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3.귤화위지(5)
"... 나 화장 같은 거라도 하는 게 좋으려나?"
"할 줄도 모르잖아."
"그건 그래."
피식 웃음을 터트린 상현이에게 나 또한 마주 웃어 보였다. 그래도 비비크림 정도는 펴 바를 줄 안다는 내 주억거림에, 엄마 꺼 훔쳐 쓰는 게 자랑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심 힘껏 팔꿈치로 등판을 찍어보았는데, 그다지 아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캠에 얼굴 나온다고 아마 지금까지랑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껄? 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나 난리 날만 한 얼굴이긴 한데."
"좋은 의미로?"
"얼굴 좀 되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더만?"
"... 딱히 그런 거 내색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상현이의 어깨가 가볍게 으쓱여졌다. 상현이에겐 여전히 비밀이지만, 이미 한 차례 얼굴을 공개한 적이 있긴 했음에도 무언가 '정식'같은 단어가 붙을만한 상황이 되어버리니 그때와는 달리 이상하리만치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뭐랄까, 좀 충동적인 느낌이 강했으니까.
"그럼, 준비는 되셨는지?"
"... 응."
"대기화면 푼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 전환 버튼 쪽으로 향해가는 모습이 유독느릿하게 보여왔다. 의자에 반듯이 기대고 있던 자세를 다시금 움찔거리며 점검해보던 와중,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던 상현이의 손을 붙잡아버렸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위험했다. 그러고 보니, 상현이 몰래 캠에 얼굴 비춘 전적이있는건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보나 마나 이제는 얼굴 보이기로 했냐느니, 또 캠방 하기로 한거냐느니 그런 말이 보이기 시작하면 상현이 녀석, 무조건 무슨일이 있었겠거니 눈치채고 캐 보려 들 텐데.
"아니, 시간 엄수 잘 하자면서요. 저 곧 시작할 시간인데."
"... 그, 마음의 준비. 잠깐만 심호흡좀."
"허.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그냥 관둬도 상관없는데."
"제목에 특별 게스트라고 떡하니 박아놨는데 어떻게 그래."
"그냥 평소처럼 목 아래로만 내보이고서 '짜잔, 오늘은 처음부터 저희 누님이랑 같이합니다-' 정도면 되지 않으려나."
"... 분명 엄청 욕먹을 거라 생각하는데."
조금 전까지 '그런 일도 있었지~'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주제에, 왜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못한 거야. 뒤늦게 그런 생각이 몰려왔으나, 이미 여차저차 이리저리 내빼기에는 무리인 상황이 돼버린 뒤였다. 상현이 본인은 아무렴 어떻느냐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사람이. 특히나 가족이 내 탓에 야유받을 상황이라 생각하면 역시 사적인 이유를 들먹이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 하아."
지금까지, 상현이가 내가 했던 일을 눈치챈 듯한 낌새는 보이지않았다. 그만큼 그때 당시방송을 보고 있었던 분들이 의리 있고 눈치 있게 행동해주고 있다는 의미리라. 이제 와서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했다. 생각이 서서히, '지금까지 잘해줬으니 잘해주길 기도한다'쪽으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 시작하자."
"괜히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니까 나까지 긴장되는데."
그렇게까지?라고 물어오는 듯한 상현이의 말에 굳이 대답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설명할 길도 없고. 괜히 말 꺼내봐야 상황만 복잡해질 것 같고. 그래. 그냥흘러가는 대로 있자. 들켜서 혼나면... 혼나는 거지 어쩌겠어. 가만 생각해보면 들켜도 딱히 별 일 없이 넘어갈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진짜 시작한다?"
"응."
딱딱하게 굳어있는 뺨을 문지르면서 각오를 굳혔다. 송출되는 화면이, '잠시 후 시작합니다'라고 장난스러운 필체로 휘갈겨둔 대기화면에서 이내 이제는 익숙해질만한큼 보아온 상현이의 바탕화면으로 전환되었다. 잠시 옆으로 비켜서있으라 하던 말에 따라 캠의 시야에서 살짝 빗겨있는 위치에 앉아있었기에, 아직 송출 화면에 내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층적운입니다. 평일에 해떨어지기도 전에 제방송 보려고 대기 중인 분들이 2백 명이 넘는다니, 이거 이거 오늘도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부분인데요."
