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후회
* * *
“뭐, 뭐라고?”
“저랑 같이 활동할 생각 없냐고요.”
“……”
확실히 여기서 할 만한 말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지.
어떤 미친놈이 데뷔조의 멤버들을 버리고 다른 놈이랑 붙어먹겠어.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놈이라면 그런 짓은 못 할 거다.
근데 이 자식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딴 발상을 하지.
“하…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하나 궁금했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는구나…….”
이제는 상대하는 것도 지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꺼림직한 느낌이 들기는 했었는데, 이 정도로 상대하기 힘든 놈일 줄이야.
농담도 정도껏 해줬으면 좋겠는데, 표정을 보면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전 선배를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시스터스는 이제 포기하세요. 어차피 데뷔가 나중으로 밀리든 아예 없었던 일이 되든 둘 중에 하나일 거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 같으면 포기할 거 같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라도 저랑 같이 활동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이 거만한 태도가 너무나도 맘에 안 든다.
적어도 나랑 같이 활동을 하고 싶으면 이런 태도로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예전에도 생각했던 거 같은데, 이 녀석은 애초에 태도부터가 글러 먹었어.
“결과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만약에 데뷔가 없던 일이 되더라도 너랑 같이 활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매정하시네요… 기껏 선배님 생각해서 말씀드린 건데…….”
“날 생각했으면 애초에 이딴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무슨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저도 제 살길은 찾아야죠. 선배님은 겸사겸사 맘에 들어서 도와드리는 거고요.”
“……아까부터 자기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말투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녀석의 태도를 지적하며 노려봐주니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떤다.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는 정말 특출난 놈인 거 같다.
“저랑 활동할 생각 없으시면 어쩔 수 없네요. 정말로 오랜만에 본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칭찬 고마워. 근데 넌 음악 재능은 몰라도 인간관계에 대한 재능은 없는 거 같네.”
“……”
이번에도 짜증 날 정도로 방긋 웃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기분이라도 나빠진 건지 표정이 확 굳는다.
사회생활이 어쩌고 저쩌고 한 주제에 나한테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 소리 들으니 짜증이라도 난 건가?
그대로 등을 돌리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는 가버렸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야, 저게 진짜 네가 말한 박진서라고?”
“내가 아는 박진서는 안 저랬어. 솔직히 지금도 안 믿겨. 저게 내가 알고 있던 박진서랑 같은 사람이라는 게.”
“이름은 또 왜 바꿨대? 개명한 거야? 아니면 가명이야?”
“나도 몰라.”
김진우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낸 순간부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우리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이 드디어 제대로 된 말을 내뱉었다.
김진우가 조금만 늦게 자리를 떴으면 김혜림이 주먹질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저런 애 신경 쓰지 말고 연습이나 하자. 선생님도 쓸데없는 일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저런 미친놈을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나 진심 태어나서 저런 놈 처음 봐.”
“……”
김진우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때문인지 김혜림이 평소와는 달리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건 박하연과 나도 마찬가지라서 솔직히 맨정신으로 연습이 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
어제 쉰 만큼 더 해야 해.
선생님이랑 신 팀장님, 그리고 형들이 뒤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있으니까 그만큼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연습만이 살길! 빨리 가자!”
“악! 왜 때려!”
“막내가 언니들을 패네…….”
뭔가 정리되지 않은 어지러운 분위기이길래 김혜림과 박하연의 등을 찰싹 때리고는 그대로 쭉 밀면서 연습실로 향한다.
오늘은 진짜 죽을 때까지 연습만 하다가 갈 거다.
* * *
“나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난 이대로 누우면 바로 잘 수 있을 거 같아…….”
연습을 끝내고 연습실을 뒤로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얼마나 연습에 몰두했으면 시간도 몸 상태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연습만 했다.
이 정도면 어제 못한 연습량을 채우고도 남았을 거다.
“우리 밥 어떡해……?”
“몰라… 난 밥 생각 안 나…….”
“나도 사실 배 안 고프긴 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운 빠진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핸드폰을 확인한다.
최근 들어 연락이 뜸해졌다는 유정이의 투정 섞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콘서트 준비 때문에 갑자기 바빠졌다는 이유를 대며 잘 달래보려고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아무리 바빠도 톡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바쁘지는 않으니까.
사실 바빠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데뷔 보류라는 생각하기도 싫은 소식을 들은 후로 머릿속이 온통 데뷔에 관한 것뿐이라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여유가 없으니 자꾸만 유정이에게 기대고 싶고 괜스레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연락하려다가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까 무서워서 별것 아닌 말만 툭 보내고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하는 횟수를 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소리를 죽여가며 하던 통화도 이제는 하지 않게 됐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실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와 달리 어리광을 부릴 거 같아서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댄 거지만.
