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4.유암화명(1) (28/125)



〈 28화 〉4.유암화명(1)

원채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탓인지, 평일 5일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콜택시의 전화번호. 이제는 그럭저럭 택시가 도착할 타이밍도 얼추 짐작할  있게 되어, 미리 전화를 걸어두고 한껏 딴짓을 하다가 택시가 도착할 때쯤 집을 나서는 정도의 여유도 부릴  있게 되었다.

집을 나서며 문자 메신저를 켜, 아침부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시던 부모님께 간단한 인사말을 적은 메세지를 보냈다. 도어락이 문을 잠그는 소리와 답장의 착신음이 동시에 들려온 점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익숙해져간다. 이런 일에도, 저런 일에도. 병원을 향해가기 시작하는 택시에 앉아 멍하니 흘러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저번 주에 그렇게 죽어 상을 짓고 있었던 주제에, 1주일 만에 이렇게 초탈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이면 어이없다며 비웃으려나. 그 의사 성격 생각하면,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이상도 없네요. 다음 주에도 까먹지 말고 찾아오세요'같은말을 할지도 모르겠네.

어째 도착하는 기사 님은 매번 다른 분이었지만, 병원을 향해가는 경로만은 모두들 같았다. 숙련된 운전기사만이 알고 있는 비장의 샛길, 같은  존재하기엔 21세기의 교통 인프라가 지나치게 잘 정비되어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지루할 정도로 낯익은 도로의 풍경들이 조금씩 빨라지는 택시의 속도에 따라 서서히 흐리멍덩한 상으로 변해갔다.


졸릴 정도로 평화로운 주말의 한구석. 궁상이라는 궁상은 다 부려댔던 지난 시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평화롭고  볼 일 없는 하루가 또다시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2.

"아무 이상도 없네요. 다음 주에도 까먹지 말고 찾아오세요. 굳이 토요일일 필요는 없고요."


"푸흣..."

갑작스럽게 들어온 훅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기어코 웃음을 흘려버렸다. 간신히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돌리는 것만을 성공한 나를 향해, 어이가 없다는 듯 가느다랗게 찌푸려진 강 영후 의사의 시선이 째릿 쏘아졌다.


"... 뭔가요 갑자기?"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너무 생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라서."


이 사람과도 꽤나 익숙해졌다는 의미일까. 고작 주에 한 번 보는 관계에서 상대를 속속들이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것은 오만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의사로서의  영후라는 사람을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다는 듯 우물거리던 의사 님의 입이, 이내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소리와 함께 꾹 다물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류가 나지막하게 책상 위를 날아 서류더미위로 착지했다.

"요즘은 좀 지낼만하신가 봅니다."

"아... 네?"

"처음이시죠. 건강검진하러 병원 오셔서 웃으신 거."

"... 아."


팔짱을  채 평가라도 하듯 무덤덤한 시선이 뚫어져라  얼굴을 바라봐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순간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져 버려 잠시 어벙하니 우물쭈물 입을 우물거리다 간신히 얼빠진 감탄사를 단말마처럼 비죽 내뱉었다.

"... 그랬던가요?"


"네. 저번 주는 특히나 죽을 상이셨고, 그전에는 꽤나 죽을 상이셨고, 처음 병원에서 나서실 때는 그럭저럭 죽을 상이셨던  같네요."

그랬던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병원에 올 때에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지. 주변에 난 어떤 식으로 보이고 있는 거지. 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거지. 지금까지, 매번 주변의 시선이나 인식 같은 것들만 신경 써왔던 터라 오히려 스스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같은 건 신경 쓰지 못했었던 걸까.


"... 지금까지 저, 그렇게나 못 봐줄 표정이었나요?"

"못 봐줄 표정은 아니었지요. 이런 말 들으시면 기뻐하실지 기분 나빠하실지 저는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얼굴이면 무슨 표정을 짓고 다니건 봐줄만 할 거라 생각합니다만."


"놀리는 거죠 그거?"

"이제 얼추 다른 사람 생각을 고려해볼 만큼 여유도 생기신  같네요."

미묘하게 의사 님의 입꼬리가 말려올려가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역시, 태도가 조금 의욕 없어 보여서 그렇지 환자에 대해서는 착실히 신경 쓰고 계시는구나!'하며 조금 감동 비슷한 무언가를 받으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그럼 그렇지'하는 느낌으로 변했다. 이 인간, 분명 이런 거 즐기려고 의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러나저러나 나 또한, 비식 거리던 입꼬리가 여전히 줏대 없이 파들거리고 있긴 했지만.


"사람 괴롭히는 거 좋아해서 의사하시는 거예요?"


"괴롭히다니요.  환자분 상태 점검 겸해서 아는 선에서 대략적으로 떠보는 거죠."

그래도  받아먹고 있는 입장이니,양심 선에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이어진 반쯤 웅얼거리듯 흘려지는 목소리들. 그 와중에도 말려올라간 입꼬리만은 내려갈 생각을 않는 것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뭔진 몰라도 비웃음 당했으니 복수하겠다 따위의 유치한 생각만은 아니기를.

"...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음번엔 부모님 중 한 분도 동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추 1달이 되어가니, 이리저리 말씀드려봐야 할 부분들도 있고요."

