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콘서트 (18)
고유준과 나의 유닛 무대, 주한 형, 윤찬이, 진성이의 유닛 무대가 이어졌다.
유닛곡은 도 PD님이 만든 두 곡 중에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도록 했었다.
“순서에 따라 후반의 유닛이 밝고 귀여운 걸 가져가는 게 나아. 거기다 우리 팀에는 윤찬이가 있다고!”
주한 형은 윤찬이 보유 유닛임을 잔뜩 뽐내며 말했다. 막내들을 핑계로 댔지만 밝은 곡을 하고 싶다는 건 주한 형의 취향일 거다.
그런고로 주한 형 주축의 유닛 ‘나는 삼겹살’ 팀이 밝은 곡 <빌리지>를, 나와 고유준의 유닛 ‘짜장면 먹고 싶어’ 팀이 정반대의 컨셉인 를 맡았다.
는 나와 고유준이 정반대의 세력에서 싸우는 듯한 콘셉트로 비주얼과 퍼포먼스에 중심을 둔 곡이었다.
도 PD님이 말하길 노래나 가사는 관객들의 귀에도 안 들어올 것 같다고.
내가 듣기엔 가사도 중구난방이라고 할까 난해했고, 노래는 제목만큼 강렬했다.
나는 검은 가죽점퍼에 가죽 바지의 의상이었고 고유준은 점잖은 수트 차림이었다.
이게 무슨 조합인가 했지만 무대 위에선 모든 게 잘 어우러졌다.
양 사이드 스테이지에 나뉘어 서 있던 나와 고유준이 각자의 댄서들을 이끌고 무대 중앙에 도착해 가벼운 몸싸움 연출을 선보였을 때 환호성은 극에 달했다.
도 PD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실험적인 무대였는데 반응은 뜨거웠다. 오히려 고리들이 평소보다 더 열광하는 것도 같았다.
역시 스토리나 콘셉트가 확실한 곡이 먹히는 건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과 고리들이 열광하는 곡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유닛 무대였다.
‘짜장면 먹고 싶어’ 팀의 무대가 끝난 이후 ‘나는 삼겹살’ 팀의 무대가 이어졌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예전 팬 미팅 때와 같이 고리봉을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르며 등장한 진성이를 시작으로 윤찬이, 주한 형이 나타났다.
따로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나온 우리와는 달리 댄서들과 섞여 우르르 나오는 모습이 시작부터 무척 활기찬 무대였다.
어떤 무대를 하든 조금의 경직이 있던 윤찬이는 온통 고리들만 있는 콘서트에선 훨씬 편하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세트부터 장난감 마을처럼 꾸며 아기자기한 게, 귀여운 무대였다.
<빌리지> 무대가 끝난 뒤 의상 그대로 멤버들의 단체 무대, 다음은 나와 주한 형, 윤찬이의 토크가 이어졌다.
“네, 다음 무대 주인공들이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우리끼리 오붓하게 대화를 나눠 볼까요?”
주한 형의 말에 관객들이 “네!!” 하고 크게 외쳤다. 토크를 틈타 잠깐 인이어를 뺐는데 고리들의 함성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놀랐다.
“여러분, 즐기고 계세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고리 여러분들이 즐거우신지.”
질문에 역시나 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러 말이 섞여 들려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즐기고 있다는 뉘앙스임은 확실히 알았다.
난 가장 가까운 고리들을 보며 미소 짓고 마이크를 들었다.
“이 조합은 거의 처음 아니에요? 우리 셋이서 따로 토크한 적은 없던 것 같은데.”
“네,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되게 의외지 않습니까? 고리들이 이렇게 셋 따로 부르는 명칭도 있던데.”
“따로 부르는 명칭? 그게 뭐야?”
주한 형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난 피식 웃으며 손으로 주한 형을 가리켰다.
“강주한 라인.”
“강주한 라인이라고 하던…….”
윤찬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주한 형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강주한 라인’이라는 별칭은 SNS를 잘하지 않는 윤찬이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아, 그래? 고리들이 우리 셋보고 강주한 라인이라고 불러? 여러분 그래요?”
“네!!!!”
고리들의 대답에 주한 형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요?”
“…….”
주한 형의 물음에 각자의 대답을 꺼내 놓느라 크게 웅성거리는 고리들과는 달리 나와 윤찬이는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그걸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정말 자각하지 못한 건가?
“주한 형, 형이 그걸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건 양심 없는 거지.”
“현우 너는 아냐?”
“형이 우리 둘만 너무 예뻐한다고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닌가?”
사실 나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주한 형이 나나 윤찬이 편애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강주한 라인’이라는 말이 붙었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윤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똘망똘망하게 주한 형을 바라보고 말했다.
“형, 여기에 대해선 해명이 좀 필요한 게 아닐까요?”
“해명? 음, 해명이라…….”
나와 윤찬이의 마이크가 동시에 주한 형의 입가로 향했다. 졸지에 세 개의 마이크 앞에 선 주한 형은 턱을 쓸며 심각하게 고민하다 말했다.
“여러분, 오해입니다. 난 강주한 라인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줄 몰랐어. 저는 멤버 모두를 동등하게 아끼고 있어요.”
