 기획사에 소속된 우리들의 현실이다.
오늘은 <환상령> 뮤직비디오 촬영일, 내일 모레면 <비갠 뒤 어게인> 첫 방송 날이다.
‘그냥 설레기만 하고 싶었는데.’
인생은 언제나 나쁜 일과 함께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다.
* * *
“다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역시 좋은 숙소에서 지내니까 애들 얼굴이 폈네!”
우리들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감독님께서는 얼마 전 기사로 나온 크로노스의 새로운 호화 숙소에 대해 언급하며 활발히 말을 걸어왔다.
“아, 너무 좋아요. 침대도 바꿨는데 대표님이 웬일로 브랜드 매트리스를 사 주셔 가지고 아주, 크으…….”
“크로노스가 벌어다 주는 돈이 얼만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안 그래? 좋겠다. 거기 한강뷰 아냐?”
“아쉽게도 저희는 아니에요. 저흰 아파트뷰……. 하이텐션은 한강뷰인데 그렇게 좋대요.”
고유준이 살갑게 감독님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불과 몇 분 전 수환 형에게서 혁수 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은 나와 주한 형으로선 고유준이 특유의 사교성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주는 게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
감독님의 지시 아래 스태프와 멤버 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또다시 이 세계관의 시작점이었던 학교로, 누군가는 판타지 세계관을 구현해 놓은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현우, A 세트장으로.”
“네.”
오늘 나의 첫 촬영지는 A 세트장.
<퍼레이드> 때 진성이가 서 있던 파스텔 톤의 꽃밭이었다.
진성이가 섰던 자리에 내가 서있다.
진성이가 쓰던 지팡이를 짚고 꽃밭의 한가운데서 진성이가 그랬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신이었다.
같은 세트장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파스텔 톤의 배경은 컴컴한 밤이 되었고 화려하던 분홍색, 보라색 꽃들은 한층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내며 밤의 배경 속에서 흩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검은 셔츠, 검은 바지,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 장미 브로치. 브로치는 진성이가 달고 있던 것이던가.
“현우는 무표정으로 카메라만 보고 있어. 촬영 시작합니다! 큐!”
감독님의 사인과 함께 <환상령>의 도입부가 재생되었다.
난 한 손은 지팡이를 앞으로 짚고 한 손을 뒷짐 진 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뭔가 음산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풍기도록.
최대한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렇게 1분 정도 있으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주인공인 것 치고 오늘 나의 촬영은 매우 편하다.
대부분 세트장에서 분위기나 잡는 게 다고 밤에 잠깐 학교에 들르면 된다고 한다.
오히려 고생하는 쪽은 현대 팀으로 불리는 고유준과 윤찬이. 특히 윤찬이는 추격 신 맞먹을 정도로 온종일 달린다고 했다.
아니, 추격 신과 맞먹는 게 아니고 그냥 추격 신인가?
아무튼 윤찬이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 괜찮아요!”라며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빡센 촬영에 임하고 있다.
난 그 외에도 세트장을 옮겨 원래 내가 있던 세트장 안, 주한 형이 있던 피아노 세트장 안을 둘러보는 신, 진성이와 서로 마주 보는 신 등을 촬영했다.
촬영한 세트장 모두 이전과는 달리 모두 어두컴컴해서 소품 하나 망가진 것 없어도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우는 잠시 휴식! 진성이 촬영 이어 갈게요!”
딱히 감독님이 우리에게 연기력을 바라지는 않았고 연기를 하고 있다 느낄 곳도 없기 때문에 촬영은 금방금방 넘어갔다.
내 촬영분의 일부가 끝나고 같은 세트장을 공유하는 진성이가 촬영을 이어 나가는 동안 난 잠깐 바깥공기도 쐴 겸 수환 형과 함께 다른 촬영지 학교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배경을 두고 그만큼 파스텔 꽃잎들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야 한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가져다 두다 보니 세트장에 있는 것 자체가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
“고유준은 조금 있다가 세트장으로 넘어온다고 했었죠?”
“네, 지금은 한참 촬영하고 있고 해가 지면 세트장으로 넘어올 거예요.”
누가 낮과 밤의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연출이 제일 중요한 뮤직비디오라고 했다.
지난 <퍼레이드> 뮤직비디오의 끝부분에서 고유준이 이미 판타지 세계관으로 넘어왔다는 연출이 있었기 때문에 고유준은 어떤 일로 인해 넘어왔는지만 촬영하고 곧바로 세트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거의 마지막까지 현대 팀으로 촬영하는 건 윤찬이.
지금쯤 학교 건물 내에서 땀나도록 달리고 있겠지.
“어, 왔냐?”
고유준이 촬영 중인 곳은 동아리실로 사용하던 교실이었다.
촬영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타이밍 잘 맞춰 쉬는 시간에 온 모양이다. 고유준은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 칠판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He betrayed us]
우리 뮤비 감독님 특유의 연출, 의미심장한 영어 문장 남기기다.
