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281화 (281/475)

13) 정규 1집 (14)

“잘 지냈어? 밥도 못 먹었다며? 아이고, 어떡해.”

레나 선배님은 인상을 찌푸리며 김 실장님을 노려봤다.

“애들 밥은 먹이고 연습시키는 거 맞아요, 실장님?”

“밥 먹이고 시키고 있거든? 애들이 먼저 연습하겠다고 안 먹는 거야! 내 탓 아니거든요.”

“실장님, 요즘 그런 시대 아니에요. 애들이 안 먹는다고 해도 달래서 어떻게든 먹이는 시대지.”

아무래도 레나 선배님과 김 실장님은 꽤 편한 사이인 모양이다.

김 실장님은 ‘그런 건 매니저들 영역인데.’라고 작게 투덜거리며 말을 넘겨 버렸다.

난 머쓱하게 여전히 젖은 머리를 만지작거렸고 수환 형은 미안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밥 먹으러 가자는 걸 우리가 거부하고 연습했던 건 맞아서 수환 형이 미안할 일은 아니었는데.

“미팅 끝나고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현우가 이 시간까지 밥 안 먹은 줄 몰랐네.”

레나 선배님은 간단히 안부만 묻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미팅은 못 했는데 꾸준히 진행은 하고 있었거든. 마케팅 루트라든가 음악 만드는 건 어차피 내가 맡은 부분이니까.”

“아, 네.”

“섭섭했다면 미안. 최대한 너 부담 안 가게 하고 싶었거든.”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감사합니다.”

섭섭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빡빡한 컴백 일정에 사건까지 터졌고, 거기다 난 윤찬이 곡 작업까지 했었다.

이런 일정에 이 프로젝트도 함께였다면 정말 정신력으로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빛을 받는 주인공은 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제일 잉여스러운 인물도 나였다.

오직 레나 선배님의 뮤즈로서 있는 것이 내 역할이므로 솔직히 모든 진행이 끝난 후 결과만 받는 이 상황이 편히 느껴지기도 했다.

“바로 녹음만 하면 돼. 언제가 좋을까? 크로노스 정확한 컴백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김 실장님은 제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놀란 얼굴을 했다.

“헤엑, 시간 참 빨리 간다. 2주도 안 남았어.”

“음.”

레나 선배님은 인상을 찌푸린 채 손에 쥔 볼펜을 반복해서 돌렸다.

그간의 사건으로 바뀐 일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있는 듯했다. 레나 선배님은 한참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하다 말했다.

“어차피 급한 것도 없으니까 그럼, 편하게 녹음은 컴백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어떠세요.”

“어우, 레나야. 좋다. 그래 주면 고맙지.”

“대신 그때는 수환 씨가 넉넉하게 일정 비워 주셨으면 해요.”

“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가 날 위해 몇 번이고 일정을 바꿔 주었다.

컴백 준비하는 우리만큼 일정이 바쁜 사람일 텐데.

우리 입장에선 연달은 일정 연기로 이 프로젝트 자체를 취소시켜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인데.

레나 선배님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맞춰 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아티스트 멘탈, 건강 관리만 확실히 해 줘요. 아프면 나 곡도 안 나와. 알죠, 실장님?”

이젠 자신의 아티스트가 된 내 컨디션을 위해.

함께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였던지라, 쓰러지기도 했었고.

“곡도 이미 완성됐는데 한번 들어 보시죠. 물론 피드백받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들으시라고.”

모든 프로듀싱과 작업은 전부 레나 자신이 맡겠다. 선배님의 말 하나하나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느꼈다.

레나 선배님이 곡을 재생했다.

“제목은 아직 미정. 근데 평소 제가 짓던 대로 지을 거예요. 내가 프로듀싱하는 애인 거 확 티 나게.”

냈다 하면 음원 사이트 올킬, 최정상급 아이돌이 튀어나와 판매량 싸움을 해도 쉽게 밀리지 않는 레나의 곡이 완전히 같은 퀄리티로 나에게 돌아왔다.

완전히 레나 선배님풍의 곡이었으나 분명 레나 선배님이 직접 부르는 곡과는 차별점이 있었다.

“우리 현우 목소리와 외견 분위기에 맞춰서 만들어 봤어. 미국에서 하루 종일 애 보고 있으니까 절로 곡이 써지더라.”

좀 더 담백하고 씁쓸했다. 좀 더 절절하고 슬펐다.

레나 선배님이 생각하는 내 분위기는 이런 느낌이었나 보다.

“물론 현우가 이렇게 슬픈 애라는 건 아니고 좀 무대 표현이나 요런 데서 보이는 부분들을 극적으로 살린 거지. 내가 좋아하는 느낌만.”

“선배님, 정말 너무 좋아요. 빨리 불러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 가사 나오면 바로 부를 수 있도록 보내 줄게. 연습 열심히 해 줘야 해.”

물론 나중에 나인 것이 밝혀지면 얼굴을 내놓고 노래 부를 일이 많아지겠지만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진 표정으로 감정을 전할 수 없다.

그러니 목소리에 훨씬 더 많은 감정을 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이후 레나 선배님과 우리 팀 직원들의 회의가 오갔다.

대부분 일정 공유와 투자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신인 나부랭이인 나는 뒷전이 되다 못해 투명인간이 되었으므로 그냥 열심히 듣고 듣고 들으며 이해하려 노력만 했다.

