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응어리
* * *
“시아야, 과일 먹을래?”
“과일이요?”
“응, 사과 먹으려는데 어때?”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기자님이 사과를 들어 보이더니 어딘가 어색하게 웃는다.
요리와는 완전히 척진 삶을 살아오셨다고 하니 이번에도 부탁하러 오신 거 같다.
숙소에 있었을 때도 내가 하던 일이기도 하니까 딱히 상관은 없다.
“제가 깎을게요.”
“아, 안 그래도 되는데…….”
“괜찮아요.”
사과를 받아들고는 부엌으로 나와 평소에 하던 것처럼 꼭지부터 자른다.
다음은 반으로 가른 후에 그걸 다시 반으로.
총 8등분을 자르고는 씨앗 부분을 도려낸다.
마지막으로 껍질을 벗겨서 그릇에 담는다.
처음 보면 어려워 보여도 몇 번 하다 보면 손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쉽다.
물론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까지 가는 게 힘들겠지만.
“나도 요리 좀 미리미리 해볼 걸 그랬나 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손 베일까 봐 무서운데…….”
“괜찮아요. 안 베여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으, 응…….”
칼과 사과를 넘겨주니 굉장히 어색한 모양새로 껍질을 깎기 시작한다.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칼을 밀어서 깎는 게 아니라 엄지손가락으로 잡아당기는 거처럼 하면 편하고 안전할 거예요.”
“어떻게?”
“잠시만요.”
자꾸만 위험한 방법으로 깎으시길래 내가 직접 손을 잡고 시범을 보인다.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우면 편하니까.
“이렇게 다른 손가락들은 칼날 방향만 조절해주고 엄지만 움직이면 편해요. 엄지로 이렇게 누른 다음에 칼을 끌고 오는 느낌으로.”
“오…….”
“이제 혼자 해보세요.”
“별것 아니네!”
손을 놓고 한 발짝 물러난다.
시범을 보인 게 효과가 있었던 건지 방금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다.
아직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긴 해도 그건 계속 연습하다 보면 나아질 거다.
“오! 처음 치고는 꽤 잘한 거 같지 않아?”
“생각보다 되게 잘 깎으셨네요. 조금만 연습하면 되겠는데요?”
“나, 요리에 재능 있을지도…….”
“……네.”
제법 감동한 모양인지 직접 깎은 사과를 입으로 가져가며 자아도취 상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굳이 방해할 생각도 없기에 내버려 둔 채로 접시를 들어 식탁으로 옮겼다.
“선생님 불러올게요.”
“아, 잠깐만 시아야.”
“네?”
“잠깐만 앉아볼래?”
갑자기 뭐지?
설마 밥 먹었을 때 그 얘기인가?
혹시나 하는 불안한 기분을 감추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아까 왜 거짓말했어? 형원이가 헤어지라고 할 거 같아서?”
“……”
앉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면 아예 사과를 안 먹겠다고 해야 했나?
아니다.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들켰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왜 들켰지?
어디서 실수했지?
표정 관리를 못 했나?
말실수라도 했나?
아니면 아예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라도 있었나?
혼란스러운 머리를 아무리 굴려봤자 이렇다 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헤어지라고 안 할 테니까.”
“……”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런지 뭐라고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헤어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진짜인가?
기자님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면 딱히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선생님은?
선생님도 기자님이랑 똑같은 생각일까?
선생님도 내가 유정이와 사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에 관해서는 정말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인데?
아무리 직접 가르친 제자이자 가족이라고 해도 쉽게 봐줄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반대할 게 뻔하다.
그러니 여기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유정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망설여지는 걸까.
아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유정이와는 정말로 친구 사이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지금 당장 뱉어내면 되는데 왜 그러질 못하는 걸까.
마치 무언가가 목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은 것 같다.
“형원이도 헤어질 필요는 없다고 했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체 얼마나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마치 깜짝 놀란 것처럼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내가 뭘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진짜로 선생님이 허락도 했고?
말이 되나?
“선생님이 정말로 허락했다고요……?”
“허락했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눈에 띄는 짓만 하지 말라던데?”
“눈에 띄는 짓이요……?”
“근데 어차피 만날 기회도 별로 없을 테니까 그렇게 걱정은 안 한다더라.”
“정말요? 선생님이 눈에 띄는 짓만 안 하면 된다고 했다고요?”
“응, 진짜야. 그래도 연애하는 게 맘에 들지는 않았나 봐. 잔뜩 짜증 내더니 술 들고 작업실에 들어갔어.”
“……”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어딘가 찝찝했다.
