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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연습생 (13/176)



〈 13화 〉연습생

“근데 너 엄청 복스럽게 먹는구나.”

국물까지 싹 비운  그릇을 탁 내려놓자 연우 형이그렇게 말했다.

내가 복스럽게 먹는다고?

“내가?”

“어. 먹방 해도될  같아.”

“난 그냥 평범하게 먹는 거 같은데.”

내가 좀 먹는 것에 욕심이 많은 건 인정하지만, 복스럽게 먹는건 잘 모르겠다.

태민이 형은 무섭다고도 했으니, 복스럽게 먹는 건 아니지 않을까.

태민이 형이  소리냐며 항의하는 걸 보면 연우 형의 눈이 조금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야, 저게 어딜 봐서 복스러운 거냐? 그냥 돼지지.”

“그래? 난 그냥 되게  먹는 동생 보는 기분인데.”

“그래, 잘 먹는 동생은 맞지. 돼지처럼 잘 먹는 동생.”

“돼지는 옛날 형 모습이 돼지지.”

“……동생이라는 것들이 하나 같이 형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네. 개같은 인생…….”

날 놀리던 태민이 형은 하랑이 형의 한 마디에 침몰했다.

지금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꽤 좋은 몸매를 하고 있지만, 몇 년 전의 태민이 형은 정말 살이 많이 쪘었으니까.

완전히 긁지 않은 복권이었지.

“태민이 형은 한시아 때려도 인정.”

“쟤 라면도 분명 일부러 우리 놀리려고 먹은 거야.”

굳이 부정은 하지 않는다.

사실 놀릴 생각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으니까.

 놀렸으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물로 입을 헹구며 시치미를 떼자 연우 형이 어색한 미소로 날 쳐다본다.

갑자기 왜 저러지.

“와… 야,  어떻게 여자가 되도 하는 행동이 남자일 때랑 똑같냐. 누가 남자들 앞에서 그렇게 물로 아저씨처럼  헹구냐. 연우  봐. 기겁하고 있잖아.”

윤시우가 경악하며 날 보더니 이제는 한숨까지 내쉰다.

그래봤자 나한테는 아무런 데미지도 없다.
차라리 아까처럼 엄마라고 놀리는 게 더 아프지.

겉모습은 이래도 여자가 아닌데 어쩌라고.

“야, 쟤한테는 그런 걸 바라면 안 돼. 외모만 예쁘장하고 속은 그냥 신시우 엄마야. 우리한테 잔소리하던 그 신시우 엄마.”

“외모가 아깝다 진짜.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어디 걸그룹 멤버 데려와서 몰카하는 줄 알았는데.”

“나도. 근데 지금 보니까 신시우 그 자체야. 어떻게 봐도 여자로 보이질 않아.”

“……나, 갈게.”

소곤거리는 멤버들을 노려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도 다 먹었으니까 이제 연습하러 가야지.

“우린 아직 다  먹었는데?”

“난 연습하러 갈 거니까 알아서 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평가를 보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다.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으면 한 소리 들을  뻔하다.

집에서는 그냥 꼰대 아저씨 같아도 일할 때만은 얼마나 깐깐한데.

식기를 반납하고 식당에서 나가 바로 빈 연습실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웬만한 연습실은 사람이 들어가 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보컬용 연습실뿐.

1명이 들어가서 노래 부르는 용도로는 딱 좋지만, 너무 좁아서 댄스는 무리다.

다들 평가를 눈앞에 두고 열심히 연습 중이라 연습실이 부족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괜히 멤버들이랑 농땡이 부리지 말고 바로 연습이나 할걸.

아니, 이제는  멤버들이지.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다.

아직 평가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았다.

연습을 1시간 이상 계속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기다리면  연습실이 생길 거다.

아마도.

다시 카페에 가서 기다릴까 고민했지만, 언제 연습실이 빌지 모르니 여기서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스마트폰으로 춤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도입부에서 표정은 어떻게 지을지, 시선 처리는 어디로 할지, 박자에 맞게 팔을 뻗을 때의 힘 조절, 상체를 격하게 움직이는 안무, 전체적인 춤선까지.

어떤 식으로 춤을 춰야 할지 그려가면서 춤의 컨셉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만들어낸 캐릭터를 탈처럼 뒤집어쓴다.

완전히 몰입해야 표정과 시선을 확실하게 연기해낼 수 있다.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면서도 거친 스타일.
그렇다고 해서 저급하지는 않은 스타일.

걸그룹치고는 상당히 격한 안무가 많았지만, 그런 건 데뷔조에만 들어가도 일상다반사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있는 거니까 불평거리도 안 된다.

“야, 너 뭐 하냐?”

벽에 기댄 채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해받은 것도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옮겼다.

매번 시비를 거는 연습생이 눈에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항상 웃고 있지만, 날  때면 항상 표정을 구기는 사람이다.

이름은 아마 김혜림으로 나보다  살 위였던 것 같은데.

“빈 연습실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이도 많고 연습생생활도 자기가 기니까 선배 취급을 하라고 했었지.

괜한 트러블은 사양이었기에 일단 선배 취급은 해주고 있다.

어차피 데뷔하는 순간 세상 쓸모없어지는 선후배 관계지만.

“그래?   한 군데도 없어?”

“네.”

“그럼 우리가 쓰고 있는 곳 있는데 같이 연습하자.”

“네?”

같이 연습하자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거지?

믿기지 않아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활짝웃고만 있다.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보이던 표정과 똑같다.