난 수환 형과 함께 제작진에게 커피를 돌리고 고유준에게 다가갔다.
고유준이 쓴 글씨는 묘하게 갈수록 작아지고 거기다 중심 없이 왼쪽으로 쏠려 있었다.
“네가 쓰는 거야?”
“어, 감독님이 내가 쓰래. 글씨 너무 좀 그런가?”
고유준은 썼다 지웠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 나 글씨 진짜 너무 못 쓴다. ……서현우 씨, 당신이 써 주실?”
“내가?”
고유준이 분필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고유준의 옆에서 영어를 끄적이는 도중 꼭 고유준의 글씨로 해야 한다는 감독님의 불호령에 곧 머쓱하게 물러나야만 했다.
곧 고유준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고유준은 이미 써 놓은 글씨 위로 분필을 가져다 댄 채 쓰는 척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을 한 채 뒤돌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따뜻한 동아리실, 그러나 텅 빈 공간.
이전 다섯 명이서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던 곳인데 지금은 고유준 혼자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다 같이 고개를 내밀었던 창가에 얼굴도 내밀어 보다 천천히 동아리실을 나섰다.
“컷! 뒤에 크로마키 깔고 다시 한번.”
“네!”
감독님의 지시에 창문 뒤로 초록색 천이 깔렸다. 그리고 고유준은 같은 장면을 한번 더 찍었다.
아까 설명을 들은 바로는 고유준이 판타지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라고 하던데 뮤비에는 두 번의 촬영분을 자연스럽게 섞어서 판타지스러운 장면으로 보일 것이다.
윤찬이가 촬영하는 모습도 보려고 했는데 윤찬이는 뛰어서 도로까지 나간 모양이라 보러 갈 수 없었다.
“컷! 오케이! 고생했어요! 유준 씨, 세트장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혼자 노는 것보다는 둘이 노는 게 낫다고 여기에 있는 게 훨씬 덜 심심해 한참이나 고유준의 촬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학교의 복도는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고유준의 촬영은 끝이 났다.
밤이 되자 각자의 촬영 장소가 바뀌었다.
주한 형, 진성이, 그리고 내 촬영은 학교에서, 고유준은 세트장으로, 윤찬이는 차에서 조금 쉬다가 또 달린다고 한다.
주한 형과 진성이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윤찬이 엄청 고생한다는 거 같더라. 오늘 끝나고 고기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안 그래도 윤찬이 형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어. 재밌다던데?”
진성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걸 믿냐? 하루 종일 뛰면 너도 지쳐. 좀 있다 소고기 사 가자. ……물론 결제는 주한 형이죠? 사랑해요, 형.”
내가 비하인드 카메라를 의식하며 장난치자 주한 형은 피식 웃곤 고개를 저었다.
“수환 형 법인 카드 있어, 현우야. 마음껏 긁자고. 회사에서 우리 속도 긁어 댔는데.”
웃기게도 카메라에 대고 대놓고 회사 욕을 하고 있는데 어째 카메라맨도, 수환 형도, 우리 쪽 스태프 모두 즐겁게 웃고 있었다.
다들 우리 회사가 쓰레기 같다는 거에 동의하시는 건가 싶기도 하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아무튼 밤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잠시 모였던 우리는 다시 제각각 촬영 장소로 흩어졌다.
진성이가 주한 형을 스쳐 지나갈 때, 주한 형이 진성이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지난번과 같은 해프닝이 있다면 언제든 형한테 말해 주렴.”
“……형.”
“형은 기가 센 모양이야. 눈 씻고 봐도 안 보이더라, 짜증 나게.”
이 학교, 그러고 보니 저번 촬영 때 온갖 이상한 현상들이 있었지, 심령현상 같은.
주한 형의 말에 진성이가 사색이 되었다.
“참, 저 형은 진짜.”
난 씨익 웃으며 가는 주한 형을 노려보고 진성이를 달랬다.
“진성아, 괜찮아. 귀신은 너를 못 만져. 그런 시스템이야.”
“혀엉…… 그건, 그건 귀신의 집 이야기잖아……. 여기서 보면 끝장 아니야……?”
진성이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어…… 맞네.”
딱 귀신의 집 정도로 생각했던 터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힘내라, 야. 파이팅.”
어쨌든 진성이는 덩치에 비해 기가 약하고 겁이 많아서 별것 아닌 것도 귀신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니까.
하지만 촬영 도중 귀신과 조우해 잘못된 연예인에 대해선 들은 적 없으니까 그냥 대박의 징조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도……
“형, 미워. 형들 진짜 미워.”
“어?”
진성이는 괜한 것을 들었다는 듯 울상이 되어 수환 형을 끌고 자신의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형들이 이상한 거야. 어떻게 저렇게 겁이 없어? 짜증 나.”
난 멀어져 가는 진성이를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이고 해리 누나에게로 향했다.
어쨌든 촬영이 재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