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주 마왕-83화 (83/147)

〈 83화 〉 침입자 #6

* * *

나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있는 신유리를 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으로서는 아카데미가 정상적으로 수업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아카데미에 테러리스트가 침투했고, 사상자들이 몇 명 나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죽은 인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조금 심심해서 가지고 놀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몇 명이 모두 죽었거나, 거기 있던 녀석들 모두 끌려가서 안 좋은 일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뭐 지금은 지난 일이다. 그 이상한 짓을 할 녀석들은 모두 내가 가지고 논 다음에 처리하고 뒷수습도 하고 왔기에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뭐, 있어 봐야 루미놀 용액으로 여기저기에 혈흔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언가를 잊고 안 가져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뭘 안 가지고 온 거지?

나는 고갤 갸웃거렸다. 분명히 중요한 것인 게 분명한데, 왜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뭐.”

“거기서 뭘 두고 오셨어요?”

“엉? 으응... 근데 기억이 안 나네..”

내 말을 들은 신유리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벌써 치매가 오시는 거예요?! 그 젊은 나이에!? 이게 바로 청년 치매!? 어서 병원을...!”

“갑자기 뭔 치매야! 이 멍청이가!”

“기억 안 나신다면서요?!그럼 치매잖아요!”

“너무 극단적이잖아! 그냥 까먹을 수도 있잖아! 너도 매번 그러잖아! 꼭 챙겨야 할 물건 깜빡하고 다니면서! 그럼 너도 치매지!”

“전 젊으니까 치매가 아니에요!”

신유리를 잠깐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바로 가불기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로 남불? 어떻게 생각한다면 남이 기억나지 않으면 청년 치매, 그리고 자신이 깜빡하면 젊음으로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신유리는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달라붙어 나에게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뭘 두고 왔냐며, 그리고 정확히 무슨 상황이었냐고 나에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폭력성이 조금 튀어나와서 테러리스트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신유리에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폭력성을 알아차리고 나와 멀어지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뭘 두고 온 거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인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것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언젠가 기억나면 회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했다.

“아! 그 변태 할아범탱이는 어떻게 하셨어요?”

“아... 그 할아범?”

“넹!”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조금 과장해서 용감하게 영웅처럼 죽었다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내 마음은 사실대로 말하라는 것에 기울고 있었다.

신유리도 그 선생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현재,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기에 나는 혹시 그녀에게 어떤 걸 원하는 지 물어보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해 줄까? 아니면 그냥 대략적으로 말해줄까?”

“사실대로요. 과장시키지 마시고!”

“어.... 알았어.. 근데 왜 그렇게 듣고 싶어 하는 거야?”

신유리는 내 물음에 마기와 비슷한 어두운 기운을 풍기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악마같이 보이는 거지. 조금 무서운 것 같다고 느끼다가. 그러다가 내가 왜 악마를 무서워하는 거냐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그 변태 할아범이 저와 단둘이 있으면 성희롱이나 자기랑 어디 좀 놀러 가자고 들이댔거든요. 후후후후... 아직 자기가 젊어 보이고 젊었을 적에 잘나갔다고 생각했는지, 제가 납치당할 뻔하기 전까지 매번 그랬어요.. 우리 아빠보다도 못생긴 사람이 계속.. 흐흐... 한번 신고도 해 보았지만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냥 풀려나고 후후후...”

조금씩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는 신유리를 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마왕인 나보다도 더 마왕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거지.

아니, 내가 분위기 잡는 기관이 퇴화하여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인 신유리가 나보다도 마왕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느낄 리 없었다. 그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기 위로하면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대략적으로 말했다.

“음... 맨 먼저, 간단히 말하자면 그 선생이 배신자였더라. 테러범들이랑 같이 합세해서 이 아카데미의 녀석들을 모두 납치하려고 했지.”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요.”

신유리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나에게 묻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의 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나에게 질문하는 녀석. 신유리 때문인 것이다.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신유리는 굉장한 미인이다. 거기다가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미인. 물론 우리 집에서 살면서 리제에게 굴려지는 모습도 보았기에 리제에게 굴러져서 저런 몸매를 가지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따라 조금씩 근육이 생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무기는 뭐 써?”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으셨어요?”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신유리.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이 무기를 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매번 도망치거나, 나에게 도움 받는 모습밖에 못 봤다.