정말 수상하긴 한데, 연습할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호의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같이 연습하자고.왜? 싫어?”

“아뇨, 저야 좋죠. 감사합니다.”

그녀를 따라 연습실에 들어가니 4명의 연습생이 쉬고 있었다.

하나같이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연습생들뿐이다.

“야, 김혜림. 걔 뭐냐?”

긴 생머리의 여자가 마시던 물통을 내려놓더니 날 노려본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날 노려보는걸 보니 연습할 만한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괜히 따라왔네.

“연습실이 다 꽉 차서 연습할 데가 없다더라. 같이 연습하자고 불렀지.”

“뭐? 미션곡도 다르면서 무슨 같이 연습을 해.”

“우린 어차피 쉬고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쉬는 동안이라도 연습하라고.”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더니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내준다.

뭐지.
여기서 연습해도 된다는 건가.

“연습해도 되나요?”

“응, 우리 조금 쉬려고 하니까 연습하면 돼.”

그러고선 바닥에 쪼르르 앉는다.

보란 듯이 내 연습을 구경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다.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이러는 건지.

결과가 뻔한 상황이지만, 연습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미션곡을 재생시키며 거울 앞에 섰다.

거울 너머로 날 노려보고 있는 5명이 눈에 들어왔지만, 슬쩍 볼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은 쓸데없는  싸움보다 연습이 먼저다.

표정과 시선이 무너지지 않게 집중하면서 도입부에 들어가는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 * *


“박자에 맞춰야 하는데, 몸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거 같네?”

“그것보다 힘이 너무 들어가서 자기 몸을 주체하지를 못하는 것 같은데?”

춤이 끝난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춤을 지적하는 말들이 날아와 등 뒤에 꽂혔다.

거울 너머에 비친 표정들이 하나같이 기분나쁜 미소를 짓고 있어서 한 귀로 듣고한 귀로 흘린다.

제대로 된 지적을 하는 사람 중에 저런 표정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봐도 저열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헐뜯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적당히 대답하고는 다시 노래를 재생시켰다.

방금 추면서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다시 교정하기 위해서.

하지만 뒤에 있는 선배들께서는 그런  태도가 맘에 안 들었나 보다.

아니면 휴식이 끝나서 내게 가르침이라도 베풀어줄 생각인가?

노래를 꺼버리더니  어깨를 붙잡는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휙 하고 돌아간 내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야, 우리 말이 말 같지 않아?”

“이년 대답하는 싸가지 봐. 눈 제대로  떠? 표정  풀어?”

선배 아이돌 연습생이라 그런지 팀워크가 척척맞는다.

나 같은 햇병아리는 감히 흉내도   만큼 표정과 언행이 서로서로 똑같다.

칼군무도 이런 칼군무가 없겠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김혜림의 손에서 내 스마트폰을 뺏었다.

남의 폰을  만지면  되지.

“우리가 오냐오냐해줬더니 아주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 야, 표정 풀라고.”

“풀었는데요.”

“뭐?”

“풀었다고요. 원래  표정이 이래요.”

내 표정이 원래 이런 걸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표정 풀라고해서 풀어서 무표정인 건데 왜 또 표정을 풀라고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네.

날 둘러싸듯 앞에 선 5명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조소하며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조금씩 밀리는 어깨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가만히 주님께 기도나 하자.

주님 부디 이 시련을 넘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야, 미쳤어? 어딜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사람들이 떠받들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이 씨발년이 끝까지 눈  까네. 눈 안 깔아?”

“하아…….”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느꼈다.

시답잖은 것으로 트집을 잡는 걸 보니 그냥 날 깔아뭉개려는 걸로밖에  보인다.

계속 대화하려고 해봤자 나만 피곤할 것 같아서 그냥 연습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잔뜩 화가 난 선배님들은 날 그냥 내보낼 생각이 없나 보다.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채며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놓아주세요.”

“연습한다며? 어디 가는데?”

“연습 끝나서 나가서 쉬려고요. 선배님들은 연습 열심히 하세요.”

“이게 진짜 미쳤나. 어딜 맘대로 나가려고……”

잡아당기는 힘에저항하듯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떨어져 나갔다.

한껏 당황하고 있는 선배님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아프네…….”

손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져 살펴보니 아주 조금이지만, 멍이   같다.

대체 얼마나 세게 잡았으면 멍이 들까.

목까지 올라온 욕지거리를 다시 삼키며  연습실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그새 연습실 하나가 비었다.

이럴  알았으면 김혜림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조금만  기다릴 걸 그랬다.

이미 늦은 후회를 하며 빈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8시가 되려면 멀었다.

시간은 충분할 정도로 많으니까 괜찮다.

괜히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흔들릴 필요 없다.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쓸데없이 기 싸움이나 하는 사람들은 실력으로 찍어 눌러버리고 올라가면 된다.

각오를 다진 후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거울 앞에 섰다.

“……”

거울에 비친  눈을 보니 왜 그렇게 내 표정에 딴지를 걸었는지 알  같다.

이러면 표정 풀라고 짜증 낼 만도 하네.

무표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은 무슨.

지금 내 표정은 전혀 무표정이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적개심과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방금  연습실에 있을 때도 이 표정이었겠지.

그 선배라는 사람들이 나한테 되지도 않는 지적을 할 때부터 계속.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나한테 이런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으면 평소에 잘했어야지.

-♪

연습실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노래가 이미 사비 부분인데도 가만히 거울이나 보고 있다니.

이상한 생각 말고춤에 집중하자.

쓸데없는 것으로 힘 빼지 말고 데뷔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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