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443화 (443/475)

21)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7)

그로부터 며칠 뒤, 나와 고유준이 촬영했던 이든의 첫 콘서트 연습 일일 매니저 편이 너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촬영 당시의 고유준은 크로노스가 아닌 일레이티드였으므로 나는 그로 인한 괴리감을 고리들이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반응을 지켜보았다.

-둘만 있으면 나오는 현실말투ㅋㅋㅋㅋ너무 찐친이라 웃김ㅋㅋㅋ

-유준이 저때 엄청 신났었나보다ㅋㅋㅋㅋㅋ

-7:38 이 부분 유준이 표정...ㅠ

└ㅠㅠ현우 노래에 완전 심취한 표정임

-의외로 유준이가 되게 섬세한게 느껴짐 밥 먹는 장소 정할 때 현우 배려해서 일부러 사람 많지 않은 곳으로 정한다던가

└그것도 그렇고 유준이 현우랑 있으면 은근 본래 성격 나오는 것도 좋음 좀더 차분해진다고 해야하나? 편안해 보임

-현우ㅋㅋㅋㅋ맨날 유준이한테만 툴툴대는거 너무좋음

의외로 괜찮은 모양이다.

난 고유준이 평소보다 너무 어른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나를 조심하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팬들은 고유준의 한결 차분해진 모습을 친구와 둘만 있을 때 보이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와 고유준 사이의 대화가 줄어든 것을 편안해서 오히려 대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영상을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달라진 티가 나지 않았다.

나보다 방송물을 몇 년이나 더 마신 고유준의 철판 연기력 덕분인가? 다 알고 보는 내가 봐도 그냥 크로노스의 고유준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이로써 이 영상으로 우리가 싸웠다 등등의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겠다.

“야, 이거 내가 촬영한 거 아니지?”

업로드된 영상에 괴리감을 느끼는 건 나나 고리가 아닌 당사자 고유준이었다.

고유준은 인상을 푹 찌푸리며 댓글이 보이던 노트북 화면의 스크롤을 마구잡이로 올려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누가 봐도 나 아닌데?”

“너 아닌 거치곤 상당히 잘 따라 했는데?”

내가 말하자 고유준의 인상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일레이티드 고유준이 따라 한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었다.

“내가 저렇게 촐랑거려?”

“촐랑거리진 않지만…….”

난 말없이 웃었다. 촐랑거린다기보단 장난기가 심하지.

그런 의미로 시시때때로 장난을 치는 모습은 꽤 잘 따라 했다. 그러면서도 질문 등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게 능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난을 치며 때로는 대화가 산으로 가면서도 중심을 잘 잡고 진행하는 모습은 댓글에서도 호평 일색이었는데, 고유준은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하긴 나 같아도 내 몸으로 다른 사람이 컨텐츠 촬영을 했다 하면 싫겠지.’

잘하든 못했든 그 자체가 기분 나쁠 것이다.

고유준이 투덜거렸다.

“내가 저날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복수의 날을.”

“어우…….”

고유준은 영 껄끄럽다는 듯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는 동안 일레이티드 고유준이 무엇을 했는지 감시하듯 끝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영상을 감상했다.

“그래, 너랑은 좀 다르긴 하지.”

눈떴더니 한동안 내 몸을 다른 사람이 조종하고 있었다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물론 일레이티드 고유준도 자신이긴 하지만 당사자는 상당히 거북하겠지.

“아쉽긴 하다. 같이 하면 좋았을걸.”

그래서 열심히 툴툴거림에 맞춰 한 마디씩 끼얹으며 위로했더니 영상이 끝난 후 녀석은 아까 전까지의 짜증과는 완전 다른 감상 평을 내놓았다.

“너 새삼 노래 되게 잘한다.”

“……뭐?”

“그리고 솔직히 영상 속에 나 되게 어른스럽긴 하다. 짜증은 나는데.”

……얘 뭐야.

반사적으로 정색하며 몸을 뒤로 뺐다. 아까는 싫은 티를 팍팍 내더니 이제 와서?

“팬들은 내가 저렇게 어른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방송이라서 장난 막 치고 하긴 했지만 사실은 어른스럽다고.”

진짜 얘 뭐야.

“짜증 나긴 하는데 앞으로 따라 해야지, 장난치면서 진행하고 어른 같은 표정을 짓는 거. 그래, 뭐 좀 멋지긴 했어.”

일레이티드 고유준은 어른 같은 게 아니고 어른인데.

난 가끔 고유준의 성격을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는데 그게 딱 지금 같은 때다.

당연히 기분 나쁜 상황에서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좋아할 건 좋아하는 게 나랑은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

“왜, 너 좀 허무해 보인다?”

“아니야, 그런 거.”

난 고개를 저으며 노트북을 고유준에게 넘겨주고 일어났다.

“나 슬슬 나가야 돼, 연습하러.”

“벌써? 와,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고유준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던졌다.