주한 형의 말에 또 관객석이 웅성거렸다. 웅성임의 톤을 보아 주한 형의 주장을 믿는 것 같지 않았다.
“형, 아무도 안 믿는 것 같습니다. 저희 크로노스 회의 한번 더 해야겠습니다.”
“잠깐 잠깐, 이건 진짜 확실히 해야 해. 여러분,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할게요.”
“네, 말씀하시죠.”
나와 윤찬이의 마이크가 다시 주한 형의 입가로 향했다.
“저는 유준이와 진성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말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동생들이에요. 진심으로. 다만.”
“어, 다만?”
“다만 현우랑 윤찬이가 너~무 예쁜 거지.”
“예헤?”
“유준이와 진성이도 예뻐, 근데 현우랑 윤찬이가 너어무 예쁜 거지.”
비장하게도 크로노스 내에 편애가 있음을 공언하는 주한 형에 팬들은 환호했고 나와 윤찬이는 할 말을 잃었다.
“네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난 급하게 마무리하고 화제를 전환시켰다. 짧은 토크라 깊은 이야기보다는 대체로 유닛 무대와 이후 이어진 세트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이, 강주한 라인.”
“저희 뒤에서 다 들었거든요? 저 형 진짜 섭섭하게 하네!”
의상을 갈아입은 고유준과 진성이가 무대로 나왔다. 두 사람은 나오자마자 주한 형에게 항의했다.
“얘들아, 오해야.”
주한 형이 차분하게 해명하는 게 오히려 더 약 올리는 것 같아 얄밉게 보였다.
고유준은 주한 형을 노려보며 진성이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뒤에서 듣다가 기가 차서 저희도 만들었습니다.”
“뭐를요.”
“맞아요! 저희도 라인 하나 만들었습니다.”
“고유준 라인. 저는 앞으로 진성이를 편애하겠습니다.”
“유치하기는.”
주한 형은 코웃음 치며 고유준과 투닥거렸다.
“자 자, 그만하고.”
난 주한 형과 고유준을 떨어트려 놓고 말했다.
“이제 슬슬 다음 무대 준비해야 해요.”
“아아…….”
내 말에 고리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난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도 주한 형, 윤찬이를 이끌고 무대 뒤로 향했다.
“강주한 라인은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고유준 라인, 토크 잘 부탁해요.”
고유준과 진성이가 무대 위로 올라온 직후 스태프들이 빨리 내려오라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단체 무대 두 곡, 이어서 멤버들의 솔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 * *
“여기 물이랑 산소통!”
“현우랑 진성이 빨리 이쪽으로 와.”
무대 아래는 여전히 정신없고 복잡했다. 나와 진성이는 무대에 내려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스태프에게 이끌려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만 했다.
“헉…… 허어…….”
힘들어 잠시 눈을 감고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입엔 산소호흡기가, 이마엔 땀을 닦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손길들이, 그리고 드라이기 바람이 휘몰아치며 머리를 말려 댔다.
난 그냥 우리 팀들에게 나를 맡기고 숨을 고르는 데에 열중했다.
다음은 멤버별 솔로곡 무대. 첫 번째로 올라간 멤버는 주한 형이니까 내 순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눈 위로.”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스타일리스트 누나의 손이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화장을 싹 다 뜯어고치고 머리엔 스페셜 영상 때와 같이 반짝이 브릿지들이 장식되었다.
아이보리색의 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셔츠를 입고 온갖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나니 아주 잠깐의 쉴 틈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무대 뒤로 향했다.
콘서트 도중 쉬기가 불안하기도 하고 멤버들이 무대 하는 모습도 모니터링할 겸.
첫 번째 주한 형의 무대는 무척 어둡고 스산한 세트장에서 시작되었다.
자욱하게 안개가 깔리고 드물게 강한 색조 화장을 한 주한 형이 나무 의자에 앉은 채 노래를 시작했다.
끈적하고 느리게 빌드업하다 후반엔 댄스를 곁들여 강하게.
혼자서 이런 곡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자신 없어하던 주한 형은 무대 위에서 굉장한 몰입력을 보여 주며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연달은 단체곡이 이어진 직후라 힘들어서 그런지 동작에 힘이 풀린 게 보이긴 했지만 조명과 연출이 그걸 티 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형, 파이팅 하세요.”
모니터 중인 내 어깨에 사뿐히 얹혔다 사라지는 손. 돌아보자 <포레스트> 의상으로 갈아입은 윤찬이가 나에게 힘내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반대쪽 무대로 향했다.
주한 형이야 안정적인 게 장점이고, 윤찬이는 고리들만 있는 무대에 긴장이 풀린 게 보여 크게 걱정 안 한다.
난 모니터에서 돌려 <세이렌> 댄서들에게로 향했다.
“여러분,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댄서 중 나이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능글맞게 말하자 댄서 모두가 키득거렸다.
모두 콘서트가 진행됨에 따라 분위기가 달아오른 듯 보였다.
난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중앙 스테이지 아래로 향했다.
<세이렌>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의 댄스라 이 곡이 끝나면 큰 고비를 넘긴 기분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