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한번 아이돌-463화 (463/475)

21)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28)

곡과 컨셉을 정하고 나니 남은 건 안무와 대형이었다. 솔직히 나름 비율을 맞추겠다고 고유준을 올드비로 영입했어도 뉴비팀보다 사람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해진 안무를 사람 수대로 새로 짜야 하는 건 꽤 큰 품이 드는 일이었다.

이 팀엔 편곡 잘하는 멤버는 꽤 많았지만 메인 댄서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뉴비팀에는 메인 댄서가 많고 편곡할 수 있는 멤버가 없었다.

참 애매한 밸런스의 두 팀이다.

어쨌든 안무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안무를 지도할 사람이 있기는 해야 하니 결국 내가 나섰다.

“……와.”

난 거울을 등지고 선 채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참 오랜만에 서 보는 위치와 구도였다.

익숙한 자리였는데 이제는 참 낯설게 느껴지는 위치였다.

“서현우, 왜 감탄함? 역시 잘생긴 사람들만 있으니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고유준이 깔깔거리며 제 얼굴을 양손으로 폭 감쌌다. 난 어이없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참 가관이다.”

내가 고유준을 보며 한마디 내뱉자 알뤼르와 시퀀스가 고유준을 보며 키득거렸다.

이 자리도 익숙한 듯 낯선데 새삼 이 조합으로 모여 함께 연습하는 모습도 꽤나 이상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묘한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서둘러 안무 연습을 진행했다.

“일단 <퍼레이드>부터 할게요. 대형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제자리에 서서 따라 하는 것으로.”

<퍼레이드> 같은 경우 챌린지를 진행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몰라도 후렴구만은 알뤼르 시퀀스 할 것 없이 완벽히 외우고 있었다.

더구나 시퀀스는 우리가 데뷔한 이후 레슨을 통해 따로 배우기도 해서 오히려 반쯤 까먹은 주한 형보다 나은 양상을 보여 주었다.

문제는 알뤼르 형들이었는데, 알뤼르 중에서도 특히 다윈 형. 평소에도 안무를 외울 때 시간을 넉넉하게 들여 쏟아부어야 하는 타입이라 지금 당장 퀄리티가 나지가 않았다.

거기다 더해 <달바다> 같은 경우 알뤼르 본인들의 곡인데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싹 다 까먹어 버린 탓에 이마저 내가 가르침을 이어 가야 했다.

아마 <달바다>는 알뤼르의 메인 댄서 세연 형이 외우고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세연 형이 뉴비 팀으로 가 버렸다.

“아, 여기서 이거였어? 이거 아니야?”

“아니, 그건 2절 후렴에서 쓰시는 거고 1절은 이렇게-.”

난 틀린 안무로 따지는 알뤼르 멤버들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동작을 멈췄다. 그러곤 우리를 찍는 비하인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게 맞아요? 향수 여러분, 이게 맞습니까?”

물론 나야 트레이너 시절부터 수많은 연습생들에게 가르치던 게 있으니 안무를 기억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보다는 알뤼르 멤버들이 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나로서는 본인 안무도 기억 못 하는 주한 형과 알뤼르 형들이 별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배한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알뤼르는 정작 카메라에 대고 애교나 부리고 있었다.

“향수 여러분, 아닌 거 아시죠? 아주 잠깐 까먹은 것뿐이에요. 아시죠?”

“사랑해요.”

“럽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난 그들을 보며 코웃음치곤 다시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가 볼게요. <달바다>만.”

“아, 그런데 스톱. 선생님!”

“네?”

다윈 형이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다윈 형이 씨익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달바다> 말인데요. 도입부 누가 해요?”

“당연히 선배님들이-.”

“그거 우리 도입부보다 서현우 도입부가 더 유명해졌는데.”

“오랜만에 그거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알뤼르 형들의 말에 난 고개를 내저었다.

“이 형들 또-.”

시작이네. 차마 카메라 앞에서 저들을 한심하게 보는 듯한 발언은 못 하겠지만 정말.

확실히 아는 사람만 아는, 알뤼르의 숨겨진 명곡,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던 무대 등으로만 알려져 있던 <달바다>의 인지도를 크게 놓인 건 우리 크로노스와 <픽위업> 덕분이긴 하다.

실제로 도입부도 객관적으로 알뤼르 형들의 도입부보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시작했던 그게 훨씬 더 유명했다.

하지만 이걸 합동 콘서트에서 알뤼르와 같이 무대에 올랐는데 내가 했다간 향수들이 얼마나 분통 터지겠는가.

난 고개를 내저으며 형들에게 말했다.

“그건 진짜 아니에요. 그냥 형들이 침대에 누워서 시작해. 그게 좋겠…….”

어라,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어쨌든 유명해진 건 침대에 누워서 하는 도입부와 <픽위업> 당시의 편곡이 들어간 <달바다>지만 알뤼르 형들은 늘 오리지널로만 불렀으니 향수들도 편곡 버전 <달바다>를 알뤼르가 부르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분명 있을 것이다.

