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콘서트 (16)
크로노스의 첫 콘서트 준비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었다.
불과 지난주까지는.
연습으로 정신없기는 했지만 순풍에 돛 달듯 흘러가던 나날은 리허설 직후 갑작스러운 대형 변경이 연거푸 이어져선 갑자기 시간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절대 안 바뀌어. 절대! 절대! 리허설까지 마쳤으니까 바꿀 필요 없어.”
라고 누가 말하면.
“아, 근데 유준이랑 주한이 곡 끝나고 무대 뒤로 이동하는 거 무조건 꼬일 것 같은데? 댄서들이랑 따로 빠지는 게 좋지 않겠어?”
하고 누군가 또 다른 동선 수정 제안을 해 왔다.
아무리 연습실에서 세트장을 갖추고 연습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무대에 서면 규모나 장비, 안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시간 수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긴 하다.
“일단 이렇게 한번 해 볼게요. 아까 이동하는 자리 보니까 안 꼬일 것 같긴 하던데.”
고유준이 말하며 주한 형, 댄서들과 동선을 맞춰 이동해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안무가 선생님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리허설 한번 남았으니까 그때 또 맞춰 보고 문제 있으면 수정하자.”
“네!”
동선은 해결된 모양이고 세트리스트 순서에 따라 이번엔 윤찬이 솔로곡 <포레스트>의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중앙 스테이지에서 리허설 중인 윤찬이를 피해 메인 스테이지를 걷고 있으니 진성이가 비하인드카메라와 함께 다가왔다.
“형, 케이터링에 맛있는 거 엄청 많아. 컵라면도 있더라?”
“라면 먹게? 공연하는데 소화 안 된다?”
“아이, 난 괜찮아.”
“대단하다, 진짜.”
진성이는 크로노스 대표 먹보답게 이곳에 올 때부터 잼 바른 식빵을 들고 있었다.
“밥 먹자, 형. 밥 먹으러 가. 리허설 다시 하기 전에 먹어야 함.”
“난 나중에. 방금 전까지 춤췄더니 소화 안 될 것 같다.”
그러자 진성이는 경악하며 가성 비슷한 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소화가 안 될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지는 않단다, 막내야.”
난 진성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산책이나 하자.”
이럴 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 넓은 무대 위를 단독으로 산책해 보겠니.
진성이, 그리고 비하인드카메라와 함께 무대 산책을 시작했다.
“무대 진짜 넓다. ……연말 시상식 했던 거기보다 훨씬 넓은 것 같아.”
“수용 인원은 여기가 더 많긴 하지.”
관객석을 늘려서 공연자가 보기에 규모가 연말 무대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첫 콘서트부터 이렇게 큰 곳에서 하게 될 줄이야.”
“전부 우리 고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린 과장된 몸짓으로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숙여 댔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 멤버들의 소속 그룹이었던 일레이티드의 해체 전 마지막 콘서트의 무대가 이곳 아니었나?
설마 이 장소에 그들의 해체보다 강렬한 기억이 덧씌워지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여러분, 저곳에서 윤찬이 형이 <포레스트> 리허설 중이에요. 형은 리허설하는데 우리는?”
“우리는 이곳에서 놀고 있습니다. 윤찬이 역시 너무 잘해요.”
내가 손가락으로 윤찬이가 있는 스테이지를 가리키자 카메라가 잠시 윤찬이에게로 향했다 돌아왔다.
오늘은 콘서트 당일, 하지만 진성이도 나도 긴장하지 않았다.
물론 실제 공연이 되면 무척 긴장하겠지만…….
잦은 동선 변경으로 리허설을 너무 많이 했기도 하고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무대 경험이 헛된 건 아닌지 지금은 꽤 덤덤했다.
“으음, 나 밥 먹으러 갈래.”
진성이는 나와의 산책이 지루했는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도망가다시피 케이터링으로 향했다.
* * *
콘서트 오프닝이 임박한 시간.
“다시 말하지만 너희가 메인스테이지로 걸어 나가는 순간 불 효과가 나갈 거니까 절대 장치가 있는 곳까지는 가지 마.”
“네!”
스태프의 주의에 대답을 하는 멤버와 하지 않는 멤버가 나뉘었다.
주한 형과 고유준이 대답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커튼 밖 관객석에 시선을 뺏긴 채였다.
“어떻게 하지? 와.”
“…….”
“전부 고리라는 거잖아.”
저 멀리 저 높이 천장까지 꽉 채운 불빛이 전부 고리봉.
전부 고리다.
우리가 지금까지 서 왔던 무대들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고리들의 앞에서 곧 콘서트를 하게 되겠지.
“강주한! 고유준! 서현우! 박윤찬! 이진성! 크로노스!”
고리들이 합을 맞춰 우리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했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소리와 열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이거 실제로 보니까…….”
“뭐 벌써부터 그래~. 앞으로 나가면 소름이 쫙 돋는다니까?”
우리보다 콘서트 경험이 많은 댄서들이 고유준을 다독였다.
