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위기
* * *
아직 취업이 정해지지 않은 3월 초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척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연락 자체는 자주 하기 때문에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지만, 연락의 내용이 조금 특별했다.
무려 첫사랑에 관한 고민 상담.
마냥 어린애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첫사랑이 생겼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모태솔로이기에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던 것도 맞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 게 조금 안 좋았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아이돌 연습생을 좋아하게 된 것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그 연습생에 관해 물었다.
아이돌에 관심도 있었고, 응원하는 아이돌 연습생까지 있었기에 혹시 아는 사람은 아닐까 싶어 물었는데, 돌아오는 이름은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꽤 유명해졌지만, 3월이 막 시작했을 때인 그 당시에는 아직 유명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들어도 ‘그게 누군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상당히 유명해진 그 연습생을 짝사랑하게 됐다는 말에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꽤 간절한 것 같았기에 조금씩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뻔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조언이 있고 거의 두 달이 지났을 때쯤 돌연 그 친척 동생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던 연습생이 진짜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말을 꺼낸 거다.
대체 무슨 소리냐며 되물어도 행동거지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말만 할 뿐이었지만 어딘가 확신하는 듯했다.
그래봤자 물증 따위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심증만 있었지만 말이다.
자기 주장이 맞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까지 남긴 모양이지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아무런 물증도 없이 행동거지가 조금 남자답다는 것 하나만으로 TS병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거니까.
오히려 그걸 믿는 쪽이 이상하다.
그렇게 바보 같은 소리나 하는 녀석이라며 웃고 넘어갔었는데.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KIS에 입사한 걸 알아챈 그 녀석이 며칠 전에 뜬금없이 시아의 번호를 물어본 걸 생각하니 도저히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커뮤니티에 떠들고 다녔으니까 직접 사과하고 싶다나 뭐라나.
매니저가 아니라 모른다는 거짓말까지 해봤지만, 정말 끈질기게 물어봤었지.
결국에는 화를 내면서까지 거절했었는데.
설마 번호를 알아낸 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협박이라니,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팀장님 저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아직 채 지워지지 않는 의아함이 남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서두르기로 했다.
“지금?”
“예, 그 협박하고 있다는 놈 누군지 알 거 같거든요. 정말 맞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김 팀장님은 놀란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시간이 없어서 초조해지신 거겠지.
되도록 빠르게 끝내자.
여보세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지 통화 연결음이 거의 들리지도 않았는데 바로 받았다.
목소리는 평소랑 다른 게 없는데…….
“어, 태규야. 뭐하냐?”
나? 그냥 게임 하지.
“게임?”
응, 왜?
정말 게임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는 중인 건지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원래부터 화가 많은 성격이기는 한데, 오늘은 유독 짜증을 내는 거 같다.
“야, 너 한시아 번호 알고 싶다 하지 않았냐?”
뭐? 한시아 번호?
“그래, 알고 싶다며. 형 퇴사할 건데 알려줄까?”
퇴사한다고? 왜?
“그냥 일이 너무 힘들어서. 엔터 쪽 일이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래서 어쩔래? 받을래? 어차피 퇴사하니까 너 줘도 되는데.”
사실 퇴사 따위 생각도 해본 적 없지만, 일단 퇴사를 이유로 미끼를 뿌렸다.
동시에 너무 빤히 보이는 미끼인 거 같다는 생각에 걱정도 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물지는 않을 거 같다.
아무래도 하나 더 뿌려야겠지?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녀석이 너무나도 쉽게 미끼를 물어버렸다.
그래, 미끼를 물기는 했는데…….
됐어. 나 이미 갖고 있어.
“갖고 있다고……?”
이건 미끼를 무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 뭍으로 올라온 수준이었다.
응. 사실 형 전화 오기 전까지 톡하고 있었음.
“……”
너무나도 간단하게 걸려버리니 조금 맥이 빠졌다.
물론 빠르게 끝날 거 같아서 참 다행이지만.
“그래? 그럼 이럴 때가 아니네. 한시아랑 얘기하고 있었으면 빨리 끊어야겠네.”
동생 녀석이 의심하지 않도록 적당히 너스레를 떨고는 팀장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뜻을 알아채신 듯 곧바로 걸음을 옮기신다.
“너희는 그 새끼 잡아 와. 난 혹시 모르니까 애들한테 가볼게.”
“예.”
정혁에게 지시를 하신 팀장님은 서둘러 달려가셨고, 나도 곧 통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모를 동생 놈이 부디 일을 더 크게 벌이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 * *
친척이라고는 해도 그리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건 아니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 허름한 아파트의 어둑한 주차장을 지난 우리는 바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래서 그 친척 동생이라는 놈이 지금 협박하고 있다?”
“그런 거 같아.”