향수들한테 특별한 이벤트가 될 테지.

“진짜로 편곡된 버전으로 알뤼르 형들이 부르면 되게 좋을 거 같은데?”

내 말에 알뤼르 형들은 ‘오오’ 작게 감탄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까?”

“오오, 근데 그러면 <퍼레이드>는?”

가만히 듣고 있던 고유준이 물었다. 알뤼르가 바뀐 버전의 <달바다>의 메인을 맡는데 <퍼레이드>는 따로 편곡이 안 들어가느냐는 뜻이었다.

<퍼레이드>는 크로노스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니만큼 이미 다양한 버전으로 여러 번 편곡되었던 곡이다.

이게 더 편곡될 버전이 있을까?

그러자 주한 형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퍼레이드>도 힘줘서 편곡해야지. 이날을 위해서 아껴 둔 컨셉이 있거든.”

“뭔데?”

“<퍼레이드>를 알뤼르, 크로노스, 시퀀스가 단체로 퓨전한복 입고 하면 되게 멋지겠다. 그렇지?”

“<퍼레이드> 오리엔탈 버전이야?”

주한 형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렇지. 서커스 컨셉이었는데 이거 편곡에 따라서 서커스 특유의 날렵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동양풍으로 살릴 수 있을 것 같거든.”

“좋네.”

올드비의 모든 멤버들이 새로운 컨셉에 대한 이야기들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난 그들을 무거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기요, 여러분?”

“어?”

“네?”

시끄럽던 올드비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올드비 멤버들은 다 좋은데 너무 여유가 있는 나머지 자꾸 일이 딴 곳으로 세는 게 문제다.

“저희 연습은 안 합니까?”

내가 묻자 그제야 멤버들은 ‘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버전이 어떻고 편곡이 어떻고 그건 일단 연습이 끝난 후에 해도 전혀 늦지 않았다.

* * *

올드비, 뉴비들의 연습이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들의 연습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모처럼 세 그룹의 일정을 힘들게 맞춘 날, 알뤼르가 연습을 마치고 돌아간 뒤 크로노스와 시퀀스는 다시 만나 또 다른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아, 진짜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좀 빠지기는 빠졌다.”

일성 형이 모여 있는 멤버들, 일명 ‘오리지널 크로노스’와 시퀀스의 에온, 병관, 온세를 둘러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오리지널 크로노스에 참여했던 크로노스를 제외한 연습생들 아홉 명 중 시퀀스로 남아있는 멤버는 단 네 명.

나머지는 데뷔를 포기하거나 데뷔하기 위해 다른 소속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보니 파트에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른 <히스토리>는 멤버 한 명 한 명이 전부 각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파트를 구성해 두었던지라.

“파트 분배를 다시 해야 해.”

그리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흠, 근데 얘들아.”

크로노스와 시퀀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 실장님이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의 대화에 참여했다.

“이것도 결정해야 해. <오리지널 크로노스>끼리 무대에 설 건지, 크로노스와 시퀀스가 무대에 설 건지.”

“아…….”

다른 곡도 아니고 팬들이 서사를 다 알고 있는 곡이 <히스토리>다 보니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그때 함께했던 멤버들만 참여해서 감동을 재현할 것인가? 시퀀스 모두가 무대에 서며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무대를 만들 것인가.

“아, 저희는 괜찮아요!”

“맞아요. 저희도 오리지널 크로노스 무대 너무 보고 싶고.”

“약간 참여하면 있어선 안 될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고요.”

병관, 에온, 온세가 차례대로 말하며 자신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영 괜찮지 않았다.

같은 멤버인데, 열심히 하고 있는 후배들인데 어떻게 저들을 빼고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아니, 나는 그래도 같이 서면 좋겠다고 생각해.”

내 말에 주한 형이 빠르게 덧붙였다.

“맞아. 어차피 멤버 개개인별로 각자가 정한 가사니까 너희도 한 파트씩 가사 새로 지어서 같이 무대에 서면 돼.”

“……진짜요?”

묘하게 씁쓸하던 병관, 에온, 온세 세 사람의 눈빛이 말똥말똥하게 빛났다.

주한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픽위업> 때 <히스토리>는 멤버 모두가 혼란스러울 때 부른 거라 곧 이루어질 미래에 대한 약속을 쓴 거야.”

그런데 그때 우리가 기약했던 미래는 시퀀스가 데뷔하며 이루어졌다.

우린 곧 있을 합동 콘서트에서 무럭무럭 성장한 모습으로 결국 다시 같은 무대에 서게 된다.

그러니 이번엔.

“이번엔 이루어진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돼.”

주한 형의 말에 시퀀스의 멤버들이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현재엔 세 사람이 있다.

이제 오리지널 크로노스는 아니지만 대신 크로노스와 시퀀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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