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주 마왕-20화 (20/147)

〈 20화 〉 라면 #3

* * *

주변을 둘러보며 pc방을 찾으며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리제가 나를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리제에게 붙잡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곧바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위치는 정하지 않았다. 벽이나 땅 속으로만 들어가지 않기만을 기원했다. 보험을 들어놓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

블링크로 이동한 곳은 골목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거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블링크를 시전하기 몇m 밖에 리제가 나타난 것이다.

벌써 도착했다는 것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만 늦었으면 그녀에게 붙잡힐 수 있었다는 것에 조금 긴장되었다.

“흠.. 도망치신 것 같군요.”

나는 긴장하며 리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자신의 소매를 털며 중얼거리고는 그 곳에서 사라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들키는 줄 알았다.

리제가 있던 곳에서 고개를 돌린 나는 감탄을 내뱉었다. 바로 내 앞에 pc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신기했다. 길도 안 잃어버리고 pc방을 바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의 기적인 것 같았다.

“음.. 신의 기적이라니, 나한테 그런 건 필요 없지”

마족에게 신의 기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마신도 본 적 없고, 그의 축복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길을 바로 찾게 해준 것은 하느님의 축복일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pc방으로 오르다가, 멈춘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리제가 주변에 있을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편안한 마음으로 pc방으로 올라갔다.

“어서오세요.”

pc방 안으로 들어서자, 알바생이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여 받은 후, pc방 안을 둘러보았다. 자리가 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pc방 깊숙이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리제가 이곳에 왔을 때,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나는 간단하게 pc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바탕화면에 있는 주문하기를 눌러 컵라면을 바로 주문시켰다.

라면을 먹기 위해 pc방을 들어온 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편의점에 간다면 리제에게 바로 붙잡힐 것 같은 느낌이 방금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으음..”

주문시켰던 라면이 올 때가지 기다리며 컴퓨터로 웹서핑을 하였다. 휴대폰으로 웹서핑을 할 수 있겠지만, 데이터가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컴퓨터로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어떻게 해야 맛있게 라면을 먹을 수 있을지 검색을 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맛있게 끓일 수 있을지 검색하고 있었다.

“음.... 별로 좋은 정보가 없네.”

일단 여기서 컵라면만 먹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기 주문하셨던 컵라면이요.”

“아 넹.”

웹서핑에 집중하고 있을 때, 컵라면이 나왔다. 컵라면은 왕뚜껑이었다. 그냥 라면이면 좋다고 생각해서 주문시켰는데, 이 라면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컵라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오오.. 정확하게 나눠졌어.”

나무젓가락이 아주 아름다운 11자로 뜯어졌다. 나는 이렇게 뜯어진 나무젓가락을 보며 이유모를 쾌감을 느끼며, 컵라면의 면발을 휘휘 저었다. 맛있어보였다.

나도 모르게 흘린 침을 삼킨 후, 젓가락으로 면발을 후후 불어 먹으려고 하려는 순간, 갑자기 pc방의 문이 쾅하고 열리며 여러 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부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무기를 들고 있었다.

“나한테 무슨 액운이 끼었나. 가는 곳 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한 숨을 내쉬었다. 어제부터 이상한 일에 계속 휘말리는 것 같았다. 물론 어제는 내가 납치당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당해준 것이긴 하지만, 오늘은 라면을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리제와의 두뇌싸움을 벌이고, 라면을 먹으려고 할 때, 범죄를 저지르려는 헌터들로 보이는 이들과 조우하였다.

분명 이 세계에 있는 신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 일 벌이면 리제에게 들켜버릴 텐데..”

몰래 먹을 라면도 못 샀는데, 여기서 리제에게 붙잡히면 라면은커녕 지금 먹으려는 라면도 빼앗길게 분명했다. 일단 죽어도 먹고 죽은 귀신이 떼깔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라면을 먹기로 하였다.

“오!”

입안에 퍼지는 매콤한 맛, 그리고 느껴지는 합성조미료들의 향연, 나는 작게 눈물을 흘렀다. 맛있었다. 역시, 몇 백 년 동안 먹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후루룩하고 면발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리제는 왜 먹지 못하게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나는 못 먹도록 한 후, 자기 혼자 먹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리제는 사악한 천사일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지도 못하도록 하다니, 나중에 반드시 따지고 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한 후, 라면을 계속해서 먹었다. 그리고 왜 pc방에 와서는 저런 짓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은행에 가서 저 행위를 하면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철창을 구경도 할 수 있는데, 고작 이런 pc방에서 저런 짓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관심을 끌고 싶어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빨리 빨리 나오지 못해!”

“후루룹”

가게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 하지만 나는 무시했다. 왜냐하면 저들보다는 라면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수 백 년 만에 먹는 라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운 빨로 리제를 따돌리고, pc방 안으로 들어와 컵라면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히히하고 웃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 때문에 조금 신경이 거슬렀다. 하지만 나한테는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 껐다.

“거기! 너도 빨리 나와라!”

무시했다. 아직 라면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면발을 모두 먹은 나는 국물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왜냐하면 나에게 다가온 녀석이 나의 라면 국물을 손으로 쳐서 국물이 바닥으로 엎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바닥에 엎어진 국물을 바라보았다.

“빨리 나오라는 말 안 들려!? 나오라고!”

