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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귀환록-144화 (144/282)

144화.

"어서옵셔 손님들!"

객잔에 들어온 일행들은 객잔주인의 환대에 당황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들어가는 객잔마다 냉대를 받던 일행들이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다른 대우를 받다니.

대도시의 객잔주인이 교인과 신교외인을 분간해내지 못할 리도 없었다.

혹시 여기 객잔만 외지인에 대한 차별이 없는 건가?

상아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객잔주인에게 물었다.

"저희는 천산신교의 교인이 아닙니다. 그래도 여기서 식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렴요! 자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병철아~! 여기 협객손님들을 이 층 제일 좋은 자리로 모셔라!"

탁자를 정리하다 말고 뛰어온 점소이가 일행들을 이 층으로 안내한다.

천산의 전경이 훤히 보이는 객잔의 일등

일행들은 여전히 어리둥절 해하면서도 점소이를 따라 자리에 착석했다.

지찬이 답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거, 분위가 어제랑 좀 많이 다르지 않나?"

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도 어제처럼 적대적인 시선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상아가 문득 조윤을 쳐다보았다.

"혹시, 조 소저 때문이 아닐까요? 북적을 위해 북적들과 싸우는 흑사자군의 천인장이시잖아요."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조윤은 그러지 않을 거라 여긴다.

"천산신교의 미움을 받는 건 제 조부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저희는 존경보단 두려움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하긴, 야협들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광주에 흑사자군이라고 너그러울 교인들이 아니었다.

서로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았지만 역시 영문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 사이 객잔의 주인이 직접 주문을 받으러 이 층으로 올라왔다.

객잔주인을 힐끗 쳐다본 진삼이 말했다.

"직접 물어보면 되지."

진삼은 다가온 객잔주인에게 대뜸 질문했다.

"객주. 광주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좀 다른 것 같소. 혹시 하루 새에 무슨 일이 있었소?"

객잔주인은 그런 진삼의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이 씩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하루가 아니라 하루아침 사이에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오?"

"광주 앞바다의 왜적들. 그 골칫거리들을 도제께서 몽땅 소탕해주셨다지 뭡니까."

깜짝 놀란 일행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침 일찍 천산을 내려가셨다더니, 그래서였구나.

객잔주인은 고개를 숙여 어제 일행들이 겪었을 곤경에 대해 대신 사과했다.

"그동안 오해가 있었던 거지요. 우리는 협객들이 백도검문의 편에 서서 신교를 저버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협객 중의 협객이신 남궁의 도제께서 친히 광주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역시 어르신은 다르구나.

도제를 칭송하는 객잔주인의 모습에 상아의 얼굴이 한껏 밝아진다.

"도제께서는 절대로 협의에 차별을 두실 분이 아니십니다.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군요. 다른 협객들도 곧 도제를 본받아 광주를 찾게 되겠네요."

"아무렴요! 여기 협객들께선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혹, 안휘에서 오셨는지?"

"저희는…."

익숙하게 신분을 밝히려던 상아는 곧 입을 다물었다.

아직 정도맹에 대한 경계마저 누그러지기엔 너무 이르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훌륭했다.

"하긴 협객들이 어디서 오셨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빌어먹을 백도검문 놈들만 아니면 되었지요. 애초에 신교에 선심을 써줄 놈들도 아니잖습니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치 없는 지찬이 입을 열려 하였다.

"엥? 여기 두 사람은…."

진삼이 즉시 지찬의 입을 틀어막아 불상사를 막아내었다.

상아가 진삼을 향해 몰래 엄지를 치켜올렸다.

호영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하하. 하하하. 그렇죠. 백도검문은… 아직. 하하하. 여기 푸짐하게 한 상 차려주십시오. 돈 걱정은 마십시오."

"아무렴요. 자 여기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객잔주인이 뒤에 숨기고 있던 술병하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새까만 자기병.

딱 보아도 은자로 주어야 할 값의 술이었다.

"이걸 왜 저희에게?"

상아가 의아해하며 묻자 객잔의 주인은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작년에 고기잡이 일을 하던 우리 둘째 놈이 왜적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원수를 갚아주신 도제께 보답할 길은 없으니, 협객들께라도 갚아야지요. 아직 다른 교인들은 협객들에게 너그럽지 못할 터니, 대신 제가 드리는 사과의 선물이라고 여겨주십시오."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일행들.

객잔주인은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일 층으로 내려간다.

상아가 후회가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협객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용기를 낼 수 있었어도."

상아가 자책하자 진삼이 아닌 척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신교의 권역에 가지 말라고 권고를 내린 건 정도맹이다. 네 탓이 아니다."

"저는 정도맹의 척마대주이기전에 협객입니다. 맹의 권고는 권고일 뿐이에요."

훌쩍, 눈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상아가 자책으로 인해 눈물까지 흘리는 건가 싶어 놀란 미화공주가 그녀를 살피려 하였으나, 상아가 아니었다.

소리를 쫓은 일행들이 시선이 호영에게로 모였다.

"이것이 강호의 온정… 역시, 강호는 정말 멋진 곳입니다!"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호영에 일행들은 꾹 입을 다물었다.

지찬이 추공을 툭툭치며 물었다.

"거, 송 동생이 무림잡서를 좀 많이 읽었나?"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추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많이 읽으시긴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객잔주인의 당부로 숙수가 정성을 쏟아부은 음식들이 올라왔다.

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

일행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미화공주는 차마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백께선 고생까지 하셨을 텐데, 우리끼리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그녀의 걱정에 지찬이 걱정말라는 듯 장담한다.

