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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를 장악한 아기 볼모가 되었습니다-31화 (31/80)

31.

에시엘은 노란색의 네모난 통을 자신의 품에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도프니가 에시엘의 전용 도시락 통이라며 준비해 준 것이었다. 그 안에는 좀 전에 자신이 만든 땅콩버터 쿠키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도프니와 로슈아, 그 외 주방 사용인들의 몫을 챙겨 주었음에도 남은 쿠키가 많아 통이 가득 채워졌다. 게다가 먼저 맛을 본 도프니가 ‘제빵왕이 탄생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에시엘은 지금 떨리는 발걸음으로 연무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만든 땅콩버터 쿠키를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그곳에 있을 터였다.

‘먹어 주면 좋겠다……!’

그녀는 점차 피어오르는 긴장감을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연무장 지척에서부터 검을 날렵하게 휘두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연무장에 다다른 에시엘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곤 그곳의 동태를 살폈다. 한가운데에 바람을 가르며 날렵하게 검을 휘두르는 테이시의 모습이 보였다.

테이시는 늘 그렇듯 검술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에시엘은 그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소리도 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연무장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테이시가 연습하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테이시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 유려했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안겨 주는 듯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테이시는 기민한 동작으로 휘두르던 검을 검집에 꽂았다. 곧이어 그가 느릿한 움직임으로 뒤를 돌았을 때,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에시엘과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

“…….”

에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방방 흔들며 사뭇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길 만큼 테이시에게서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다. 그런데도 에시엘은 방실방실 웃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테이시는 에시엘의 해맑은 모습을 무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 시선마저도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곧 그는 연무장을 나서려는 듯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움직임으로 다시 뒤를 돌았다.

“어어? 가는 거야?”

이에 테이시를 붙잡으려는 듯한 에시엘의 다급한 음성이 너른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도 움직임을 멈출 생각이 없는지 테이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아, 안 되는데…….”

에시엘은 저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다가, 벌써 연무장의 입구 가까이 간 테이시의 뒤를 재빨리 쫓았다. 그리고 작은 손을 뻗어 테이시의 옷자락을 덥석 붙잡았다. 아무래도 말만 내뱉어선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택한 방법이었다.

그제야 걸음을 멈춰 선 테이시는 고개를 돌려 제 옷자락을 붙든 자그만 손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풀이 팍 죽은 듯한 목소리가 테이시의 귓가에 머물렀다.

“있잖아, 이거 같이 먹어 주면 안 돼……?”

에시엘은 자신의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노란색 통을 조심스럽게 내보였다. 뚜껑이 투명해서인지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땅콩버터 쿠키가 말이다.

“…….”

“내가 만든 건데, 혼자 먹기엔 많단 말이야. 다 나눠 줬는데도 엄청 많아서……!”

나름대로 불쌍한 척을 한 에시엘은 테이시가 마음을 바꾸길 바랐다. 연신 내뱉는 말에는 제법 간절함이 비쳤다.

그녀는 테이시의 옷자락을 붙든 손에 더욱 힘을 실으면서 다른 손에 들린 노란색 통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일부러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며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든 쿠키였다.

“으응……?”

에시엘은 스멀스멀 생겨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테이시의 대답을 종용했다. 이내 제 옷자락을 꽉 붙잡은 작은 손을 바라보던 그의 무심한 시선이 노란색 통으로 향했다.

그 순간 테이시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에시엘은 그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무척이나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가 재빨리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에시엘은 그가 작은 반응을 보였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이, 이거 남으면 버릴 거거든! 같이 먹어 주라, 응?”

“…….”

테이시는 연신 오물쪼물 움직이는 아이의 작은 입술과 반짝이는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아이는 자신이 줄곧 대답도 없이 무심한 태도로 일관했음에도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태도 정도야 끄떡없다는 양 더욱이 종알거리며 다가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직접 만들었다는 쿠키까지 가져와 같이 먹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통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 아버지가 볼모로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입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만 엮이는 걸까.

테이시는 간절한 눈빛을 내비치는 에시엘과 노란색 통에 담긴 쿠키를 번갈아 봤다. 아이의 동그란 눈매 끝이 축 처진 것이 어쩐지 불쌍하게 느껴지는 듯도 했다.

“……조금만 먹을 거야.”

“응,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 헤헤.”