선생님이 화를 냈다는 말에 조금 무섭기도 했고, 거짓말이 바로 들켰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을 속이려고 했다는 게 미안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으라며 몇 번이고 되물었는데도 오히려 신경질을 내며 똑같은 거짓말을 몇 번이고 늘어놓았다.
반대할 게 분명하다고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면서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을 거라고 미리 선을 긋고 있었다.
애초에 선생님이랑 기자님이라는 이 호칭부터가 선을 긋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이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죄송합니다…….”
“어? 아니, 죄송할 건 없는데… 다짜고짜 캐물은 형원이도 잘못했으니까…….”
“아니에요. 제가 자꾸 숨기려고 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걔도 다 이해하고 있을 거야. 다 이해하니까 더 짜증이 나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해하니까 짜증이 난다고요?”
“음… 그냥 그런 거야.”
“네…….”
어딘가 껄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시길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는 하셨지만, 역시 신경 쓰인다.
무엇보다 내가 두 사람을 정말로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어색해도 나중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도망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가족이 생긴다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닐까?
없었던 게 갑자기 생기는 거니까.
나도 내 속마음을 잘 몰라서 답답하지만,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저기… 그… 이제부터라도 엄마라고 부를까요……?”
“어, 어? 엄마…? 갑자기……?”
“여태까지 계속 기자님이라고만 불렀잖아요… 계속 이러면 조금 안 좋을 거 같아서요…….”
“그, 그래…? 그래 뭐 상관없기는 한데…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불러도 괜찮아…….”
굉장히 뜬금없이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이런 얘기는 못 할 거 같았다.
기자님도 살짝 당황할 뿐 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은 없으니 꺼내 보길 잘했다.
음… 기자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부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바꾸는 건 쉽지 않네…….
“근데 시아야, 그럼 이제부터 형원이한테도 아빠라고 하는 거야?”
“……”
선생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해본다.
머뭇거리며 힘겹게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는 선생님.
생각만 했을 뿐인데 벌써 불편하다.
이래서 제대로 지낼 수 있을까.
“너무 힘들면 굳이 그렇게 안 불러도 괜찮아.”
“안 돼요. 자꾸 미루면 평생 엄마 아빠라고 못 부를 거 같단 말이에요. 어, 엄마도 계속 기자님이라고 불리는 건 싫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엄마라는 단어를 뱉은 순간,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전혀 쓰지 않던 단어라 그런 것도 있어서 그런지 너무 낯간지럽다.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 건 아마 6살 때가 마지막이었던 거 같은데…….
게다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때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는 여성이면 다짜고짜 엄마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이제는 낯간지럽기는 해도 제대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기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기쁘긴 하다.
워낙 써보지를 않았던 단어라 익숙하지 않을 뿐.
“지금 가서 아빠라고 불러볼래?”
“……지금이요? 지금 작업실에 있으시다고…….”
“어차피 술 마시면서 이상한 노래나 만들고 있을걸? 그냥 가서 한번 해 봐.”
그렇게 말하고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날 놀리고 있는 게 다분한 눈빛이다.
언제까지고 선생님이나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내 입으로 말했으니 빼기도 뭐하다.
그래, 어차피 기자님… 이 아니라 엄마한테도 엄마라고 했잖아.
몇 년이나 알고 지냈던 선생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편이 더 쉽지 않을까?
“한 번 해볼까요?”
“해 봐. 좋아할걸?”
“그래. 아마 좋아죽을걸? 딸 키우고 싶다고 그랬었거든.”
“그, 그래요?”
“응, 그러니까 바로 가서 해보자.”
들뜬 얼굴로 재촉하는 걸 보면 뭔가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한데…….
“진짜 할게요?”
“응, 빨리해 봐!”
그래, 괜히 호들갑 떨지 말고 빨리 끝내자.
아빠라고 한 번 부르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각오를 다진 난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선생님의 작업실 앞까지 순식간에 걸어갔다.
꼴깍하고 마른침을 삼키고는 혹시라도 망설일까 싶어서 그런 틈 따위 주지 않고 살며시 문을 두드린다.
“왜.”
곧바로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빨랐기에 조금 놀랐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뒤 조심히 손잡이를 잡았다.
“들어가도 돼요?”
“어? 뭐야, 시아냐? 어… 그래 들어와.”
나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 건지 당황 섞인 목소리다.
술 갖고 들어갔다더니 취하기라도 하신 건가?
취한 상태라면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허락도 떨어졌기에 조용히 문을 열고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오직 모니터만이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
술 냄새는 그다지 나지 않았지만, 술이 반밖에 남지 않은 걸 보면 꽤 많이 마신 게 분명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뇨… 그…….”
