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여행 #1
* * *
안혜린을 심문실 바깥으로 내보낸 이후, 고개 돌려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안 따라가도 되겠어요?”
“뭐, 저 녀석도 6서클인데 뭐,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지키겠지.”
“그건 그렇지만……. 마왕님께서 따라간다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도 괜찮아요?”
신유리의 말을 듣고 나는 안혜린의 표정을 떠올렸다.
먼저 그녀에게 내가 따라간다고 했을 때,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표정, 그리고 조금 전의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약속이 깨져서 다행이라는 것 같은 모습 같았다. 이러니 왠지 모르게 괘씸했다. 하지만 나는 자비가 넘치는 마왕님! 그냥 넘어가야겠다.
물론 나중에 또 그런다면 패널티를 하나 가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기에 그 가문 사람이 살고 계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엉? 걔? 저기 있잖아.”
내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신유리.
그 곳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는 신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본 후, 신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당신이 범인이냐며 추궁하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지? 마치 내가 저 녀석을 게임에 중독 시켰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나는 눈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작되는 눈싸움.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자, 신유리는 눈이 아픈지, 눈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해, 그대로 크게 손뼉을 치자, 놀란 신유리가 눈을 깜박였다.
“좋았어! 내가 이겼다!”
“……눈싸움이었어요?”
“엉? 아니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신유리는 작게 아니었는데, 라고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자기도 재미있었으면서. 나는 히죽 웃으면서 신유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그에 아픈 듯이 눈물이 맺힌 눈이 찌푸려지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히죽 웃었다.
“으으…. 아프잖아요! 마왕님 손이 얼마나 매운지 모르세요?! 살살 때려도 아파죽겠는데, 전력으로 때리시다니! 너무해요! 저는 그냥 마왕님이 저 사람을 컴퓨터 중독으로 만들어버렸냐고 바라봤을 뿐인데! 고작 그런 이유로 절 때리시다니! 너무해요!”
“맞을 만한 사항인데. 그런 걸로 항의하다니! 네 놈의 간이 팅팅 부었구나! 여봐라! 계 없느냐! 저 녀석에게 벌칙 음식을 가져다주어라!”
“히이이익!!! 살려주시옵소서! 폐하…! 그런데 벌칙 음식이 뭐예요?”
나의 농담에 맞장구를 쳐주다가, 벌칙 음식이 뭐냐며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신유리. 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신유리. 그 곳에는 하나의 박스가 있었다.
그것을 본 신유리는 이게 뭐냐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저 박스는 예전에 내가 샀었던 MRE였기 때문이다. 당첨인 것은 먹을 만한 것이지만, 꽝인 것은 오늘 안혜린처럼 화장실에 박혀있게 될 것이다.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본 신유리는 침을 삼키며 긴장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게 뭔지 궁금해…? 알려줄 수는 있어. 알려줄까? 응? 오…. 표정은 거절하고 싶다는 표정이네? 하지만 유감! 넌 저걸 반드시 먹어야해! 그렇다면 저게 뭔지 알려달라고? 알려줄 수는 있지! 바로 구형 미군 MRE야! 즉 미군 전투식량이라는 뜻이지! 전투식량 먹어본 적 있다고? 먹을 만했다고? 에이. 아니야. 저건…….”
나는 천천히 신유리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작게 소곤거렸다.
“복불복이야. 네가 배탈이 날지, 아니면 먹을 만한 걸 먹을지. 기대되지 않아?”
“……마왕님 혼자서 죽치고 장구 치시네요. 전 먹는다고 한 적 없어요! 여행가기 싫으세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재미없다는 듯, 반쯤 눈이 감긴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 모습에 화가 난 것인지, 양손을 꽉 주먹 쥐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이 녀석을 놀리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걸.
“하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이건 이거잖아. 나도 저 녀석도 그리고 안혜린도 먹었는데 너도 먹어야지!”
“설마,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물귀신 작전이었어요?!”
“후후후…. 그래! 나 혼자 저딴 걸 먹을 순 없지! 너도 먹어라!!”
“싫어!!! 분명히 맛없는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싫어요! 먹기 싫다고요! 마왕님이나 실컷 드세요! 그냥 바라봤다는 이유로 저걸 먹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필사적으로 먹기 싫다며 나에게 소리치는 신유리를 보면서 나는 실실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신유리의 양 어깨 사이에 팔을 집어넣으면서 그녀를 포박하는 사람. 바로 조금 전까지 게임을 하고 있었던 신윤이었다.
“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낀 것인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붙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신유리를 보면서 나는 히죽 웃었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소리 지르고 있는데, 저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여기에 박혀서 게임만 하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저래보여도 헌터다. 신 씨 가문에서 몰래 육성시킨 녀석인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없었다. 아마도 저 녀석이 여기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주 어린 꼬맹이라도 저 녀석이 가문을 배신했다는 것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이 때, 신윤이 나에게 눈빛으로 저 곳으로 데려가면 되냐고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신윤은 양 팔로 포박되어있는, 지금도 발버둥을 치고 있는 신유리를 끌고 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자아. 아무거나 골라서 드세요!!”