“고딩이라면서 배짱도 좋네.”
“배짱은 좋은데 너무 사람을 잘 믿어서 탈이지.”
피식 웃은 정혁에게 씁쓸한 미소를 보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사람을 잘 믿는 탓에 조금 걱정도 됐던 애가 사람을 협박하고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지만, 자기 입으로 자백을 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첫사랑을 협박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참…….
“야, 근데 협박하려면 뭐 약점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친척 동생이라는 새끼는 시아한테서 뭔 약점을 잡은 거냐?”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짐작 가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 이야기할 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넘겼다.
사실 믿기지 않아서 차마 얘기할 수 없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있다.
한시아가 원래는 남자였다니.
그리고 병으로 인해 여자가 됐다니.
친척 동생인 태규에게 들었을 때는 무슨 헛소리냐며 웃었는데, 지금은 웃을 수가 없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그 말로 지금 한시아를 협박하고 있는 거니까.
만약 남자에서 여자가 됐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면 한시아가 태규를 굳이 상대하고 있을 리가 없다.
헛소리하지 말라며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태규의 바보 같은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협박까지 당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한시아는 남자였고, 병으로 인해 지금은 여자가 됐다.
“야, 뭐하냐?”
“어?”
“뭐해. 내려.”
“아… 그래…….”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정혁이었지만, 무시하며 현관문 앞에 서고는 초인종을 누른다.
아마도 혼자겠지.
태규의 어머니인 고모와 단둘이 살고 있는 데다가 아직 병원에 계실 시간이니까.
누구세요.
“형이야. 잠깐 문 좀 열어봐.”
형? 뭔데?
“일본 갔다 왔으니까 선물 주려고 왔지.”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선물을 산 것도 사실이고,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내일 중으로 선물을 줄 생각이었다.
태규에게는 과자를, 고모께는 동전 파스라고 하는 걸 선물로 사 왔는데.
설마 이 선물을 이런 식으로 건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잠깐만 기다려.
태규의 목소리가 끊기며 안쪽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들린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무슨 선물까지 사 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규가 나왔다.
“가끔 사 왔었잖아. 왜? 갖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곧바로 달려들려고 하는 정혁을 가로막은 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선물을 건넸다.
그리고 자연스레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봤지만, 아무래도 정혁의 존재가 거슬리는 모양이다.
빤히 바라보면서 잔뜩 경계하고 있다.
“형 친구야?”
“회사 동료. 그 선물 얘도 같이 산 거야.”
“그래…?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등을 돌려 길을 내준다.
마치 주말에 시간을 내 놀러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절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이 자식을 잡으러 온 거다.
“태규야.”
“어? 왜?”
선물을 받아든 채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태규를 불러세운다.
누군가를 협박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밝은 분위기에 완전히 잘못 짚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동시에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법 친하게 지내던 동생 놈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부디 내 말에 무슨 개소리냐며 헛웃음이라도 지어줬으면 좋겠다.
“너, 시아한테 무슨 말 했어?”
그런 생각을 하며 물었다.
“어, 어? 무슨 얘기? 딱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한껏 당황하는 동생의 반응을 눈에 담은 순간.
그 기대가 정말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
갑작스러운 상황에 채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만 태규의 모습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알려준다.
작게나마 아닐 거라는 기대를 품었던 내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 알고 온 거니까 시치미 떼지 마.”
“……”
마구 흔들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태규가 자백하기를 빌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면 다들 용서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녀석은 용서를 빌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씨발!”
선물로 가져온 것들을 내던지며 방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이 너무나도 허망했다.
조금이나마 믿었던 내가 바보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뒤늦게나마 손을 뻗었다.
“어딜 가!”
“윽……!”
내 손이 닿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정혁이 녀석을 붙잡았다.
거대한 체구에 겁을 먹은 건지 마땅히 저항도 하지 못한다.
“너, 이 씨발 새끼… 우리 애한테 지랄하니까 좋았냐?”
“우리 애는 무슨 지랄하네… 미친 새끼들…….”
“뭐? 미친 새끼들? 이 새끼 이거 진짜 또라이 새끼네?”
마지막 발악인지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오히려 욕을 내뱉으며 정혁을 자극한 탓에 멱살을 잡혀버리고 말았다.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때릴 생각은 없는 거 같지만, 아마 내가 없었다면 때리고도 남았을 거다.
“태규야, 고모한테 전화할게.”
“씨발 개새끼야! 전화하기만 해봐! 한시아인지 뭔지 좆되는 꼴 보고 싶어?!”
“진짜 미친 새끼네 이 새끼…….”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주먹까지 휘두르며 저항을 한다.
그래봤자 정혁의 손에 제압될 뿐이지만.
고모에게 들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벌인 걸까.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