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여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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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내일이 되었다.
오늘은 여행을 가는 날. 너무나도 가기가 싫었다. 그런데 여행을 간다고 했으니, 리제는 내가 여행을 가야지만 컴퓨터를 돌려줄 것이다. 분명하다.
예전부터 리제는 그랬다. 나도 모르게 조건을 추가시켜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버린단 말이야. 악질이야 악질.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나는 리제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리제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나처럼 남자가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
“근데 리제가 남자였을 리가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죽고 다시 태어나 여자가 된 것이다. 어느 패러디처럼 죽고 난 이후에 어떤 신을 만나서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을 통해 환생을 한 후, 전생에서의 성별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픽션의 일이다.
나의 얇은 윤회론에 대한 지식으로는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 생이 인간일지, 아니면 단순한 축생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대로 성별을 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픽션이니 넘기도록 하자.
내가 느낀 것처럼 리제도 나와 같이 남자였다 여자가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남자에서 여자가 된 거지? 환생?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본다면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어릴 때 그녀를 봤던 모습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처럼 환생을 했다면 아주 어릴 적부터 썼던 몸이기에 익숙하게 움직였겠지만, 그때의 리제는 왠지 자신의 생각처럼 몸이 안 따라 가준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음…. 뭔가 합리적 의심인 것 같지만,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자. 어차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만약에 남자에서 여자로 변했다고 해도, 그 마법을 사용할 마법사는 없어. 솔직히 말해서 나도 성별을 바꾸는 마법, TS마법은 못 만드는데, 아니지, 만들 수는 있긴 한데, 더럽게 힘들고 손도 많이 들기 때문에 나는 만들지 않으니까, 그걸 만든 작자는 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작자임과 동시에 미친 변태인 게 분명할 거야.”
거의 몸의 대부분을 개조시키는 마법이기에 TS마법은 손이 많이 들고 난이도가 높은 마법이다. 그렇기에 이상성욕을 가진 작자만이 사용할 마법인 것이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마법을 쓸 바에 다른 마법을 사용하고 말지.”
최면이라던가, 최면 같은 걸로 여자를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더 빠르지, 남자를 여자로 만들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며 자기 취향으로 암타 시킨다?
……그건 진짜로 노력과 취향이 확고한 미친 녀석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다. 마왕인 내가 증명할 수 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넘기도록 하고 지금은 여행갈 때 필요한 물건을 챙겨야했다. 나는 가져갈 물건들을 차르륵 펼쳐놓았다. 물론 펼쳐놓은 물건들이 전부 유X왕 카드라던가, 트럼프 등의 카드들이거나, 게임기들이라는 것이 함정이긴 했지만 넘어가자.
필요한 물건들은 전부 내 아공간 안에 들어있는데, 게임기만 챙기면 되니 상관없다.
“진짜로 뭘 가져가지. 고민 되네”
같이 여행가기로 했으니까, 같이 게임할 도구들을 가져가기는 해야만 했다. 여행까지 가서 혼자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다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같이 하는 게임이라고는 트럼프라던가 체스 같은 것들뿐이었다.
특히 체스는 신유리와 신윤은 그 룰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패스해야겠다. 그렇다면 남은 건 트럼프 카드뿐인데, 솔직히 카드 게임은 조금만해도 금방 질리기에, 보드게임이나 그런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뭐해. 지금 나한테 있는 건, 트럼프 카드뿐인데.”
그냥 다 같이 게임하는 걸 포기하고 게임기로만 게임해야할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루 마블도 하면 재미있을 텐데, 지금 나한테는 그게 없으니까, 그냥 포기해야겠네.”
처음으로 가는 친구와의 여행이다.
안혜린을 따라가서 조사하는 걸 지켜보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이 더욱 중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의 안혜린은 이상하기는 했다. 무언가 정신이 없어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 상태였다면 나와 안혜린이 따라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으니, 사리분별은 가능한 것 같았다.
“뭔가 내가 원하는 대로 왜곡된 것 같지만 상관없겠지, 나는 이기주의자들의 왕, 마왕이니까!”
솔직히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던 것도, 그녀가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서 따라가려고 했었던 것이다. 가끔씩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나도 내가 인간들이 악마라고 부르는 마족들로 환생했다는 것이 실감이 되긴 했다.
전생의 나는 은둔형 외톨이에다가 남들에게 피해를 못주는 소심한 녀석이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거기다가 남이 고통 받는 모습도 잘 넘기지도 못하던 호구였는데, 지금의 난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가끔씩 신윤의 말을 엿들어보면 나를 하찮다고 하던데, 난 하찮지가 않은데.”
