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6 page. 18 디저트 그랑프리 본선 =========================
[연참 2 / 2]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관객석에 있던 라히안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소란은 거셌다. 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에서 어찌 부정 의혹이 불거지는지, 모든 참가자를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번져 나갔다.
“확실히 골치 아프게 됐군.”
프란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코헨은 그의 바람대로 얌전히 넘어가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저건 릴리 나름의 전략이기도 해. 당장 사태가 마무리되면 대회 측에서는 조사를 철저히 할 테지. 릴리의 의사가 어떻든 그녀는 참가권을 사고파는 무리와 접촉했었어. 의혹이 제기된 이상 잠자코 있다면 괜한 의심을 살 거다.”
“……으, 완전 찰거머리가 붙었네. 저 노친네는 괜히 나서서 본전도 못 찾고.”
이 자리의 모두가 증인이 되니 코헨은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그래 봤자 앞으로 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것 정도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되더라도 저 코헨이 눈 한 번 끔벅할까. 지금껏 그래왔듯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디저트 그랑프리는 파티시에의 꿈. 곧 릴리의 꿈이기도 하다. 그걸 흙발로 짓밟고도 아무 죗값도 치르지 않는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본전? 아니다. 애초에 아무것도 걸지 않았을 상대다.
“제 권세를 믿고 저런 짓을. 이 나라의 권력 구조는 한 번 흔들릴 필요가 있어.”
“……뭐? 생각이 너무 멀리 간 것 아냐?”
*
“전 참가권 매매를 제안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거절했고, 그 상대는 다른 죄로 투옥되었어요.”
릴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빚을 빌미로 협박받은 것, 형편이 좋지 않은 파티시에는 이런 경험을 숱하게 겪었을 것이며, 모든 파티시에의 영광인 이 디저트 그랑프리에 몹쓸 일이 다시없기를 바라며, 어떤 조사에도 응하겠다고.
진심은 통한다. 누구처럼 말을 지어낼 필요도 없었기에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점차 여론은 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이 납득하셨으리라 믿소. 저 소녀의 용감한 고백으로 부정행위가 밝혀졌군.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파티시에를 철저히 검증할 것이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요.”
이견은 없었다. 논란이 가라앉자 릴리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셨습니다. 약간 늦어졌지만 예정대로 시상식을…….”
“잠깐만요!”
이번에는 또 뭐야? 릴리는 지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상대를 확인했다.
‘클라냐 씨?’
릴리는 안심할 뻔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상대며, 코헨과 달리 긍지를 가진 파티시에니까.
“아직 레시피 도둑 건에 대해선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았는데요?”
클라냐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첫인상 그대로다. 하지만 릴리는 자신을 향한 악의를 느꼈다.
“코렐 쿠키의 파티시에 클라냐 양, 의견 있습니까?”
“전 저 파티시에의 옆자리여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녀의 케이크에 사용된 퍼지는 저희 가게의 ‘쫀득달콤 퍼지’ 상품과 일치했어요. 아쌈이라는 특색을 더하긴 했지만, 네. 베낀 레시피를 살짝 변형했을 뿐이죠. 또 아이스크림은 로즈로사의 것과 같았고요. 보통 스이카 산 코코아 가루를 쓰지 않나요? 특이하게도 똑같이 안드로시아 산 코코아 가루를 쓰더군요.”
클라냐는 제 디저트를 소개할 땐 실수를 연발한 주제에 남을 모함할 땐 능수능란했다.
“말씀하신 퍼지는 제가 만드는 중 클라냐 씨 본인께서 조언해주셨는데요?”
“저희 가게의 레시피와 지나치게 흡사해서 경고로 한 말이었죠. 눈치껏 훔친 레시피를 포기할 줄 알았다고요. 고작 아쌈을 첨가했다고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독특한 발상이라며 칭찬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릴리는 클라냐를 오늘 처음 알았고, 그녀가 소속된 코렐 쿠키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레시피라면 더더욱 알 도리가 없고.
