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1.동기부여(6) (6/125)



〈 6화 〉1.동기부여(6)

"신기하네, 방송이라는 거."

"... 뭐야  감성적인 감상은."


새벽 0시 30분. 한창 과제에 쫓겨 다니던 때가 아니고서야 가급적이면 일찍 자려고 하는 나에게, 방학기간임에도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은 썩 드문 일이었다. 기절해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고서도  길게 이어졌던 생활리듬. 11시쯤 하여 잠들고, 6시 전후로 일어나 형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부모님이 일어나시는 걸 기다리는 일련의 패턴에 익숙해져있었던 탓인지, 슬슬 졸음이 쏟아져오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호의적이랄까."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조금 나른해진 탓이 뭉개지는 발음에, 그조차도 좋다며 연신 호의적인 내용의 채팅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평생 인기 같은  누려본 적 없는 특출날  없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기쁨을 넘어 신비의 영역에 있는 일이었으니까.


"내 목소리가 그렇게 좋나?"


-ㅇㅇㅇㅇㅇㅇㅇㅇㅇ

-헤으응... 눈나 졸려하는 목소리에  녹아버려양...

"딱히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히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른한 와중에  하건 좋아죽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한 기분이 되어버리니, 정말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싶은 기분. 시간이 늦어져서 그런지 시청자 숫자도 확연히 줄어들어, 불타오르듯 올라가던 채팅창의 기세도 한풀 꺾여 채팅들이 좀 더 잘 눈에 들어오게 돼서 뭐랄까... 바글바글 거릴 때는 느끼기 힘들었던 묘한 친밀감 같은  샘솟는 기분이었다.

"졸리면 가서 자."

"좀만 더 구경하다가."

"나 원래 새벽에도 소리 지르며 게임하는데, 누나 신경 쓰여서 소리도 못 지르고 있잖아. 노잼이라고 시청자님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입다물고 누님이 원하는 대로 하라

"뉴클리어튜나 님 만원 후원 감사... 아니 뭐여?"

어눌하고 느릿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도네이션 보이스도 처음에야 어색했지 지금에 와서 들으니 마냥 우스울 뿐이다. 끅끅 소리를 억누른 채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연달아 후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가됐건 뭔가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물타기라도 하듯 이런 느낌. 시급 만 원도  받고 아르바이트나 하곤 하던 내 입장에서 보면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취미생활에 돈 쓰는 거지 뭐'라는 상현이의 설명에 이제는 납득하고 있었다. 매번 쏘는 사람도 다르다는 것 같고.


-누나가 방송 살려줬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라고 아ㅋㅋㅋ


-오늘부터  방송의 주인은 '누님'이다

-층적운 혐오를 멈춰주세요

-여기 절반은 눈나 목소리 들으려고 남아있다는  모르냐고 ㅋㅋㄹㅋㅋ

"한달음 님, 씬스펜 님, 탑은백정이아니야 님, 아이일엘엘아이... 아니 이 인간은 닉네임이 뭐 이레. 도네 내용도 그렇고 닉네임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없네?!"

투덜거리는 상현이의 옆구리를 쿡 쑤시며 피식 웃어보인다. 으힉, 하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녀석의 리액션이 또 우스꽝스러워 도통 입꼬리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원해주신 분한테 무슨 태도야. 그냥 감사합니다 하라고?"

"다들 그거 언제까지 써먹을 생각인데."

-이게 옳게 된 스트리머의 자세지ㅋㅋㅋㅋ


-층적운은 각성하라!


-눈나께선 이렇게 착하신데 동생분은 왜이렇게 망나니죠?


"저별로 안착한데..."

망나니 소리에 무어라 또다시  소리를 내지르려던 상현이의 옆구리를 재차 찔러 침묵시킨다. 좀 들어가선 안될 깊이까지 들어가 버린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컥컥거리면서도 멀쩡히 숨 쉬고있는모습으로 보아 아마  문제는 없지 싶었다.