평소와 같이, 내가 보기엔 다소 건방져 보이는. '층적운'은 한사코 이런 컨샙이다 라고 주장하는 어투의 인사말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13.
방송 시작 멘트가 들려왔음에도 화면의 우측 하단에 위치한 웹캠 화면에는 여전히 언제나와 같은 덩치 좋은 남자 한 명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와의 합방이냐, 특별 게스트가 누구냐 따위의 의문들과 최근에 그와 함께 게임을 한 적이 있었던 면면들을 언급하는 예측성 짙은 채팅들이 중구난방으로 채팅창을 뒤흔들었다.
"아. 잠깐만 기다려봐요. 시작부터 같이 나오면 님들 입에서 무슨 헛소리들이 나올지 모르겠어서 잠시만 비켜있어달라 말해놓은 거니까. 지금 옆에 있어요 옆에. 그렇게 닦달 안 해도 좀 있으면 볼 수 있어."
-그래서 누구임?
-그래서 특별 게스트가 누군데 씹덕아ㅋㅋㅋㅋ
"씹덕이라니! 난 오로지 게임성만을 평가한다고!"
발끈하는 층적운의 반응에 순식간에 채팅창이 키읔을 위시로 한 각양각색의 웃음으로 도배되어갔다. 분위기를 돌리기 위한 노골적인 화제 전환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눈치챘으나, 딱히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모양이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흠흠. 아무튼, 지금 특별 게스트 분은 제 옆에 계시고요. 뭐 예상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거고 누군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긴 한데, 일단 당부의 말씀 좀 드리고자잠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여캠?
"... 캠 방송하는 분은 아니지? 그러니까 오늘이 얼굴 최초 공개가 되려나."
또다시 한차례 여러 추측들이 떠다니기시작했다. 그 대부분이, 무어라 근거를 달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적을뿐인 내용들이었고 말이다. 개중이 윤서를 언급하는 채팅들도 드물지 않게 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층적운은 잠시 채팅창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와서 누나가 무슨 특별 게스트냐'같은반응이 나오면 어쩌려나 했는데, 그다지 적대적인 반응이 돌아오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뭐, 정답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한데... 어느 분이 나오시건 선은 지켜야 됩니다. 알고 계시죠?"
-여기 시청자들 전부 방주인장 닮아서 예의 하나는 깎듯하자너~
-ㄹㅇㅋㅋ
"지옥고양이 님, 5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확실히 내가 예의바르고 위아래 확실하고 선 잘 지키는 젠틀맨이긴 하지. 야, 물음표 올리는 놈들 전부 벤 때려버린다?"
비슷한 흐름으로, 부탁 아닌 부탁과 만담이 뒤섞인 채 5분 남짓한 시간이 흘러갔다. 서서히 만담의 비중이 높아져가고, 그에따라 층적운이 '하고자 하던 말'들을 대부분 끝냈다는 생각이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쯤이었다.
"... 그런고로, 여러분.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진짜로 선 넘는 말 하지 마시고.오늘만은 말 좀 골라서 해주시고. 단어 선정도 좀 조심하고. 알겠죠?"
-아 우리 못 믿냐고ㅋㅋ. 헤으응 빨리 손님 상 나와주시는레후
"응애밥조 님, 5천원...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것도 하지 마!"
마지막이라며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던 층적운이, 이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펑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그런 층적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윤서 또한,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열심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배려해주려는층적운의 모습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역시나 착한 사람 주변에는 착한 사람만 모이는 법인 걸까'하는 막연한 의문이 동시에 들어오고 있었다.
선을 지켜라,라고 하지만 딱히 선을 넘을 만큼 과격한 언사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아닌 듯 보여도 층적운이 무어라 진지한 말을 하려고 하면 그래도 들어주고 있다고 말하듯 눈에 띄게 채팅창이 올라가는 속도가 느려진다던지 하는 부분도 보이고.
"그럼,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 엄청 많았죠? 이걸로 나보고 구라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은데."
드디어인가. 말아 쥐어진 윤서의 주먹이 가볍게 떨렸다. 긴장하지 말자며 마음속으로 되뇌며, 힐끗 자신을 바라봐오는 층적운의 시선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특별 게스트라면서 매번 봤다고 실망할만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무려, 오늘은 저희 누님께서 캠에 얼굴을 비쳐주시기로 했거든요! 자, 나와주십쇼!"
윤서의 발바닥이 바닥을 끌었다. 의자에 달린 바퀴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