테이시의 말에 에시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측은한 표정을 지워 냈다. 그리고 처음 인사를 건넬 때와 비슷하게 방실방실 웃는 얼굴을 했다. 더불어 동그랗던 눈을 반쯤 접으며 몹시도 무해하게 느껴질 법한 웃음을 보였다.

“저기 가서 먹자!”

에시엘은 여전히 붙들고 있던 테이시의 옷자락을 약한 힘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혹여나 따라 주지 않을까 봐 청청한 녹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테이시는 그저 희미한 고갯짓을 보이곤 에시엘의 미약한 이끌림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건조한 시선은 에시엘의 작은 머리통을 향했다가, 제 옷자락을 야무지게 붙들고 있는 작은 손으로 옮겨졌다.

“자! 땅콩버터 쿠키야.”

좀 전의 자리에 다시금 앉은 에시엘이 노란색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표정으로 만든 쿠키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개구진 표정의 쿠키를 하나 집어 들어 테이시에게 건넸다.

“…….”

테이시는 그것을 별말 없이 받아 들고 미세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갸웃한 채 쿠키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한 입 베어 물려는 순간, 가까이서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에시엘이 녹음 가득한 눈을 빛내며 입술을 앙다문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법한 시선이었으나 개의치 않으며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때, 어때?”

“…….”

그가 쿠키를 채 씹어 삼키기도 전에 다급한 질문이 이어졌다. 에시엘은 사뭇 생겨나는 긴장감에 자그만 양손을 꼬옥 말아 쥐어 무르팍 위로 가지런히 올렸다.

테이시는 그 모습을 힐끔 보고 말 뿐이었다. 고요함 속에 쿠키를 씹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에 에시엘은 더욱 긴장되는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괜스레 침을 꼴깍 삼켰다.

“먹을 만해.”

이윽고 들려온 테이시의 한마디에 에시엘의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그저 대답이라도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무려 긍정적인 반응까지 얻게 됐다. 기쁜 마음에 에시엘의 커진 눈은 곧 예쁜 모양으로 곱게 휘었다.

“다행이다! 아, 지난번에 연무장 왔었는데 안 보이던데…….”

에시엘은 속된 말로 개미 한 마리 나돌아 다니지 않아 적막이 흐르던 그날의 연무장을 떠올렸다. 당연히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찾아간 곳에 테이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에시엘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다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 뭐, 맨날 연습하러 올 순 없는 거겠지…….”

“…….”

“아이, 배부르다! 나는 이제 그만 먹을래.”

에시엘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노란색 통을 바라봤다. 쿠키는 몇 개 먹지 않아 여전히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녀는 어렴풋하게 시무룩한 표정을 하곤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쥐었다. 그리고 테이시와 쿠키를 번갈아 봤다.

“이건 테이시 가져. 나는 또 만들면 되거든. 헤헤…….”

어색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쿠키가 가득 들어찬 노란색 통을 테이시의 가까이 슬쩍 밀었다. 그리고 대꾸도 듣지 않곤 황급히 연무장을 나섰다.

테이시는 왜인지 모르게 서두르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연무장을 나서는 에시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체구가 조그만 아이는 작은 발을 열심히 움직여 줄행랑을 치듯 빠르게 걸음을 했다. 그 걸음을 따라 붉은 머리칼도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그는 에시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자신의 앞에 놓인 노란색 통을 바라봤다. 여전히 이상한 표정의 쿠키가 가득했다.

가볍게 한숨을 쉰 테이시는 연무장 한쪽의 벽시계를 쳐다봤다. 조금 이른 시간에 연습하러 온 덕에 기사들의 수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 말인즉 앞으로 잠깐의 시간 동안 이곳엔 자신만 있을 예정이라는 소리였다.

연무장의 입구 쪽을 살핀 테이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쿠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시엘에게는 먹을 만하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쿠키는 퍽 맛이 좋았다.

“…….”

어쩐지 그 아이가 자신에게 주는 간식들은 모두 맛이 있는 것뿐이었다. 테이시는 이상한 표정의 쿠키 중에서 방긋이 웃고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웃는 표정을 빤히 보던 그의 미간이 머지않아 살짝 찌푸려졌다.

“……닮은 것 같은데.”

어색한 음성이 중얼거리듯 흘러나왔다. 테이시는 방긋 웃는 표정의 쿠키를 보며 에시엘을 떠올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볼 때마다 방싯방싯 잘만 웃는 아이였다. 더군다나 제가 무심하게 굴어도 되레 스스럼없이 다가오곤 했다.

정말이지 티라곤 느껴지지 않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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