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체육 대회 (45/176)



〈 45화 〉체육 대회

백반을 받고 자리에 앉은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앞에 앉은 김혜림은 여전히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라 거의 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같았다.

그 옆의 박하연은 자기 앞에 있는 윤시우가 신경 쓰여서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같다.

계속 힐끔거리면서 윤시우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대는 게 참 가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옆에 앉은 윤시우 이 녀석.

아까부터 자꾸 자기가 싫어하는 반찬을 나한테 주고 있다.

얘도 선생님이랑 똑같다.

그냥 애다.

“나한테 주지 말고 오이 좀 먹어.”

“싫어 맛없어.”

“애냐?”

“어, 애야. 응애.”

“……”

너무 당당해서 할 말이 없다.

응애는 뭔데.

다른 멤버들도 없이 혼자 여기 있는 건 사실 머리에 이상이 생겨서가 아닐까?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머리가 맛이  거지.

지금쯤 멤버들이랑 매니저가 열심히 찾고 있을 테니 연락을 해주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그 정도로 응애는 진짜 미친 거 같았다.

다 큰 남자 새끼 입에서 응애라니.

나도 모르게 찌푸려진 눈으로 쓰레기 보듯이 바라봐주니 좋다고 웃는다.

노려보는데도 이런 반응인 걸 보니 역시 머리가 이상해진  분명하다.

이제 세븐즈는 망할 게 분명해.

“미친놈.”

“겨우 오이 좀 안 먹는다고 미친놈은 너무하네. 너도 해물 안 먹잖아.”

“편식해서 미친놈이라고  게 아닌데요.”

“그럼 뭔데.”

실실 웃는 걸 보니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고 있다.

이상한 소리를  윤시우인데 왜 얘가 당당한 거지 모르겠다.

“응애가 뭐냐. 응애가. 다 큰 남자가 부끄럽지도 않아?”

“역시 애늙은이는 모르네.”

“??”

 지금 네 머릿속을 모르겠다.

어디 가서 머리라도 맞고 왔나?

이해가 안 가서 시선을 돌렸는데, 박하연이 테이블에고개를 처박고 웃고 있다.

뭔데?

응애가 웃겨?

원래부터 조금 이상한 애였는데, 윤시우가  정체 모를 말을 듣고 웃다니.

윤시우나 태민이 형이랑 비슷한 부류였나?

새삼스럽긴 한데, 생긴 거만 무섭게 생겼지 참 쟤도 정상은 아니다.

“아무튼 나한테 오이 떠넘기지 말고 네가 먹어. 아니면 그냥 남기던가.”

“남기면 아깝잖아. 기껏 받은 건데.”

“아까우면 나한테 주지 말고 먹어.”

“맛없어.”

“그럼 남겨.”

“아까워.”

“먹어.”

“맛없어.”

“죽어.”

“아까… 운 게 아니라 죽으면 활동  하잖아.”

“그럼 내가 대신 들어갈게.”

“그건  되지.절대 못 죽지.”

피식 웃은 윤시우는 또 오이를 내게 줬다.

주지 말라니까…….

하지만 같이 숙소에 있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는 오이무침을  안에 넣었다.

맛만 좋은데 왜 싫어하나 몰라.

“야, 넌 선배님한테 죽어가 뭐냐?”

얘는 또 언제 살아난 거야.

아까 윤시우한테 잔뜩 농락당하고서 완전히 침몰했던 김혜림이 어느샌가 다시 살아나 있었다.

아직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고는 있는데, 이제는 괜찮은지 보란 듯이 나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맞아. 선배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윤시우의 눈치만 보고 있던 박하연도 거든다.

“괜찮아요.매일 이래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선배 취급받는 건 이미 진작에 포기했어요. 그냥 이렇게 욕먹으면서 사는 거죠 뭐…….”

윤시우는 한술  떠서 아예 불쌍한 척 표정 연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걸  두 돼지가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다가 나한테는 역시 싸가지가 없다며 궁시렁거린다.

이것들이단체로 미쳤나.

갑자기 왜 이래.

“내가 언제 맨날 욕한다고 그래. 오히려 난 욕 안 하는 편이야. 김혜림이 욕 제일 많이 하지.”

“야, 내가 어, 언제 욕을 했어!”

“혜림 언니, 욕 많이 하긴 하잖아.”

내 반격에 당황하는 김혜림과 갑자기 날 돕는 박하연.

구도가 완전 난장판이다.

이게 대체 뭐야.

“와  봐. 선배님 앞이라고 언니라고 하는  봐. 진짜 소름 돋게 하네.”

“왜 그래 언니. 난 원래 이랬잖아.”

“미, 미친년아 그만해! 진짜 소름 돋았어. 으……!”

“언니 어디 아파?”

질색하는 김혜림과 그걸 또 좋다고 놀리는 박하연.

그걸 보던 윤시우가 내 옆구리를 툭 치더니 귓가에 속삭인다.

“평소에도 원래 이래?”

“비슷하긴 한데, 너 때문에 괜히 더 오버하는 거 같은 느낌?”

“그래?”

피식 웃는 모양새가  잘생긴 얼굴인데, 어딘가 씁쓸한 미소다.