내가 하찮았다면 나보다도 세력도 더 크고 강대했던 녀석들을 모두 죽이고 마왕이 됐을 리가 없다. 되기도 전에 그들에게 죽어서 여기로 넘어올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 내가 하찮다는 건 인정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풀어져서 행동해서 그렇지, 진지하게 나온다면 그 녀석도 나에게 뭐라고 찍할 수 없을 것이다.
“음…. 계속 뭘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산으로 가버리네, 그냥 가야겠다. 어차피 내가 가져갈 것들도 전부 아공간 안에 들어있으니까. 게임기 몇 개랑 충전기만 챙겨야겠다.”
트럼프 카드들은 제자리에 돌려놓고, 게임기들을 충전기와 함께 아공간 안에 집어넣어버렸다.
신유리와 함께 하고 싶어서 리제 몰래 샀던 게임기도 있으니까, 그녀에게 준다면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 요즘 따라 나랑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뒷자리녀라고 부르는 녀석과 친구가 되었기에, 나를 내버려두고 그 녀석과만 대화하고 있는 걸려나?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나간 것 같다.
그녀와의 대화가 많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분명히 그녀가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화가 많이 줄어든 것이라 생각되었다.
“뭐, 그 녀석이 먼저 나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으니, 그 녀석도 나랑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응. 나중에 나랑 친구냐고 물어봐야겠다.”
왠지 친구가 없는 사람의 말 같지만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분명히 상처를 입을 것이다. 이래보여도 나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나랑 안면이 없는 인간들이 얼마가 죽거나, 나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나랑 안면이 있고, 친분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폭언과 욕설을 듣는다면 나는 분명히 상처를 입고 방에 틀어박힐 미래가 눈에서 훤했기 때문이다.
“으으…. 그런데 그걸 어떻게 물어보지. 소…솔직하게 어떻게 친구냐고 물어볼 수 있냐고.”
그녀의 행동이나 말들을 들어보면 분명히 나를 친구라고 여기고 있지만, 아카데미에서 만난 여자에게는 금방 친해지고 말도 편하게 하는데, 나에게는 꼬박꼬박 마왕님이라 부르며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참에 신유리와 이 여행으로 친해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왜 여행 간다면 뭔가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느껴지는데. 음…. 기분 탓이겠지? 제발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예전부터 이런 느낌이면 반드시 일어났다고. 제발 이번 한번만이라도 빗나가고 싶어. 이번 여행은 행복하고 재미있는 해피 트래블 타임을 보내고 싶다구...”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미리 그 느낌이 느껴지는 길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라 다짐하며 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 밖, 거실에는 케리어를 끌고 나오고 있는 신유리가 보였다.
“…누구세요?”
“엑?!”
하지만 정작 보이는 것은 신유리가 아닌 왠 처음 보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가 떡하니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뭐에요! 그 반응은! 저도 진지하게 꾸미면 이쁘거든요! 아! 마왕님도 한번 꾸며보시는 게 어떠세요?! 지금까지 마왕님이 꾸미시는 걸 본적이 한 번도 본 적 없잖아요! 마왕님 본판은 저보다도 훨씬 이쁘시니까, 이번 기회에 꾸미시는 것도 좋은 기회이실 거에요! 남자들에게 인기 많으실 거에요!”
“으윽…. 더러운 남자들에게 성적 욕구를 자극시킬 바에 그냥 이대로 가고 말거야.”
“으잉?”
이런 내 반응에 신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왕님도 여자시라면 예쁘게 꾸미시는 게 좋지 않으세요?”
“마왕님께 그런 말씀 하셔도 소용없으십니다. 그 분께선 어릴 때부터 꾸미시는 걸 극도로 혐오하시던 분이십니다. 거기다가 그분이 걸어온 길을 보면 꾸미는 걸 좋아할 수 있는 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저로써는 그런 권유하신 건 고맙지만, 포기하시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에에, 조금 아까운데, 하지만 알았어요.”
신유리는 미련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린 후, 자신의 케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하아. 분명히 내가 좋다고 말한다면 꾸몄을 눈이었어.”
“마왕님. 얼른 출발하시지 않고 뭐하십니까. 지금 출발하시지 않으시면 버스 시간에 늦으십니다. 다른 분들은 벌써 출발하셨습니다. 앞으로 버스 시간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그러니 빨리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엑, 벌써 그렇게 됐다고?”
“마왕님이 방 안에서 고민하는 사이에 흘렀습니다, 도대체 뭘 고민하셨습니까?”
“리제에겐 말할 수 없어!”
내 외침에 리제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나에게 말했다.
“묻지 않을 테니, 빨리 출발하세요. 버스 시간에 늦겠습니다.”
테에엥 리제 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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