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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를 장악한 아기 볼모가 되었습니다-35화 (35/80)

35.

도무지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에시엘은 페루딘이 사라진 인파 속을 빤히 쳐다보다가도, 스멀스멀 풍겨 오는 고기 냄새에 본성을 제어할 겨를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이야말로 어린아이의 본성이었다.

바비큐 접시가 차츰 비어 갈 때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고르는 페루딘이 돌아왔다. 에시엘은 양 볼이 빵빵해질 만큼 우물거리며 고기를 먹다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아봤다. 페루딘이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자. 받아.”

“우웅?”

페루딘이 내민 것은 파란색의 작은 상자였다. 에시엘은 연신 고기를 씹으며 페루딘과 작은 상자를 번갈아 봤다. 더욱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그것을 손에 억지로 쥐여 줄 뿐이었다.

“오다 주웠다!”

“으어어?”

“너 볼 터지겠다! 푸핫.”

페루딘은 에시엘의 볼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이에 에시엘이 제법 매섭게 째려본 뒤 서둘러 고기를 씹어 삼키곤 그가 손에 쥐여 준 작은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깃털 모양의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머리핀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핀 전체에 박혀 있는 크리스털이 상자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반짝이며 빛이 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너 가져!”

“뭐어? 설마 나 주려고 사 온 거야?!”

“엉? 아, 아니! 오다 주웠다니까?”

에시엘은 한눈에 봐도 제법 값어치가 나가 보이는 머리핀이 담긴 작은 상자를 다시 닫았다. 누군가 떨어트렸다기엔 도무지 믿기지 않는 훌륭한 물건이었지만 페루딘은 심드렁히 답하곤 제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말도 안 돼!”

“가지라면 가져! 다 먹었으면 구경하러 가자. 얼른!”

살풋 찡그린 미간과 더불어 벌어진 작은 입술은 다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페루딘은 그 모습을 흘끔 바라보곤 파란색의 작은 상자를 새하얀 가방 속에 황급히 욱여넣었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뒤돌아 걷다가 에시엘을 향해 손짓했다.

“야, 에시엘! 안 오면 먼저 간다?”

“어? 어어?”

페루딘은 이미 대여섯 걸음 멀어져 있었다. 에시엘은 가방 한 곳에 자리한 작은 상자를 멍하니 보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가, 같이 가!”

그리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페루딘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움직였지만 노란 머리칼은 순식간에 사라진 뒤였다. 에시엘은 주춤거리며 제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페, 페루딘……?”

일말의 흔적을 찾으려 주변을 돌아봤지만 페루딘은 보이지 않았다. 에시엘은 이리저리 오가는 인파에 휩싸인 채 당황한 얼굴로 오도카니 서 있었다.

“페루딘!”

목청껏 아이의 이름을 외쳤지만 소리는 멀리까지 퍼지지 못했다.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북적거림에 의해 금세 묻히고 말았다.

“페, 페루딘…….”

힘없이 중얼거리는 음성에선 옅은 떨림이 느껴졌다. 에시엘은 다급한 고갯짓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바삐 오가는 사람들만 보일 뿐, 자신이 찾는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 어…….”

에시엘은 제자리에 서서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며 의미 없는 말만 되뇌었다. 가슴께에 자리한 가방끈을 꽉 부여잡은 작은 손에선 불안함이 느껴졌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흘끔거리며 지나칠 뿐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야……!”

“어? 미안, 미안.”

심지어 에시엘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앓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행인이 성의 없는 사과를 건네곤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라……?”

쓰라린 어깨를 문지르던 에시엘의 내려앉은 시야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파란색의 작은 상자가 보였다. 아무래도 부딪히던 찰나에 가방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이내 에시엘은 어깨를 문지르던 행동을 멈추곤 작은 상자를 주워 들었다.

“잃어버릴 뻔했네.”

다시금 작은 상자를 열어 본 에시엘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깃털 모양의 머리핀은 어슴푸레한 주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짝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걸 어떻게 오다가 주워? 풋.”

자그만 손가락을 꼿꼿이 펴곤 머리핀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매끄럽지만 날렵하게 가공된 크리스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문득 어떠한 생각이 에시엘의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갔다.

‘혹여나 지금이라면…….’

순식간에 이때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함께 나들이 나온 페루딘을 놓친 지금, 에시엘의 가방 속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었다. 페루딘이 준 주머니 속의 그것이 화폐가 아닌 보석이나 귀금속이라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찌 됐든 간에 저택에서 어렵게 커트러리를 훔치는 것보다 나을 터였다.

