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규 1집 (34)
클래식하게 울려 퍼지는 <붉은 망토 차차>의 아름다운 선율.
주소담과 고유준의 합주는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좋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게 ㅔ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소리 끄고 봐보세요!
이 곡이 차차 OST라는 것을 몰랐으면 안 웃겼을까? 아니, 곡의 멜로디 자체가 ‘똥띠롱 또롱띠롱~ 때롱~.’이라 아무리 좋게 들어도 지금의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주소담과 고유준은 정장 차림이 아닌가.
정장 차림으로 ‘똥띠롱 또롱띠롱~ 때롱~.’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영상퀄은 지리는데???
-주소담 연주리스트 늘었네
-이게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
-유준이 피아노 치는 거 감상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되넼ㅋㅋㅋㅋㅋ
-왜 저렇게 진지하냐곸ㅋㅋㅋㅋㅋ
이미 처음의 몰입감은 깨져 버렸다. 그러나 반전으로 웃음을 줄 생각이었다면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상과 음악의 조합을 즐거워했고 채팅창의 화력 또한 최고조로 뜨거웠다.
그때, 단둘만의 고풍스러운 합주 무대 위로 여럿의 실루엣들이 등장했다.
포커스가 나간 화면 속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색감과 함께 빨간 단화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빨간 단화 위로 보이는 장딴지와 흰 니삭스.
-완-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가봐도 차차
-코스프레 지리넼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그와중에 건석 장딴지 근육 무슨 일??ㅋㅋㅋ
누가 봐도 차차 코스프레를 한 모양새였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는 그들의 풀샷이 화면에 담겼다.
채팅창은 무서운 기세로 올라갔다.
어른 차차를 맡았었던 박윤찬과 이전엔 차차의 동료 코스프레를 했던 이진성 또한 오늘은 붉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탑 아이돌한테 뭘 시키는 거얔ㅋㅋㅋㅋㅋㅋㅋ
걸어 나온 차차들이 무대 중앙에 위치했다. 세 명의 차차, 그 중심엔 비장한 표정이지만 곧 울 것처럼 울먹거리는 박윤찬이 있었다.
-오오
-아니 윤찬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좀 질린다 차차어쩌고에 진심인 척 오지는거;
-ㅋㅋㅋㅋㅋㅋ너무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
-질리면 안보면 되지 꼭 찾아와서 ㅈㄹㅈㄹ~
-아이돌 보려고 보는게 아니니까 그렇죠……누가 크로노스분들 보려고 보나요? 베짱이 식구들 보러 오는 거지;;
트집까지 잡아 가며 불만을 표출하는 채팅들은 악플 축에도 못 끼니 무시하고, 고리들은 진심으로 비장한 윤찬이에게 집중했다.
서 있는 위치를 보아하니 박윤찬이 처음으로 댄스브레이크의 센터를 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범디기범디기범범디기디기디기차차범디기…….
낮게 범디기를 속삭이는 고유준의 목소리.
그리고 정말로 고리들의 예상대로 박윤찬이 센터에 선 채 댄스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오디션 당시 극적인 반전을 위해 택한, 굉장히 난이도 있는 댄스브레이크였지만 그로부터 1년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박윤찬은 발전했다.
비록 조금 버거워 보이고 조금 덜 유연해 보이긴 해도 댄스 구멍 소리를 듣던 그때와 달리 정석대로 박자를 딱딱 맞추며 무난히 소화해 나갔다.
크로노스의 댄스 난이도가 차차를 처음 했을 때보다 올라가며 박윤찬 또한 그에 익숙해진 덕도 있고, 무엇보다 그 역시 크로노스.
어딘가에선 크로노스 내의 뚝딱이(춤을 못 추는 아이돌을 일컫는 용어)라고 욕을 먹어도 뒤에 선 건석과 비교하면 굉장히 잘 추는 편이었다.
한편 댄스브레이크의 웃음벨은 건석이었다.
건석은 빠른 댄스브레이크를 단 5분 만에 대충 외워 따라 추는지라 유독 혼자만 눈에 튀었다.
손, 팔, 다리, 허리, 고개 전부 뻣뻣하고 흐느적거리며 움직여서 후반부는 반쯤 포기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안무를 개척해 나갔다.
거기에 신나서 가발은 덜렁 치마는 쉴 새 없이 훌렁거리는 이진성,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여전히 합주 중인 고유준과 주소담까지.
환상의 밸런스가 아닌가.
기가 막히는 언밸런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색감 예뻐서 킹받넼ㅋㅋㅋㅋㅋㅋ
-님들 이거 나중에 영상 올라오나요?
-킬포는 할아버지가 손주보듯 자비롭게 미소짓고 있는 고유준 아닌갘ㅋㅋㅋㅋㅋ
-뭔데 뒤에 악기 담당들은 흐뭇해하는뎈ㅋㅋㅋㅋ
-피아노:고유준, 꽃사슴센터:박윤찬, 치마 뒤집힌 애:이진성 많이 사랑해 주세요!!!!
