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page. 23 마법을 담은 빗방울 케이크 =========================
[연참 3 / 3]
“죄송합니다. 감히 한눈을 팔다니, 부디 용서를…….”
시녀는 벌벌 떨며 사죄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는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자신을 밀쳤다는 것도 몰랐다.
“일부로 부딪힌 것도 아니잖은가. 괜찮네.”
왕세자가 너그럽게 말하자 주위에서 오, 하고 작은 소란이 일었다.
언뜻 보기에는 시녀의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하는 관대한 왕세자다. 하지만 릴리는 전말을 알았다.
‘지가 일부로 부딪혀놓고는?’
재수도 없고 어처구니도 없었다.
“그대도 수고했다. 내 디저트를 지켜주다니.”
그는 표정 변화도 없이 기사의 입에 물린 디저트 접시를 꺼냈다.
‘머, 먹는 거야?!’
그 모습을 본 릴리는 깜짝 놀랐다. 저 인간의 유일하게 괜찮은 점이 있다면 접시에 남의 침이 묻었는데도 디저트를 버리지 않고 먹는 게 아닐까.
“새것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흠? 아니다. 디저트에 묻은 것도 아니지 않나. 이걸 버리는 건 낭비지.”
또다시 한번 우와, 하고 소란이 번졌다. 사람들은 너그럽고 검소한 그의 모습을 눈에 톡톡히 담았다.
“이미지 관리 한 번 열심히 하네.”
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세자님이 고르신 디저트, 특이하군요! 어쩜 이런 걸 발견하셨을까.”
“크, 역시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다행이라면 소란 때문에 몰려든 왕세자의 일행이 그의 안목을 칭찬하며 같은 디저트를 골라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
‘이건 고맙다고 해야 되나.’
릴리는 다시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자리를 뜨려다 보고 말았다. 왕세자가 침 묻은 제 접시를 다른 사람의 것과 슬쩍 바꾸는 것을.
와, 역시 진짜 재수 없어.
*
“우리 측 시녀를 용서해줘서 고맙군.”
“왕족은 마땅히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지요.”
프란시스는 뒤늦게 왕세자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예고도 없는 방문이지만 저만한 신분을 방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직접 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군.’
이런 사고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진다. 음식을 나르던 시녀와 부딪혀 옷을 버릴 뻔한 사고는.
그 별것 아닌 사고 때문에 시녀를 잡으려 드는 귀족도 많았다. 하물며 왕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강자는 때때로 약자 앞에서 한없이 악랄해진다.
‘그렇다고 선량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프란시스는 상대를 냉정하게 살폈다. 사람 좋게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불쾌했다. 그 미소가 어색하다고 할까.
꼭 뭔가를 감춘 것처럼.
“이런 디저트는 처음 봅니다.”
“그대가 가져온 디저트는 올해 디저트 그랑프리 우승자가 만든 거네. 틀림없이 맛있을 테지.”
“그 대회라면 저도 소문을 들었습니다. 벨테인 제국의 명물 중 하나라고요.”
왕세자는 정중하게 말했다. 굳이 말까지 높여가며. 그는 상대를 열심히 치켜세운 뒤 우쭐한 순간을 노릴 계획을 남몰래 세우고 음흉하게 웃었다.
“전하께서도 이 디저트를 맛보셨습니까?”
“아직. 그럴 시간이 없었군.”
“딜트! 어서 전하께 디저트를 대령해.”
“예!”
프란시스는 말을 섞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작전, 큰 효율을 거두진 못하겠다고.
다들 교묘하게 속내를 감추고 말에 은근한 뼈를 심었다. 그런 그들이 생각을 곧바로 말로 튀어나오게 하는 수법에 걸릴까?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빗방울 케이크를 먹었다. 이슬을 머금듯 부드럽고 차가운 젤리는 달콤한 팥과 만나 완성됐다.
“역시 내 릴리가 만든 디저트……”
프란시스는 아차 했다.
“이런 느낌이군. 확실히 당황스럽기는 한데 생각만 조심한다면…….”
별문제 없겠군. 처음에야 웃긴 꼴이 벌어지겠지만.
“맛있는 디저트도 같잖은 놈과 먹으니 입맛 다 버리네, 젠장!”
“아씨. 모른 척 접시 바꾸면 모를 줄 아나. 이거 더러워서!”
프란시스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 말 대잔치의 시작이었다.
*
“다시 한 번 말해보지, 엉?!”
“핏줄 타고 났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어헉! 말이 주체가 안 돼! 죄송합니다. 착오가……아, 진짜 뭐야? 헉, 또! 죄송합니다!”
“맨날 아첨이나 떨더니 꼴좋다! ……으아앗, 이건 저희 집 고양이에게 텔레파시 보내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빵빵 터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저격하고 또 맞저격하며 사태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생각을 안 하면 되는데 굳이 한 마디씩 거들어서 일을 키우……으, 생각도 못하겠군.”
사람들은 차츰 머릿속 생각이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꼭 한 마디를 보탰다. 그럼 도발 당한 상대가 한 마디를 더 한다. 그런 반복이었다.
“저 녀석들, 서신도 없이 들이닥치더니. 제국을 뭐로 보고 소란을 피우는 건가!”
“감히 황궁에서……. 오늘 일은 결코 간과하면 안 되오!”
그리고 사정을 모르는 벨테인 귀족들은 왕세자 무리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쳤다.
“눈엣가시 제국 때문에 편 좀 들어줬더니만!”
“아니, 저 자들이 진정 미쳤단 말인가?!”