게다가 페루딘에게 선물로 받은 장신구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보육원으로 향하지 않아도 두어 달은 먹고 지낼 수 있을 만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언뜻 보아도 값비싼 물건이었으니까.

물론 보육원으로 가지 않은 채 혼자서 생활한다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 따위를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에시엘의 맘속엔 조급함이 가득했다.

‘도망칠까?’

그녀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파란색의 작은 상자를 느릿하게 닫았다. 그리고 한 손에 꽉 들어차는 작은 상자를 꼭 그러쥐었다.

어쩌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야시장이라는 장소만큼 자연스럽게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 옆에는 자신을 감시한다거나 지켜본다거나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엘! 어디 있어!”

생각에 잠긴 에시엘이 파란색의 작은 상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제법 가까이서 들려왔다. 사뭇 다급하고 절박한 음성이었다.

“에시……!”

그녀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내기도 전에 페루딘이 먼저 붉은 머리칼을 발견하곤 인파를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페루딘……?”

페루딘은 대체 얼마나 뛰어다닌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행색이었다.

훤히 드러냈던 이마는 마구 흐트러진 머리칼에 의해 반쯤 가려져 있었다. 게다가 흘러내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 군데군데에 들러붙은 채였다.

단정히 채웠던 셔츠의 단추도 아까와 달리 두어 개가 풀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중 한 개의 단추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실밥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구두 또한 진흙이라도 밟은 것인지 얼룩져 묻은 흙탕물과 진흙 덩어리로 인해 온전치 못한 모양새였다.

“어, 어떡해…….”

에시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다시 마주한 페루딘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길 잃은 자신을 정신없이 찾아다니기라도 한 듯한 행색이었다.

“야!”

버럭 소리를 지른 페루딘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양손은 주먹을 꽉 쥔 채였다. 이마 위로 송골송골 맺힌 땀과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비단 여름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아직은 아니야.’

그 모습을 본 에시엘은 파란색 작은 상자를 꼭 쥐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다시는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깊숙한 곳까지.

이와 동시에 잠깐이나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도망에 대한 충동적인 상념을 지워 냈다. 엉망이 된 페루딘의 모습을 본 순간 그것은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에시엘은 이내 양손으로 가슴께에 자리한 가방끈을 부여잡았다.

“너 대체 안 따라오고 뭐 했어?!”

“나는…….”

“여기 가뜩이나 사람도 많은데, 길 잃을 뻔했잖아!”

페루딘은 잔뜩 화가 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엇이 이토록 걱정되어 성을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야!”

“미, 미안…….”

무섭도록 다그치는 통에 에시엘의 입에선 사과가 내뱉어졌다. 더불어 저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숙여진 탓에 페루딘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그저 눈치를 볼 뿐이었다.

“나, 나는 빨리 따라갔는데…….”

“…….”

“그게, 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그녀는 자그만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이면서 상황을 설명하려 나름 애를 썼다. 일단은 화가 난 페루딘을 진정시키려는 생각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상태 그대로 페루딘의 안색을 몰래 훔쳐보며 가방끈을 부여잡은 양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제 잘 따라다닐게…….”

“씨이…….”

“미, 미안해.”

“됐어, 이 바보야. 다친 데는?!”

씩씩거리던 숨을 고른 페루딘은 이 와중에도 에시엘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성하지 않은 곳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다소 재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어느 곳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엔 걱정이 서려 있었다.

“페루딘.”

에시엘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페루딘의 이마 위로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떼 주었다. 그가 화내는 이유를 이젠 알아챌 수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제 감정이 어떤지조차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몹시 서투를 테고. 페루딘은 그런 아이였다.

에시엘은 페루딘을 살짝 올려다보며 샐쭉이 미소 지었다.

“뭐야, 왜 이래……? 다친 데 없냐니까?”

페루딘은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느릿하게 갸웃거렸다.

“고마워!”

“뭐, 뭐가?”

“뭐긴? 나 찾아다녀 줘서! 헤헤.”

“돼, 됐거든? 괜히 나 때문에 길 잃었다고 할까 봐 그런 거야!”

페루딘의 부정에도 에시엘은 그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 그의 손목을 냅다 붙잡곤 잡아끌기 시작했다.

“일단 따라와!”

“어어? 뭐야, 어디 가는데!”

에시엘은 인파를 파헤치며 나아가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걸음을 멈칫했다. 더불어 무언가를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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