“코코아 가루는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제가 사는 딜카넬드는 작은 도시라서 여러 제품이 없어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코코아 가루가 안드로시아 산일뿐인데요. 클라냐 씨도 딜카넬드에서 가게를 운영했다면 분명 같은 코코아 가루를 썼겠죠.”
릴리는 당당했다. 일부러 안드로시아 산 코코아 가루를 쓴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다. 무염버터가 그러했듯이.
“어머, 그래요? 제가 얼마 전에 들린 빨간 모자에서는 스이카산 카카오 가루를 쓰던데?”
그리고 클라냐는 여유 만만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말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비엔나 씨는, 그러니까 그 파티시에는 수도에서 디저트 공부를 했어요. 그때 뚫은 루트가 있으니 재료를 구할 수 있었겠죠.”
산 넘어 산이다. 코헨이 물러나니 이번엔 클라냐가.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퍼지는 밑밥을 깔기 위함이었구나.’
속상한 감정은 제쳐두고 당면한 골칫거리에 맞서야 했다. 하지만 오늘만 벌써 두 번 문제에 휘말렸다. 의혹은 겹치고 쌓이면 그 자체가 개연성이 되고 만다. 끊이지 않는 잡음은 혹시, 설마, 그리고 역시로 이어지니까.
“레시피는 당장에라도 검증할 수 있어요. 아니,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릴리는 심사위원을 향해 말했다. 클라냐의 말다툼은 그쯤 하면 됐다. 길어져서 좋을 것도 없고.
“저도 참견 좀 할게요.”
파티시에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밤 크레이프를 만들었던, 그리고 클레이든의 시선을 착각하고 들떴다가 좌절했던 여자였다.
“로즈로사의 파티시에 리스 양, 물론 당신도 의견을 내놓을 자격이 있습니다.”
“릴리 양이 저희 아이스크림을 베꼈다고 했죠? 그건 아닌데. 그럴 리가 없거든요.”
리스의 딱 자른 부정에 다시금 수군거림이 흘렀다.
“아, 솔직히 입 다물고 넘어가고 싶은데 클레이든 씨가 알아차려서 말하는 거예요. 로즈로사는 전 재료를 안드로시아 산을 쓴다고 표방하지만 코코아 가루는 안 써요. 그러니까 코코아 가루만이에요. 다른 건 다 쓰니까 이거 과대홍보 아니야! 이게 레시피의 핵심이라 베꼈다면 이걸 따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그렇다고요, 이상.”
리스는 과대홍보가 아님을 재차 강조한 후 입을 다물었다.
“……라고 하는군요. 고작 레시피 하나가@ 비슷하다고 겹쳤다고 그녀를 레시피 도둑으로 모는 건 근거가 빈약합니다.”
“그 말이 옳소. 우리 심사위원들은 미각만큼은 탁월해. 사소한 레시피 차이 정도는 잡아낼 수 있지.”
참가한 파티시에들이 만드는 것의 전문가라면 심사위원은 맛보고 분석하는 것의 전문가다. 그들은 자신의 감각을 신뢰했다.
“그럼 저 논란 많은 파티시에를, 결승 진출자로 인정한단 말인가요?!”
“클라냐, 그만두지 그래? 레시피는 일정 부분 같을 수밖에 없어. 같은 걸 만드는 거잖아. 혹 자신의 레시피를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다른 사람은 떠올릴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건가?”
잠자코 있던 클레이든이 말했다. 그뿐 아니라 지켜보던 파티시에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꼭 한 번씩 말 나오잖아. 누가 자기 레시피를 베꼈다고. 검증하면 다 걸리는데 심사위원들을 허투로 보는 것도 아니고.”
“남이 우승해서 뭐든 걸고넘어지려는 건 아니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프로인데.”
“솔직히 그 케이크, 점수 충분히 받을 만했어.”
아는 사람도 아니다. 기껏해야 한 번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릴리를 거들어주고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
릴리는 자신이 비비아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역시 우승만을 위해 갖은 수를 쓰는 사람보다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는 사람이 더 많아.’