“전 먹기 싫어요!! 싫다고요!!”
“후후후…. 다★메★”
“이 사람 진짜 그 곳 사람 맞아요?! 아무리 봐도 진중함이라고는 없잖아요! 아…. 맞다…. 우리 아빠도 저러셨지.”
신유리는 딸 바보인 자기 아빠를 떠올린 후, 우울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신윤에게 상자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빨리 고르라고 재촉하는 신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기서 더 괴롭히면 분명히 단단히 삐칠 것이라는 것이 예상되었기에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장난이야. 그래도 그거 하나는 먹어. 네가 진짜로 헌터가 되고 싶다면 저것도 먹어보기는 해야 해. 저거보다도 훨씬 맛없는 것도 먹어야할 때가 있을 수도 있어. 나 같은 경우에는 벌레랑 흙탕물을 먹은 적이 있었어.”
“신시아님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요?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신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신윤이 내가 온실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대로 선대 마왕이 죽은 후, 그대로 왕좌를 계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머릿속에 입력한 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왕의 좌에 오르려면 다른 마왕 후계자들을 모두 죽여야 해. 내 생물학적 아버지. 마왕 녀석이 싸지른 녀석들이 수도 없이 많았거든. 그 녀석들이랑 싸울 때, 식량이 없어서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벌레를 먹긴 했었어. 마치 바선생님 같았지.”
“에에…….”
나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먹으라고 하면 절대로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맛도 얼마나 끔찍했는지,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들이 한 대 섞인 것 같은 악취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맛. 거기다가 징그러운 바선생님의 모습.
그 때는 살려고 먹긴 했지만, 먹으면서 얼마나 토할 뻔 했는지. 그걸 지금 떠올리자, 구역질이 나왔다.
“우욱…. 아…아무튼 저건 천사야 천사. 그러니까 한번 훈련이다 치고, 한 개 골라둔 다음에 나중에 한번 먹어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신유리. 그러다가 나는 한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히 저 녀석은 부산으로 여행가자고 나에게 말을 했었다. 그렇다면 미리 짜놓은 계획도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부산에 갔다 오기는 했지만, 리제를 따라 시장에 갔다 왔을 뿐이다.
나는 침을 삼킨 후, 그녀에게 말을 했다.
“부산에 여행가자고 했잖아. 계획은 짜놨겠지?”
“아뇨! 하나도 안 짜놨어요! 원래 여행은 무계획이 가장 재미있다고 하잖아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고개 돌려서 신윤에게 맞냐며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니라는 신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간다면 소비가 늘어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계획을 짜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신윤이 신유리에게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지만, 그녀는 무계획성 여행을 가기로 굳게 다짐했는지, 양손을 불끈 쥐고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계획대로 간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에요! 원래 여행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여행! 계획대로 간다면 그것은 그저 탐사지 여행이 아니잖아요!”
“…….”
신유리의 외침을 들은 후, 나를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신윤. 그리고 그녀의 외침에 더 설득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돌려 하던 게임이나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쟤가 고집불통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지출이 많이 나가면 나도 빠듯한데.
자신의 통장의 잔고를 떠올리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번에 이것저것 마구 사다보니까, 내 잔고가 조금씩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서 돈을 잔뜩 쓴다면 리제에게 혼나고 말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키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리제에게 이르는 것이다. 무계획대로 가서 돈을 흥청망청 쓰려는 신유리의 계획을!
“나의 돈은 내가 지킨다! 어이! 신유리! 순순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리제에게 모든 것을 알리고 말 것이다!”
“헉!”
내 말에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신유리.
역시 효과 만점이다. 그녀도 리제가 얼마나 무서운 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안 무서워해? 나는 마왕이잖아! 리제는 내 메이드고! 날 더 무서워하는 게 당연한데! 난 왜 안 무서워 하는 건데!! 설명해봐!”
“하찮아서? 아니면 바보 같아서? 또는 호구?”
“…….”
나는 충격 받은 모습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충격 받은 내 모습을 보면서 신유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제 친구시잖아요. 친구를 무서워하는 게 말이 되요? 만약에 친구를 무서워한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고 그저 공포에 굴복한 부하잖아요. 그리고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맞아요. 저도 부산에서 살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거든요. 알고 있어봐야 해운대? 지금 이 추운 날씨에 해운대에 가는 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날씨에 바닷가에 가는 건 좀 아니지. 물론 바다낚시 하러 간다면 말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낚싯대가 없기에 낚시 하러 가는 건 조금 아니었다. 비싼 낚싯대는 모두 고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산으로 여행 간다고 해도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했다.
“어…. 그냥 평소처럼 발 가는대로 가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저희는 먹을 것에만 돈 쓸 생각이잖아요. 그러니까. 계획은 세우지 말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버스타면서 휴게소에 들려, 군것질거리를 사먹고, 부산에 도착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행. 좋아 보이지 않아요?”
“오…. 좋아! 그렇게 여행 가도록 합시다! 어이! 형씨!”
헤드폰을 쓴 채, 게임을 하려던 신윤이 내 외침에 고개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너도 가자. 리제 빼고!”
“네? 모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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