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 8.전도유망(3) (63/125)

〈 63화 〉 8.전도유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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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라리 채팅창이 시끄럽게 떠들어대 줘서 다행이라고,본파이어.이 권혁은 생각했다. 짧은 해프닝. 뻔한 거짓말. 그럼에도 그 파급력 탓에,권혁은 도통 윤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애써 슬그머니 시선을 흘리며,어찌어찌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 생각도 없는 척멍청해 보이는표정을지어 보이는것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굳이 얼굴 상만 보자면 꽤나 호리호리한 게 여우나 고양이 상이라는 느낌이 강한모습이건만,무방비하게 웃음을 흘리는 모습을보고 있자면꼭 사람 잘 따르는강아지 같은분위기를 풍겨 도통 거리감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부끄러움에몸서리치면서도어깨를 훤히 드러낸 복장을 대뜸 보여주는 모습에 묘한가학심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고. 은근히괴롭힘당하는입장을즐기는 건?하는 생각도 들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면 안 된다생각하면서도, 상대 쪽에서 거리감을 모호하게 느끼게 만드는 태도를 계속 취하니 권혁으로선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현지가 내뱉은 뻔했던 거짓말도한몫했고말이다.보면 안 될것까지 보일뻔했다니무슨 뜻이야. 윤서 씨, 당신은 왜 또 그런 거 아니라고 말안 하는 거예요.

채팅창을 훑던 시선이 몇 번이나저도 모르게윤서를 향했는지 몰랐다. 연분홍빛을 띠던 뺨과 어깨.저 하얀 피부가 저렇게나 발갛게 달아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음습한 상상이 몇 번이나 머릿속을 오갔는지 이제는 권혁본인조차도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권혁으로선어설픈 웃음을흘리고 있는저 아가씨가 무슨 생각을하고 있기에저렇게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저쪽에서도 아무런 의식도안 하고 있는것처럼 행동해주고, 스스로도 정신 팔 곳이 있으니 그걸로 괜찮다 생각하자. 굳이 깊게 파고들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머릿속에 들어오는 나쁜 생각들을 몰아내려 할 뿐.

버릇처럼채팅창의내용들을 읽어가며, 권혁은 애써 또다시 흐트러지려는 사고를 부여잡았다. 괜한생각하지말자. 괜히 어색한 상황 만들지 말자. 피팅룸에서 막 빠져나온 윤서의 모습을 본 직후부터 계속해서 마음속에되새기고 있는말을 또다시 곱씹으며, 권혁은 애써 쾌활한 척 입을 얼였다.

"엑... 그래도 층적운 님 방송에 이리저리 얼굴 비추기 시작하신지 꽤되신 걸로알고 있는데,동생분이 뭔가 '닉네임 필요하지 않아?'같은 말씀은안 하시던모양이네요?"

"네... 뭐. 다들 굳이 호칭 붙일 필요 없이 누나나 누님이나 눈... 나 같은 느낌으로 부르는 정도면 충분했으니까요...? 확실히, 다른 분 방송에 와서 '층적운 님의 누나'같이 길어지면 부르기 불편하긴 하겠어요."

갸우뚱 기울여지는 고개.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던 틀어올린 머리와 달리, 지금은 묶었던 머리카락을 어째서인지풀고 있는터라벌꿀 색머리카락이 기울어지는 고개를 따라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쏟아져내려갔다. 목이나 훤히 드러난 어깨 등에 걸린 잔머리들이, 하얀 도화지 위에 그어진 유색 선처럼 묘하게 신경을 잡아끌어댔다.

"뭔가 평소에 막연히라도 생각해두셨다던가 하는 건?"

"... 그을...쎄요.동생 활동명이 구름 이름이니까, 저도 그런 쪽으로 맞춰볼까 생각한 정도긴 한데."

면목 없다는 듯 아하하­하며 맥빠지는 웃음을 흘리는 윤서. 가늘어지는 금색 눈동자. 무안함을 감추듯 오물거리는 입술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겨댔다. 차라리 의식하고하는 거라면.작위적인 행동이라면, 이다지도 이끌릴 이유도없을 텐데.

친절한 성격. 존중을 알고 매사 자신보다야 남을 배려하려는 면모가 느껴지는 행동거지. 그에 어울리는 나긋한 목소리. 분명 지금까지 함께 방송을 진행해보았던 어떠한 부류의게스트들보다도편해야 할것이 분명한 상대건만, 권혁은 방송 시작부터. 아니, 방송 시작 전부터 오늘의 방송이 꽤나 피곤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방심했다간 반드시 실수한다. 저유해 보이는아가씨한테, 분명 뭔가 크게 실수해버리고 만다. 그런 확신이긴장감이 되고,긴장감이 곧 피로감으로 변해 차곡차곡 권혁의 안에쌓여가고 있었다.

­장작아 좀만 거리를 벌리자 장작아!

­가슴 아래로도 보여줘 장작아!!!!!