그렇기에 역으로 신유리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이야기를 하자, 신유리는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쑥스럽다는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아... 맞다. 그랬죠? 헤헤..”

“그러니까, 너, 무슨 무기를 쓰는데.”

“저는 검을 썼어요. 네.”

“검?”

나는 신유리를 잠시 스캔하듯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절대로 검을 사용하던 몸 상태가 아니었다. 손에 굳은살도 없었으며, 무언가 보법을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과거형으로 말했다는 걸 깨닫고 그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썼다고? 지금은?”

“권법이요! 리제님이 가르쳐 주고 계세요!”

“아...”

나는 불쌍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초반에는 그저 체력단련 및 초식을 가르쳐 주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어난다 싶으면 바로 실전과 같은 대련을 시작하는 것이 리제의 단련법이었다. 그걸 모르는 신유리의 모습이 나는 왠지 모르게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어릴 적, 그녀에게 수련을 받으면서 토까지 했던 내가 떠올랐기에, 나보다 더 허약한 신유리는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힘내.. 응... 포기하지 말고.”

“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갑자기 불안 하잖아요!! 거기다가! 제가 물어본 것도 대충 말하고 넘어가시려고 하시고!”

나에게 떼쓰듯 말하는 신유리에게 이걸 진짜로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자기가 말해 달라고 했으니 말해주도록 해야겠다.

뭐, 리제의 훈련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보다는 자기가 직접 겪어보라고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야, 나 혼자서 그 무지막지한 훈련을 할 수는 없었다. 나랑 같은 훈련을 그 녀석도 같이 당해 봐야지.. 나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으면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그 특수 부대의 훈련보다도 더욱 강도가 높은 훈련. 이 허약한 신유리는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미리 절망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속으로 웃으면서 신유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음... 일단, 그 녀석, 너 때문에 배신한 거 같던데?”

“에? 저 때문에요?”

“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널 19금 동영상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그 녀석들이랑 협력한거야! 거기다가 오늘 아침에 네게 건네주었다는 물건에도 추적마법이 걸려 있었잖아.”

“에......”

신유리는 충격 받은 듯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오늘 아침 담임에게 받았던 경보기를 꺼내 바닥에 내팽개친 후, 마구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보기가 완전히 박살나자, 그제야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찜찜했는데, 역시 그런 꿍꿍이가 있었군요.”

“그..그렇지... 그런데 너 오늘따라 뭔가 성격이 바뀐 거 같다..?”

“넹? 전 평소와 같은데요?”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맞겠지... 응.”

나와 신유리가 둘이서 떠들고 있을 때, 갑자기 뒷자리녀가 끼어들었다.

“잠깐, 네가 한 말을 들어 보면, 우리 담임이 이 녀석 때문에 테러리스트 녀석들이랑 붙어먹었다. 이 말인데, 거짓말이지? 아카데미 선생이라는 작자가 그럴 리가 없잖아.”

“사실인데, 내가 다 듣고 왔어. 고작 이 녀석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테러리스트들이랑 붙어먹었더라.”

“......”

“그런데 너도 참 담이 크다. 나 마왕이라고 했는데, 안무서워하고.”

내 말에 뒷자리녀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게 꼭 우리 또래 같아서 별로 무섭지도 않아. 그리고 마왕이라고 하기에는 위압감이라던가, 위엄같은 게 전혀 안 느껴져. 그냥 동네 바보 같아.”

“도..동네 바보..”

“아니지, 호구구나.”

“호..호구...”

나는 뒷자리녀의 말을 듣고는 충격에 빠진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내가 동네 바보 아니면 호구라니, 나는 마왕인데..

침울하게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후, 양손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인간들과 친근한 마왕이라고 여기저기에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인간들이 간식거리도 건네주겠지?

나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시시덕거리다가 그곳에 신유리에게 두고 보라고 소리치던 그 멸치 녀석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곳을 사역마로 살펴보았을 때, 멸치 녀석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내가 처리할 땐 없었던 거지?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더라?”

“이서윤이라고! 몇 분 전에 말했잖아! 그걸 기억 못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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