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1.동기부여(3) (3/125)



〈 3화 〉1.동기부여(3)

"원래 저렇게 위아래 없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문전박대당한덕에 그럭저럭 들뜨려던 마음이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쳐버렸다. 생각해보면 애당초 그다지 위엄 있는 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매몰차게 대해도 괜찮다 인식될 정도였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두 살 터울. 형과  사이의 6살 터울에 비하면 별것 아닌 듯 느껴지는 기간이었으나, 2년이라는 시간만 뚝 때놓고 생각해보면  마냥 무시할만한 기간은 못되니까.


"군대가 한 번인 기간인데. 음."

변해버린 모습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넌지시 들어왔으나 설레설레 고개를 저어 애써 부정한다. 애초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 저 녀석도, 나처럼 나름대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뿐인거겠지. 그렇게, 네거티브 해지려는 기분을 억지로 붙잡는다.

설거지를 끝내자 다시금 무료한 시간이 이어졌다. 달리  일이 있을리가. 그다지 tv를 즐겨 보지도 않고, 스마트폰은 있으나 딱히 자발적으로 모바일 게임에 열중하거나 해본 적도 없었다. pc 게임도, 친구들이 부르면 피시방에 가서 롤 정도나 잠깐 하는 정도.  복잡 미묘한 알력다툼의 장 속에 홀로 덩그러니 서있을 자신이 없었기에, 내가 혼자서 게임을 하는 경우는 없다 단언해도 좋았다.


원래라면 어떻게 시간을 때웠더라? 새삼 의식하고 보니, 마땅히 기억나는 임팩트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질 않았다.

"배팅장이나... 피시방... 밥 먹고 술집이나..."


하나같이 누군가의 호출이 있어야 가는 곳들뿐. 꽤나 수동적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무언가 할 일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었다.


"... 하아."

없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당연 그 원인은 그 기간 내에 발행한 변화된 요소들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저 흘러갈 뿐인 최근의 시간들 사이에 가장 급격한 변화라고 한다면 당연 내 모습 그 자체. 무언가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변해버린 내 모습 탓인 것처럼 생각하게 돼버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파괴적인 자기 부정... 인가."


아직 제대로 상황을 다 인식하지 못했을 때에는, '이 정도로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외견이 바뀌었다는 것.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 지금까지 맺어왔던 관계들이, 지금까지와 마냥 똑같은 형태로는 있을  없다는 것.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엔, 눈 뜬 뒤 병원에서 보냈던 나흘간의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다. 3일이나 투정 부리며 토라져있었던 것도 부끄럽다 생각했건만, 새삼 생각해보니 3일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막연한 현실감각 덕분이 아니었을까.


재차 한숨이 흘러나왔다. 뭔가 부정적인 사고가 쳇바퀴 돌듯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당장에 죽고 싶다던가 하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여가다 보면 언젠간 나도 그런 생각을 품게 되는 건 아닐까.


힐끗 시계를 바라본다. 이제 막 8시가 되어가는 시간.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동생 녀석의 방송하는 소리가 거슬리는 소음이되어 귓가를 찔러댔다. 그렇잖아도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던 기분이 한층 가파르게 떨어져내려갔다.

"... 잠이나 잘까."


너무 일찍 잠드는 것도 몸에 안 좋다고 듣긴 했지만, 이 이상 맨정신으로 있어서야 정말로 기분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딱히 졸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잠들어버리자. 억지로라도 잠들고, 맑아진 정신으로 다시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자. 분명 '뭘 이 정도 가지고'라며 웃어넘길 수 있게  테니까.


맥없는 움직임으로 비척비척 욕실로 향해간다. 문을 걸어 잠그고서 세면대 옆의 세탁 바구니에 하나  옷을 던져넣고 있자니 새삼 부끄러운 기분이 몰려들었다. 기능성 셔츠며 반바지며 분명 성별을 가리는 부류의 옷들은 아니었으나, 어깨 사이즈와 허리 사이즈의 비율이라던지. 허리둘레와 힙 둘레라든지. 유독좁은 밑단의 둘레라던지. 신경 쓰기 시작하니, '어머니가 신경 써서 사주셨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성복이구나'하는 생각이 동시에 


"으윽..."