반면 주한 형은 아직도 여전히 관객석을 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주한 형 엄청 긴장했네요. 저 형 웬만해서는 긴장 안 하는데.”
난 카메라에 대고 말하며 주한 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주한 형은 그제야 관객석에서 시선을 떼고 멤버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멤버들이 동그랗게 모여 자연스럽게 손을 모았다.
오늘은 내민 손에 각자의 커스텀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크로노스 히스토리> 때 상품으로 받았던 마이크다. 우리들의 주변으로 스태프, 댄서들도 함께 모여 손을 모아 주었다.
“오늘 우리가 이 거대한 무대에 단독으로 서려고 노력했던 많은 것들을 고리들에게 전부 보여 줍시다!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 절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네!”
주한 형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 수가 역대급으로 많았다.
“이 순간을 위해 고생해 주신 스태프분들, 댄서분들 너무 감사드리고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우리’ 하면 다 같이 ‘잘하자’ 해 주세요. 우리!”
“잘하자!”
기합이 확 들어간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고 스스로와 동료들에 대한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암전된 조명에 고리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그와 함께 오프닝 VCR이 메인 스테이지 양쪽의 스크린에 재생되었다.
첫 번째 세계관을 콘셉트로 잡은 콘서트인 만큼 오프닝의 VCR은 <퍼레이드>-<즐거울 락>-<환상령>으로 이어졌던 이야기의 후일담이었다.
[A snare]
검은 화면의 흰 글씨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화면 가득 어둠 속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헉!
악몽을 꾸고 벌떡 일어난 난 우울함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무릎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얼마나 보여 주었을까? 정면에서 희미하고 파스텔 분홍색의 빛이 들어오고, 기척에 고개를 든 난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홀린 것처럼 침대에서 내려와 그곳으로 걸어 나간다.
마치 <퍼레이드> 뮤직비디오의 처음, 실종된 주한 형을 찾아 판타지 세계로 가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현우야?”
어두운 방 안에 파스텔 분홍빛 말고 다른 빛이 새어 들어왔다.
동생이 걱정되어 들어온 주한 형이었다.
“무슨…….”
방으로 들어온 주한 형도 이내 분홍빛을 발견하고 놀라 눈을 키웠다.
나는 주한 형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내 얼굴에 비치는 파스텔 분홍색의 빛이 강해질수록 화면 밖에서 흘러나오는 꽃잎들.
주한 형은 그런 나를 붙잡으려 다가오는 그때 새하얀 빛이 화면 전체를 메꿨다.
그리고 곧 다시 어두운 방 안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텅텅 빈 방이었다.
“와아아아!!!!!”
영상이 끝났음을 감으로 알아차린 고리들이 환호를 보낼 때 어두운 방 안조차 사라지고 검은 화면 또 다른 글씨가 나타났다.
[Flamma]
<환상령>의 커플링 곡이자 이번 콘서트의 이름이었다.
고리들의 함성이 훨씬 더 커졌다.
“크로노스 나갑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고리들의 고리봉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회장.
멤버들과 댄서들이 무대 위로 향했다.
‘와, 진짜 미쳤다.’
우리를 향한 애정을 담은 수많은 환호와 무대 위에서 보니 더욱 아름다운 불빛. 어둠 속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우주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가면 소름이 쫙 돋는다니까?”
댄서 형의 말대로 압도감이 굉장했다.
‘발광력, 고리봉, 발광력 역시 대단하네.’
몸도 입도 전부 절로 굳어 버린 것을 속으로 농담을 하며 애써 풀고 관객의 압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조명이 내려오고 우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서울 정도로 환호가 들려왔다. 인이어를 끼고도 이 정도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큰 걸까.
우리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때 스테이지 앞 장치에서 계획된 불꽃이 터져 나왔다.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큰 소리에 절로 움찔했지만 작은 행동이라 관객들에겐 보이지 않았을 거다.
우린 천천히 대형을 갖춰 나갔고 멤버와 댄서 모두가 제시간에 완벽히 자리 잡았을 때 첫 번째 곡이 흘러나왔다.
첫 번째 곡은 데뷔 전 발매된 우리들의 첫 오리지널 곡 <크로노스>다.
<크로노스>의 시작은 내 독무였다.
멤버와 댄서 포함, 수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나만 보고 있는 상황에. 그것도 콘서트의 처음이 내 독무였다.
그 덕에 처음 세트리스트를 연습하기 시작하고 상당히 열심히 연습했고.
심지어 콘서트라고 곡이 리믹스되어 독무의 안무마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이걸로 며칠 혼자 시간을 잡아먹었었다.
그 결과 꽤 만족스러운 퀄리티로 춤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멤버, 댄서 모두를 환하게 비추던 조명이 서서히 면적을 좁혀 나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고리들의 환호도 점차 줄어들었다.
아마 내 춤을 집중해서 보겠다는 의미로 생각되는데.
‘아니야, 생각하지 마.’
난 부담감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깡그리 날려 버리고 독무를 시작했다.
도중 멍청하게 틀리지 않으려면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