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질투 (20/176)



〈 20화 〉질투

“저랑 선생님이 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말도 안 되긴 뭐가 말이 안 돼. 이미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선생님이랑 뭐 사귀기라도 한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건 뭔…….”

“내가 말한  아니야. 다른 연습생들이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지. 너랑 김형원 프로듀서가 같이 있는 걸 본 게 다들 한두 번이 아니거든.”

입이 완전히 귀에 걸렸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면 저렇게 웃을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정말로 김혜림이 퍼뜨린 말이 아니라고 해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선생님이  양부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게 잘못이었을까?

그래도 그런 걸 굳이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연습생들이 나와 선생님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게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설명을 했을 텐데, 아무런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미치도록 화가 났다.

“다른 애들이 지금 널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해줄까? 김형원 프로듀서한테  대주고 눈에 들어서 데뷔하려고 하는 창녀야. 알아?”

“……뭐?”

“김형원 프로듀서한테  팔아서 데뷔하려고 하는 창녀라고. 너.”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무심결에 되물었지만, 돌아온 말은 똑같았다.

그리고 김혜림의 입에서 다시 한번 그 말이 나온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윽!!”

그리고 귓가에 들려온 고통에 찬 신음에 정신이 들었다.

김혜림은 벽에 몰려 있었고, 내 손이 김혜림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기세 좋게 웃고 있던 김혜림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뭐야? 설마 진짜야? 난 그래도 네가 실력은 있으니까 그런 짓은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발끈하는 걸 보니 진짜인가 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개소리하지 마. 나랑 선생님은 그런 사이 아니야.”

“그럼 뭔데?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차 타고 돌아가는 건 나도 봤는데?”

“선생님은 내 양아버지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딴 건 없어.  미친 새끼들아.”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욕까지 나와버렸다.

하지만 충분히 욕이 나올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뒤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니.

그리고 그걸 사실인 양 떠들면서 선생님을 욕보이다니.

날 욕하는 건 상관없다.

별 같잖은 이유로 미움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근데 아무 잘못도 없는 선생님을 욕보이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선생님이 이 일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알고 있는 만큼, 나랑 멤버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도와줬는지 아는 만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야, 양아버지라고? 김형원 프로듀서가 널 입양했다고?”

“그래. 그러니까 뒤에서 이상한 소문으로 신나게 떠들 시간에 연습이나 해.”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김혜림의 멱살을 내팽겨치듯 놓았다.

살짝 휘청거리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이상 할 말도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아직 레슨이 남아있으니까 빨리  화를 식혀버려야 한다.



* * *


레슨이 전부 끝났을 때는 이미 터질 것 같았던 분노도 전부 가라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사옥은굉장히 떠들썩해진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세븐즈라는 말이 들려오는 걸 보면 데뷔 무대는 이미 끝난 모양이다.

그럼 앨범 발매도 시작됐겠지.

그리고 분위기로  때 실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실패는커녕 오히려 대성공이라며 환호성이 들려온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벌써부터 회식이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낯익은 목소리와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탓인지 그들 중  명이 이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시선은 금방 다시 사라져버린다.

데뷔조 때부터 세븐즈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들이지만, 날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난 아예 모르는 사람이지.

내가 신시우였다는  아는 사람은 멤버들과 선생님뿐이니까.

매니저들에게는 신시우가 개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룹에서 나간 것으로 되어 있다.

신시우일 때만 해도 형 동생 하던 사이였는데, 새삼스레 완전히 남이 됐다는  느껴진다.

조금의 상실감과 함께 선생님께 먼저 집에 가겠다는 톡을 남겼다.

오늘 같은 날에는 당연히 늦게 들어오실 테니까.

자주 가는 식당을 예약해두겠다며 신나 하는 매니저들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서는 곧바로 인터넷을 확인해봤다.

SNS에는 벌써 데뷔 무대의 영상이나 움짤이 돌아다니고 있다.

실시간 음원 차트에는 타이틀 곡이 10위, 다른 곡들도 30위 권 안에 들어가 있다.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 재생 수는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100만에 가까워지고 있다.

컴백도 아니고 이제 갓 데뷔한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100만이라니.
그것도 단 몇 시간만에.

