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사람 찾아 삼만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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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잠에서 깬 안혜린. 그녀는 잠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여기가 자신의 집이나 사무실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후, 고개를 숙였다.
어제, 자신이 그녀에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찾아간다고 해도, 그녀가 어떤 사정으로 인간을 죽였는지 묻지도 않고 적의를 보인 탓에 자신에게 실망, 또는 분노하여, 훗날에 자신이 찾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으으…. 어젠 왜 그랬던 걸까요.”
너무 후회되었다. 도대체 어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녀에게 그렇게 분노했던 걸까.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평소였으면 왜 죽였냐고 물었을 것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런 말을 내뱉은 건지.
그래도 한 가지 예상되는 것이 있었다.
자신에게 향했던 그 정신공격. 그게 그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왔다.
자다 깨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한숨을 쉬는 안혜린을 보며 신윤은 한심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제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있을 때 잘하지. 없어지고 나서야 후회하는 걸 보니 한심했다. 분위기상 신시아님이 리제님에게 도와주라고 하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화내시며 가시는 모습을 보니, 신시아님이 도와주라고 해도 리제님은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한번 정하면 어지간하지 않으면 절대로 바꾸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에휴….”
신윤은 고개를 흔들고 아침이나 먹을까란 생각하고 냉장고를 보았다. 그러고 이내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있다는 걸 떠올린 후, 침을 삼킨 후, 옆에 쌓여있는 전투식량들을 보았다.
또 저걸 먹어야하는 건가? 지금쯤이면 그분께서 아침식사를 주실 시간이기는 하지만, 왠지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안 오실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저거 먹어야한다는 뜻이었다.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안혜린을 바라보았다.
저런 게 대마법사…?
저 여자 때문에 자신은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야하는 음식을 먹어야할 상황이었다. 맛있는 식사를 먹지 못하게 된 탓에, 그녀를 살기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신윤.
그녀의 살기어린 시선을 느낀 걸까? 안혜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려고 하자, 신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표정을 순식간에 바꾼 것이다.
“왜 바라보시나요.”
“아침 드실껀가요.”
“아…. 먹긴 해야죠.”
어제, 저 사람이 자신에게 건네준 비스킷 몇 조각밖에 먹지 못했다는 걸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 충격적이어서 그런 걸까?
그나저나, 아침을 먹고 난 후에 여기서 빠져나가야했다. 그래야 협회장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출구가 어디인지, 저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을까?
안혜린은 신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은 분명히 리제님이 보호해줘야할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을 위해서 텔레포트로 이동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갇혀서 지낸다면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기에, 분명히 저 사람도 가끔씩 밖에 나가 산책을 할 것이다. 즉, 출구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기.”
안혜린은 조심스럽게 신윤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른 여자를 조금 짜증어린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움찔하면서 몸을 움츠리는 안혜린.
“뭐예요? 왜 부른 건데요?”
“혹시, 여기 출구가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출구 그런 거 없어요.”
“네…?”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출구가 없다고? 그럼 어떻게 왕복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다가 문 득 깨달았다. 출구가 없다는 것은 공간이동 마법으로만 오고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여긴 진짜로 밀폐된 공간이란 말이었다. 그럼 얼마 못가서 공기도 부족해질 텐데….
산소가 부족해지면 당신도 죽을 텐데, 왜 그렇게 태연하냐며 신윤을 바라보는 안혜린.
그녀의 시선에 숨겨져 있는 뜻을 깨닫지 못한 신윤은 눈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왜 쳐다봐. 너 때문에 이거 먹고 있는 거 안보여?”
신윤은 전투식량을 흔들면서 말했다.
안혜린은 침을 삼킨 후,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공기……. 부족하지 않아요? 여긴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잖아요.”
“아…. 그거 때문에 본 거였어? 간단하네. 환풍구가 있잖아. 혹시 바보야?”
“…….”
신윤이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그녀는 침묵했다. 그야, 그녀가 가리킨 곳에 대놓고 환풍구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어투로 말하기 시작하는 신윤.
“당신, 대마법사라고 칭송받는 사람이잖아. 이런 간단한 것도 떠올리지 못해? 아니면 일만 해서 이런 건 다 까먹은 건가? 아니, 도대체 어떻게 다른 세계에 계시던 신시아님도 금방 떠올리는 걸, 왜 못하는 거지?”
그녀를 까 내리는 말을 하는 신윤이었지만 안혜린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하는데, 현재 자신의 상태로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상태였다.
여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야하는데, 현재 자신의 경지로는 만전의 상태에서도 텔레포트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현재 자신의 상황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아….”
“아니,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혹시 어제 그 쪽지 때문이야? 그냥 신경 꺼.”
언제 꺼낸 것인지, 비상식량을 뜯어먹고 있는 신윤이 말했다. 하지만 안혜린은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저 말에 동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헌터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대마법사라고 칭송받는 헌터. 그렇기에 더욱 이 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자신이 이럴 때, 그들에게 피해를 보는 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한시라도 빨리 나가서 협회장님을 만나,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사해야만 했다.
“뭐, 표정을 보니, 절대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네. 도와줄까?”
“어…? 정말요? 그런데 저희 어제 처음 만난 사이 아닌가요? 왜 반말을 하시는 건가요?”
“네가 나의 즐거움 중 하나를 빼앗아갔잖아. 이게 밥이야? 개죽이지.”
신윤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이 먹고 있는 전투식량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면서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먹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아, 너 먹은 적 없지. 네가 한번 먹어봐. 얼마나 맛이 없고, 역겨운지. 저거 봐 저거……. 쯧쯧, 복에 겨워서는”
안혜린의 말에 신윤은 혀를 차면서 박스에서 전투식량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로써는 신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먹었던 전투식량들은 방부제라던가 그런 것들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맛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알 리 없었다.
“뭐……. 배도 고팠으니, 먹어보도록 할게요.”
“후회하지나 마. 그리고 도와준다고 말했으니까, 도와주기는 할게.”
안혜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윤이 던진 전투식량을 받고는 그녀의 설명에 따라 전투식량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 후, 먹고 있던 전투식량을 잠시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 리제님에게 전화한다면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기에, 신시아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명히 마왕이라고 하셨으면서, 왜 그런 성격을 가지고 계신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시아님은 자신이 다스리던 곳에서도 무시당하시거나, 이용당하셨을 것이다.
요리보고, 저리 봐도 나 사악하다! 라는 주장을 내뿜는 기운을 다루고 계신데, 성격은 호구라니, 혹시 타락천사가 아니실까? 가장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 않으면 마왕이 저렇게 호구같이 행동하실 리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타락천사라서 더욱 악독하게 행동해야하지 않을까?
“신시아님의 성격은 참……. 미스터리하단 말이야. 마왕이 저럴 수 있나.”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시아는 마계에서는 지금의 성격이 아니었다. 리제를 제외하고는 전부 냉혹하게 행동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풀어져서 그때의 성격을 내보내기는커녕, 보일 수도 있나? 란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그렇게 신시아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신윤.
“여보세요? 신시아님!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많아서, 너무 탈이야……. 심심해. 심심해 죽을 거 같아…. 근데, 왜 전화했어?”]
“제가 사는 곳에서 사람 한명, 밖으로 내보내야할 거 같아서요.”
신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기서 구역질하고 있는 안혜린을 보면서 말했다.
저 모습을 보니, 꽝을 뽑은 것 같았다. 자신이 던져주긴 했지만, 먹는다고 한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신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 후, 다시 전화에 집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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