주소담은 뮤직비디오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굉장히 부족했던 만큼 많은 장면을 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붉은 망토 차차>, 컨셉은 오케스트라 or 오페라, 주인공은 차차 삼총사, 분위기는 가족 영화 속 훈훈함 등으로 구성되어 일명 병맛더빙을 보는 것과 같은 원초적인 웃음을 자아내며 뮤직비디오를 마무리했다.
뮤직비디오가 끝난 뒤 잠시 화면이 검어지고 다시 세트장의 출연진이 보였다.
“넵! <붉은 망토 차차> 뮤직비디오를 보셨는데요. 다들 어떠셨어요?”
“아! 생각보다 덜 웃겨서 아쉬워.”
주소담이 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현장의 분위기는 훨씬 웃겼다. 특히 건석의 활약과 이진성의 치마, 가발 벌러덩이 그렇게나 웃겼는데 편집 팀은 그것보단 박윤찬을 포커스로 뒀다.
사전 확인을 못 하게 하니 주소담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덜 재밌게 나와 버렸다.
물론 충분히 반응은 좋았지만서도.
베짱이 출연진이 토크를 이어 나가는 동안 서현우는 박윤찬을 바라보았다.
박윤찬은 처음으로 댄스브레이크를 리드해 본 터라 굉장히 걱정스럽게 채팅창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서현우는 잘했다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반면 강주한은 박윤찬이 춤을 추기 시작할 때부터 엎어져 웃다가 울고 있었다.
“어우, 유준 씨, 굉장히 잘생겼더라. 원래 잘생긴 건 알고 있었는데 정장 딱 입으니까, 이야.”
“아니 주한 씨, 너무 웃는 거 아니야?”
“유준 씨, 원래 피아노 칠 줄 알았냐고 물으시는데?”
“아, 저 예전에 조금 배웠어요. 그냥 연습실에 있는 피아노로 진짜 조금.”
지벽산은 출연진에게 골고루 질문을 던지고 시청자들에게도 감상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강주한> 팀 뮤직비디오를 공개할 때가 되었다.
“자, 다음은 우리 팀, <강주한>이라는 곡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요. 어땠어요?”
지벽산이 자신의 팀을 보며 묻자 김도림이 대답했다.
“곡 가사가 굉장히 재밌고 드라마틱해요.”
강주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이게 저희 팬 카페에서만 공개된 곡이라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부디 가볍게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우 씨가 뮤직비디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서현우는 제 품에 안고 있던 펭귄 인형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 <강주한> 뮤직비디오는 약간 뮤지컬 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강주한 무슨 곡인지 지금 듣고 있는뎈ㅋㅋㅋㅋ개웃김
-헐 뮤지컬 드라마 기대된다
-ㅜㅜㅜ펭귄 안고 있는 거 너무 귀엽다 진짜ㅜㅜㅠ
-님들 이거 나중에 영상 올라오나요?
-아 올라온다고요;; 그만 좀……
-강주한이 부르는 강주한이라니……
-ㅋㅋㅋㅋㅋ주한이 아직도 웃음소리 들렼ㅋㅋㅋ
화면엔 나오지 않지만 서현우가 콘셉트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에도 강주한의 꺽꺽거리는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어지간히도 멤버들의 연기가 웃겼던 모양이었다.
고리들은 기대했다.
<붉은 망토 차차>만 봐도 슈트 차림으로 무려 피아노를 치는 고유준에 센터에서 춤추는 박윤찬을 볼 수 있었다.
고리들은 고유준이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것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 면모를 볼 수 있었는데 <강주한>은 또 얼마나 보는 맛이 있을지.
“그럼 한번 볼까요? 지벽산 팀 <강주한>입니다.”
화면이 다시 검어졌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밝아졌을 땐 작업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강주한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아…… 또 날아갔어……아…….
화면은 강주한의 심정을 알려 주듯 흑백이어서 고급스럽고 다채로운 색감의 붉망차와는 달리 휴먼 다큐 엔딩쯤의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건 또 무슨 컨셉임?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이건 또 생각못했넼ㅋㅋㅋ
-강주한 멤버 이름 아님?
-ㅇㅇ멤버이름이자 곡 이름
-주한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쿠ㅜ
-강주한은 뭔 곡?
-아 걍 좀 보라고;;
꽤 대중적으로 흥했던 차차와는 달리 강주한은 곡을 아는 사람 수부터 적었다.
곡의 가사를 아는 고리들은 벌써부터 웃긴다며 웃고 있었지만 <강주한>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아직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점잖게 생긴 아이돌이 머리를 짓뜯으며 앓고 있으니 웃기긴 한데 스토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그때 강주한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했던 화면이 조금씩 뒤로 빠졌다.
그리곤 작업실 문 옆 벽 뒤에서 강주한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서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혀엉…….
서현우는 손에 과일 든 그릇을 쥔 채 울상을 지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아 강주한의 상태를 걱정하는 듯했다.
그리고 작게 읊조렸다.
-……주한형을. 위로. 할. 방.법. 뭐. 없을.까.
잘생긴 외모, 진지한 얼굴, 다정한 목소리, 굉장한 발연기였다.
표정 연기는 끝내주게 잘하는데 대사만 치면 참 할 말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