"걱정마쇼 누님. 스승님께선 지금쯤 천산에서 만찬을 즐기고 계실 거 아니요."

"그야 그렇지만."

"우리끼리 밥 한 끼 먹었다고 섭섭해할 분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기 했지만 그게 제자인 지찬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먼저 와구와구 음식을 쓸어 담기 시작한 지찬을 본 진삼이 피식 웃었다.

남궁적의 식사야 다시 대접하면 될일.

일행들은 우선 주린 배를 채운다.

그리고 한참 식사가 계속되던 중.

창밖에 보이는 천산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는 걸 발견한다.

* * *

천산을 내려오자 일행들이 남궁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적의 심각한 표정을 본 일행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연기를 보았습니다. 혹, 천산에 큰 변고라도 생겼습니까?"

호영의 질문했지만 남궁적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침울해진 눈으로 자신이 내려온 천산을 돌아본다.

남궁수혁이 말했던 3개월은 광주에서 악양까지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단리수혁의 광기를 엿본 남궁적은 하루라도 빨리 악양으로 가 천곽과 담판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지난날 노야가 했었던 말이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적아. 너는 아느냐? 너와 천곽이 싸운다면, 너는 죽는다.

노야에게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 말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천곽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했다.

사실, 패배나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천곽을 막지 못했을 때 그 후에 일어날 일들.

단리수혁이 준비 중인 거대한 폭풍이 문제였다.

마치 누군가 등을 떠민 것처럼, 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폭풍우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적은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기련산에 있었다면 누구도 이 폭풍우를 막아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마음을 굳힌 남궁적이 다시 등을 돌려 일행들을 바라본다.

‘사십 년 전과 다르지 않다. 그때의 영웅들께서 우리의 강호를 위해 헌신하셨던 것처럼, 내 차례가 되었을 뿐.’

이번에도 그때와 같이 천운이 따라주길 간절히 빌어 볼 수밖에.

그런데, 일행들 중 왠지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너는?"

"흑사자군의 천인장 조윤. 도제를 다시 배알 하나이다."

조윤이 왜 여기 있냐는 눈빛에 일행들은 지난밤에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적은 기특한 눈으로 조윤을 쳐다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 신세를 졌구나."

"황자 전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어린 나이에 조현의 아래에서 북방에서 헌신하는 것도 큰 위업이거늘. 겸손할 것 없느니라."

"조부와 제께서 이루신 업적과, 오늘 광주에서 행하신 협행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일입니다."

계속 겸손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남궁적은 더욱 흡족해한다.

호영을 한번 쳐다본 그가 물었다.

"황자를 데리고 바로 북경으로 갈 예정이더냐?"

"예. 전하를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소신이 직접 모실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정이 들기도 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서 가보거라."

광주에서 북경까지라면 천하를 가로지르는 먼 여정이 될 터.

육로로 간다면 족히 반년은 걸릴 거리였지만 남궁적이 광주의 왜적들을 소탕한 덕분에 뱃길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황태자의 신하들의 눈을 피하는데도 적격이었다.

일행들은 호영이 떠난다는 사실에 섭섭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헤어질 인연은 호영만이 아니었다.

"사백님. 여정을 함께하고 싶었으나 소녀도 급히 항주로 가봐야 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미화공주였다.

뜻밖의 선언에 남궁적가 물었다.

"항주로? 어떤 일로?"

잠시 뜸을 들이던 미화공주가 말했다.

"고려와 관련된 일입니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걸 용서하소서."

아쉽기 그지없었으나 그런 사정이라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적은 차라리 잘됐다는 얼굴을 했다.

"북경으로 가는 배를 같이 타면 되겠다. 네가 함께 있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다."

해적이든 수군이든 미화공주가 함께 있다면 안심이었다.

바다 위에서 그녀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다른 일행들은 미리 언질도 주지 않은 미화공주에게 무척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애초에 악양에 도착한 후에 헤어질 예정이었던 미화공주였다.

다만, 기회가 된 김에 조금 서두르기로 했을 뿐이었다.

슬쩍 눈을 돌린 미화공주의 시선이 호영과 마주친다.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힌 호영이 머리를 긁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분께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꼭 다시 뵙겠습니다."

코를 문지른 지찬이 커다란 손으로 호영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송동생! 꼭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그거 알지?"

지찬이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말씀혔다."

붉게 물들었던 호영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무, 무슨 소리를…."

진삼도 그에게 말했다.

"나중에 호위무사가 필요하면 연락하시오. 황자 전하라면 검가보다 급여는 두둑하겠지."

"그럼 저야 영광입니다 하 대협!"

상아도 말했다.

"저도 협행 중에 북경 근처에 간다면 꼭 들릴게요. 바쁘신 황자님이 만나주실 줄은 모르겠지만."

"아무렴요. 한 여협의 명성은 황실에서도 자자한걸요."

"그때는 척마대주가 아니라 천중일협일 거랍니다. 언니도 볼일을 마치면 다시 볼 수 있겠죠?"

미화공주는 조금은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그럼. 항주로 들렀다 곧바로 악양으로 갈 예정이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게야."

"다행이네요. 전 또 고려로 돌아가시는 줄 알고."

"내가 널 놔두고 어찌 바다를 건널까."

서로 갈 길이 바쁜지라 오랫동안 여운을 즐기지는 못했다.

미래를 약속한 일행들은, 이제 각자의 갈 길을 향해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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