뭔가 낯간지러운 기분. 가슴 언저리에 뜨거운 실타래 같은 무언가가 비비 꼬여 응어리지는 듯한 답답한 기분. 지난 1주일,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던 것이 의식하고 보니 그래선 안될 짓들이었던 것같은 감각. 얼굴이 화닥거리며 달아올라왔다. 지금까지 날 보고서 여장한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누가? 누구든지.

앓는 소리를 내며 세탁 바구니로부터 휙 시선을 돌린다. 있는 것도 잊고 있었던 전신거울이 등 뒤에서부터 팬티 한장 달랑 걸친 내 모습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엄청 작아졌네. 그래도 170은 넘었었는데, 지금은 160은 되려나. 머리카락 엄청 빨리 자라네. 1주일 지났는데 꽤 길어진 거 같아. 가슴? 우와 가슴. 사이즈가 좀 아담하긴 한데. 팬티는 입고 있으면서 브라는   하고 있는 거야. 변탠가?  정도 사이즈 면 필요 없는 거야? 그러고 보니 사각팬티네. 드로어즈라 하던가. 부모님이랑 타협의 타협 끝에 골랐었지. 그래도  달라붙는 타입이라 윤곽이 드러나니 좀 야한데-...

"... 흐으."


누구냐고 물을 뻔했다. 얼굴로 확 모여든 열기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겨 샤워기 앞으로 선다. 온수 쪽으로 레버를 돌려둔 채 휙 물을 켠다. 조금 차가운 온도가, 빠르게 조금 뜨겁다 싶은 온도까지 올라갔다.

"... 뭘 하는 거야."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질문자와 답변자가 동일인물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 속에서, 대답 따위 나올리가.

아직 텅 비어있는 욕조 안에 몸을 집어넣는다. 쉴새없이 물을 뿜어대는 샤워기를 붙잡은 채, 목 언저리부터 몸을 적셔간다. 알게 모르게 식어있었던 몸이 순식간에 덥혀져갔다.


6.



"어... 그, 형."


"... 방송 중 아니었어?"

"아니. 그. 뭐야."

욕실에서 나오자 상현이 녀석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열려있는 녀석의 방 문. 세어 나오고 있는 빛무리로 보건대, 아직 컴퓨터는 켜져있는  싶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거칠게 문지르고 있자니, 녀석이 시선을 피한 채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꺼내기 힘든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 그... ... 아까 미안했다고."


머리카락 기니까 귀찮네. 잘 마르지도 않고. 돌아다닐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머리카락부터 잘라야겠어. 상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 뭐?"


"형 힘든  나도 알고 있고, 그래도 내색  하고 친근하게 굴어주려고 그랬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 뭐야. 방송에 아무튼  정신 이상한 것들이 많잖아! 그런 녀석들이 헛소리할까 봐. 형이 그거 보고 뭐 이상한 생각 들까봐... 아무튼. 어?"

얼굴을 보려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야 할 정도로, 나보다 훨씬 커져버린 키. 체구도 이제나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전처럼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했다간 날아가 버리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체급 차이가 절망적이다.  녀석이 나한테 대뜸 성질 자랑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변해버린 외견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 나 걱정해준 거야?"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형도 지금 당장은 혼란스럽고그럴 테니까, 괜히 충격받을만한 일은 없는 게 좋지 않을까 했다고 해야 하나,  화냈다거나 성질나서 쫓아냈다거나 그런  아니고..."

풉,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닮은 웃음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머리카락을 닦아내고 있던 수건을 꼬나쥐고서, 찰싹. 채찍처럼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휘두른다. 철썩! 물기를 머금은 수건이,  상쾌한 소리를 토해냈다.

"아!"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아, 좋은 얘기하고 있는데 왜 또!"

"방송할 땐 혀 잘만 놀리던 녀석이 형 앞에서 더듬더듬 거리는 꼬락서니가 한심해서."

무어라 웅얼거리며 불만 비슷한 것을 말하려던 녀석이, 이내 뚜렷한 목소리는 내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내가 참는다'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 또 우스워, 끅끅 억누른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 아무튼 그릇 치워줘서 고맙고. 방송 구경하고 싶으면 한 번씩 구경하러 오라고."

"그래도 돼?"


"얼굴  나오는 선에서. 이건 절대 허락 못해."

"그래그래. 우리 상현이 말이  맞아요 네."

"아 진짜...! 후우.  다시 방송하러 간다."


대답 대신 다시금 수건으로 철썩 녀석의 옆구리를 후린다. 불만 가득하다는 듯 비쭉거리는 입술을 보아하니, 확실히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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