“나도 작업하러 가야겠다.”

“힘내라.”

“너도 힘내라.”

나와 고유준은 방에서 작별 인사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고유준은 크로노스의 다음 앨범 작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직 초반 단계라 이리저리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뭐, 내가 고유준을 걱정할 때는 아니긴 하지만.

난 지금 멀쩡히 잘하고 있는 친구보다 나 자신을 걱정해야 할 팔자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태성 형에게 전화했다.

“형, 저 준비 다 됐어요.”

-어, 내려와. 기다리고 있어.

전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든의 첫 콘서트 연습은 그럭저럭 잘 되어 가고 있다.

……잘 되어 가고 있나? 사실 잘 모르겠다.

첫 연습은 그룹 내 상황이 골 때리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끝났지만 지금은 좀 여유를 되찾지 않았는가.

이든으로서의 부족함이 연습을 거듭할수록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아니, 겉으로 봤을 때 크게 티가 나는 문제점은 없다. 그럭저럭 처음 계획했던 진도대로 잘 진행되고 있긴 한데…….

실력적으로 버거워지기 시작한 건 미공개된 곡을 연습할 때부터였다.

이든이 크로노스의 서현우라는 게 밝혀지며 거기에 맞춰 미공개곡에 댄스곡 몇 곡이 포함되었는데 난 이게 너무 어려웠다.

이든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레나 선배님 곡의 감성은 사실 그냥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를 때도 땀이 날 정도로 소화하기 어렵다.

근데 여기에 댄스가 포함되니 영 느낌이 안 살게 된 거다.

처음으로 댄스곡을 연습한 날, 레나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음, 이든이 아닌데? 크로노스 서현우 솔로곡인데?

이든 특유의 감성이 춤만 추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크로노스의 서현우는 맞지만 일단 콘셉트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든의 콘서트는 이든으로 서야 하는데 춤만 추면 너무 아이돌스러워져서 느낌이 살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

‘어느 정도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긴 했는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해 오라고 레나 선배님께 숙제처럼 이야기를 들어서 나름 고민하긴 했지만, 이게 통할지는 잘 모르겠다.

“여어~ 형, 잘하고 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이제 막 예능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진성이와 윤찬이가 차에 탄 채 나에게 인사했다.

내가 내려오는 걸 알고 숙소로 올라오지 않고 차에서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녀올게.”

난 애들이 차에서 내리도록 문을 열어 주고 손을 흔들었다. 진성이는 내리기 무섭게 나에게 매달렸다.

“나도 유준 형처럼 형 연습하는 거 보고 싶다.”

“이번에 너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이요, 숙소로 오는 길에 진성이랑 같이 봤어요.”

고유준의 일일 매니저 편을 보고 왔나 보다. 고유준도 내 연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저런.

“다음에 같이 와도 되는지 한번 여쭤볼게. 들어가. 수고했어.”

난 멤버들에게 인사하곤 차에 올랐다. 진성이는 윤찬이에게 이끌려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크게 팔을 흔들어 잘 가라 인사해 주었다.

차가 연습실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쟤는 어떻게 된 거야?’

진성이에 관해선 여전히 의문이 많다.

고유준과 주한 형은 드문드문 기억이 애매하게 남았다는 티를 냈고, 고유준은 거기에 더해 혼자 추리까지 해 결국 내 비밀에 대해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진성이는?

진성이도 분명 기억이 애매하게 남았을 텐데?

그런데 진성이는 무언가 이상한 기색이 전혀 없다. 뭔가 혼자 고민하는 기색도 없다. 그렇다고 숨기는 게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뭔가 이상한 게 없으면 넘어가면 될 텐데 성격상 찝찝하니 자꾸 신경을 쓰게 된다.

‘윤찬이한테 한번 물어볼까?’

윤찬이는 진성이랑 자주 붙어 있으니 뭔가 이상한 게 없는지 물어보는 게 좋을지도.

‘아니면 고유준한테 상의해 볼까.’

그래도 좋겠다. 녀석은 의외로 시원하게 해답을 잘 내주는 편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픽 웃었다.

상의할 사람이 많아졌네.

창조신의 행동은 대부분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이건 좋다.

백미러를 통해 태성 형이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냥 쿨하게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실실 웃고 있었다.

서둘러 표정을 정리하고 멤버들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지금은 멤버들에 대한 생각보단 연습을 우선하자.

댄스곡과 이든이 아이돌스럽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곧 차가 레나 선배님이 기다리는 연습실에 도착했고 난 나름 생각해 온 계획을 정리하며 차에서 내렸다.

댄스곡이라고 평소처럼 너무 잘 추려고 하면 아이돌스럽다고 할 거고, 이든은 어쨌든 콘셉트상 나와는 별개의 인물로 취급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일단 내 작전은 ‘춤 못 추는 발라드 가수 컨셉’이다.

……이것도 안 된다고 하면 수환 형, 주한 형과 상의해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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