왜 갑자기 그렇게 웃는건지 모르겠는데,혼자 회사에 나와 있는 것도 그렇고 조금 걱정이다.

아까는 반쯤 장난으로 머리에 이상이생겼다거나 뭐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말로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웬만한  아니면 이렇게 따로 행동할리가 없는데.

“근데 너 왜 혼자 여기 있어? 형들은 다 어디 가고. 혹시 무슨  있어?”

“딱히 없는데?”

놀란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다시 평소 표정으로 돌아왔다.

방금 찝찝한 표정으로 웃던  분명 봤는데 왜 숨기는 건지 모르겠네.

“그럼 왜 혼자 있어?”

“인터뷰 때문에.”

“인터뷰?”

“수요일에 인터뷰 있는데  체육대회 나간다고 뺐거든. 그래서 미리 하는 거야. 나중에 기자님 온다고 해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일정이 있는데 겨우 체육대회 때문에 뺐다고?”

“왜? 안 되냐?”

“안 되는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겨우 체육대회 때문에 일정에서 빠지는 건 좀…….”

그냥 인터뷰 기다리려고 혼자 있던 거였어?

괜히 걱정했네.

혹시라도 큰일이 생긴  아닐까 걱정했던 내가 바보 같아졌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체육대회 가고 싶다고 일정을 빠지는  말이 되나.

별로 중요한 인터뷰가 아닌 건가?

“무슨 인터뷰인데?”

“뭐였더라. 무슨 잡지 인터뷰였던 거 같은데.”

“인터뷰하는 곳 정도는 공부해…….”

“아무튼 처음 보는 여성 잡지였어. 솔직히 그런  누가 읽는지도 모르겠다. 미용실에서 심심할 때나 볼 거 같은데.”

어깨를 으쓱인 윤시우는 척 보기에도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래도 인터뷰 때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막 뱉어낼 걸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요령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이 진짜 부럽기는 하다.

성격상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바로 인터뷰를 하면 아무 말도 못 할 테니까.

윤시우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 분위기에 맞는말을 술술 꺼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지금은 그냥 성향 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너   언니라고  부르냐?”

“내 맘인데? 쟤도 언니라고 안 부르잖아.”

“그건 쟤가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 거고.”

“나도 싸가지 없어.”

나랑 윤시우가 입을 다물자 김혜림과 박하연의 빽빽대는 소리만 남았다.

둘을 보고 작게 웃고 있던 윤시우가 뭔가 생각난듯한표정을 하고는 날 부른다.

“근데, 너 체육대회 때 뭐 나가기로 했냐?”

“나? 나 아무것도 안 나가는데?”

“아무것도 안 나간다고? 왜?”

“왜긴 왜야.원래 방송 때문에 못 나가는 상태였잖아. 그래서 애들이 나 빼놓고 정했대.”

“난 나가는데?”

“넌 네가 나갈 거라고 했다며.”

“그건 그렇긴 한데. 진짜 아무것도 안 나가냐?”

“왜?”

“아니, 그냥. 기껏 놀 수 있는데 왜 아무것도  하나 싶어서.”

“내가 갑자기 들어가면 원래 있던 애가 못 나갈 거 아냐. 걔는 무슨 죄야.”

“뭘 그런  신경 쓰냐. 그냥 하나 정도 들어가면 되지. 하기 싫어하는  한 명쯤은 있을 텐데.”

“그냥 귀찮아. 구경이나 할래.”

굳이 이미 정해진 사람을 빼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윤시우 말처럼 하고 싶지 않은데도 인원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하는 사람도 있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아냐.

누군가 나한테 대신해달라고 부탁하는 거면 몰라도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꺼려진다.

나도 내가 반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대충 인지하고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다는말을 꺼내면 유정이를 비롯한 몇몇 애들이 억지로라도  넣어줄 거다.

아마 원래 들어가 있던 애를 빼서라도.

어릴 적에 자주 겪었던 일이니까 잘 안다.

학교에서 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학생들의 권력은 솔직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냥 카스트 제도라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

하위 카스트에 속한 학생이 부탁이라는 협박을 거절한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하다.

윤시우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부탁이라는 협박으로 누군가를 빼버리고 참가하라는 거다.

나한테 그런 경험이 있었고, 덕분에 그런 분위기자체를 매우 싫어한다는 걸 모르니까 말할 수 있는 거다.

아마 알면 말도 못 꺼냈겠지.

“왜?  하고 싶은 거 생겼냐?”

“아니.”

“그럼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봐.”

 시선을 눈치챈 윤시우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는 이런 표정 하나하나에도 열등감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제법 괜찮아졌다.

얘나 나나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냥 안 변하는 사람도 있고, 변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뭔 개소리야?”

“밥 맛있다고.”

“뭔… 어디 아프냐?”

“아니, 너야말로체육대회 어디 다치지나 마.”

“안 다쳐.”

“그래.”

짧게 주고받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쟤는 그냥 주먹이 답이라니까?”

“무승부로 끝났으면서 무슨 주먹이야.”

앞에서 싸가지 없는  어떻게 조련할지 열심히 토론 중인 두 사람을 구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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