"그냥 이런 칙칙하고 흉포한 녀석만 보다보니 반동으로 평범한 사람을 보고서도 과하게 착하게 느껴지는 뭐 그런 거죠."

-본인 입으로 자기 착하다 말하는 사람은 가짜임


-신빙성이 1 올랐습니다.


-목소리 곱고 몸매 좋고 성격 착하고 얼굴까지 아름다운 누나라니 층적운 그는 대체 전생에 뭘 구한 거지?


"저 얼굴 별로 안 이쁜데."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순간 상현이가 뜨악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곧이어 채팅창을 쇄도하는 물음표의 향현.


-우리 층적운쨔응이 누님 겁나 미인이라 했는데

-천연이라니! 그녀는 정말로 매혹의 천재인가!

-아니 본인이 부정했으면 층적운이 오버한 걸수도 있지

-저 목소리 몸매 저 피부에 안이쁠수가 있나ㅋㅋ


"아하..."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만했다. 무슨 과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여하 내가 없을  상현이 녀석이 방송에다 '우리 누나 얼굴 개쩜'같은 소리라도 한 것이겠지. 방송에 얼굴은 절대 못나오게 하겠다는 녀석이  굳이? 으음... 이유까진 모르겠는걸.


"아니, 누나. 자기 얼굴 알면서 그렇게 말을 해버리면 내 입장이."


"어허. 사람한테 말도 안 하고 이쁘니 뭐니 사람 얼굴을 팔아놓고서 그러는 거야?"


"그, 그건 잘못한 거긴 한데."

"아무튼, 피부 좋은 건 저도 인정하는데 몸매도 얼굴도 평범해요 여러분. 팔다리도 너무 호리호리하고, 가슴도 없고."

얼굴도 몸매도 개인차가 있는 영역이긴 했으나, 전직 남자로서 객관적으로  현 모습에 대해 내린 평가는 저러했다. 좀 더 풍만한 체형이 취향이었고, 좀 더 드세 보이는 얼굴이 취향일 뿐이지만 아무튼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내린 자평은 '글쎄올시다'였다.


"하아암.... 후음."

진실을 밝혀라는 채팅을 반쯤 감긴 눈으로 좇고 있자니, 몸이 드디어 슬슬 한계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씻지도 못하고 잠들겠는걸.

"아니, 뭘 진실을 밝혀. 진짜 이거 내숭 떠는 거라니까?! 이인간 분명 거울 보며 스스로도- 악?!"


"아니 본인이 옆에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도 그렇잖아! 가족 버프 제외하고 툭 까놓고 말해서 당장 화보 찍어도 될 수준인데. 인정?"

"인정은 개뿔. 부모님 깨니까 조용히나 해."

"아! 옆구리 좀 그만 찌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잡혀 사네 ㅋㅋㅋㅋㅋ


-이참에 누님이  배은망덕한 스트리머에게 올바른 도덕관념을 심어주십쇼!

울상을 짓고 있는 상현이의 머리를 한차례 흐트러뜨려주며, 느릿하게 의자에서부터 몸을 일으켰다. 또다시 하품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슬슬 정말로 자러 가야 할 시간이라는 거겠지.

"잠깐 구경한다는  너무 오래 있었네. 졸려서 먼저 가봐야겠어요."

-안데 눈나 가지마!!!!!

-잘자요 한 번만 해주세요 누나


"응...? 어... 삼치통조림 님, 만원 고마워요. 멈뭄미 님, 만원 감사하고 잘자요...?"

뭐야 이사람들. 진짜 나 때문에 지금까지 안 자고 있었던 건가? 갑작스럽게 나를 부르며 쏘아진 후원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해버렸다. 조금 졸음기 남아있는 목소리로 잘 자라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또다시  죽어를 연호하는 모습을 보니, 뒤늦게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불쑥 들어왔다. 고작 수 시간 보았을 뿐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미  번이나 보았으니까.