“그럼 여기까지 할까요? 현우 많이 배고프겠다.”

연장이 된 만큼 긴 회의였다. 난 5시 반이 되어서야 점심, 아니 이젠 저녁이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형, 왔어요?”

“좀 늦는 것 같아서 오늘 연습 끝낼까 했는데 현우 왔으니 한번 더 할까? 진성아?”

“주한 형이 웬일이야? 콜.”

“아아아악! 진성 님 연습 더 할 거면 이 불쌍한 형 다리 좀 주물러 줘라.”

식사를 끝내고 연습실로 돌아오니 멤버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날 맞아 주었다.

주한 형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진성이는 한숨 쉬며 드러누운 고유준의 다리를 주물렀다.

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쉬고 있는 윤찬이의 옆에 앉았다.

“회의가 길어졌나 봐요. 식사는요?”

“방금 먹고 왔어.”

“곡은 나왔어요?”

“응, 너무 좋아서…….”

레나 선배님은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해 왔다. 엔터테이너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날 선택한 것이다.

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다.

“윤찬아, 나 정말 열심히 해 보려고.”

“……저도.”

윤찬이가 손에 들린 휴대폰을 꼭 쥐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너무 꽉 쥐는 바람에 누른 전원 버튼, 그로 인해 보인 화면엔 내가 작곡한 윤찬이의 곡이 재생되고 있었다.

듣고 있었구나.

발라드였던 곡에 트로피컬한 느낌을 더하고 가사도 희망적으로 바꿨다.

윤찬이를 위해 도 PD님과 하루 종일 대면하며 거의 새로 갈아엎었다.

동료의 고생이 담긴 곡을 받은 윤찬이도 나와 같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괜히 기특한 마음에 윤찬이의 등을 툭 치고 다 들을 때까지 말없이 곁에 있었다.

흥얼흥얼, 윤찬이의 조용한 연습은 연습을 재개하자는 진성이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컴백을 위한 사전 준비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었다.

김 실장님은 영업 하나는 끝장나게 잘하시는 분답게 지상파, 케이블 모든 방송사 컴백 무대에 두 곡씩 부르는 것으로 확정받아 왔다.

꼭 하나둘씩 틀리던 안무도 완벽해졌고 제대로 숨 쉬며 라이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까지 일주일 남은 날.

멤버들은 연습실 가운데에 모여 카메라를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크로노스입니다.”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죠? 드디어 저희가 <환상령>으로 컴백하게 되었는데요.”

“와아!!!!”

“오늘은 뮤직비디오 공개 일주일 전이죠. 공개되기 전에 크로노스 특권으로 저희가 먼저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주한 형의 말에 멤버들이 환호했다.

뮤직비디오는 편집에 편집, 보정에 보정을 더하며 완성이 계속해서 늦춰졌고 결국 공개 일주일 전 겨우 회사로 넘어왔다.

오늘은 그렇게 고생한 뮤직비디오에 대한 감상을 촬영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번 <환상령>을 마지막으로 우리 첫 세계관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고 합니다.”

“아아, 너무 아쉽네요.”

“다들 어때요, 유준 씨?”

주한 형이 고유준에게 질문을 넘겼다. 고유준은 씨익 웃으며 머쓱하게 말했다.

“솔직히 난 봐도 잘 모르겠더라.”

“맞아. 나도. 이거 해석해서 올리시는 고리분들 보면 너무 신기해.”

진성이가 맞장구를 쳤고, 뒤늦게 나와 다른 멤버들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 댔다.

난 고리들에게 설명하듯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저희도 촬영할 때 이게 어떤 장면이다, 이런 대략적인 부분과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고 촬영하거든요.”

“맞아. 근데, 그래도 몰라.”

“작가님께서 자세히는 말씀을 안 해 주셔서, 멤버들도 고리분들 해석 보고 그래요.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언젠가는 찍고 나서 이게 반전이 될 부분이라는 걸 뮤직비디오가 나온 후에 알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슨 장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번 <환상령>은 마지막이니만큼 그 결말이 어떠한지 멤버 모두 알고 있지만.

또 뮤직비디오는 그걸 굉장히 어렵게 풀어놨을 것이고 고리들만 발견하는 숨겨진 부분도 많을 테지.

“그럼 이제 한번 볼까요?”

“와, 너무 기대돼.”

“쉿쉿, 형, 쉿.”

진성이가 호들갑스레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고유준을 조용히 시켰고, 고유준은 고약한 표정으로 진성이의 귀 가까이에서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진짜 조용. 볼게요.”

주한 형이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여전히 소란스럽던 고유준과 진성이가 입을 다물고 멤버 모두 집중해 뚫어지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뮤직비디오는 음악 없이 시작되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여는 정장 차림의 어른 고유준으로부터였다.

고유준은 교실의 앞문에 서서 무표정으로 텅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그러나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 학교.

밝은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함에서 느껴지는 음산함이 있었다.

“하아.”

굉장히 씁쓸한 표정을 지은 고유준이 한숨을 쉬며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교탁에 선 채 한참을 멍하니 있다 뒤돌아 분필을 집어 들었다.

[He betrayed us]

그가 우리를 배신했다.

멋들어진 글씨로 그렇게 적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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