생각보다 멀쩡한 발음과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술 취해서 조금 알딸딸한 상태면 말하기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취한 거 같아.
오히려 이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게 완전히 화내고 있는 모습이다.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게 더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화내고 있는 건지 괜찮아진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들어왔으니까 뭐라도 말을 하자.
은근슬쩍 아빠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지도 몰라.
“아까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다짜고짜 사실대로 말하라고 한 내 잘못이지. 내가 더 미안하다.”
“아니에요… 제가 계속 속이려고 했으니까…….”
“……그 상황에서 사실대로 말했다가 내가 헤어지라고 하면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하…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던 선생님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취한 거 같기도 하다.
움직임이 조금 어색해.
선생님은 그 어색한 움직임으로 의자를 돌리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술이 들어가기는 했어도 눈빛만큼은 아직 날카롭다.
취해도 일 얘기할 때는 평소랑 다르지 않구나.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는 한편, 도저히 아빠라는 단어를 꺼낼 만한 분위기가 아니기에 초조해진다.
“서로 잘못했고 사과도 했으니까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수영이한테 들었지? 유정이였나? 걔랑 사귀는 건 딱히 문제 삼지 않을 거다. 대신 너무 다른 사람 눈에 띌만한 행동만 하지 마.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래… 걸리면 알지?”
“네…….”
“그럼 됐다. 이제 들어가서 자라. 내일도 놀러 갈 거잖아?”
“그렇긴 한데… 어… 아직…….”
“왜? 할 말 더 있어?”
다시 모니터로 향하려고 하는 시선을 잡아 두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어떤 식으로 그 단어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해도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다.
어떡하지……?
“왜 그래? 멍하니 서서.”
“아뇨… 그… 아까 기자님한테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었냐?”
“계속 기자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참에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죠…….”
“그래? 음… 그래서 나한테도 왔다 이거구만?”
어딘가 기분 나쁘게 우는 걸 보니 내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다.
이럴 거 같아서 은근슬쩍 말하고 넘어가려고 한 건데…….
“이제 나도 아빠 소리 들을 나이가 된 건가… 시간 참 빠르네…….”
“……”
이마를 짚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다.
이 아저씨가 술에 취하더니 이상해졌나?
아빠라고 부르기 싫어지는데?
“그래, 빨리 아빠라고 해 봐. 딸한테 선생님이라는 말 듣는 것도 참 착잡했는데 이제야 좀 낫겠네.”
“……저 그냥 자러 가도 돼요?”
“왜, 아빠라고 부르려고 온 거 아니야?”
“맞아요… 근데 뭔가 하기 싫어졌어요.”
“그래? 그럼 굳이 안 해도 괜찮아.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잘 자라.”
너무 능글맞은 모습이 조금 귀찮아서 살짝 튕겨봤지만, 역시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아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짜증 난다.
진짜 짜증 나.
“정말로 자러 가요?”
“그럼 안 잘 거야? 내일도 나갈 거라며? 데이트 준비하려면 일찍 자야지.”
관심조차 없는 듯 시선은 이미 모니터에 고정돼 있다.
날 놀리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그래, 잘 자라.”
관심 없는 척해봤자 사실 기대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그맣게 아빠라고 불러봤는데 특별히 반응이 없다.
제대로 못 들은 건가?
“아빠? 저 자러 갈게요?”
“알았다니까? 왜? 또 할 말 있어?”
“……”
한 번 더 부르자 선생님… 이 아니라 아빠의 시선이 다시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그 표정에 짜증이 싹 사라져버렸다.
짜증이라는 감정이 빠져나가 비어버린 공간을 메운 건 다름 아닌 황당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조금은 기쁜 묘한 감정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뭐. 웃는 것도 허락받고 웃어야 하냐?”
“그렇게 웃지 마요. 진짜 못났으니까.”
“안물.”
“……진짜 아재 같아.”
“아재한테 계속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자러 가시죠? 여기서 밤샐 거예요?”
“말 안 해도 자러 갈 거거든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서둘러 작업실에서 나온 나는 그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
이불을 끌어안은 채로 발로 두어 번 차고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리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격한 운동이라도 한 듯 몸이 뜨겁다.
특히 얼굴이 굉장히.
“내일 어떻게 하냐고……!”
당장 내일만이 아니라 평생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아무래도 좋았다.
내일 아침 어떤 얼굴로 선생님… 이 아니라 아빠를 봐야 하냐고!
엄마라고 했을 때보다 훨씬 창피해!!
끌어안고 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도롱이 벌레라도 된 것처럼 몸을 둘둘 말았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죽을 거 같았다.
진짜 죽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다.
“진짜 내일 어떡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