-눈나 나도 잘 자요 해주세요!!!!!


-제발 반말로 잘 자 한 번만 해주세요 누님

-손가락 하트 하면서 잘 자요 해주세요

"어어..?"


만원. 다시 만원. 5만원?

"그... 팡머 님,  자요. 심봉사02님 잘 자, 참치김치볶음밥 님... 으, 손가락 하트는 부끄러우니까 안 할래요. 잘 자요."

"아, 님들 저희 누나 오늘 방송이라는 걸 제대로 본게 처음인데. 이렇게 줄줄이 붙이시면 저희 누나 굼떠서   읽어요."

놀리듯이 말해오는 상현이를 째릿 노려보고는, 방을 나서려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뒤돌아 뚫어져라 화면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으아. 그 사이에 2개나 지나가버렸어. 뭔가 폰트라던가 위치라던가 다르던데, 한 플랫폼에서만 방송을 하는  아닌 건가?


"그, 상현아. 이거 후원해주신 분들 목록 같은   봐?"

"전 칙칙하고 흉포한 성격인지라 그런거 잘 모르겠습니다 누님."

"아 좀.  한마디 해달라고 돈까지 주시는 분들인데."

정확한 액수는   없었지만, 이후로도 꽤 길게 후원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씻으러 가기 전까지 약 5분 동안, 잘 자요.잘 자. 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 것 같아서 내가 다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까놓고 말하면 생판 남일텐데.

"... 뭐가좋다고 그렇게나 하는 걸까."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듯한 물을 맞으며, 어깻죽지에 들러붙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었다. 장발이 취향이긴 하지만, 역시 여러모로 불편한 느낌. 물먹으면 무겁고, 옷입을때 걸리고.


"누나 나 죽어라... 후흐..."


샤워기의 물줄기로부터 벗어나자 순식간에 몸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우습다는 기분과 낯간지러움이 섞여 도통 조용히 씻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 음-"

전신거울 앞에 선다. 뚝뚝 물을 흘리고 있는 나체의 아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뜨거운 물을 맞은 탓인지 하얗던 피부가 드문드문 연분홍빛으로 물들어있는 게 보였다. 벌꿀색 머리카락이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흘러내리고 있다. 보기 흉하다 할 수준은 아니지만, 역시 볼륨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한 보디라인. 상기된 뺨 위로, 머리카락의 색을 닮은 눈동자가 느릿하게 깜빡거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역시 모르겠는데."

검지  개를 들어 올려, 입꼬리 끝을 밀어올려본다. 조금 전까지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지어보려니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리기 힘들었다. 어색함. 기껏 해봐야 그들이  수 있는 부분은 이 모습의 반의 반도안될 텐데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러는 걸까.


"... 말랑말랑하긴 하네."

옆구리와 허벅지를  눌러본다. 직시하기는 아직 부끄러워 허벅지를 웅크리고 있는 자세가 새삼 신경 쓰였다. 웅크리나 그러지 않으나 새삼 성별이 완전히 뒤집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듯한 자세처럼 느껴졌다.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난 그저 평소처럼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런  볼  없는 모습이 무어가 특별하다고 그렇게나 호들갑을 떨었던 걸까.

"여자에 굶주린 사람이 많다?"


그건 아닐  같은데. 모르겠다. 짧은 시간 동안 쏟아진 후원금이 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매번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을 뿐이겠지만, 확실히 오늘의 반만 받을  있어도 어지간한 아르바이트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사람들이 어떤 걸 원할지 알만했다. 귀여운 거 좋지. 이쁜 것도 좋고. 좀 낯부끄러울 정도로 귀염 떠는 것도 좋고. 하지만,  그러기엔 조금 하자가 있는 사람인 걸.

"... 잠이나 자야지."

저 홀로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던 샤워기의 아래에 다시금 섰다. 시간이 늦었다. 내일 아침은, 그냥 빵만 대충 구워다 딸기잼이라도 발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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