"전해둘게요."


이제는 정말로 괜찮아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의 입장에선 아직 가족의 협조가 필요할 부분이 보이는 것일까. 입가에 남아있는 웃음의 여운을 즐기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건넸다. 의자로부터 몸을 일으켜, 빙글 발걸음을 돌리곤 진찰실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옮겨가려 할 때였다.


"죄송하지만, 아마도 저희가 늙어 죽기 전에  병인지 아닌지도 모를 증상을 되돌릴 방법이 개발되지는 못할 겁니다."


움찔, 내디뎌지던 발걸음이 어색하게 멈춰 섰다. 대답 대신, 조금 뻣뻣한 동작으로 시선을 의사 님을 향해 돌렸다. 여전히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 단지, 조금 쳐진 눈꼬리가 어딘지 모르게 측은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 글쎄. 이 역시 나로선, 알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다.


"... 그렇군요."

무어라 반응하여야 할지, 쉽사리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단지, 혹시나 다 죽어가던 표정이었다던 내 모습을 신경 쓰고 계신 걸까 하여 굳이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어 보였다. 어색한 침묵이 나와 의사 님 사이를 잠시 맴돌았다.


"... 그렇게 웃으실  있게 돼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입을 열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몽글몽글 떠오를 때쯤이 되어서야 낮게 가라앉은 의사 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의미일까. 이번엔 정말로,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내뱉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죄책감. 연민. 책임감. 안도감. 너무 복잡했다. 잠시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상대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알아차리기엔 지나치게 복잡했다.

"... 별말씀을요."

그렇지만, 그 복잡한 감각이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떤 표정을 짓기를 원하는지는 알  없었지만.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너무 오래 붙잡아버렸네요. 조심히 돌아가시길."

지금 내가 웃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재차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곤 이번에야말로 진료실을 나섰다. 조금,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

-그래서, 갑자기 얼굴은 왜 보자고?

"그냥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시간 나는 사람이 너밖에 없더라."


마지막 희망이었던 상대에게 전화가 연결되어준 덕에 조금 목소리가 들떴다. 이전에 이미 3통의 전화를 끝마친 뒤인 시점. 어중간한 위치에 내려달라는 내 부탁에 알듯 말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던 택시 기사 님과 택시의 모습은 이미 도로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저도 바쁘게 사는 몸인 것이야요


"주영이랑 석윤이는 알바, 영진이는 자격증 시험 준비 중이라는데 넌 뭐 없잖아."


-누가 들으면 놀고먹는 개백순줄 알겠네

"지금은 맞잖아?"


-아  때리지 말라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킥킥 웃음을 흘렸다. 주말 점심의 번화가. 아마도 외출 중인 사람은 많을 테지만, 한창 식사 시간일 때라 그런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았다. 도심지 치고는 뭔가 정적인 기분. 어딘가 사람이 몰려있는 곳이라도 있다면 구경이라도 갈 텐데, 마땅히 그런 곳도 안 보이니 나 외에 의견을 내줄만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지금 어딘데?


"교차로 쪽 지하철역 6번 출구 앞. 벤치에 앉아있어."


-뭐 할 건 있어서 부른 거 맞지?


"그걸 이제 얼굴 마주 보고 차츰차츰 정해갈 예정인데."

-끊음

"아, 야. 미안. 커피값은 내가 낼 테니까."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는 와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괴로운 심정을 전할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말로 끊어버리려는 듯한 기색에 다급히 튀어나온 말은 영 속물적인 내용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채 내뱉어진 듯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정말로 끊을 작정이었던 걸까.

-갑자기 뭔데 그렇게 절박하시데...일단 가긴 하겠는데.


"얼른 와봐.  혼자 이런데 앉아있으면 납치당할지도 몰라."

-... 지금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그럴듯하긴 한데.

"오면서 저녁까지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우면 좋을지도 고민 좀 해주고."

-야, 그런 건 부른 놈이-

무어라 두두두 쏘아지려던 말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냉큼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쯤 '아니  새끼가'따위의 말을 궁시렁거리면서도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성윤이의 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유쾌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두 명이면, 노래방이나. 보드게임도 괜찮고..."

뭐가 됐건, 조금 더 이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간 뒤, 이제 돌아왔냐고 물어올 시청자분들이나 상현이한테 해줄 말도 잔뜩 준비해둘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분명 '친구가 있다고?!!!'같은 반응의 채팅들이 왕창 올라오겠지.

혼자서 비죽비죽 웃고 있는 모습이 퍽 신기해 보였는지, 멀찍이서 책가방을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던 꼬마 아이 하나가 힐끗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굳이 들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려 헛기침과 함께 표정을 가다듬었다.



4.


주에  번 보는 강 영후 의사가 그런 말을  정도면, 지금까지 꽤나 죽상인 채 지내왔다는 뜻이겠지.


다른 사람들보다도, 가족들이. 그 모습을 봤을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는, 많이 웃자. 웃을 수 있을 때, 웃을  있는 만큼. 웃으려고 하면 웃을 일이 이렇게나 많은걸.


남은 하루 동안의 일을 상상하며, 조금 전의 아무도 몰라줄 해프닝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느릿하니 가까워지고 있을 친구를 기다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포근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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