작업을 일단락 짓고 추이를 살피러 나온 릴리는 당황했다. 타겟 외의 인물이 디저트를 먹을 걸 예상하고 마력을 굉장히, 많이, 대부분 줄였는데?!
‘헉! 하필 시제품을 먹은 게 라히안이었지!’
대마법사인 그를 기준으로 마력을 덜다니, 릴리의 착오였다.
“으아, 완전 난장판이잖아…….”
저걸 어쩐다? 릴리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맨날 착한 척 하더니만. 아까 그 시녀, 일부로 밀친 거 다 봤다!”
“그대도 봤소?!”
“솔직히 매번 저러는데 어떻게 몰라줘? 못 본 척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혼란에 빠진 테이블에서 프란시스만이 말없이 그 사태를 관전하고 있었다.
“저, 전하. 괜찮으십니까? 자리를 옮기심이.”
“릴리가 보고 싶군.”
“예?”
“……아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군. 주요 인사의 언행을 주시하도록. 제국에 모욕적인 언사를 한 자는 기꺼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 그리고 상태가 심각한 자는 숙소로 안내해.”
“예!”
신속하게 명령을 받들며 몇몇 인물이 격리되었다. 대부분이 왕세자 휘하의 인물이었다.
“하필이면 단체로 먹어서.”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면 말리기라도 했을 텐데.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같은 디저트를 먹었지만 저 정도의 소란은 생기지 않았으니까.
제국에 대항하고자 일시적으로 뭉친 만큼 단결이 약했다. 그 사이에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오며 수습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효과 만점이군. 저 오합지졸이 다시 뭉칠 것 같진 않아.”
*
“좀 난리긴 했지만 덕분에 성공했어요.”
릴리는 어수선한 틈을 타 홀로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아마데우스라고 부르던 기사를 찾아갔다. 디저트가 든 접시가 박살났더라면 지금의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드시라고 가져왔답니다.”
초콜릿에 마시멜로우와 견과류를 끼얹어 굳힌 디저트였다. 지나칠 정도로 단맛이 장점이자 단점인데, 지금 같아서는 저 지나침이 낫겠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많이 달 거예요.”
“이러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감사히 먹죠, 하하!”
그 모습을 본 프란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저 기사, 낯이 익었다.
“라히안과도 친했던 그 기사로군. 대체 무슨 연유로 두 사람 모두와 친한 거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릴리, 저 자는?”
“아, 그게……말이죠.”
릴리는 망설였다. 당신이 돌보던 그 고양이인데요, 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세상에는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나은 일도 있다는 거 알아요?”
“당신에 대한 거라면 다 알아야겠는데.”
프란시스가 말을 내뱉자마자 아차하고 고개를 돌렸다. 설마? 릴리는 눈을 깜박였다.
“빗방울 케이크 먹었어요? 왜 알면서 그런 짓을.”
“다른 사람은 다 먹는데 나만 못 먹으면 억울하잖습니까. 당신이 만든 디저트인데.”
“디저트 갖고 질투하지 말아요.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진 않았다. 평소였다면 잠깐 놔두고 놀렸을 텐데, 연회가 끝나지 않은 지금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하고 마법을 해제하는 디저트도 만들어뒀어요. 자요, 마카롱.”
릴리가 마카롱을 건네자 프란시스가 손을 뻗었다. 그녀는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아슬아슬한 순간에 손을 거뒀다.
“아, 해요. 먹여줄 테니까.”
“이왕이면 입으로……아.”
“헉. 그, 그런 건 둘만 있을 때 하기로 해요!”
릴리는 펄쩍 뛰며 반강제적으로 마카롱을 먹였다. 정말, 남들 앞에서!
“……!”
릴리는 움찔했다. 프란시스가 손가락을 놔주지 않고 장난스럽게 깨물어서. 순식간에 귀 끝까지 열기가 치솟았다.
“뭐, 뭐하는 거예요, 정말.”
릴리는 핀잔하듯 휙 뒤돌아섰다. 얼굴이 뜨거워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내가 저 빗방울 케이크에 마력을 잘못 담았나?’
아니, 그럴 리가. 그랬다면 아까의 난리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거다.
‘……이 사람, 저런 면도 있었구나.’
“아무튼! 이걸로 해결된 거죠?”
“물론 마무리는 지어야겠지만 이제…….”
콰아아아앙!
강한 폭발음. 그리고 시야가 세차게 흔들렸다. 릴리는 자신을 끌어안는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이게 무슨!”
산 너머 산이다. 뭐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이건…….”
릴리는 즉각 폭발음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잠시 잊고 있었던 라히안의 마법이었다.
‘공격 마법은 아니야. 공간을 묶는 마법인가.’
릴리는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하기 위해 집중하려다가 당황했다.
‘왜 다들 태연한 거지?’
꼭 폭발이 일어날 줄 안 사람들처럼.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0^!!
여러분 즐거운 불금 보내셨나요? 신나게 노신 분도, 힘든 하루를 보내신 분도 내일은 주말이니 기분 좋게 하루 마무리 짓길 바래요(*^▽^)/
2화? 정도 남았습니다. 느긋하게 마무리 짓고 싶지만, 제 주말이 날아가버렸어요 ㅠㅠ
그런고로 실시간으로 달리겠습니다ㅋㅋㅋㅋ 여러분이 자고 일어났을 때 완결이 나 있을 거예요, 아마도.
그럼 이따 또 만나요 ^0^!!
+ 사실 제가 아직 댓글 확인을 못 했어요... 제가 달리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완결에 가까워지니 부족함도 많이 보이고, 걱정도 되고ㅠㅠ 열심히 마무리 짓고, 여러분의 소중한 댓글은 한꺼번에 보겠습니다ㅠㅠ 늘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