기획사의 공격적인 홍보도 있었겠지만, 역시 믿기지 않는 숫자다.

“미쳤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도면대박이라고 난리가  법도 하다.

영상을 재생하니 기획사 로고가 잠깐 나오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곧바로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어둡기도 한, 그러면서도 절대 처지지 않는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멋지게 차려입은 멤버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장면 같다.

다들 표정에 자신감이  있고 당당하다.

급하게 합류한 연우 형도 어제 봤을 때와는 달리 여유가 넘친다.

식사할 때는 매우 착한 형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화면 속에 있는 연우 형에게는 굉장히 거친 분위기가 느껴졌다.

“……”

그리고 노래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윤시우가 말한 것처럼내가 있었을 때와는 다르다.

노래도 춤도 심지어는 뮤직비디오까지 달라졌다.

급하게 바꿨을 텐데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있을 때보다훨씬 작품적으로 퀄리티가 높아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는 사이에 뮤직비디오가 끝나버렸다.

조용해진 노트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멤버들이 데뷔했고, 오늘  데뷔 무대를 치른 아이돌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대성공을 이뤘다.

분명히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 일인데, 순수하게 기뻐할 수도 축하할 수도 없다.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박이라고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맘속 깊은 곳에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그런 축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룹에서 나왔을 때는 분명 조금 섭섭하기만 했다.

내가 여자가 됐다는 걸 믿어주지 않아서, 아무리 설명해도 내가 신시우라는 걸 믿어주지 않아서 섭섭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나를 대신할 멤버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한   섭섭함을 느꼈다.

빠른 멤버 보충은 남은 멤버들에게 좋은 일이며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섭섭했다.

함께 하지 못하게 돼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우 형과 멤버들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섭섭함보다도 안도감을 느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섭섭함을 넘어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아니, 부러움조차 아니다.

이제는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바뀌어버린 노래와 안무, 뮤비를 보며 질투하고 있다.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멤버들을 보며 질투하고 있다.

지금쯤 성공적인 데뷔로 함께 기뻐하고 있을 멤버들을 질투하고 있다.

멤버들과 함께 웃으며 기뻐하고 있을 연우 형에게 질투하고 있다.

거기는 이연우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원래라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다.

나한테만 허락된 자리여야 했다.

내가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겨우겨우 올라간 자리인데, 왜 내가 아니라 중간에 끼어 들어온 사람이 자기 자리인  끼어있는 걸까.

왜 노력한 장본인인 나는 이런 몸뚱이로 남 일처럼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걸까.

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몸이 변해버린 것도, 나 대신 이연우가 멤버들과 함께 있는 것도, 이런 비겁하고 더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축하해줘야 하는데,  질투하고 있는 건데.

누구라도 갑자기 이런 몸이되는  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미 변해버린 어쩔 수 없잖아.

이대로 데뷔할 수는 없었고,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였잖아.

근데  아무 죄도 없는 연우 형을 미워하고 있는 건데.

연우 형이라고 해서 노력하지 않은건 아닐 텐데.

“하아……”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도저히 긍정적인 생각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예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그냥 보기 싫다.

내가 알고 있던 때와는 달라진 노래도 안무도 뮤비도 세븐즈라는 아이돌 그룹도.

그냥 다 보기 싫어서 닫아버렸다.

분명 레슨이 끝난 후 말끔히 씻었을 텐데도 온몸이 찝찝하다.

땀이 난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몸을 씻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도 없이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는 거울 앞에 섰다.

지금 내 손에는  잡히지 않을 정도인 가슴을 빤히 보다가 손으로 움켜쥐었다.

여자의 가슴은 성감대라고 하더니 기분 좋기는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냥 살을 만지는 기분이다.

다른 부위를 만지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윽…!”

손에 힘을 주면 혹시 기분 좋아질까 싶어 강하게 쥐어봤지만 아프기만 하다.

쾌감 따위 없이 고통만 느껴지는 행위에 헛웃음을 흘리며 욕조에 물을 받았다.

이 집에 오고 나서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물이 차는 걸 기다리지 않고 바로 욕조 안에 들어가 앉았다.

빠르게 차오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거의 반쯤 누워있으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아주 조금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