릴리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그건 우승할 거라는 확신과는 약간 다르다. 우승하든 탈락하든 그녀는 훌륭한 파티시에였다. 훌륭한 파티시에의 조건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디저트를 전하는 것이지 결코 우승의 여부로 좌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19명의 파티시에 중에, 분명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훌륭한 파티시에의 조건에 충족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그녀로서는 흡족했다.
“레시피 도둑 건을 포함하여 철저한 조사를 할 것을 약속드리지.”
“이렇게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꼭 시상식을 진행해야 합니까! 조사가 진척된 후에…….”
“상황은 명쾌하고 명백해. 재차 말하지만 조사는 철저하게 진행하겠소. 클라냐 양 당신을 포함해서.”
“하지만!”
클라냐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했다. 그녀는 이겨야 했다. 이겨야만 했는데.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피가 입안으로 스며든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만큼 노력했으면 한 번쯤 우승을, 아니 하다못해 결승진출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노력은 다들 하니까요.”
“……뭐?”
클라냐는 깜짝 놀랐다. 저 신인 파티시에, 남의 마음도 읽을 수 있나?
“얼굴 가득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잖아요, 클라냐 씨.”
“내 생각은 알아도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모를걸.”
“그거야 당연히 모르죠.”
그 차분한 목소리에 클라냐는 순간 울컥했다. 잠을 줄여가며 남몰래 디저트를 만들던 시간, 관련된 책을 빠짐없이 읽으며 연구하던 시간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내 노력의 무게를, 가볍게 입에 담지 마!”
“모두 노력하고 있어요. 그 결과로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다들. 당신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노력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애초에 그 노력을 남이 알아줘야 하는 건가요?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당신 자신은 알고 있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릴리의 말에 클라냐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 이번에는 약간 다른 감정이었다.
노력.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 자신은 제 노력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나는 졌어. 파티시에로서의 나는 끝이야.”
릴리는 대답하지 않고 클라냐를 그저 바라보았다.
“우리 코렐 쿠키는 대대로 남자가 물려받았어. 이번에도 내 남동생이 후계자가 되겠지. 실력으로는 내가 앞서는데도! 부모님께 하소연해도, 실력을 내세울 거면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차지하고 나서 말하라고 하더군. 그렇지 않으면 후계자는 예정대로 될 거라고.”
“……후계자가 아니면 파티시에는, 하지 않나요?”
릴리는 의아했다. 자신의 노력을 내세웠으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아니. 코렐 쿠키의 주인이 되는 건 내 오랜 꿈이었어. 그걸 위해 애썼지. 평소에 하던 노력 말고도 다른 노력을 곁들여서.”
“설마?”
“응, 바로 그 설마.”
우승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 쓴 수단 때문에.
‘레시피 도둑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던 코헨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코헨이 참가권을 샀다면 레시피 도둑도 그이길 바랐었는데. 릴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정은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잘못하셨네요.”
“……알아.”
릴리는 클라냐를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훌륭한 파티시에였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제 잘못을 뼈저리게 알고 있겠지. 그 노력의 무게는 무엇보다도 더 확실한 단죄를 내릴 것이다.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하지도 않았다. 비비아에게 건넸던 손을 그녀에게 건네지 않은 까닭은, 그녀는 순수한 실력으로 본선에 진출한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충분한 경력도 실력도 갖췄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기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시상식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이의 있습니까?”
물론 없었다. 릴리는 찬사 속에서 결승 진출을 확정받았다.
예선과 본선, 그리고 다음 단계로.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0^!!
예전에 70화?쯤 완결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넘을 것 같아요. 80화? 약간 넘길 것 같아요.
아무튼 완결까지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그리고...몰랐는데... 3화에 2화 내용을 올려 뒀었네요...헉... 알려주신 두꾸님 님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퇴근하자마자 후딱 고쳤어요... 왜 조아라는 폰으로 수정이 안 되는 걸까요? ㅠㅠ;;;
내일부터 날씨가 더 더워진대요. 무더위에 이길 수 있도록 체력 관리 잘하시고, 내일도 좋은 하루 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