“아씨,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욕 나오게 하네.”

“뭐?”

나의 유토피아를 망쳐버린 빌어먹을 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나를 깔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서 무언가가 확 올라왔다. 분노였다.

내가 분노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뒤에서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녀석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무기인, 거대한 망치를 나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그 망치를 한손으로 붙잡으며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내 손에서 자신의 무기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 녀석의 힘만으로는 내 손아귀에서 망치를 빼낼 수 없었다.

“너 때문에 내 라면이 엎어졌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닥쳐!!”

녀석은 자신의 무기를 버리고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 멍청해 보았다. 아니, 그보다 왜 만나는 녀석들마다 이런 인성이 파탄되어 있는 녀석들과 만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마족이라서, 거기다가 마왕이라서 그런 거려나.’

나에게 향하는 망아지의 주먹을 보지도 않고 피하면서 만나는 인간들이 죄다 인성이 파탄되어 있는 인간들만 만나는 것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왕이 된 것도 살기 위해서 마왕이 된 것인데, 고작 그런 이유로 착한 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이곳에 와서는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들도 많이 했었다. 모기 새끼들도 퇴치해주었지, 그들이 하려던 행위들도 모두 알려주었다.

“하아, 넌 좀 저리가”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망아지의 뺨을 죽지 않을 정도로 살짝 쳐서 날려버렸다. 녀석은 그 자리에서 풀썩하고 주저앉으며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져있는 라면을 보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한 모금도 못 마셨는데.’

면발도 맛있었는데, 국물을 마시면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저 녀석 때문에 라면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갑자기 열이 확 올라서, 그 녀석의 다리를 뻥하고 차버렸다. 그리고 기절했던 녀석은 갑자기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엄청난 비명을 내뱉으며 좌우로 구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 허접.”

지금까지 만났던 헌터들은 방금 전의 힘에는 그저 눈을 찡그릴 뿐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힘으로 아프다고 저리 굴러다는 건 허접이라는 말이었다.

고작 이런 녀석 때문에 내 라면이 희생당했다는 것에 너무나도 슬퍼왔다.

“감사합니다.”

“읭?”

갑자기 들려오는 감사인사,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그 감사인사를 한 이를 바라보았다. 그 자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녀석과 똑같은 복면을 쓰고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조금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 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자는 진짜로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 자를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민간인들을 죽일 뻔 했네요.”

“하아?”

이상한 말을 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어이없는 목소리로 그 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자는 내 모습에 작게 웃음을 내뱉더니,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기절시킨 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잠깐만.”

이해할 수 없는 현 상황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민간인들에게 사과하며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녀석들을 붙잡았다. 그 녀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무시하고, 내가 날려버린 녀석을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녀석을 손짓으로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잠깐만 그 녀석 좀 줘봐”

“뭘 하시려는 겁니까?”

“잠깐이면 돼”

나는 기절해있는 녀석의 머리를 잡고는 기억을 읽었다. 역시 정신을 잃고 있는 상태에서 기억을 잃는 것이 가장 잘 읽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지만 죽으면 몇몇 기억이 손상됐기 때문에 정신만 잃은 상태인 녀석은 읽기 가장 좋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녀석과 지금 저 녀석을 들쳐 매고 있는 녀석은 서로 다른 길드였고, 지금 저 녀석들의 길드는 이 녀석의 길드에게 길드장의 딸이 붙잡혀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되었다.

나는 다시 가보라는 듯이 녀석을 밀었고, 그 녀석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묻지 않고 그대로 pc방에서 빠져나갔다. 그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저 저 녀석들 사정이었다.

“아, 라면 좀 사오라고 시킬걸.”

나는 조금 후회한 표정을 짓고는 카운터로 가서, pc방 이용료와 라면 값을 낸 후, pc방을 빠져나갔다. 리제도 지금즈음이면 눈치 챘을 것이다. 내가 지금 pc방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당장 튀어야겠다.”

“어딜 도망치시겠다는 겁니까?”

“히익!?”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리제의 목소리, 나는 소름이 끼쳐 뒤로 황급히 물러서며, 리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나의 기감을 피해서 내 곁으로 다가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pc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와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사고를 치셨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라면 사먹으러 가볼게!”

그녀에게 말하고는 바로 블링크로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들려오는 리제의 한숨소리, 뭔가 마음 한편이 찔렸지만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지금 라면이 가장 중요하니까, 라면에 목숨을 건 마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그녀도 목숨을 걸고 저지를 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후우우..”

블링크로 사라진 신시아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리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옛날에는 말도 잘 들으셨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말은 지지리도 안 듣게 되셨다.

“거기다가, 제가 포기하고 라면을 끓여드리시려고 했는데, 오히려 벌을 드려야겠군요.”

특별히 그동안 라면을 먹고 싶어했던 신시아를 위해 특제라면 레시피로 맛있는 라면을 끓여드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도 듣지 않고 도주하고, 이렇게 사고를 치고는 도주한 신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메뉴들로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하였다. 신시아가 벌여뒀던 일의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마왕님이 싫어하실 것 같은 가지무침을 해드려야겠군요.’

자신도 조금 먹기 버거운 물컹물컹한 식감의 가지무침을 해드리면 자신이 모시는 마왕이 먹기 싫지만, 억지로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