­아니 얼굴도좋긴 한데좀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쇼 주인장

댁들이 무슨 소리할 줄알고 내가그런 짓을해줘. 단순히스쳐 지나간다기엔지나치게 많은 비중을차지하고 있는채팅들을 바라보며, 권혁은 또다시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다짐을 되새겨갔다. 자의건타의건,절대로 엄한 부분에 카메라초점을 맞추는 일은없을 거다.절대로.

"그렇다는데요 님들? 구름 이름. 확실히 좀 둥실둥실한분위기 셔서,구름 종류의 이름이면 다 잘 어울리실 것 같긴 한데."

"칭찬...이죠그거?"

"둥실둥실입니다 여러분. 다음 질문 넘어가기 전에, 이참에고민 중이신누님께 어울리는 닉네임 하나 정해드리고 갈까 하는데, 어때요? 누님도 괜찮으신지?"

"저한테 선택권이있는 건가요그거?"

"사실싫다 하셔도정해두고 갈 생각이었긴 해요."

장난삼아건넨농담에, 윤서의큼직한 금색 눈동자가 또다시 샐쭉 휘어졌다.렌즈가아니라자연 발색,이라고했던가. 색소 세포 이상? 원판도 이쁘고 병으로도 예뻐진다니 뭔가치트키 같은거라도쓰고 있는거 아니야?

도통 섹시하다거나 하는 육감적이라거나 하는매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굳이 그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소녀의 웃음이란 이성인 그에게 있어 퍽 치명적인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강아지 같다'같은소리를 내뱉을 뻔한 입을 간신히 다물었다. 말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아니, 그래도 나 나름 괜찮게생긴 편인데의외로좋아해 주는 건?

"음... 그래도 확실히. 저 혼자 생각해서야 바로 좋은 이름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고, 계속본파이어님한테 '누님'같은 호칭으로 불리기도 낯간지러우니까. 여러분이 좋은 이름으로 하나 정해주실래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미래의 스타의 원석에게 이름 붙일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망념은 망념으로 끝내자, 이 권혁. 괜히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헛소리 내뱉었다간 너 정말로 뒷수습 못한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랑은 계열이 다른 사람이다. 네씹덕망상에공감 못해줄 사람은 아니지만, 그게 이해심의 영역이지 공감대의 영역이 아님을 명심해라. 네가 지금 사람 이 권혁이 아닌스트리머본파이어임을망각하지 마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느끼며, 권혁은 저도 모르게 내려가려는 카메라 앵글을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6.

"적란운... 이요?"

"뭔가 적란운을 미는 의견이 많네요."

"사실 제가 문과라서, 어떤 구름인지 잘 몰라요."

층적운에 이어지는 느낌이라 억양은 괜찮다 싶긴 한데. 귀 앞으로 흘러내려 뺨과 목을 간지럽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그러니 이제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해달라는 의미로 눈앞에 앉아있는본파이어님을. 그리고 아마도 스마트폰의렌즈너머로 내 모습을보고 있을시청자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음. 거의 읽지는 못했지만, 역시방송 중인데채팅창이안 보인다는건 조금 쓸쓸한 느낌일지도.

"순우리말로는쌘비구름...비교적 낮은 높이에 형성되는데, 상승기류를 타고 수직으로 높은 고도까지 형성되는 게 특징인 구름으로 벼락과 소나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 저 그런위험해 보이는인상인가요?"

"비주얼적으로키가 커 보이셔서, 저번의 흑화 모드 잘 봤어요, 층적운 보다 높은 곳에서형성되서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요 등등의 사견이 달렸습니다만 어떠신지."

"... 흑화 모드 잘봤어요는무슨뜻이에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시는본파이어님의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나도 넌지시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저 뾰로통하니 눈살을 좁힐 뿐이었고 말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기분 나빠하면소나기 내린다 하고, 마법의 날에는 벼락 떨어진다 말하게되는 걸까.

"그러한 이유로, 어떠신지?"

"앞으로 절대로흑화 같은거안 할 거라서좀 의미적으로 어긋나지 않나싶긴 한데..."

다만, 의미와는 별개로 들뜨는 기분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개인 방송을 해보겠다마음먹은참이었으니까. 그 시작을, 나를좋아해 주는고마운 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감각. 새로운 시작점을 모두에게선물 받은듯한 기분. 스스로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원동력들.

"그래도, 여러분이 지어주신 거니까요. 당연히너무 기뻐요."

배시시웃음을지어 보였다.선물 받은 꼬맹이처럼 들뜨는 기분에 함박웃음이라도짓고 싶은기분이었으나, 그건 너무철없어 보일것 같으니까.

순간 이어진짧은 침묵. 그 사이를 비집고,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왔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자,빈손으로카메라를 가리키며 무어라 허둥지둥 몸짓을하고 계신민호 씨의 모습이 보였다. 찍어버렸는데 괜찮냐는 의미일까? 기분 좋으니 봐드릴게요. 그런 의미를 담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란운눈나...적란눈나...적란룬라....?

"프흡...이상한 말로후원하지마세요."

돌연 들려온 후원 보이스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며 그렇게 답했다. 자존심 상하게.흐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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