그도 그럴 것이 유정이에게 괜한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같은 동양권에 바로 옆 나라라고는 해도 엄연히 해외에 나가 생활하고 있는 유정이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싶지는 않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니 분명 힘든 일이 있을 텐데도 지금까지 우는소리 한 번 하지 않은 유정이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럼 유정이가 먼저 힘들다고 말하면 그때는 너도 힘들다고 할 거냐?
그런 물음을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던져본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꼰대 같은 말 한마디.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
정말로 3번만 운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저 그 정도로 강하게 살아야 한다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뜻일 거다.
진짜 꼰대 같고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몸은 완전히 여자인데다가 정신적인 면도 1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아직도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모양이다.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김혜림과 박하연에게는 숨기는 것 따위 없이 전부 털어놓자고 한 주제에 정작 나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것저것 많이도 숨기고 있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네 진짜.
선생님은 기자님한테 숨기는 거 없이 전부 말하려나?
“하아…….”
가슴이 답답해져서 괜히 숨을 크게 내뱉어본다.
전부 털어놓을 수는 없어도 목소리 정도는 들어도 되겠지?
숙소 가면 전화할게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집어넣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갑자기 울려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면서 화면을 확인하니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떠 있다.
[유리 언니♡]
“누구야……?”
“유리 언니.”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는 김혜림을 슬쩍 밀어내며 전화를 받는다.
두 사람은 1층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면서 먼저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시아 씨? 요즘 바쁘신가 봐요? 연락도 별로 없고.
조용한 복도에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목소리.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 나쁜 감각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 안녕하세요 언니… 죄송해요… 요즘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하긴 뭐 데뷔에 콘서트 준비까지 있으니까 바쁘긴 하시겠네요. 너무 바쁘셔서 연락도 안 될 정도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에이, 농담이야~ 이때쯤이면 바쁜 거 다 아니까 괜찮아~
괜찮다는 것치고는 말투가 조금 무섭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이상한 얘기 나오고 있다며? 괜찮아?
“이상한 얘기요?”
응, 너희 데뷔 못 한다나 뭐라나. 어쨌든 되게 시끄럽던데.
“아… 네, 뭐… 괜찮아요.”
진짜? 막 울고 있는 거 아니야?
“울긴 왜 울어요. 그냥 조금 어이가 없어서 짜증만 나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난 또 울면서 언니 찾고 있을 줄 알았지.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렇게 대답하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언니는 슬럼프가 왔을 때를 생각하고 한 말인 거 같은데, 솔직히 그때는 진짜 심각했지.
연습은 엄청나게 하는데 실력은 전혀 좋아지지를 않고, 실력이 계속 나아지지를 않으니 멘탈은 박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돌이 돼야 하는 건지 고민도 했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데뷔 보류 같은 말이 나돌고 있는 만큼 또 멘탈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랑은 다르다.
실력에 확실히 자신이 있고, 믿음직한 멤버들과 매니저도 있다.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변수가 문제라서 그런지 그때처럼 멘탈이 완전히 나가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나한테는 애 맞는데? 완전 애기지.
“저랑 언니랑 3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요?”
야, 3살 차이면 많이 나는 거야. 밥을 적어도 너보다 천 공기는 더 먹은 거라고.
“아… 네…….”
밥 천 공기라고 하니까 되게 많이 차이 나는 거 같네.
“천 공기나 더 드시다니… 너무 부럽네요.”
이제는 언니를 놀려먹네…….
나이 얘기를 해서 그런 건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게 또 재밌어서 다시 한번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괜찮은 거 같아서 다행이네.
“선생님이나 매니저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까요. 저번처럼 미친 듯이 힘들지는 않아요.”
그래? 그럼 괜한 짓 한 건가?
“괜한 짓이요?”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은 거 같으니까 이제 끊을게. 무서운 언니들이 빨리 씻으라고 난리네.
“네, 빨리 가서 씻으세요.”
알았어요~ 그럼 이만!
급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 너머로 들리던 조금 시끌벅적한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휑한 복도에 혼자 남아 있다는 걸 깨달으니 더욱 쓸쓸한 기분이 든다.
유정이 목소리 듣고 싶네…….
조금이라도 더 길게 통화하려면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그냥 여기서 전화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고개를 젓는다.
이럴 시간에 빨리 가는 편이 좋지.
되도록 숙소에서 편하게 통화하고 싶으니까.
게다가 빨리 안 내려가면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언니 두 명이 난리 칠 게 뻔하다.
그러니까 빨리 가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서둘러 걸음을 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