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눈앞이 핑 돌며 어지럼이 밀려왔다.
“쉬고 있어라. 더 움직이다간 죽을지도 모르겠으니.”
“미안…… 하다.”
목이 반쯤 베어진 천사장은 더 이상 싸우기가 어려웠다. 지금만 하더라도 베어진 목을 손으로 움켜잡고 겨우 신력을 이용해 치료에 힘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하나였다.
“움직임은 느려졌지만…… 힘은 더 강해졌군.”
“마기를 다룬다.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마기는 악마가 다루는 힘이었다.
그들은 지금껏 인간이 마기를 다루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인간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윤재가 인간이 아니라면 이해는 되었다. 그 편이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아니. 마력도 함께 다루는 걸 보니 인간은 맞다. 단지 조금 특이한 경우일 뿐이지.”
“특이한 경우?”
“저 녀석이 열쇠라는 뜻이지.”
확신에 찬 목소리.
그 목소리는 주위로 선명하게 퍼져 나갔다. 그러자 살아남은 다른 세 천사장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 녀석이…….”
“역시나.”
마력과 마기를 동시에 다루는 인간.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이런 특수성이 열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그들이 모시는 왕, 메타트론만 하더라도 천사들의 열쇠였으니 인간들 쪽 열쇠도 그만큼 대단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추측.
하지만 그 추측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내가 마기를 다룰 수 있었던 건 분명 족쇄 덕분이니까.’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단순한 생각이 꼭 들어맞는 아이러니한 경우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들이 인간을 무시하는 경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아마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정규와 로이스, 엘빈과 김진석.
그들 모두 자신과 비교해서 크게 부족함이 없는 해당자들이었다. 아마 그들을 쫓아 간 대천사들 역시 저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가능성이 컸다.
윤재는 그들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속으로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내가 열쇠다.”
“……역시나.”
“으음…….”
네 명의 천사장들은 윤재의 말에 신음을 삼켰다.
그들의 눈빛에 경계와 함께 굳은 결의가 담겨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윤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윤재는 여전히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희들,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나?”
“뭘 말하는 거지?”
“너희는 원래 대천사들이 올 때까지만 날 묶어 두려던 것 아니었나? 그런데 이게 뭐지?”
윤재는 세 곳의 방향을 각각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도 쫓아오는 녀석이 없는데 말이야.”
“…….”
윤재의 말은 정곡이었다.
30여 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30분이 아니라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누군가 쫓아왔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뒤를 쫓아오지 않고 있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품고 있던 의문과 불안감.
그것이 윤재의 말 한마디에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천사장들은 물론이고, 윤재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천사들 모두가 동요하기 시작한다.
윤재는 그들의 동요를 느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희, 왜 내가 이런 말을 해 주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시간이 너희 편이라 생각했어?”
츳, 츠츠츠-
“아마 아닐걸?”
“이건…….”
윤재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규모.
천사장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벌고 있었나?’
천사장들은 지금껏 대천사들이 뒤쫓아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착오가 생긴 것인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따라오지 않고 있었지만, 시간이 자신들 편이라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한데 그게 착각이었다.
방금 전, 시간을 벌고 있었던 건 바로 윤재였다.
츠츠츠-
불길한 기운이 윤재의 검에 감돌았다.
천사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돌렸다.
“피해야……!”
츠아아아아아-!
그 순간, 윤재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세상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더니 돌연 색이 사라졌다. 천사장의 사고가 끊어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루엘, 마가엘-!”
“천사장님!”
반대쪽에 있던 천사들과 천사장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목청껏 소리쳤다.
그들은 한순간에 수백 명의 천사들이 핏물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검을 한 번 내질렀을 뿐이었다.
그런데 방출된 마력과 마기가 뒤섞여 단순에 두 명의 천사장과 함께 수백의 천사들이 사라졌다.
위기감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만약 윤재의 검이 자신들에게로 향했다면, 자신들 역시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츳, 츠츠츠-
다시 한 번, 윤재의 검에 마력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방금 전과 같은 현상. 이제는 둘밖에 남지 않은 천사장 우루엘은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도망쳐야 돼.”
우루엘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천사장이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소리냐?”
“모, 모르겠나? 이대로 있다간 다 개죽음이야.”
“그렇다고 도망치자는 소리냐? 천왕의 명을 어기고?”
“천왕께서는 열쇠를 죽이고 조각을 찾아오라고 하셨지, 우리보고 다 죽으라고 하신 게 아니야. 너야말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나?”
“헛소리를…….”
츠아악-!
말을 잇던 천사장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창을 휘둘렀다. 방금 전과 같은, 거대한 마력과 마기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검격이 날아왔던 것이다.
파즉, 쩌어어엉-!
천사장의 창이 검격과 부딪혔다. 끝없이 증폭된 마력의 검격을 정면으로 받아친 천사장은 눈을 부릅뜨며 뒤로 주륵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